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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바깥에서
노예와 여성, 노동자와 소수자가 바꾼 쓰기의 역사
박홍규
틈새의시간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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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_글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Part 1 노예와 여성의 첫 목소리
이솝_노예로 태어나 우화를 지은 사람: 이솝 추억 / 이솝의 삶 / 권력 비판의 정치적 함의 / 민중 비판의 정치적 함의 / 평가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_휴머니즘 희극을 쓴 노예: 한국의 노비 출신 학자와 예술인 / 노예가 휴머니즘의 선구가 되는 희극을 쓰다 / 테렌티우스의 작품 / 평가
사포_여성으로서 시를 쓴 최초의 사람: 고대에 여성은 노예와 같았다 / 사포의 시 / 역사 속의 사포

Part 2 근대 문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_격랑 속에서 태어난 돈키호테: 나는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의 스페인 / 세르반테스의 삶 / 『돈키호테』 - 피카레스크 소설 / 산초 판사 / 반항 정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_가난에서 피어난 글: 아동문학과 아동인권 / 안데르센의 시대/ 안데르센의 삶 / 안데르센과 키르케고르 / 기이한 작가의 기괴한 동화
찰스 디킨스_공장 소년의 고발: 디킨스의 삶 / 디킨스와 대영제국 / 19세기 영국의 상태 / 『어려운 시대』와 산업 자본주의 / 영향과 평가
마크 트웨인_떠돌이가 쓴 미국: 트웨인 이미지 / 트웨인의 삶 / 『코네티컷 양키』와 트웨인의 노동관 / 노동기사단과 트웨인 / 트웨인, 노동자들의 왕조를 꿈꾸다

Part 3 일하는 몸, 말하는 주체가 되다
파블로 네루다_노동을 시로 옮긴 시인: 시와 거리가 먼 사람에게 시를 건네준 시인 / 20세기는 남미 문학의 시대 / 가난하고 눌린 삶 / 네루다의 시
주제 사라마구_바닥에서 일어선 사람들의 문학: 바닥에서 일어서서 / 52세의 실직, 58세에 찾은 자신만의 목소리 / 눈먼 자들의 나라 한국에서 건네는 질문 / 작가의 길
귄터 발라프_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다큐멘터리 오페라 / 나의 인종차별 체험 / 발라프는 누구인가? / 『13개의 불편한 보고서』 / 파시즘과 언론재벌 반대 운동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 『언더커버 리포트』 / 『버려진 노동』
제라르 모디랫_복수로서의 글쓰기: 복수는 나의 힘 / 『대안은 없다』 / 모디랫은 명실공히 노동자 작가다 / 『산 자와 죽은 자들』
어빈 웰시_제국의 표준어 바깥에서: 스코틀랜드 문학 / 웰시의 삶 / 『트레인스포팅』과 『필스』 / 켈먼, 촘스키, 웰시

Part 4 겹겹의 억압을 넘어서
마이아 에켈뢰브_울타리를 뜯는 사람: 에켈뢰브는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 청소 양동이와 버려진 종이 위에서 / 자기 삶을 넘어 세계로
라오서_근대의 바퀴 아래에서: 인력거와 밑바닥 노동의 감각 / 라오서, 도시의 밑바닥을 본 작가 / 『낙타 샹즈』, 성실한 개인이 구조 앞에서 꺾이는 이야기
강경애_끝나지 않은 인간 문제: 경계 바깥에서 자란 삶 / 『인간 문제』와 선비의 몸 / 끝나지 않은 인간 문제
마야 안젤루_침묵에서 노래로: 내 인생 최고의 날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 침묵에서 공적 목소리로
제임스 볼드윈_가장 사적인 상처에서 세계를 읽다: 13세의 사회주의자 / 세계의 희생자들, 그리고 파리 / 미국을 넘어 세계로
맺음말_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글쓰기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놈 촘스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 『불편한 인권』 등 다수의 책을 쓰고,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자유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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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94쪽 | 128*188*20mm
ISBN13
9791193933268

