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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도연명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
박홍규
틈새의시간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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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동양문화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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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1장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
도연명은 누구인가? / 도연명은 농사꾼 아나키스트다 / 자신의 제문을 쓰다 / 나는 죽는다 / 내 인생은 가난했기에 즐거웠다 / 농사는 즐거웠다 / 독서와 거문고 덕에 즐거웠다 / 나는 세상과 다르다 /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 / 죽은 나를 잊으라 / 「만가」 / 「형영신」
2장 도연명의 시대, 디스토피아
나의 도연명 / 매우 간단하게 보는 중국의 역사 / 『삼국지연의』 영웅들과 반대되는 도연명 / 위진의 정신과 생활 / 도연명의 상상 속 선조 / 도연명의 3대 조상 / 아들에게 부탁함 / 도연명의 외가
3장 주경야독으로 보낸 성장기(0~27세)
가난한 집안 / 책 읽기로 즐거웠고 거문고로 화답하다 / 사랑 / 「한정부」 서문과 1수 / 사랑의 갈망, 「한정부」 2수 / 사랑의 절망, 3~4수 / 「오류선생전」 / 「구일한거」 / 「영삼량」 / 「영형가」
4장 벼슬과 농사 사이에서 방황하다(28~40세)
‘내 힘찬 젊은 날’ / 28세에서 40세까지의 생애 / 「감사불우부」 / 「권농」 / 「경자년 오월, 도읍에서 돌아오다 규림에서 험한 바람을 만나다」 / 「정운」 / 「시운」 / 「영목」 / 「신축년 1월, 휴가를 마치고 강릉으로 돌아가는 밤길에」 / 「처음으로 진군의 참군이 되어」 / 최초의 농시 / 행려시
5장 농사꾼 아나키스트 출발(41~43세)
농사와 농시의 변화 / 「귀거래사」 / 자연으로 돌아가 농촌에서 살다 / 「독산해경」
6장 남촌의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43세 이후)
「무신년 7월, 화재를 당하고」 / 「환구거」 / 「이거」 / 「경술년 시월, 서전에서 올벼를 수확하고」 / 모든 사람은 형제 / 「잡시」 / 「음주」 / 술과 도 / 참된 귀은 / “무리 잃은 새 한 마리” / 현실 비판 / 전원으로 돌아가기
7장 아나키스트 도연명, 권력을 거부하다(56세 이후)
「의고」 / 동물 사랑, 친구 사랑 / 「걸식」 / 「깨닫는 바가 있어 짓다」 / 「영빈사」
8장 도화원, 농사꾼 아나키스트의 유토피아
완적의 「대인선생전」 / 도화원 / 「도화원기」 / 「도화원시」 / 도화원과 『노자』 소국과민과 『예기』 대동 / 도화원에 대한 후대의 평가 / 도화원의 아나키즘 / 정약용의 「미원은사가」
맺음말 / 도연명 연보 / 더 읽어보기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2021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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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40*210*30mm
ISBN13
9791193933183

책 속으로

가난은 도연명의 삶 자체였다. 유가나 도가는 도를 중시하고 가난과 영달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는 도연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자나 장자와 달리 도연명은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했기에 그의 시는 가난을 즐겨 다룬다. 하지만 주목할 점이 있다. 도연명에게 가난은 자신의 길을 지키기 위한 소위 ‘조건’일 뿐, 가난 그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의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기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가난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정글의 시대였다. 벼슬을 통한 재물 확보와 증대만이 그 시대의 유일한 가치였다. 그러한 시대와 반대되는 길이었던 도연명의 자발적 가난은 자신이 추구하는 도(道)가 벼슬이나 재물과 화해할 수 없는 대립 관계에 있다고 하는 자각, 그리고 그 도는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음으로써 이룰 수 있고, 함께 농사를 짓는 농민들과의 유대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자각에 있었다. 그의 가난 타령은 가난을 불만스럽게 여기기보다 도리어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고, 나아가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권력이나 재산이라는 헛된 우상에 대해 싸우는 ‘적극적인’ 가난 수용의 자세로 보아야 한다.
--- 「1장 오류선생 도연명」 중에서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라는 중국 소설이 있다. 그 책은 2004년 한국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서 성인과 학생 모두 기억에 남는 도서 1, 2위를 다투었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 4명 중의 1명은 1년에 1권도 안 읽는 책맹임을 감안할 때, ‘책을 읽는 한도 내에선 모든 사람이 거의 다 읽어봤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몇 번이나 읽으려고 했지만,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그 내용이 싫어 책을 덮곤 해서 결국 지금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삼국지』는 14세기 명나라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의 저술로 시작되어 여러 시대 작가들이 내용을 더한 역사소설이다. 중국사 가운데 후한 말에서 서진 초까지의 영웅호걸들의 활약을 다룬 소설이므로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와 그리 멀지 않다. 소설은 14세기쯤에 완성되었으니 도연명이 읽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 내용인 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도연명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인 유비·제갈량·손권·조조·사마의 등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사기술과 권모술수, 기만술로 평생을 살았던 이들이므로 평화주의자인 도연명이 좋아했을 리 없다. 이는 현대 중국의 반체제 문예이론가인 류짜이푸(劉再復, 1941~)가 지은 『쌍전(雙典)』(2010)에서도 지적한 점이다.
--- 「2장 도연명의 시대, 디스토피아」 중에서

