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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오리엔탈리즘으로 읽는 지배의 역사와 저항의 철학
박홍규
틈새의시간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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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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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독자에게 드리는 글

[1부: 제국의 시선과 타자의 탄생]

머리말
1강 오리엔탈리즘, 문명을 굴절시키는 프리즘
유쾌한 전복, 창조적 되쓰기 / 오리엔탈리즘,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오리엔탈리즘의 출발점 / 문화, 제국주의, 그리고 사이드 / 낯선 문화를 바라보는 수상한 시선, 오리엔탈리즘
2강 낭만이 지운 식민의 조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식민주의적 낭만화 / 식민지의 경제 구조와 케냐의 역사적 배경 톺아보기 / 낭만이 지운 식민의 조건들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웃 오브 오리엔탈리즘
3강 영광의 탈출인가, 강탈의 정당화인가?
출애굽의 감동이 ‘정당성’으로 번역되는 방식 / 피해자를 가해자로 호명하는 순간, 사이드의 질문이 시작되다 / 제국의 개입이 영웅담으로 바뀌는 장치 / 오리엔탈리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 트럼프는 오리엔탈리즘의 화신이다
4강 조작된 기원, 재구성된 ‘그리스·로마’라는 신화
‘상상’은 어떻게 ‘학문’으로 굳어지는가 / ‘진보’의 언어로 동양을 배제하다 /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 /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은 누구인가 / 문학작품으로 보는 오리엔탈리즘 / 그리스-로마의 복권과 동방의 추락
5강 단테와 셰익스피어에서 콜럼버스까지
중세의 암흑과 동양의 광명이라는 역전 /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타자화 작업의 선구자였다 / 아메리카 원주민 제노사이드와 문화적 오리엔탈리즘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과 주체적 정체성의 회복
6강 법이 침략의 문법이 되다
해방의 논리와 침략의 명분을 함께 품은 자연법 / 국제법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정당한 전쟁’의 궤변 / 노예무역,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 / 19세기까지 동양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7강 19세기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절정
‘지식’은 어떻게 침략의 병기가 되는가 / 영국의 ‘징고이즘’과 식민지 수탈의 경제학 / 문명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만 / 고전 사상이 감춘 차별의 논리를 읽다
8강 끝나지 않은 지배, 20세기의 오리엔탈리즘
영·프에서 미·중으로 제국은 대물림된다 / 지식인들의 기만 / 니얼 퍼거슨과 ‘제국주의 미화’의 변종 / 스크린에 갇힌 타자, 영화 속 오리엔탈리즘 / 자포니즘과 우키요에, 동양의 매혹을 기획하다 / 우리 안의 이중성
맺음말

[2부: 저항의 철학,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1강 사이드 읽기의 문제점
2강 팔레스타인 난민
3강 사이드의 친구들_촘스키, 비코, 그람시, 파농
4강 사이드의 적들_마르크스, 니체, 푸코, 헌팅턴
5강 세속주의와 휴머니즘
6강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7강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8강 사이드의 팔레스타인론
9강 사이드, 카뮈를 비판하다
10강 서양 미술의 오리엔탈리즘
11강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12강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넘어서

맺음말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2021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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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40*210*30mm
ISBN13
9791193933220

책 속으로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 영화 가운데 내가 가장 황당하다고 느끼는 작품은 「타잔(Tarzan)」이다. 백인 소년이 아프리카 밀림에 버려졌는데, 그곳에서 동물과 교감하며 숲의 왕자가 되고, 마침내 자연과 공간을 지배하는 존재로 성장한다는 서사는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이 영화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 1875~1950)가 쓴 소설 『유인원 타잔Tarzan of the Apes』(1912)을 원작으로 삼아 만든 것이다. 문제는 말도 안 되는 허구라는 포인트가 아니다. 만약 아프리카라는 공간이 정말로 타잔에게 자기 삶의 세계였다면, 그 세계의 중심에 서는 인물은 당연히 그 땅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타잔 서사는 아프리카를 무대로 쓰면서도 아프리카인을 중심에서 밀어내고, 백인이 그 공간의 주인으로 등극하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구체화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는 삶의 세계가 아니라 모험의 무대가 되었고, 무대의 주인은 늘 외부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 아닌가? 원래의 주체를 타자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배경으로 남게 하고, 주체의 자리를 외부에서 온 세력에 넘겨주는 것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동시대의 문화 환경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외국인 패널이 소비되는 방식, 유색인종이 등장할 때의 시선과 역할, 특정 사건이 터졌을 때 “인종차별이냐 아니냐”로 소모되는 논쟁 역시 결국은 누가 발화자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심어주는 이미지와 역할 배치가 사회 전반의 감각을 어떻게 훈련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 「1부 2강」 중에서

