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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 제1장 고구려 초기 국가 형성과 발전 1 건국 신화에서 출발하는 고구려 역사 2 초기 국가 형성과 발전 3 고구려 초기의 왕제 4 초기 국가 형성기 지배 체제의 편성 5 대외 관계 6 종교와 제사 7 풍습 제2장 정복 왕국으로의 성장 1 왕위계승 2 왕정의 전개 3 토지의 확대와 인민의 증가 4 지배 체제 5 대외 관계 6 풍습 제3장 왕정의 강화와 국제 관계의 활발한 전개 1 왕위 계승 2 왕정의 전개 3 왕위와 왕권 강화 4 지배 체제 5 대외 관계 6 제사 의식 제4장 강대한 정복 왕국으로의 성장과 중국 문명의 수용 1 왕위 계승 2 왕정의 전개 3 중국 문명의 수용과 지배 체제의 강화 4 대외 관계 5 풍습 제5장 왕국의 전성과 뒤이은 왕정의 피로 1 왕위 계승 2 왕정의 전개 3 왕정의 피로와 지배 체제 4 대외 관계 5 풍습 제6장 왕정의 파탄과 왕국의 위기 1 왕위 계승 2 왕정의 전개 3 연개소문 일인 전제로 인한 왕정의 파탄 4 지배 체제 5 대외 관계 6 풍습 제7장 왕국의 멸망과 그 후 맺음말 주 색인 |
李鍾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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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벗겨낸 고구려인, 바로 그들의 역사!
지금까지 한국 역사학계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얽매여 왔다고 하겠다. 이제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그 자체를 보듯, 근?현대 한국사학이 만들어낸 고구려사의 벽을 넘어 고구려 역사 그 자체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적은 자료를 가지고 역사를 재구성하자면 추론을 피할 수 없다. 그러한 추론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일 수 없다. 역사발전의 대세를 바탕에 두고, 비교사적인 방법을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 있었음직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가는 그가 다루는 시대로 가서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관찰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후대 역사가들이 취사선택한 사료를 통하여 역사를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고구려사의 경우 『삼국사기』?「광개토왕비」 등의 사료에 의존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고구려인들의 이야기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 재구성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사료를 통해 그 너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 바꾸어 말하면 김부식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고구려 역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들과 그 안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고구려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 아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사료에 나오는 조각난 이야기들을 가능한 한 연결시켜 나가기로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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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와 후식민사학의 색안경을 벗고 바라본 고구려의 참모습!
실증사학의 제약과 정치적 왜곡, 고구려 정통론의 허구를 벗기고 고구려의 실체를 추적한다! 『신라의 역사』,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역사충돌』을 통해 기존 학설에 도전한 이종욱 교수의 새로운 고구려 읽기. 후세인들의 왜곡과 오해를 벗겨낸 고구려인, 바로 그들의 역사 한국인들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며 고구려를 특별하게 재창조했다.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광활한 대륙을 장악하고 수?당과 같은 대제국과 당당히 맞서 싸웠던 고구려는 역사 속에서 찾아낸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영광 그 자체가 되었다. 특히 북한이 내세우는 고구려 정통론, 즉 반민족적인 신라를 계승한 남한과 달리 북한은 자랑스러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주장은 이러한 관점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한편, 실증사학을 내세우며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고구려의 국가 형성이 늦게 이루어졌다고 본 일제 사학자들의 관점은 해방 후에도 후식민사학으로 이어졌다. 후식민사학은 우리나라 사서보다 중국 사서를 더 중시하며 고구려는 초기에 5부(部) 연맹체로 존재했다는 ‘부 체제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제의 식민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저자 이종욱 교수는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통해 20세기 한국 사학계를 주도해온 실증사학과 민족사의 벽을 넘어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역사해석 패러다임을 주창하며 숱한 논쟁을 불러왔다. 2002년 민족주의의 물결 속에서 부당하게 왜곡되고 평가절하된 신라를 재해석한 『신라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 출간한 『고구려의 역사』에서도 정치적 왜곡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고구려인의 눈으로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료가 부족하여 그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고구려 초기 역사를 비교사적 해석으로 복원하는 한편, 건국신화에서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 연구의 실마리를 찾아 내었다. 그 외에도 실증적 해석과 추론을 통해 호동 왕자가 낙랑이 아닌 옥저 지역의 제후국을 정복했다거나, 「광개토대왕비」에 일본을 부각하는 내용이 들어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악용된 것은 고구려인 스스로가 원수였던 백제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이고, 고구려는 예맥, 부여, 말갈, 선비, 숙신, 거란 등의 여러 종족을 지배한 일종의 제국이었다는 등 고구려사에 대해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식민사학과 후식민사학의 역사왜곡 1945년 이전 제국주의 일본의 연구자들은 일본사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한국사를 이용했다. 일본인들은 3세기 또는 4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구려의 왕권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의 국가형성과 정치발전이 늦게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지금 그러한 일본인들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도 한국의 연구자들이 일본인들이 만든 고구려사의 틀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그 그늘에 안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금도 태조대왕(53~146) 이전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현실이나,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역사연구에 끌어들이지 않는 풍토는 한국 사학계가 일본인 연구자들의 그늘을 못 벗어난 증거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한편, 주류 사학계는 『삼국지』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고구려 초기국가 단계에서 계루부를 비롯한 5부가 연맹체를 구성했다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제가연맹, 제가회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 체제설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는 소국(小國)들을 병합하여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고구려는 피정복국의 지배세력을 제후로 편제하는 통치방식을 시행했지만, 왕은 제후들을 지배하는 정치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연맹을 구성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부 체제설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런데 2002년부터 사용된 고등학교 『국사』에서 5부 체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고구려 초기 수백 년의 역사를 부 체제설로 해석한 결과 그 이후의 역사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그러면서 학문권력을 장악한 연구자들의 왜곡된 주장을 국정교과서 『국사』에 수록하여 국민의 역사지식을 표준화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고구려-발해 정통론의 문제 현재 북한에서는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북한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한국사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사는 고조선-삼국(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대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져 왔다. 