나는 도연명의 시 중에서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노래하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근대적인 개인’이다. 유교 전통이 강한 중국의 문학사에서 사랑을 이렇게 절절하게 노래한 시인은 다시 없다. 중국의 현대문학 연구자인 엽가영(葉嘉瑩)이 “이 부(賦)를 썼기 때문에 도연명이라는 사람은 비로소 완벽해졌다.”라고 한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으로서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시는 ‘전집’이 아닌 ‘선집’에서는 항상 빠질 정도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어서 유감이다. 위에서 나는 도연명이 조상을 미화한 시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이 시를 무시하는 경향이 유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는 391년, 도연명이 26세에 쓴 것으로(이성호, 258쪽) 보는 견해도 있지만, 18세 때 지었다고 보는 견해,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뒤에 지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 시풍으로 볼 때 그 자유로운 시상이 전통적인 유교적 분위기를 벗어났다고 하는 점에서 40대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랑에 나이가 없다고 본다면 50대나 60대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신라시대의 향가 「헌화가(獻花歌)」처럼 도연명이 노인이 되어서 쓴 사랑의 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하튼 시인이 사랑을 노래한 시임은 분명하다. 이 시를 쓸 당시의 사랑에 대해서 노래한 것일 수도 있고, 아내에게 바치는 시일 수도 있다. 물론 그에게 사랑이 한 번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춘기부터 사랑은 여러 차례 있을 수 있잖은가.
--- 「3장 주경야독으로 보낸 성장기(0~27세)」 중에서

도연명은 공자의 수많은 제자 중에서도 안회를 특히 좋아하여 시에서 여러 번 언급했다. 위 시에서 언급한 안회 이야기는 공자가 『논어』 「선진(先秦)」 편에서 “안회는 도(道)에 가까웠지만 자주 쌀독이 비었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자는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안연에 대해 칭찬은 하면서도 그러한 가난을 애석해하고 좋게 보지 않았다. 노인네 이야기도 『논어』 「미자(微子)」 편에서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처졌는데, 지팡이에 삼태기를 걸머진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물었다. ‘우리 스승님을 보셨습니까?’ 그 노인이 말했다. ‘손발을 움직여 일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치 못하는 사람을 어찌 스승이라 하겠느냐?’ 노인은 지팡이를 땅에 꽂은 채 김을 매었다.”라는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공자는 자신을 비판하는 식장옹(植丈翁) 은자가 높은 식견을 가지고도 숨어 사는 것을 지식인의 책임을 저버린 행위로 보았으나 도연명은 그러한 공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 “도(道)를 걱정하되 가난은 걱정 마라.”는 말은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온다. 나그네 이야기는 『논어』 「미자」 편에 나오는 위의 노인 이야기 앞에 나온다. “장저와 걸익이 함께 밭 갈고 있었을 때, 공부자가 지나가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를 묻게 했다. 장저가 말하기를, ‘수레고삐를 잡은 자가 누구냐.’라고 했다. 자로가 ‘공구입니다.’라고 답하자, ‘이 사람이 바로 노의 공구냐.’ 이에 ‘네 그렇습니다.’라는 자로의 답을 듣자 장저는 ‘그가 나루를 알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나루를 알 것이라고 답한 장저의 말은 천하를 주류한 공자인데 나루를 모를 리 없다는 식으로 공자를 비꼰 말이다.
--- 「4장 벼슬과 농사 사이에서 방황하다(28~40세)」 중에서

