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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웃음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 양장
마티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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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메두사의 웃음
장미 가시 효과

이 책을 옮기며: 두 언어의 경계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옮기기
이 책을 새롭게 읽으며: 거듭 도래하는 몸의 전언

저자 소개 2

엘렌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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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e Cixous

프랑스의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 극작가, 시인, 문학 평론가 겸 탈구조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이다.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자크 데리다와 자크 라캉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으며, 같은 알제리 출신 유대인 프랑스인인 데리다와는 탈구조주의 비평 및 분석 방법론을 함께 구상하며 평생에 걸쳐 교유하며 공동 집필 등을 이어나갔다. 1968년에 출간한 《제임스 조이스의 망명 또는 대리 예술》로 평단의 격찬을 받았고, 1969년에 출간한 《안으로》로 메디시스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프랑스의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 극작가, 시인, 문학 평론가 겸 탈구조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이다.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자크 데리다와 자크 라캉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으며, 같은 알제리 출신 유대인 프랑스인인 데리다와는 탈구조주의 비평 및 분석 방법론을 함께 구상하며 평생에 걸쳐 교유하며 공동 집필 등을 이어나갔다. 1968년에 출간한 《제임스 조이스의 망명 또는 대리 예술》로 평단의 격찬을 받았고, 1969년에 출간한 《안으로》로 메디시스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성과로 교육부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의 의장을 맡아 파리 제8대학 설립을 주도했고, 이후 영문학부 초대 학과장을 맡으면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학내에 여성학연구소를 설치했다. 1970년대 프랑스 페미니즘 흐름을 이끈 중심인물로서, 1975년에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메두사의 웃음》을 출간하여 기존의 남성 중심적 언어체계와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이론적 틀이자 대항 담론으로서 ‘여성적 글쓰기’ 개념을 제시했다. 활발한 사회 참여 활동과 더불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지속하여 시와 소설, 희곡, 문학이론, 예술비평 등 9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출간했다.

엘렌 식수의 다른 상품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파리3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파리8대학에서 아니 에르노, 엘렌 식수, 샹탈 아케르만의 애도하는 글쓰기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다.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을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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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0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410g | 143*220*16mm
ISBN13
9791190853729

책 속으로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글쓰기는 그대를 위한 것이고, 그대는 그대를 위한 것이며, 그대의 몸은 그대의 것이니, 그것을 취하라. 나는 그대가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스물일곱 이전에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안다.) 그건 글쓰기가 그대에게는 너무 높고, 너무 위대한 것이기에, ‘위인들’, 다시 말해 ‘남성 위인들’ 에게만 할애된 것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지. 게다가 그대는 글을 조금 쓰긴 썼는데, 숨어서 썼다. 그건 별로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숨어서 썼기 때문에, 스스로 글쓰기를 벌했고, 끝까지 밀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마치 우리가 남몰래 자위를 하듯이, 어쩔 도리 없이, 글을 쓰면서, 더 멀리 가려 하지 않고, 그저 긴장을 완화하고, 과잉의 고통을 멈추는 정도로만 했기 때문이다.
--- p.18~21

자기 자신을 쓰면서/쓰이면서, 여성은 몸으로 돌아온다, 몰수당하다 못해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한 몸으로, 적진의 기이하게 낯선 자, 환자, 혹은 망자가 되어 버린 몸으로, 너무 자주 품행이 나쁜 동반자이자, 억압의 원인이며 장소였던 그 몸으로 돌아온다. 몸을 검열함으로써 사람들은 동시에 호흡, 말을 검열했다. 그대 자신을 써라/그대가 글로 써지게 하라. 그대의 몸이 들리게끔 해야 한다. 그러면 무의식의 무한한 자원이 분출할 것이다. 우리의 나프타, 그것은 달러도, 금도, 석유도 없이 수치화되지 않은 가치를 세상에 퍼뜨릴 것이고, 고릿적 게임의 규칙을 바꿀 것이다.
--- p.34~37

여성적 글쓰기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며, 이러한 실천을 이론화하고, 가둬서 코드화하기란 절대 불가능하기에 그 불가능성은 유지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은 언제나 남근적 체제를 지배하는 담론을 넘어선다. 여성적 글쓰기는 철학적-이론적 지배에 종속된 땅이 아닌 곳에서 행해지고 있고 행해질 것이다. 여성적 글쓰기는 기계적 자동주의를 파괴하는 주체들, 어떤 권위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경계를 누비는 자들에 의해서만 생각될 것이다.
--- p.50~51

여성들이 여성성에 관해 쓸 것은 차고 넘친다. 그녀들의 섹슈얼리티, 그러니까 그 무한하고 유동적인 복합성에 관해, 여성들의 에로틱한 표현에 관해, 그토록 미세하고 거대한 신체 부위의 번쩍이는 작열에 관해, 운명에 관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충동의 모험, 여행, 횡단, 흐름에 관해, 급작스럽고도 완만한 깨어남, 얼마 전까지 소심하게 있다가 방금 전 불쑥 드러난 영역의 발견에 관해서. 1001개의 불타는 아궁이를 가진 여성의 몸, 여성이 그 몸으로 멍에와 검열을 깨부수고 사방으로 온몸을 관통하는 의미의 팽창을 발화할 때, 단 하나의 밭고랑만 낸 오래된 모어에 하나 이상의 언어가 울려 퍼질 것이다.
--- p.64~65

