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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하의 길지에 자리잡은 명가
강릉의 전주 이씨 종가, 선교장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종가, 양진당과 충효당 경주 양동마을의 월성 손씨 손소 종가 해남 연동마을의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 2. 내림음식에 깃든 단아한 선비향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 김씨 예안파 종가 봉화 닭실마을의 안동 권씨 권벌 종가 영양 두들마을의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 종가 아산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문정공파 종가 3. 제례에 스민 예학의 기풍 남원 호곡마을의 죽산 박씨 충현공파 종가 논산 고정마을의 광산 김씨 사계 김장생 종가 논산 교촌마을의 파평 윤씨 노종파 윤증 종가 안동 운곡동의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 종가 4. 미래로 가는 종갓집 사람들 정읍 평사마을의 강진 김씨 태인파 종가 남해 덕천마을의 밀양 박씨 연안공파 하천종가 영광 입석마을의 영월 신씨 종가 거창 강천마을의 초계 정씨 동계 정온 종가 경주 이조마을의 경주 최씨 잠와 최진립 종가 |
李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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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11월 3일, 『수운잡방』의 산실이었던 오천 군자리 종가의 넓은 뜰에서는 손님맞이 다과상 준비로 대종손 김준식(金俊植 · 63)씨와 종부 박도현(朴度賢 · 61)씨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날 안동대학교에서 열리는 '오천 군자리 전통문화 선양 심포지엄'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하는 초청연사들의 손님맞이 때문이었다. 간단한 다과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겸손으로 종부는 못내 촬영을 꺼려했지만, 종가의 큰일은 제례와 손님맞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자 다과상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음식을 살펴보았다. 구절판에는 대추조림과 육포, 잣, 은행꽂이, 밤조림과 인삼정과, 호두튀김을 정갈하게 담았다. 붉은 목판에는 흑임자다식, 송화다식, 푸른콩가루에 가루차를 넣은 삼색 다식이 곱게 담겨져 있다. 다식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최초의 문헌이 『수운잡방』인 만큼 이 댁은 의례상이나 다과상에는 다식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녹두고물을 입힌 인절미와 밤채, 대추채를 화려하게 수놓은 단자. 쑥송편과 송기송편과 흑임자경단도 소반에 담겨져 있었다. 생강을 다져 넣어 칼칼한 맛을 낸 정과와 종가가 내세우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족편'은 늦가을에 딱 알맞은 음식이었다. 모두가 손품이 많이 드는 음식들이라 종부는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늦가을 고옥의 고즈넉한 풍경에 수백 년 내림손맛으로 만들어진 전통음식과 따뜻한 녹차로 준비한 다과상 차림에서 조선시대 양반 댁에 초대받은 느낌으로 잠시나마 스스로가 고귀한 신분이 된 듯했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pp.9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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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 선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였으면 소론의 영수다. 노론과의 치열한 당쟁으로 권력에 혐오를 느낀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만 힘쓴 선비였다. 이 댁의 제상이 이처럼 단출한 것은 선생의 후손에 대한 사랑과 선생의 가르침을 올바로 지켜나가는 후손들이 함께 만들어낸 가풍이다. 생활이 어려워 조상의 제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할 후손을 위해 선생은 '제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것이며, 일거리가 많은 화려한 유밀과며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라'는 가르침과 함께 '제물을 장만할 때는 종이로 입을 봉하고 침이 튀지 않게 정성을 다해 차려라'는 유언을 남겼다.
--- p.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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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이어주는 즐거운 제삿날
'제사를 올리는 것은 자손 된 도리를 하는 하늘의 이치인 것인디. 뭐땀시 남에게 내놓고 보여줄 것이당가. 제사는 가가례인디.' 처음 영월 이씨 종손은 제사는 제상에 올려지는 음식의 종류나 지내는 순서가 집집마다 다를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했다가 오히려 조상에게 불효가 될 수도 있다면서 제사 취재를 완강히 거절했다.그러나 '제사'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점점 잊고 있는 요즈음의 세태를 꼬집으며 간청하자, 지난 1999년 12월 16일 밤 종손의 선친 제사를 취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주었다. '세사에 이런 집도 있었구나!'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편한 것만 추구하는 이 시대에 종가 가족들이 밤을 지새워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이 그리워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가 정말 죄송했다. 5백 년 유구한 세월 동안 혼불같이 지켜온 불씨도, 불씨를 담았던 화로도 이 가문의 구심점인 제사를 위해 존재하는구나 싶어 숙연해졌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일을 정겹게 맞이하는 후손이 있어 이 댁 조상들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 같았다. --- p.256-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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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생활문화를 안고 있는 명문 종가
지난 2년여 동안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종가 17곳을 심층 취재·탐방하여, 각 종가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담은 『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 이야기』가 고유 명절인 설을 앞두고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우리는 천년 세월을 살고 있는 셈이다"는 어느 종손의 말처럼,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어떤 문화를 가꾸어왔는지를 대표적인 종갓집의 세밀한 사례를 통해 살피고 있다.
2년여에 걸쳐 전국을 누빈 취재기 -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단연 현장감과 전문가적인 안목이다. 이 책은 문화 유적을 기행하는 형식이나 인상기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전문가의 눈으로 본 종가들의 생활문화를 마치 사실적인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차와 예법과 음식, 복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가르쳐온 전문가다운 저자의 높은 안목으로 각 종가의 제례 순서, 제례 음식의 종류, 내림음식 만드는 방법, 절하는 법, 복식 등을 한컷 한컷 담아 오늘에 재현했다. 그럼으로써 마치 현장에서 그윽한 향취를 맡으며 종갓집의 여러 면모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며,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품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길제, 종손과 종부들의 절하는 법, 종부들의 삶 등 귀중한 문화자산들을 망라하고 있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열일곱 종가들의 선정 기준은 첫째는 종가의 상징인, 즉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종손이 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야만 살아 있는 종가의 생활 풍속을 취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예가 엄격해 좀처럼 열지 않은 종가의 사당문을 열게 하고, 종손과 종부의 절하는 법을 일일이 사진에 담고, 때도 아닌 제례음식을 종부가 직접 만들도록 하는 데는 저자의 다리품과 예를 다한 깍듯한 큰절이 큰 몫을 했다. 현대 속에 뿌리내린 전통의 향기 - 이 책에 나오는 종가댁의 사람들은 여전히 멋과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저자가 20세기의 끝자락에서 만난 종부들은 대를 이어 실질적으로 종가를 이끌어온 산파이자 산증인이었다. 대개 환갑을 넘긴 종부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현대문명과 맞닿아 있는 오늘의 우리 문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종부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조상의 멋과 지혜가 녹아 있는 올바른 전통이 명문종가들의 고색찬연한 고택 안에서 아름답게 숨쉬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200여 컷이 넘는 사진들을 따라가다보면 고루해보이는 예(禮)라는 것이 어떤 틀에 박힌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환경에 맞게 거듭나고 변화하는 가가례(家家禮 : 집안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예법)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가의 가풍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제례가 불편하기만 한 전통이 아니라, 단연코 우리의 복식문화와 음식문화· 차문화· 용기문화· 정신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의견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