당시 대다수 사람은 도연명이 시골에 파묻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몰이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골에 간다고 했을 때 모두 말렸다. 늙을수록 도시에, 그것도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도연명의 경우에도 「종제 경원의 제문」을 보면 경원만이 그를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사촌 동생인 경원은 30세(411년)에 죽었는데 어려서부터 도연명과 마음이 통했고, 도연명이 “채찍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 너는 내 뜻을 알아 항상 내 손을 이끌고 은거하여 저 세속의 논의에 마음 쓰지 않기를 바랐다.”라고 제문에 썼다. 그리고 제문에 의하면 “그는 머나먼 신선의 땅, 기이함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격동시켜 곡기를 끊고 집안의 자잘한 일들을 내버려둔 채 산의 북쪽에 은거”하였다. 당시 사족들은 모두 성읍에 살았고, 농민 백성들만 시골에 살았다. 지금 대부분이 도시에서 살듯이. 도연명도 관직에 있을 때는 성읍에 살았다. 조상들도 성읍에 살았다. 그러니 집도 성읍에 있었다. 사족의 은거란 성읍의 집을 떠나 시골에 사는 것을 뜻했다. 관직에 있는 사족들은 그들끼리 교제했다. 그러나 전원에서는 그런 교제가 불가능하니 갈 수가 없었다. 여하튼 농막에 거주한 초기의 전원생활은 즐거웠다. 뒤에서 보는 「귀원전거」 5수는 그런 심경을 표현한다. 특히 1수는 거의 도화원과 마찬가지로 즐거움에 젖었음을 보여준다. 2수도 전원의 한가로움을 노래한다.
--- 「5장 농사꾼 아나키스트 출발(41~43세)」 중에서

시인은 상고시대의 동호계자(東戶季子)를 떠올린다. 이는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전설 속 임금이다. 당시에는 땅에 물건이 떨어져도 누구 하나 줍지 않고 농기구와 양식을 그냥 밭에 쌓아두었다. 사유 개념도 없었고, 재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었다. 408년 화재가 난 뒤 도연명은 시상의 옛집으로 되돌아와 잠시 살았을 수 있다. 그것을 쓴 시가 아래의 「환구거」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첸즈시, 202쪽) 그 시에서는 고향 집을 떠난 지 6년 만에 돌아왔다고 하므로 412년이 된다. 따라서 연도에 문제가 있다. 만일 살기 위해 돌아왔다면 6년 만이 아니라 3~4년 만에 돌아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환구거」에서 6년 만에 돌아왔다는 것은 이사한 게 아니라 잠시 들르러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그의 옛집은 도연명이 살던 관사가 있던 상경의 성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도연명은 어려서부터 그 집에 살았고, 벼슬을 할 때만 떠났다. 그러나 옛집에 사는 것은 초심에도 어긋나고 농사일을 하기에도 불편했다. 그래서 410년 45세 때 경작지 가까운 남촌으로 이사했음을 「이거」 2수를 통해 알 수 있다. 남촌은 완전한 전원이 아니라 사인(士人,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과 농민이 섞여 사는 곳인데 도연명은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 「6장 남촌의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43세 이후)」 중에서

시인은 가난과 비천함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고난에 직면했을 때, 그는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그는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에서 삶의 존재를 파악한다. 육체적인 면은 9행의 “죽을 주는 검오”부터 12행의 “헛되이 굶어 죽는”까지 4행으로 표현된다. “죽을 주는 검오”란 『예기(禮記)』 단궁(段功)에 나오는 제(齊)나라의 기근에 대한 이야기다. 검오(黔敖)가 길에서 죽을 나눠주고 있는데 배고픈 사람이 소매를 가린 채 왔다. 검오가 “와서 먹으세요!”라고 권했으나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거부하고 죽었다. 시인은 음식을 베푼 사람의 의도를 긍정하고 배고픈 사람의 행동을 비판한다. 이는 장자가 『장자』 「편목」에서 “몸을 지키고 목숨을 보전한다.”를 주장하며 “물질적 이익을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목숨을 희생하는 것”에 반대했음을 연상하게 한다. 장자와 마찬가지로 도연명은 인간의 생명과 본성은 명예나 재물과 같은 외적인 것에 예속되어서는 안 되므로, 단순한 명예나 불명예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쉽게 희생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혹독한 외부 환경이 인간을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수준으로 떨어뜨릴 때, 개인의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은 약자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자기방어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시인은 여기에서 고통을 이겨낼 용기를 얻는데, 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시인도 동정심에서 음식을 받는 것
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 「7장 아나키스트 도연명, 권력을 거부하다(56세 이후)」 중에서