책 속으로

테렌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로마 원로원 의원 테렌티우스 루카누스의 노예로 팔려 왔다. 주인은 그에게 교육을 시켰고, 재능을 알아본 뒤 해방시켰다. 여기까지는 노예 출신 지식인의 흔한 이력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테렌티우스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1세(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기원전 235년~183년), 가이우스 라엘리우스(Gaius Laelius, 기원전 234년경~160년) 같은 로마 최고 귀족들과 어울리며 스키피오 학파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 문화의 세례를 받아 세련된 라틴어 희곡을 쓰기 시작하자 로마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예 출신이 그런 문장을 쓸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소문은 실은 그 귀족 후원자들이 대신 써주고 테렌티우스는 얼굴마담 노릇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테렌티우스는 이 소문을 굳이 강하게 반박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소문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비난이야말로 노예 출신 작가가 마주하는 전형적인 벽이다.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실력의 소유권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솝의 이야기가 구전으로 남아 저자성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면, 테렌티우스는 반대로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저자성을 의심받았다. 노예 출신 작가는 무능해도 의심받고 유능해도 의심받는다.
---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중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가장 정확하게 트웨인을 평가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나왔다. 그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고 말했다. (...)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트웨인이 당대의 미국을 철저히 비판한 반체제적인 인물로서, 그의 비판이 지금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즉 그는 인종차별과 제국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열렬한 노예폐지론자(Abolitionist)였으며, 여성참정권을 주장했고, 소수인종에게 동정적이었다. 이런 점들은 지금 미국에서도 여전히 문제이니 트웨인의 비판은 여전히 살아있다. 물론 남부연맹군, 정확히는 친노예제 민병대에 자진 입대해서 2주간 복무했다 탈영하는 과오도 범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작은 과오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문제 삼을 필요도 없다. (...) 그러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노동자 출신의 위대한 노동소설가라는 점이다. 특히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이하 『코네티컷 양키』로 줄임)는 소위 ‘황금시대’의 노동자 착취를 비판하면서, 소수(자본가 등)를 독점적 관행과 정부 보조금 로비를 일삼는 억압자로, 다수(노동자 등)를 억압받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런 반체제성이나 그가 노동소설가라는 점은 미국 이상으로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아 문제다.
--- 「마크 트웨인」 중에서

1985년 발라프는 다시 변장을 택했다. 콘택트렌즈와 가발로 외모를 바꾸고, 당시 독일 사회가 터키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 곧 어눌한 말투와 위축된 몸짓, 쉽게 무시해도 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표정과 태도까지 의도적으로 몸에 입힌 채 알리 시걸리올루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심지어 힘든 노동도 기꺼이하겠다고 했다. 이후 농장 일꾼, 맥도날드 직원, 원자력 발전소 응급 구조대원 등 자격 미달 노동자로 여러 일을 전전했다.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해 2년간의 잠복 실험을 중단해야 했지만, 그 체험은 독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발라프는 사실 1970년대 초 이미 ‘알리’라는 가명을 생각해두었지만, 언어 문제 때문에 10년 동안 프로젝트를 미뤄야 했다. 10년 뒤 그는 튀르키예인 알리 레벤트라는 이름으로 맥도날드 지점 보조원, 대규모 건설 현장 임시직, 티센/뒤스부르크의 임시직 채용 기관 노동자, 약물 실험 대상자 등으로 살아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튀르키예인들이 문자 그대로 ‘최하위 계층’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들은 경기 침체기의 임시 노동자로 이용될 뿐 아니라, 가장 더럽고 위험한 일을 떠맡는 값싼 노동력으로 소비되었다. 발라프는 외국인 노동자의 관점에서 서독 현실을 다시 경험했고, 그 경험은 독일이 자랑하던 민주적 법치주의보다는 오히려 아파르트헤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발라프가 여기서 보여준 것은 단순한 잠입 취재가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 곧 가장 바깥으로 밀려난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독일의 얼굴을 기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외국인 노동자 르포이자 경계 밖에서만 가능한 글쓰기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 「귄터 발라프」 중에서