사회적 성공과 승화를 권유받은 남성보다 여성들은 더 몸이다. 더 몸이기에 더욱 글쓰기이다. 여성은 오랫동안 가혹 행위, 가족-부부의 예속화 시도, 여성을 거세하려는 반복된 시도들에 몸으로 응답해 왔다. 입을 열기 전에 만 번에 일곱 번을 곱한 만큼 입안에서 혀를 돌리고, 결국 말을 하지 않는 여자, 그 여자는 그래서 죽었든지 아니면 자기 혀와 입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 나-여성은 법을 폭파할 것이다. 이제 폭발이 가능하고 불가피하다. 그리고 폭발은, 당장, 언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 p.70~73

그들의 도구, 그들의 개념, 그들의 자리를 가로채자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점유했던 지배의 지위/체위를 차지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동일화의 위험이 있음을 알지만, 그것이 우리를 굴복시키지는 않는다. 이런 것은 불안한 자들, 남성적 불안에 맡겨 두자, 지배를 위한 작동 방식, ‘작동시키기’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자 하는 그들의 강박적인 관계에 맡겨 두자. 내면화하거나 조작하기 위해 탈취할 것이 아니라, 단숨에 가로지르고, ‘비행하기’(voler).
--- p.74~75

여성과 남성은 옛 관계와 그것의 모든 결과를 무효화해야 한다. 새로운, 살아 있는 주체의 발사를 탈-가족화와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 출산의 회수에 대비하여 여성의 몸이 경험하는 열광적인 시기를 박탈하기보다는 탈-모성화-부성화하자. 페티시즘을 탈피하자. 좋은 아버지는 죽은 아버지라든가, 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식의 변증법에서 빠져나오자. 아이는 타자이지만, 폭력 없는 타자, 상실이나 투쟁의 과정이 없는 타자이다. 매번 끊어야 하는 매듭을 엮고 다시 엮는 것, 전승되고 계보로 이어지는 거세의 지루한 반복에 진력난다. 우리는 더 이상 뒷걸음질 치면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욕구처럼 너무도 꾸밈없는 것을 억누르지 않을 것이다.
--- p.90~91

여성들 안에, 여성들과 다른 이들 사이에, 혹은 여성들과 다른 곳 사이에, 아직 탐험되지 않은 어떠한 위험도, 어떠한 욕망도, 어떠한 공간도 없다. 여성은 페티시화하지 않고, 여성은 부인하지 않고, 여성은 증오하지 않는다, 여성은 관찰하고, 여성은 다가가고, 여성은 다른 여성, 아이, 애인을 보고자 애쓴다. 그건 그녀의 나르시시즘을 공고화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주인의 견고함이나 결함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며, 다만 더 잘 사랑하고, 창안하기 위해서이다

--- p.100~101

출판사 리뷰

전 세계를 반세기 동안 비행해 온 텍스트 『메두사의 웃음』
화려하고 강력하게 부활하다

‘여성적 글쓰기’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 고전이자 페미니즘 제2물결의 아이콘 엘렌 식수의 대표작 『메두사의 웃음』이 프랑스 출간 51년, 한국어판 출판 22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저 난해하다는 평가와 오해를 받는 동시에, 읽고 쓰고 창작하는 여성들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아 왔다. 이처럼 찬사와 오명이 엇갈리는, 여전히 논쟁적인 텍스트를 엘렌 식수, 아니 에르노 등의 애도하는 글쓰기에 관해 연구한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이혜인의 새로운 번역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만듦새로 선보인다.

식수는 1967년에 문학계에 데뷔한 후, 그를 프랑스의 페미니즘 이론가로 명성을 얻게 한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비롯해 80편 이상의 픽션과 에세이, 희곡, 논문 등을 저술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 왔다. 1968년 현 파리8대학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1974년에는 여성학과를 신설하며 프랑스 최초로 여성학 박사 과정을 도입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식수의 문학관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다른 책들이 국내에 출간되면서 절판된 『메두사의 웃음』에 대한 독자들의 아쉬움이 더욱 커진 상황이었다. ‘이론’이 결국 남성 중심적 지식 권력 안에 있음을 강하게 비판하며, 비남성이 살아낸 경험과 몸으로 쓴다는 것의 의미를 시적으로 써 내려 간 『메두사의 웃음』은 오늘날 지적, 문화적 생태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이는 “자기이론”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발표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 텍스트의 의미는 퇴색되기는커녕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메두사에게 아름다운 웃음을 부여하는 글쓰기

엘렌 식수는 이 책에서 메두사 신화를 재전유해 메두사에게 새로운 의미와 위상을 부여한다.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괴물 중 하나로, 아테네의 저주를 받아 머리카락은 모두 뱀이고 멧돼지의 엄니와 황금의 날개를 갖게 되어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돌로 만들어버린다. 오랫동안 메두사는 남성적인 주류 서사에서 마주할 수 없는 공포, 괴물성, 죽음, 무질서와 혼돈 등을, 또는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를 상징했다. 특히 19-20세기 서구 문화에서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데, 메두사의 머리를 ‘거세 불안’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 대표적이다. 즉 이는 여성의 성적 욕망이나 통제 불가능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이 투사된 이미지로 재현되고 소비되어 왔다.