도연명은 유가에도 불교에도 전적으로 기대지 않았다. 성현의 말보다 더 먼 과거, 아직 정치와 제도가 굳건히 세워지기 전의 세상에 마음을 두었다. 그곳이 바로 도화원이다. 도연명은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 순박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와 계책이라는 이름의 술수가 정치를 지배했고, 공자와 같은 성현이 잠시 순박함을 되살렸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진나라에 이르러 악폐가 절정에 달했을 때, 도화원으로 숨어든 사람들만이 본래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시에서 그렸다. 도화원의 풍경은 단순하다. 세금도, 징발도, 전쟁도 없는 세상. 누가 위에 서서 명령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이 어긋나지 않는다. 관습과 협동만으로 공동체가 이어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아나키즘과 닮았다. 물론 도연명이 체계적인 사상가로서 아나키즘의 원리를 세운 것은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제도라기보다 정서이고, 체계라기보다 시인의 상상이다. 전한 초기, 오계동만(五溪胴彎)에 무릉군이 설치되었다. 무릉군은 후베이성, 쓰찬성, 구이저우성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와 유사한 지역으로 인도차이나반도(Indochina Peninsula) 북부(베트남 북부및 라오스 전체),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 있는 샨고원(Shan Hills, Shan Highland), 중국 운남성(雲…南省) 산간 지역을 ‘조미아(Zomia)’라고 한다. 그곳을 제임스 스콧(James Scott, 1936~2024)은 “협곡 왕국들로부터 ‘우리의 살아 있는 조상’, ‘수전경작(水田耕作), 불교, 문명을 발견하기 전 우리의 모습’이라고 여겨진(고지 민족이지만, 실제로는 이와는 달리), 노예제, 징병제, 징세, 요역, 전염병, 전쟁 등 협곡 내 국가 재건 프로젝트가 주는 압박으로부터 2천 년 동안 도망쳐 온 망자(runaway), 피난자(fugitive), 무인도에 버려진 자(maroon)들의 공동체”라고 한다. 도화원을 조미아와 같은 역사적 실체로 연결하는 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꾸려가는 삶”이라는 점에서, 도화원과 조미아는 공명한다. 어쩌면 도화원은 도연명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된 작은 조미아였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권력의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 인간이 스스로 삶을 가꾸어가는 자생적 공동체의 환영을 본다. 이때 도화원은 아나키즘의 언어로 다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 「8장 도화원, 농사꾼 아나키스트의 유토피아」 중에서

출판사 리뷰

경쟁과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 위진 남북조에서 오늘의 한국으로

소유와 자본이 삶의 기준이 된 오늘, ‘권력을 갖지 않고도 존엄하게 사는 법’을 몸으로 보여준 시인이 있다. 왕조가 갈라지고 정권이 몇 해 만에 뒤집히던 위진 남북조, 전쟁과 역병,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일상이었던 시대에 살았던 도연명이다. 당시 지배층 문인들은 허무와 체념의 청담(淸談)에 빠져 있었고, 백성들의 삶은 끝없는 유랑과 빈곤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디스토피아의 가장자리에 서서 도연명은 벼슬과 부귀가 아니라 농사와 자발적 가난, 그리고 자유를 자신의 몫으로 선택했다. 「내 친구 도연명」은 저자가 평생 가슴속에 품어온 시인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 책이다. 군사독재와 자본주의 고도성장을 거쳐 다시금 불평등과 혐오, 정치적 무력감이 판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이를 내 삶의 모델로 삼을 수 있을까? 저자는 학질과 가난,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벼슬보다 밭을, 출세보다 자유를 택했던 도연명의 생을 따라가며 “지금 우리의 친구로 삼을 만한 옛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권력을 쥐지 않고도 정치적으로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낯선 상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벼슬과 농사 사이에서, 한 인간이 찾아낸 ‘나의 자리’