세상에 저항해야 할 이유를 꾸준히 상기시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모디랫이 그렇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저항적이어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 연금 개혁, 노동법 해체, 한도 끝도 없는 임금 삭감, 수많은 간접세 신설, 부자 감세….” 그는 한편으로는 가장 첨예한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 하나의 충동으로 우리 문명의 기원에 대한 가장 학문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도 그는 특이한 작가이다. 모디랫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명실공히 노동자다. 프랑스 철도청(SNCF)의 자물쇠 수리공이었던 아버지와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빈민가인 파리 20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학과 역사에 관심이 컸던 그는 일찌감치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독학했고, 인쇄소 노동자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지만, 곧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시집 출간에 이어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영화를 만들고, 고용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리베라시옹』 문예란을 담당했다. 1981년 첫 소설 『사회주의 공화국 만세!Vive la sociale!』를 출간한 뒤 신문사를 떠나 소설, 수필, 텔레비전 및 영화용 픽션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였다. 그 소설은 1984년에 작가 자신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가가 아니다. 그가 그 다양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동자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디랫은 노동자를 주제로 삼는 작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세계에서 출발해 그 세계를 한 번도 배반하지 않은 작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 「제라르 모디랫」 중에서

1931년 중국으로 돌아온 뒤 칭다오에서 교사 생활을 이어 가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36년 대표작 『낙타샹즈』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베이징에 사는 가난한 인력거꾼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 소설로, 하층 서민의 애환과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하여 중국 비판적 리얼리즘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라오서는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문인들에게 항일과 애국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쓰도록 격려했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는 미국에 머물렀고, 펄 벅의 도움도 받았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미국에 남으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희곡 창작에 힘써 1957년 중국 현대 희곡의 대표작 「찻집」을 발표하며 다시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말년은 비참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라오서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8월 23일, 문화대혁명에 동원된 학생·청년 조직인 홍위병들은 병원을 다녀오며 사무실에 잠깐 들른 그를 붙잡아 “제1의 반동적 학술 권위자”라고 몰아붙였다. 이어 공자묘 계단 앞에서 그의 머리를 밀고 얼굴에 먹칠을 한 뒤 쇠버클 달린 혁대로 무참하게 때리고 조리돌림했다. 다음 날 밤 그는 베이징 타이핑호수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자살설이 지배적이지만, 정확한 진상은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평생 도시의 밑바닥 인간을 쓰고, 국가와 전쟁과 사회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작가가, 결국 국가가 동원한 집단적 광기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 「라오서」 중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볼드윈은 더 이상 미국의 흑인 작가라는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1956년 소르본에서 열린 제1회 흑인 아프리카 작가 및 예술가 회의에 참석하고, 네그리튀드 운동과 프란츠 파농, 생고르, 세제르 같은 인물들의 사유와 마주하면서 그는 흑인 디아스포라와 식민주의의 문제를 더 넓게 생각하게 된다. (...) 볼드윈은 젊은 시절 좌파 정치에 매료되었지만, 인종문제를 외면하는 태도에 환멸을 느꼈다. 이후 그는 그 급진적 문제의식을 인종 해방과 반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해나갔다. (...)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HIV/AIDS 위기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확산되면서, 볼드윈의 미국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도 더욱 깊어졌다. 또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흑인 페미니스트들과 협력하며 제국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뿐 아니라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까지 함께 비판했다. 말년의 볼드윈은 흑인 남성 작가라는 좁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삶 전체가 여러 가지 한계 상황에 놓여 있음을 끝까지 밀고 가며, 젠더와 인종 정체성 자체를 다시 생각하려 했다.
--- 「제임스 볼드윈」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을 바꿨을 뿐!

신분과 성별에 따라 문자 접근이 갈렸던 시대는 끝났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구조는 여전히 작동한다. 과거에 라틴어 교사와 값비싼 종이가 계급을 갈랐다면, 오늘날에는 이른 나이부터 쌓인 독서량과 값비싼 사교육, 정교하게 다듬어진 논술 훈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실제로 한 조사는 대치동 아이들의 문해력과 독해력이 다른 학군의 아이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라틴어를 익힐 시간과 돈이 있던 사람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사교육과 문화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들이 더 정교한 문장을 갖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그 장벽이 신분과 성별이라는 이름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지금은 ‘노력’과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된다는 것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더 많은 책과 언어, 더 많은 훈련 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고, 그 바깥에서 출발하는 아이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계급은 여전히 문장 속에 숨어 있다. 오늘의 문해력 격차는 결국 근대 이전 문자 권력의 재판(再版)이다. 『표준어 바깥에서』의 저자가 2,500년 전 이솝부터 다시 불러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솝과 사포, 디킨스가 겪어낸 ‘자격 없음’의 자리가 오늘의 문해력 격차와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즉 이 책은 옛 작가들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는 쓸 자격을 허락하고 누구에게는 허락하지 않는지를 되묻기 위한 장치다. 2,500년의 시차를 두고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는 사실이야말로 ‘표준어 바깥에서’ 태어난 이 문장들을 지금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열일곱 개의 대답

