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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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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1300년전 신라로의 여행
이종욱
김영사 2000.12.31.
베스트
한국사/한국문화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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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화랑세기>와의 만남과 문화적 충격
<화랑세기>가 주는 문화적 충격
문화적 충격을 넘어서
이 책을 펴내는 이유

2. 신국의 도
신라의 노래, 향가
6~7세기의 신라는?
마복자 : '신국의 도'가 주는 문화적 충격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 : 인통
미실 : 또 하나의 문화적 충격
혼인과 남녀 관계
가족과 가계
왕위 계승의 새로운 사실들
선덕ㆍ진덕 여왕 즉위의 비밀
<화랑세기>에 나오는 반란들
골품제
화랑도
신라 사람의 결사
신라인의 재물과 뇌물
신라인의 불교
포석사
신궁
건국신화
가야파의 성장과 김유신
진지왕계의 사람들
여자들의 정권 장악
신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신라 사람의 부부 관게
신라 사람들의 가족 생활
사신을 거느린 사람들
신라 사람의 대인 관계
대비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
산 자와 죽은 자를 존중한 나라
꿈의 조짐
신라 사람들의 생활
신라 사람들이 거쳤던 관직과 관부, 올랐던 관위
<화랑세기>의 기록 중 주목되는 사실들
신라의 자주성 : 칭제 건원
대외 관계
<화랑세기>에 나오는 실제와 원리

3. <화랑세기>의 진실을 찾아서
<화랑세기>를 보는 두 가지 평행선
<화랑세기>와 필자를 위한 충고
역주 <화랑세기>의 출간 : 모든 것을 건 모험
KBS 역사 스페셜
<화랑세기>에 대한 언론 보도
역주 <화랑세기> 추적
감사드려야 할 분들
<화랑세기>와 한국 고대사의 새로운 채계 : 통설과의 차이
지식 권력에 <화랑세기>가 희생되어야 하나?

4. 부록 : <화랑세기>와의 만남과 그 정체
<화랑세기>와의 만남
<화랑세기>는 어떤 책인가?
'화랑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 김대문과 <화랑세기>의 저술 목적
<화랑세기>와 필사자 남당 박창화
필사본 <화랑세기> 위작설의 문제
<화랑세기> 신빙성의 근거들

저자 소개 1

李鍾旭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신라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캔자스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인류학을 공부했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인류학 및 사회학과에서 인류학·고고학·사회학을 공부했다. 1977년부터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5년 9월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서강대학교 제13대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같은 대학 사학과의 명예교수로 있다.  1974년 첫 논문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신라판 나아가 한국 고대판 역사를 살려냄으로써 한국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최근 나타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신라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캔자스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인류학을 공부했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인류학 및 사회학과에서 인류학·고고학·사회학을 공부했다. 1977년부터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5년 9월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서강대학교 제13대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같은 대학 사학과의 명예교수로 있다.

 1974년 첫 논문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신라판 나아가 한국 고대판 역사를 살려냄으로써 한국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최근 나타난 《화랑세기》를 신라판 역사로 인정하는 작업의 중심에 서 왔다. 그러한 역사 탐구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김유신에 대한 이 책이다. 이 책 자체가 《화랑세기》가 신라인의 저술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남산신성비를 통해 본 신라의 지방통치체제〉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해왔고, 《신라상대왕위계승연구》(1980), 《신라국가형성사연구》(1982), 《고조선사연구》(1993), 《한국초기국가발전론》(1999), 《한국의 초기국가》(1999), 《신라골품제연구》(1999),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체계》(1999), 《역주해 화랑세기》(1999),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2000), 《신라의 역사 1》(2002), 《신라의 역사 2》(2002), 《역사충돌》(2003), 《화랑》(2003), 《한국사의 1막 1장 건국신화》(2004), 《색공지신 미실》(2005), 《대역 화랑세기》(2005), 《고구려의 역사》(2005), 《민족인가, 국가인가?》(2006), 《주몽에서 태조대왕까지》(2008), 《춘추》(2009), 《신라가 한국인의 오리진이다》(2012), 《상처받은 신라》(2016) 등의 저서를 출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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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525쪽 | 1097g | 173*223*35mm
ISBN13
9788934906193

책 속으로

화랑도의 구성원
위에서 화랑도 조직 자체를 알아보았다. 이제 화랑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직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그 중에는 화랑, 낭두, 낭도가 있고 화랑도와 관련된 여자들로 화주, 봉화, 유화가 있다. 그 밖에 원화, 상선, 원화와 관련된 화모 등이 있다.

원화·풍월주·상선
낭도 부곡을 이끌어 가는 주축이 된 화랑들로는 앞서 보았던 풍월주, 부제, 좌대화랑·우대화랑·전방대화랑, 좌화랑·우화랑,소화랑, 묘화랑 등이 있다. 화랑도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던 이들 화랑은 열두세 살의 빼어난 진골 및 대족의 자제 중에서 속하기를 원하는자로써 삼았다고 한다.