「내 친구 도연명」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생애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농사꾼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를 밝힌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고 거문고를 켜며 성장한 도연명은 사랑과 결핍을 노래한 초기 연작시와 학질에 시달리면서도 시와 술을 놓지 않던 청년기의 작품들 속에 일찍부터 “노동의 존엄”과 “사람답게 사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했음을 드러낸다. 성인이 된 뒤 그는 관직에 올랐다가도 스스로 사직서를 내는 방황기를 거친다. 반복되는 사직의 이면에는 사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부담과 권력에 기대지 않고 살고 싶다는 신념 사이에서의 고통스러운 줄다리기가 놓여 있었다. 하나 마지막 벼슬이었던 팽택령 자리에서 도연명은 마침내 “벼슬이 아니라 오곡을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선언하고는 농사꾼의 길을 선택한다. 저자 박홍규 교수는 시와 산문, 제문과 만가에 이르기까지 도연명이 남긴 글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그의 이러한 결단이 단순한 성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자율적인 공동체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음을 전 생애를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해낸다.

도화원과 아나키 유토피아, 오늘의 한국 사회를 비추다

「내 친구 도연명」의 중심에는 독자들이 한 번쯤 들어보았을 「도화원기」가 놓여 있다. 저자는 도연명이 그려낸 도화원을 단순한 이상향이나 동양적 목가 풍경이 아니라 전쟁과 과세, 징병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스스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무국가 공동체’로 읽어낸다. 왕도 귀족도 관료도, 세금과 징집도 없는 곳. 법과 형벌 대신 오랜 관습과 서로에 대한 배려로 유지되는 작은 농촌 사회. 도연명의 농시들과 함께 읽히는 도화원은 이렇듯 구성원들이 스스로 땅을 갈고 나누어 먹는 ‘권력 없는 공동체’의 상상도이자 농사꾼 아나키스트가 꿈꾼 유토피아의 지도와도 같다. 또한 저자는 이 도화원을 서양의 유토피아 전통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여전히 국가와 법, 치밀한 계획과 규율을 전제로 한 “이상 국가”라면, 도연명의 도화원은 국가 자체를 벗어난 자리에서 성립하는 비지배·비착취의 공간에 더 가깝다. 나아가 제임스 C. 스콧이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에서 말한 국가의 조세와 통제를 피해 산지로 숨어든 공동체와 도화원 사람들을 겹쳐 읽는다. 도화원 주민들 역시 역사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지배로부터 도망쳐 얻어낸 자유’를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어낸 도화원은 단순한 전원 동경이나 인생 후반의 로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정치적·윤리적 질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내 친구 도연명”이라 부를 수 있을 때, 당신의 삶은 조금 가벼워진다

「내 친구 도연명」은 고전 해설서가 아니다. 노학자가 평생 곁에 두고 읽어온 시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고백이자 그를 오늘 우리의 친구로 소개하는 초대장이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 속에서 가난과 병에도 꺾이지 않는 자존, 권력을 멀리하면서도 세상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는 태도, 자연과 벗과 술을 사랑하는 소박한 기쁨을 차근차근 길어 올린다. 그리고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어떤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가.” 도시의 피로와 정치적 무력감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는 청년과 시민들에게, 이 책은 1,600년을 건너온 한 시인을 ‘내 친구’로 불러 보자고 제안한다. 마지막 장에서 서술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도연명에서 저자 자신으로 옮겨온다. 군사독재 시기를 통과한 저자는 도시의 편리함과 학계의 안정된 지위를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가 작은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 최소한의 소비, 직접 재배한 곡식과 채소로 꾸려가는 생활은 도연명이 말한 ‘가난하지만 후회 없는 삶’을 오늘의 언어로 옮긴 실천이다. 그는 도연명의 시를 읽으며 “권력과 거리를 두되 세상과도 등을 돌리지 않는 법”,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남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한 지난 시간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내 친구 도연명」은 흠모하는 시인과 닮은 길을 선택한 저자의 삶을 풀어낸 에세이이자 “당신도 이런 친구와 함께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다정한 권유가 함께 담긴 깊고 아름다운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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