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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권위를 거부한 지식인 왜 지금 비코인가? / 마르크스도 조이스도 주목한 비코 / 비코의 다양한 계승 / 18세기 이탈리아와 21세기 한국 / 사이드가 말하는 참된 지식인 비코 / 국가와 전통을 떠나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 / 사이드의 비코관 - 처음으로 돌아가라 / 인접한 복수관계의 논리 / 비코의 사회철학 / 이 책에서 말하는 비코 / 비코에 대한 다른 논의 2. 생애 《자서전》 / 비코의 시대 / 남구형 사고 / 이탈리아의 계몽사상 / 비코의 출생과 성장과정 / 에피쿠로스파와 데카르트 / 불행하지만 가정에 충실했던 가장 / 개강강연 / 종교와 정치에 대한 태도 / 학문의 스승들 / ‘현대 학문의 방법에 대하여’ 《이탈리아인 태고의 지혜》 / 《보통법》 / 《새로운 학문》 3. 새로운 학문의 기초 《새로운 학문》의 구조 / 비코의 연구방법 / 민족 중심주의와 학자 중심주의의 배격 / 비코의 철학 비판과 섭리론 / 철학과 언어문헌학의 결합 / 비서양에 대한 오해 / 보편적 역사 발전의 원리인 공통감각 / 진리는 창조된 것 / 계통발생과 개체발생 / 비코가 말하는 학문 4. 역사발전 3단계론 영원한 이념사 / 공통감각을 통해 발현되는 신의 섭리 / 야만적인 신의 시대 / 신화와 시적 상징인격 /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영웅의 시대 / 이성과 문명이 지배한 인간의 시대 / 개인과 인류 / 역사의 회귀 5. 세 시대의 언어 언어 / 《보통법》에서의 언어연구 / 언어의 성질 / 신의 시대의 언어 / 영웅의 시대의 언어 / 비코의 시론과 미학 / 참된 호메로스의 발견 / 인간의 시대의 언어와 시의 퇴보 / 3단계는 동시에 발생한다 6. 비코의 자연법관 자연법 / 법 / 법의 내부적 변화 / 인간의 시대의 법 / 비코 법이론에 대한 비판과 평가 7. 비코에 대한 평가 비코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 비코와 마르크스주의 / 비코에 대한 20세기 학자들의 평가 / 벌린의 비코관 /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코 |
朴洪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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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 때였을 것입니다. 나는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처음 읽었어요. 그 책은 너무나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낡은데다 작가의 스타일조차 난해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책이 비록 18세기 나폴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자 수사학자가 쓴 것이긴 하지만, 역사와 세계에 대한 저자의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태도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겨주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1장 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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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비코가 데카르트의 인식론만이 아니라 그것이 결과하는 배타적 개인주의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 자신은 정치에 무관심했으나, 그의 회의주의는 그가 말하는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합리적 또는 자연적 사회의 구축 가능성을 암시한 점에서 하나의 해방의 논리라는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비코는 이러한 회의주의가 앞서 말한 인간의 공통감각에 대한 회의를 결과하여 각자 자신의 판단이나 욕구 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며, 그 결과 사회를 고독의 상태로 타락시키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머리말 처음에서 인용한 비코의 당대 사회에 대한 처절한 비판의 근거였다.
(3장 144-14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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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코는 당대의 주류였던 자연법론, 사회계약론, 공리주의, 개인주의, 유물론, 이성주의 등을 모두 부정했다. 즉 그들이 오류에 빠진 것은 체계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인간적 전망과 동기의 영속성, 그리고 그 전망과 동기가 다시 인간 본성의 변화하는 요구에 의해 반복적으로 지배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불변적이고 선험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를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구 정신을 통째로 부정했다. 이러한 서구 정신이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비코는 여전히 현대 서양 문화에 대한 비판가로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7장 2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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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문화가 르네상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르네상스 시대가 후세에 남겨준 진정한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박홍규 교수는 ‘다양성 속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르네상스 시기의 주요 흐름들을 모두 비판한 비코를 도리어 ‘르네상스의 참된 전통을 잇는 사상가’로 부른다.
비코가 살던 18세기에는 데카르트식 합리주의가 사상계를 지배했다. 데카르트는 수학이나 과학적 방법을 너무 중요시한 결과 역사를 무시했다. 수학이나 과학의 확실성에 비추어 볼 때 역사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학문이라는 투였다. 그러나 비코는 다르게 보았다. 역사가는 자연철학자보다 더욱 심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역사는 인간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므로 진리는 곧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그의 입장에 의하면 역사는 그만큼 더 진실한 학문일 수 있었다는 게 비코의 관점이었다. 따라서 비코가 보는 역사는 데카르트나 로크와 같은 수동적인 인간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개념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역사 인식에 근거해 비코는 비역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상가들을 모두 비판했다. 문명인과 원시인이 똑같은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본 그로티우스 같은 자연법론자들, 데카르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 홉스와 같은 공리주의자들, 에피쿠로스주의자들까지 모두 비코가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들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철학의 기본 전제가 된 ‘인간 본성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실체’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 비코에 따르면 개인이든 사회든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발전의 각 단계는 운명에 의해서도 우연에 의해서도 아닌 인간 자신의 목표와 의지에 의해 진행된다. 만일 인간의 사리사욕 때문에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작용하여 극한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게 된다. 역사의 각 단계는 그 사회 특유의 문화와 제도가 존재하며, 인간은 고립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역사단계의 문화와 제도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간다. 이러한 비코의 역사개념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익숙하지만 비코가 살았던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생전에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불우한 학자로서 살았다. 그는 사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세기 말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크로체가 그를 독일 이상주의의 선구자로 평가하며 비코의 학문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켰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비코에 대해 언급하여 마르크스 역사발전론이 비코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까지 일으켰다. 그 외에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학자들도 인간을 주체로 보는 비코의 관점을 수용했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비코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고 실증주의자인 오귀스트 콩트, 문화연구가 아우어바흐,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코를 자신의 학문적 스승으로 추앙했다. 획일화된 사고방식이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가 사이에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지금의 세계에 다원적 사고를 옹호한 잠바티스타 비코야말로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국 중심주의적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사이드에 의해 영웅으로 불렸을 것이다.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일을 지식인의 책무로 생각하는 박홍규 교수가 이 책을 통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비코를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