특히 19세기적 르네상스 서술은 고대의 부활과 근대의 기원을 한 줄로 연결하면서, 특정 시기를 인류 최고 문화의 탄생처럼 안정된 표상으로 굳혀 왔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는 역사적 시기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서술이 생산한 범주, 즉 일종의 브랜드로 기능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이 발생한다. 르네상스가 과연 누구에게 재탄생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일부 도시, 일부 후원자, 일부 지식인에게는 재탄생이었을지 모르나, 모든 대중의 삶이 곧바로 해방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문제는 르네상스가 서구의 재탄생으로 서술되는 순간 다른 지역은 아직 재탄생하지 못한 공간으로 배치되는 비교의 질서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비교 구조는 서구의 자기 서사가 세계를 분류하는 규범으로 확장되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그 분류의 틀 위에서 더 신속히 성장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우리가 인본주의의 정수로 배우는 서구 고전 문학의 이면에 타자를 악마화하거나 폄훼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깊이 박혀 있다는 점이다. 중세 말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The DivineComedy』은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신곡』의 「지옥」 편에서 그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제8원(제8지옥)의 제9구렁에 머물게 한다. 제8원은 말레볼제(Malebolge, 사악한 구렁)라고 불리며 사기나 기만을 저지른 자, 분열을 일으킨 자들이 벌을 받는 곳인데, 총 10개의 구렁으로 나뉘어 있다. 무함마드는 그중 제9구렁에서 형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당시 중세 기독교적 관점에서 무함마드를 새로운 종교를 만든 창시자가 아니라 기독교를 분열시킨 이단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옥」 편 제28곡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턱에서 밑바닥(항문)까지 몸이 갈라져 내장이 밖으로 쏟아지는 처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종교적 편견이 강하게 투영된 묘사로 평가받지만, 당대 서구 사회가 이슬람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이기도 하다. 즉 이슬람을 기독교 세계의 규범 바깥으로 밀어내는 상상력을 재현한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비유하자면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최악의 악당으로 묘사한 것과 다름없는 모욕이지만, 서구 문학사에서는 이를 인본주의의 전파 과정으로만 칭송해 왔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지 중세적 편견의 흔적이 아니라 정전화된 텍스트가 타자를 규정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이 얼마나 일찍부터 고전의 내부에 자리했었는지를 드러낸 증거이다.
--- 「1부 5강」 중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을 지배한 가장 강력한 정서는 징고이즘(Jingoism)이었다. 징고이즘이란 맹목적이고 호전적인 배타적 애국주의를 의미하는데, 이 용어는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술집 노래의 가사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만약 해야 한다면, 징고(Jingo, 세상에나)! 우리에겐 배도 있고, 군대도 있고, 돈도 있다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징고이즘은 단순히 정치인들의 전략에 그치지 않았다. 언론과 대중문화가 이에 결합하여 평범한 시민들마저 침략의 지지자로 만들었다. 소설가 출신으로 영국 총리를 역임한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화려한 수사법으로 제국의 영광을 찬양하며 대중의 허영심을 자극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 황제’라는 타이틀을 헌정하며 영국을 선택받은 문명으로 격상시켰다. 그뿐 아니다. 당시 영국의 일간지들은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문명화 작업으로, 원주민의 저항을 비이성적인 폭동으로 묘사하며 징고이즘적 광기를 증폭시켰다. 이처럼 징고이즘은 오리엔탈리즘을 대중적 정서로 확산시켜, 타국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행위에 도덕적 죄책감 대신 애국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했다. 나아가 영국은 징고이즘의 기치를 내걸고 세계 경제의 지도를 자신들을 중심으로 재편했다. 영국의 경제적 수탈 방식은 치밀하고도 잔인했다. 인도의 경우를 보자. 인도는 전통적으로 세계 최고의 면직물 생산지였으나 영국은 자국 맨체스터의 기계식 면직물을 팔기 위해 인도의 자생적인 산업망을 철저히 파괴했다. 인도산 면직물에 살인적인 관세를 매기는 동시에 인도의 가내 수공업자들의 손목을 자르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다. 결국 인도는 면직물 수출국에서 영국의 저급 면제품을 사들여야 하는 비참한 수입국이자 원료 공급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1부 7강」 중에서