고려는 대신라(저자가 ‘통일신라’ 대신 제안한 용어)의 토지와 국민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그 지배체제를 거의 그대로 이용하여 왕국을 세웠다. 발해는 고려의 건국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 그러한 면에서 북한에서 고구려-발해를 정통으로 보는 역사관은 새로운 역사해석이라기보다는 역사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 정치행위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고구려는 민족을 지킨 보루고, 신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반민족적 국가라는 것이 북한의 관점이다. 그런데 북한은 고구려의 정통을 이었고, 대한민국은 신라의 정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6·25전쟁 때 북한의 침공을 받은 대한민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군의 도움을 받은 것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역사 읽기라고 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삼국시대에는 막연히 뿌리가 같다는 인식만 있을 뿐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고구려인들에게는 같은 민족 국가인 백제와 신라를 지켜주기 위해 수·당 등의 국가와 전쟁을 치른다는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정치행위인 중국의 동북공정 불과 몇 년 전까지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다루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의 정사인 25사에는 『고구려사』가 없고, 다만 25사의 열전에서 고구려를 다루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중국과 고구려의 관계, 고구려의 습속·제도·산물 등에 대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한다. 한마디로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고구려를 외국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고구려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조세를 거두거나 인력 동원을 하거나 왕위계승·관리의 임명 등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화주의가 대두하면서 중국 정부에서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구려사를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로 다루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들에게 고구려를 중국사라고 가르쳐 조선족과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차단하려는 것을 비롯한 복합적 목적을 가진 정치행위일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현재 중국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벌어졌던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에서 다루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고구려가 장악했던 시기의 그 지역은 중국 역사의 공백으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과 중국의 연구자들 간에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를 중국사가 아닌 고구려인의 역사, 나아가 한국사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사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축적하여 정치적 대응의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치·경제·문화·대외관계 등 고구려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복원한 통사 이 책에서는 고구려의 역사 전개를 7단계로 나누어 1장은 건국신화에서 시작하는 고구려의 초기국가 형성·발전 과정, 2장은 태조대왕에서 신대왕까지 정복왕국으로의 성장, 3장은 고국천왕에서 미천왕까지의 기간에 벌어진 왕정의 강화와 국제관계의 활발한 전개, 4장은 중국문명의 수용과 대국으로의 전환, 5장은 왕국의 전성과 왕정의 피로, 6장은 수·당과의 전쟁과 인심이 떠난 왕국의 위기, 7장은 왕국의 멸망과 한국사 속의 고구려에 대하여 다룬다. 또한 왕위 계승, 왕정의 전개, 지배 체제, 대외 관계, 풍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시대별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고구려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적은 자료를 가지고 역사를 재구성하자면 추론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역사가는 그가 다루는 시대로 가서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관찰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후대 역사가들이 취사선택한 사료를 통하여 역사를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고구려사의 경우 『삼국사기』·「광개토왕비」 등의 사료에 의존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구려인들의 이야기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 재구성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사료를 통해 그 너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 바꾸어 말하면 김부식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고구려 역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역사발전의 대세를 바탕에 두고, 비교사적인 방법을 받아들여 최대한 그럴 법한 고구려의 역사를 복원해 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들과 그 안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고구려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그 아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찾아내는 것이 한국 사학계의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익숙하지만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구려의 실체! ◆ 형수와 결혼해서 왕위에 오른 산상왕 - 고구려인의 형사처수 풍습(p. 231) ◆ 왕위의 부자세습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의 비극 - 왕의 동생들 죽이기(p. 248) ◆ 해명 태자, 호동 왕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엄격한 왕법(p. 153) ◆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 즐길 것이다” - 충신들을 죽이고 방탕한 생활을 즐긴 차대왕의 몰락과 적에게도 자비를 베푼 신대왕을 통해 얻는 역사의 교훈(p. 180~ p. 188) ◆ 「광개토왕비」의 숨은 의도 (p. 323) ◆ 바보 온달로 본 6세기의 고구려(p. 386) ◆ 말갈(발해)인들에게 역사적 시민권을 주는 현대 한국사학의 오류(p. 536) ◆ 조공은 고구려가 독립국이라는 증거다(p. 422) ◆ 중국 동북공정 속의 고구려사 문제(p. 18) ◆ 북한이 정치 행위로서 주장하는 고구려 정통론의 문제(p. 17) ◆ 건국신화에서 출발하는 고구려 역사(p. 28) ◆ 부 체제설에서 출발한 나부(那部) 연맹이나 제가 연합체는 없었다(p. 205) ◆ 고구려 중심의 세계관(p. 360) ◆ 수 양제의 잘못된 명령 하나가 수나라 백만 대군을 패배로 이끌다(p. 431) ◆ 고구려에 대한 꿈에서 깨어나라(p. 5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