--- p.244

이제 신라 사람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통하여 전하고 있는 신국의 도를 밝히기로 한다. 13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국의 도를 파치는 일은 쉽지 않다. 김대문 스스로 신국의 도를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풍월주의 세상을 우리에게 전할 뿐이다. 훈련받은 사람만이 이 책에 숨어 있는 신국의 도를 읽어 낼수 있다. 필자가 가지고 잇는 역사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직관을 가지고 이 책에 숨어 있는 신국의 도를 하나하나 밝히고자 한다.

--- p. 38

앞에서 <화랑세기>의 시대에 있었던 왕위 계승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그 중 선덕왕과 진덕왕은 여왕이었다. 여왕이 즉위하게 된 이유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많은 견해들이 제기되었지만 그와 같은 의견들은 거의 모두가 사후해석에 불과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사후해석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만을 가지고 사후해석을 하게 되면, 역사의 실제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여왕의 즉위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들은 사후해석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 준다.

여왕의 즉위는 세습권의 확인이며 모권사회의 강한 흔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여왕의 즉위는 직계와 방계를 구별한 데서 연유하였고 자녀 평등주의의 한 표현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왕의 즉위에 대한 견해들은 잘못된 통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다. 특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사서의 기록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통설로는 여왕의 즉위를 이해할 수 없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이 후계자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진평) 대왕은 적자가 없어 (용춘)공의 형인 용수 전군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전군이 공에게 물었다. 공이 답하기를 '대왕의 나이가 한참 강성할 때인데 혹시 왕위를 이으면 불행할까 염려가 됩니다' 라고 하였다. 전군은 이에 따라 사양하였으나 마야 황후가 들어주지 않고, 마침내 전군을 사위로 삼았으니 곧 천명 공주의 남편이다.」

진평왕과 그 형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따라서 용수를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후에 선덕 공주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은 왕위를 이을 만하였다. 선덕이 용춘공을 사신으로 삼으려 했고 진평 대왕 역시 용춘공에게 선덕의 뜻을 받륻로고 명하였다. 용춘공은 어쩔 수 없이 선덕을 받들었는데 자식이 없어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대왕은 다시 용수에게 선덕을 모시도록 하였으나 역시 자식이 없었다. 그 결과 선덕이 왕위를 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진평왕이 선덕의 남편이 된 용춘과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을까? 선덕이 용춘을 사신으로 삼았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 pp.187-188

<화랑세기>의 저술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화랑의 세보를 저술하는 것이었다. <화랑세기>의 분문에는 많은 사람들의 출생과 관련해 부모, 조부모들에 대한 기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본문과 찬에 이어 나오는 세계에는, 각 풍월주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그 윗대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들을 전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세보와 세계의 내용에는 중복되는 사항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 p.119,---pp,7-13,---가족과 가계 중에서

<화랑세기>의 저술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화랑의 세보를 저술하는 것이었다. <화랑세기>의 분문에는 많은 사람들의 출생과 관련해 부모, 조부모들에 대한 기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본문과 찬에 이어 나오는 세계에는, 각 풍월주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그 윗대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들을 전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세보와 세계의 내용에는 중복되는 사항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 p.119,---pp,7-13,---가족과 가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신라의 역사는 항상 3세기까지 한반도 한 구석에 삼한의 한 소국으로 있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정설로 받아들여진 견해지만 분명 잘못된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1세기 중후반 경부터 이웃한 소국들을 병합하여 3세기경에는 경상도 일대를 다스리는 왕국으로 성장했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는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왕국이다. 신국의 도를 가지고 있던 신라는 삼국을 통합하여 한국 역사를 지속시켰고, 신라를 신라답게 만들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남녀관계 근친혼 처첩관계 통정, 사통은 현재 우리의 윤리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다.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의 현장으로 가 생생하게 중계를 하듯 신라사람들의 면면을 그대로 되살려낸 이 책은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온 신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신라인의 남녀관계와 혼인관계,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왕위계승과 골품제, 반란과 화랑도의 활동, 종교와 경제활동, 정치와 대외관계, 축제와 문화 등 신라와 신라인의 다양한 모습과 생활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신라사람들이 삶의 원리인 신국의 도가 무엇인지를 밝혀냈다.

이 책은 화랑세기를 김대문의 저작이라고 보지 않는 벽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벽을 넘어 화랑세기의 세상으로 직접 들어가 신국의 도를 밝혀 냈다. 화랑세기를 통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신국의 도와 신라의 모습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세상과 다르고 지난 100년 동안 소위 실증사학에 의하여 만들어진 한국고대의 역사상과도 확연히 다르다.

열린 눈과 준비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천년왕국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신국의 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라는 고정관념과 유교·기독교적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각, 그리고 1300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신라를 가장 신라답게 복원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던져줄 것이며, 동시에 또 다른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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