이 같은 해석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에 의해 강하게 흔들린다.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페미니즘 제2물결’), 정신분석 비평, 후기구조주의 등이 등장하면서 메두사는 완전히 다른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가부장제에 희생되고 괴물화된 여성을, 억압된 목소리의 귀환과 회복, 저항의 상징을 의미하게 되고, 여성의 쾌락, 분노, 자율성의 표상으로 전환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엘렌 식수는 1975년 문예와 사상을 아우르는 계간지 『라르크』에 「메두사의 웃음」을 발표한다. 메두사는 더 이상 두려움의 표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되찾은 여성의 이미지가 된다. 가령 식수는 이렇게 쓴다. “메두사를 보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메두사는 치명적이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고 그녀는 웃고 있다”(62-63쪽). 남성이 두려워한 여성의 얼굴이 ‘여성의 웃음’으로 바뀌고, 바라보면 죽는다는 저주는 여성이 스스로 바라봄으로써 돌파되고, 말 없는 괴물은 “자기 몸을 되찾”(66쪽)아 말하고 글 쓰는 여성, 즉 여성적 글쓰기의 주체가 된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쓰면서/쓰이면서 몸으로 돌아온다”
오직 경계를 누비는 이들에 의한, 이들을 위한 글쓰기

그렇다면 여성적 글쓰기란 무엇일까? 많은 독자들이 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는다. 하지만 식수가 말하길 “여성적 글쓰기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며, 이러한 실천을 이론화하고, 가둬서 코드화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진술은 개념을 정의하는 과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정의라는 것이 플라톤 이래 서양 전통 형이상학, 즉 남성 중심적이고 로고스(이성)중심주의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식수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아가 전복하려 한다. 따라서 여성적 글쓰기는 “어떤 권위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경계를 누비는 자들에 의해서만 생각될 것이다”(50-51쪽).

대신에 식수는 풍부하고 구체적인 은유와 이미지를 들여와 여성적 글쓰기가 어떤 행위인지,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어떤 사례들과 맞닿아 있는지 이야기한다. 식수에게 여성적 글쓰기는 무엇보다 ‘몸으로’ 하는 것이며 “몸의 영역을 돌려주는 행위”(37쪽)이다. 그는 여성들이 글쓰기에서 멀어진 것과 자신의 몸에서 멀어진 것을 나란히 둔다(12-13쪽). 여성은 “자기 자신을 쓰면서” 또는 “쓰이면서” “몸으로 돌아온다”. “몸을 검열함으로써 사람들은 말을 검열했다”(34-35쪽). 여성적 글쓰기를 하려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으로 된-단어들/몸-에서 온-단어들”(68~69쪽)을 찾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몸과 글, 몸과 쓰기의 관계를 이론화하는 『메두사의 웃음』은 이론적이면서도 비이론적이라 여겨져 온 몸과 경험을 중심에 둔다.

경계를 뛰어넘는 내용에 맞춤한 형식을 입히다

여성적 글쓰기는 경계를 누비는 자들의 것이고, 식수는 끊임없이 이성과 감정, 언어와 몸, 남성과 여성, 문화와 자연, 중심과 가장자리의 이분법적 경계를 누비며 경계를 해체하고자 했다. 이런 식수의 글쓰기를 담는 형식으로서 이 책의 디자인 또한 경계를 넘는 실천을 시도했다. 이 책은 본문의 한 행이 왼쪽 면에서 시작해 오른쪽 면으로 이어진다. 낱장으로 되어 있는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제본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안쪽 여백이 지면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는 강력한 경계로 기능하는 형태를 잠시 무화할 수 있도록, 그 경계를 뛰어넘는 읽기 방식을 제안하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글을 가운데 정렬로 배치해 시적인 철학 에세이의 감각을 강조하고, 낯선 글쓰기를 생경한 모습으로 제시해 ‘가독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질문해 보고자 했다.

더불어, 이 책에는 「메두사의 웃음」뿐 아니라 엘렌 식수의 글쓰기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될 그의 또 다른 글 「장미 가시 효과」를 함께 수록해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그리고 밀도 높은 옮긴이 해제와 함께, ‘여성적 글쓰기-읽기’를 주제로 오랫동안 강의와 워크숍을 해온 작가 김지승의 특별한 서평도 수록했다.

추천평

“엘렌 식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편을 드는 작가이다.”
“식수의 글쓰기는 모든 계보, 모든 기원, 모든 장르와 역설적으로 결별함으로써, 작업을 하나의 사건으로 드러내고, 그에 자리를 내어 주고, 끝내 그 작업을 탄생하게 하는 데 있다. ” - 자크 데리다
“『메두사의 웃음』은 페미니즘 문학이론의 지형을 바꾼 결정적 텍스트이다.” - 토릴 모이 (영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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