촘스키와 사이드는 반드시 같은 학문이나 비평의 세계에 속하지는 않지만, 반권력주의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반권력주의는 아나키즘의 본질로서, 촘스키는 명백하게 아나키스트임을 자처하는 반면 사이드는 그렇게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드가 아나키즘에 상당히 공감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앞에서 보았듯이 그가 평생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방랑자처럼 살았다는 점은 전통적인 아나키스트의 면모와 가깝다. 볼셰비즘에 부정적이라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공통된다. 정통을 내세우며 독단적으로 일치를 강요하는 태도에 반대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두 사람은 어떤 중심주의에도 반대한다. 유럽중심주의는 물론 미국 중심주의도 거부한다. 『오리엔탈리즘』 역시 본질적으로는 정치권력과 결탁한 문화권력, 즉 학문권력·언론권력·문학권력·예술권력 등에 대한 비판의 책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실체는 이른바 지식인, 즉 대학교수·언론인·문학인·예술인 등이다. 사이드는 마르크스주의나 혁명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를 마르크스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를 어색하게 뒤섞은 사상가로 보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논의에서는 경제나 계급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기보다 제한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으며, 계급의식보다 개인의 윤리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정치적 불가지론자이며 아나키즘에 가깝지만, 그 어느 것에도 깊이 귀속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생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위해 싸웠고 팔레스타인 임시정부의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권력이나 물질적 보상과는 전혀 무관한 지극히 상징적인 행위였으며, 몇 년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하는 정도에 그쳤다. 학문적으로도 사이드는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 파농(Frantz Fanon, 1925~1961)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어떠한 학파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그의 정치적 목적은 뚜렷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세상의 이해를 구했던 것뿐이다. 이 점에서도 사이드는 촘스키와 다르다. 촘스키는 아나키즘에 입각한 자유와 자치의 사회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이드와 촘스키 두 사람 모두 생태·환경 문제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반권력 휴머니스트로서 이 두 사람을 넘어서는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까?

--- 「2부 3강」 중에서

출판사 리뷰

1991년 번역에서 2026년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까지

1991년 박홍규 교수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했을 당시, ‘오리엔탈리즘’은 한국 사회에 낯선 단어였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동양 예찬론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오리엔탈리즘은 학계를 넘어 일상 언어가 되었다.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적이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묻는다. 용어는 익숙해졌지만, 우리는 정말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했는가. 더 나아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직시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는 한국의 학계가 사이드를 자주 인용하면서도 그의 문제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학문과 현실이 분리된 채,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하나의 지적 유행이나 출세의 도구로 소비되어온 것은 아닌지 묻는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서양의 동양 인식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을 통해 왜곡된 채 수용된 한국의 오리엔탈리즘, 백인 중심주의와 동남아 차별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 K-컬처 속에 남아 있는 서구 승인 욕망까지 함께 짚는다. 1부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는다면, 2부는 “왜, 그리고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답한다.

트럼프 오리엔탈리즘과 21세기 제국주의는 ‘평화와 개발’의 가면을 썼다

책의 첫 장면은 충격적이다. 2026년 1월, 재러드 쿠슈너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가자 지구 재건 계획. 초고층 빌딩 180채, 관광 리조트, 해변 개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사는 배제된 채, 전쟁의 폐허는 부동산 개발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저자는 이 장면을 현대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으로 읽는다. 제국은 더 이상 자신을 침략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평화, 재건, 개발, 투자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약소국의 정치적 고통은 경제적 사업으로 바뀌고, 배제는 폭력이 아니라 정책 설계로 포장된다. 점령은 개발이 되고, 지배는 감독이 되며, 권력은 합리성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트럼프는 가자의 폐허를 ‘부지’와 ‘위치’의 언어로 설명했다. 수많은 죽음과 추방, 상실의 역사는 지워지고, 남는 것은 해변과 토지 가치뿐이다. 저자는 이것이 19세기 제국주의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더욱 교묘하게 진화한 21세기형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오리엔탈리즘은 조잡한 편견이 아니라 전문적인 언어로 작동한다. 점령이 아니라 개발을 통해, 폭력이 아니라 계획을 통해, 침략이 아니라 평화의 이름으로 작동한다.