이 책이 내놓는 답은 거창하지 않지만 분명하다. 자격이 없다고 믿었던 자리에서도 쓰는 행위 자체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예로 팔려 다니며 말을 잃었던 이솝은 동물의 입을 빌려 우화를 남겼는데 그것들은 2,500년 뒤에도 읽히고 있다. 사포는 남성의 언어 안에 갇혀 있던 여성의 욕망을 최초로 시로 옮겼다.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 열 시간씩 일하던 열두 살 소년은 그 경험을 잊지 않고 『올리버 트위스트』로 되살려 찰스 디킨스라는 빛나는 별이 되었다. 안데르센은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동화를 썼다. 정비공으로 청년기를 보낸 주제 사라마구는 쉰여덟이 되어서야 자신만의 문장을 완성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청소노동을 하던 스웨덴의 마이아 에켈뢰브는 양동이를 내려놓은 밤마다 일기를 썼고, 그 일기는 훗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머슴의 딸로 태어나 후처의 자식으로 자란 강경애는 여공과 소작농의 삶을 처음으로 문학 안에 들여놓았다. 제임스 볼드윈은 가장 사적인 상처, 흑인이자 소수자로서 겪은 차별을 문장으로 옮겨 세계인이 읽는 언어로 만들었다. 이들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쓰기가 결국 그들의 삶을 증언하고, 나아가 삶을 바꾸었다. 『표준어 바깥에서』가 지금 다시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당신도 쓸 수 있는가.

『표준어 바깥에서』 이렇게 읽자

이 책은 시대순으로 배열된 4부, 17편의 작가론으로 구성된다. 〈1부 노예와 여성의 첫 목소리〉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노예 출신 작가 이솝과 테렌티우스, 그리고 여성 최초로 욕망을 노래한 시인 사포를 다룬다. 문자 권력이라는 범주에 도전장을 내민 최초의 작가들인 셈이다. 이들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고통받았는지, 노예라는 신분, 여성이라는 성별 그 자체가 어떻게 저자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근거가 되었는지를 눈여겨보면 좋다. 〈2부 근대 문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에서는 세르반테스, 안데르센, 디킨스, 트웨인 등 흔히 ‘모험소설가’, ‘동화작가’로만 소개되었으나 실은 당대 가장 진보적이었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이 왜 그런 온화한 이름 뒤에 가려졌는지, 그 이미지가 정작 무엇을 지워버렸는지를 되짚어 읽는 재미가 있다. 〈3부 일하는 몸, 말하는 주체가 되다〉는 노동과 계급의 언어로 20세기 문학을 다시 쓴 이들을 소개한다. 네루다, 사라마구, 귄터 발라프, 제라르 모디랫, 어빈 웰시가 바로 그들인데, 이 가운데는 발라프나 모디랫처럼 대중에게 생소한 작가도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들이 노동을 소재가 아니라 몸으로 통과했다는 데 있다. 발라프는 직접 이주노동자로 위장해 잠입했고, 사라마구는 쉰여덟까지 정비공으로 일하며 자신의 문장을 벼렸다. 〈4부 겹겹의 억압을 넘어서〉는 이 책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계급과 젠더, 인종과 식민의 억압이 겹친 자리에서 태어난 문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이아 에켈뢰브, 라오서, 강경애, 마야 안젤루, 제임스 볼드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억압이 한 사람의 몸 위에 두 겹, 세 겹으로 쌓일 때 무엇을 빼앗기는지, 어떻게 해서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지 따라가며 읽어보자. “글은 여전히 ‘먹고살 만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다. 그러나 이 책이 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독하게 가난하게 태어나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라는 저자의 한마디가 이 책에 실린 17인의 삶과 문학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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