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눈물의 종이들 / 흩어진 심리적 자리들
빛바랜 종이들 /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 욕망의 종이들 / 흩어진 기회들 벽에 갇힌 종이들 / 흩어진 파괴의 잔해들 파묻힌 종이들 / 흩어진 지하실과 은닉처들 부패한 종이들 / 흩어진 셀룰로오스 입자들 물에 잠긴 종이들 / 흩어진 편지들 이별의 종이들 / 흩어진 이유들 경고의 종이들 / 흩어진 시도들 하찮은 종이들 / 흩어진 방법들 사탕 종이들 / 흩어진 비극적 길들 사진 종이들 / 흩어진 시선의 양상들 접촉의 종이들 / 흩어진 도덕적 관점들 얼굴의 종이들 / 흩어진 감정의 물결들 갈등의 종이들 / 흩어진 정치적 균열들 신성한 종이들 / 흩어진 전통의 비의들 씨앗의 종이들 / 흩어진 탄생들 감사의 말 옮긴이 해제 바르샤바 게토의 살아 있는 기억을 위한 글쓰기 |
Georges Didi-Huberman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다른 상품
여문주의 다른 상품
|
우리는 종이 한 장 앞에서 종종 우리의 무력함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한 묶음의 종이가 전투부대, 군인, 지도자 들을 뛰어넘어, 승자와 패자 사이의 모든 구분을 초월해 잔존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종이의 힘이다. 잉크나 연필로 쓴 글과 셀룰로오스 표면은 우리 인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종이는 아무리 연약하고, 분서될 위험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저자와 검열관, 그리고 독자보다 더 오래 잔존할 수 있지 않은가?
--- p.30 안나가 문을 열었고, 우리는 차가운 네온 조명이 켜진, 천장이 낮은 작은 방에 들어섰다. 거기에는 커다란 회색 금고 몇 개와 소박한 테이블 하나, 그리고 의자 서너 개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몇 개의 상자와 환기 시스템, 그리고 벽에 걸린 짙은 색의 나무 액자 속 에마누엘 린겔블룸의 초상사진뿐이었다. 이곳이 아카이브 보관소이다. 커다란 검은 테 안경을 쓴, 이 보관소의 관리자 아그니에슈카 레슈카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 p.69 그것은 열아홉 살 소년의 개인적 유언장이자, 최후의 순간까지 체계적으로 이어졌던 집단적 작업의 자료이다. 처음에 쓰인 편지는 미래의 세계에 보내는-호소하는-것이었다. “우리가 당대의 세계를 향해 외치고 울부짖을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땅속에 묻습니다. […] 나는 이 소중한 보물이 언젠가 발굴되어 세상에 진실을 외치는 순간을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 이제 우리는 평화롭게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역사가 우리를 위해 증언해주기를 바랍니다.” --- p.89~90 역사 속의 대량 학살은-루크레티우스가 묘사한 아테네의 흑사병에서부터 현대의 대량 학살에 이르기까지-바로 이 “상상하기의 재앙”과도 같다.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여 사람들이 미쳐버릴 지경이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고의적 무지(또는 ‘자발적 예속’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자발적 무지’)의 심리 상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온갖 종류의 소문, 가짜 뉴스, 편집증적 구성, 터무니없는 궤변, 기적적인 예언들이 떠돌아다닌다. 이는 마치 상상력이 현실의 압도적 규모 앞에서 완전히 마비되거나, 혹은 그러한 현실로부터-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무분별하게 벗어나 현실의 가혹한 논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 p.103~104 그가 무엇을 숨기려 했든, 그것은 진실을 전달해내기 위해 모든 것을 무릅쓴 시도였다. 그가 자신의 펜 끝으로 쓴, 이 참담한 ‘현장 상황’과 ‘시대 상황’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의 모든 관찰 하나하나를 뒷받침했던 위대한 용기의 발현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무엇,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불현듯 이해하게 된다. 린겔블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쓴 “친애하는 이들이여”라는 문구는, 어쩌면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를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현재에 있든 미래에 있든, 자신의 모든 독자를 향한, 가독성에 대한 그의 탐구였다는 것을. --- p.107~108 린겔블룸 아카이브의 사진들이 담긴 바인더의 투명 파일을 넘기면서, 나는 게토의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어린 소년의 이미지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 아이는 오른손에 양철통을 들고서, 왼손으로는 구걸하는 사람의 전형적 몸짓을 하고 있다. 아이 뒤에는 벽돌 벽이 있다. 아이가 쓴 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1943년 4월 또는 5월에-독일군 총의 위협에 두 팔을 들어 올리게 될, 그 유명한 ‘바르샤바의 유대인 소년’이 썼던 모자와 같은 종류이다. 아이는 사진가를 향해 미소를 짓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탄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사진 쪽 가까이 기울였다. --- p.151 그런데 지식은 그것을 모으고, 생산하고, 전달하는 사람과도 같다. 그것은 짓밟히거나 또는 짓밟으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그것은 스스로 봉기하고, 우리를 봉기하게 한다. 역사는, 엔초 트라베르소가 잘 말했듯이, 단지 인간이 벌인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전쟁터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유럽은 더 이상 전쟁 중이 아니지만, 전쟁은 쉼 없이 다른 많은 영역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전쟁 중이 아니지만, 전쟁 난민을 수용할 줄 모른다. 유럽의 기억은 계속 희미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유럽의 기억이, 자각하지 못한 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 p.202~203 |
|
“가능한 많이 수집하라!”