백인을 동경하고 동남아인을 차별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

이 책의 비판은 서구를 향해서만 뻗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 사회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한국은 오랫동안 자신을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로 이해해왔다. 서양이 동양을 열등하고 미개한 세계로 그려왔고, 한국 역시 그 시선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무르는 순간, 한국 사회가 다른 비서양인들을 향해 행사해온 차별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재직했던 지방대학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위계를 보여준다.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여성의 상당수는 동남아·중국·아프리카 출신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실제로 동경하고 교류하려는 대상은 여전히 서구권, 특히 백인이다. 백인 유학생은 쉽게 호감과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비백인 유학생은 거리감과 차별 속에 놓인다. 이 모순은 한국 사회가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얼마나 깊이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현실에서는 동남아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후진국 사람으로 낮춰본다. 반면 역사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규정해온 백인 중심 문화는 여전히 선망한다. 저자는 이 감각의 뿌리에 개항기 이후 일본을 통해 강화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있다고 본다. “서양=문명=선진=강대국” “아시아=후진=야만=약소국”이라는 등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지배의 역사’와 ‘저항의 철학’을 한 권으로 읽는다

1부 「제국의 시선과 타자의 탄생」은 박홍규 교수가 국립순천대학교에서 진행한 오리엔탈리즘 강연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이 부분은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동방을 괴물과 야만의 공간으로 상상한 방식, 중세 문학과 대항해시대가 타자를 발견하고 분류한 방식, 자연법과 국제법이 식민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기능한 과정을 살핀다. 또한 영국의 징고이즘, 식민지 수탈, 니얼 퍼거슨의 제국주의 미화, 영화와 대중문화 속 오리엔탈리즘까지 검토하며 이 오래된 시선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2부 「저항의 철학,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는 오리엔탈리즘 비판 이후의 질문을 다룬다. 저자는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들으며 “사이드가 살아 있었다면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했다.

「기생충」은 서양을 흉내 내지도, 민족주의적 자기 찬양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통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오리엔탈리즘 너머의 가능성을 본다. 이 부분은 팔레스타인 난민으로서의 사이드, 권력에 맞선 지식인으로서의 사이드, 종교적 근본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동시에 거부한 세속적 휴머니스트로서의 사이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촘스키, 비코, 그람시, 파농, 마르크스, 니체, 푸코, 헌팅턴 등 사이드가 영향을 주고받았거나 비판적으로 대결했던 사상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사유를 다시 읽는다. 또한 『이방인』 속 아랍인 살해 장면을 통해 프랑스 지식인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모두 넘어서는 진정한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책은 오리엔탈리즘을 단순한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권력, 문화, 정치가 결합한 지배의 구조로 읽는다. 동시에 그 구조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지적 태도를 묻는다. 사이드가 말했듯, 지식인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망명자이자 이방인이어야 한다.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① 트럼프 시대, 오리엔탈리즘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가자 개발 계획,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서 보듯 21세기 제국주의는 ‘개발과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약소국의 정치를 경제로 전환한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제국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②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직시해야 탈식민이 가능하다
서양 숭배와 동남아 차별. 이 이중성은 19세기 말 일본을 통해 배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정신적 노예’ 상태에 머문다.
③ K-컬처의 진짜 의미를 찾으려면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필수다
K-팝, K-드라마, K-푸드. 이것들이 진정한 한국 문화인가, 아니면 서양 문화의 모방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④ 지식인의 책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이드는 말했다. “지식인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망명자이자 이방인이어야 한다.” 출세와 권력에 순응하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이 책은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⑤ 35년간의 사유가 집약된, 박홍규의 결정판
1991년 번역 이후 35년. 저자가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고민해온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겼다. 이것은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한 지식인의 평생 화두에 대한 최종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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