바르샤바 게토에서 수집된 시, 쪽지, 이야기, 그리고 증언들… 그 처량한 종잇장들에서 비롯된 17편의 몽타주적 에세이 에마누엘 린겔블룸은 1944년 체포되어 총살되기 직전까지, 쉼 없이 수집하고 기록을 남겼다. 게토의 사망률 추이를 매일 관찰해 집계하고,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구는 게토 내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고, 가스실로 향하는 열차에서 황급히 던진 쪽지들부터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존재했던 거리의 재담과 농담까지 그 종류나 위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수집함으로써 게토의 생활상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록한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땅에 매립되어 살아남은 아카이브는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구축된 나치의 거대한 아카이브에 맞서는 ‘흩어진 것들’의 아카이브였다. 린겔블룸을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한 지하조직 오이네그 샤베스 활동가들의 작업은 구호(상호부조)와 고발(역사)이라는 두 가지 확고한 생각으로 지탱되었다. “단 하나의 사실도 빠뜨리지 말고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그때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세상은 학살자들이 저지른 짓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이 시대에 대해 쓴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살해당하고 말았으나 이들의 염원대로 오늘날까지도 읽을 수 있는 증거들은 남았다. 이는 모든 글쓰기 행위에 내재한 힘이자 글쓰기라는 하찮은 활동에 대한 강력하면서도 가슴 아픈 찬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 모든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읽고, 느끼게 될까?” 기억을 위한 실천으로서 린겔블룸 아카이브 읽기 『흩어진 것들』은 디디-위베르만이 아카이브 방문 시 촬영한 불분명하고 희미한 사진 이미지 17장과 그와 관련한 17편의 파편적 글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아카이브를 유대 민족의 억압과 해방이라는 서사의 단일한 축을 따라 읽기를 거부하고, 파편적인 낱낱의 자료 조각들을 비선형적으로 병치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복잡하게 굴절되며 흩어지는 고유의 글쓰기를 선보인다. 저자는 거듭해서 새롭게 읽어내고 다시 쓰는 작업을 통해 아카이브의 이질성, 차이, 틈을 발견해냄으로써 해방의 가능성을, 미래와 공동체를 향한 구체적인 실천의 문을 열어젖히고자 한다. 특히 시선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폐기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것들을, 연약하고 취약한 상태 그대로 불러내는데, 바로 그 불완전성, 손상, 부서짐이야말로 게토에서의 비극적 역사와 오이네그 샤베스 그룹이 겪었을 위험천만하고 위태로웠던 현실의 진실을 말해준다. 저자는 어릴 적 눈물 흘리던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서 본 순간 새로운 인식의 차원이 열린 경험과 수용소에 끌려갔던 친족의 빛바랜 서류들을 살펴보게 된 개인적 일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이 글이 취하고 있는 1인칭 화자 시점의 에세이 형식은 개인사적 일화와 역사적 기억을 연결시키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역사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개인들의 외침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 즉 에세이essai라는 단어 자체에 포함된 본질적 의미 그대로 ‘시도하기’로서의 글쓰기로 나아간다. “아카이브에서는 그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잊지 않기 위한 시간을. 역사적 시간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끊임없이 구축하고 재구축할 시간을.” 『흩어진 것들』은 불가능한 결핍의 언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야 말겠다는 고통스러운 다짐으로 쓰인 글이다. 저자는 공적 기록에서 배제된 기록들, 강한 빛에 의해 가려진 삶의 기록들, 수탈되거나 파괴되어 늘 흩어지고 있는 기록들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글자가 거의 지워진 이 종잇조각들로, 이 흩어진 말들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들을 불변의 보물로 간직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흩어짐은 씨 뿌리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흩어진 것들은 고립 속에서 죽음에 내몰리는 모든 민중들을 위해, 미래의 생존을 위해 싹틔워야 할 씨앗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이 세계를 마주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대문자 역사에 쓰이지 않는 약자들의 흩어진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 “소수자들의 소수 문학”을 펼쳐내고자 한 이 책을 반전의 메시지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르샤바 게토를 봉쇄했던 벽은 현재 이스라엘에 의해 고립된 가자지구의 벽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비단 가자지구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이 경제 제재 및 봉쇄 조치로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디디-위베르만은 지난해 『르몽드』에 기고한 칼럼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가자지구 완전 점령 정책은 근본적으로 파멸적 행태라 호소하며, 바르샤바 게토를 떠올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어두운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루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영감과 정동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천과 저항을 꽃피우는 씨앗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
“바르샤바 게토의 벽면에 만들어진 소박한 돌무덤과도 같은,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작은 증언들의 속삭임과도 같은 에세이.” - 『리베라시옹』
|
|
“인류가 자신의 역사에서 어떤 페이지를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시대에
빛을 비춰주는 작품이다.” - 〈프랑스앵포〉 |
|
“에마누엘 린겔블룸과 오이네그 샤베스의 동료들이 은밀히 수집한 전례 없는 이미지 아카이브에 던지는 디디-위베르만의 시선.” - 『라코즈 리테레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