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말씀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나 순례자로 살아온 나그네의 인사 눈을 치워 주는 마음 시련 극복의 길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의 길 용서의 은총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순절, 비탄의 은혜 펄럭펄럭 치렁치렁 사시세월 2부 온 세상 위하여 주님의 절묘하신 부르심 낙엽을 밟으며 춘심보(春心譜) 박도수와 사우가 설날 유감 돌아가는 길 풀 섶의 눈물 고국 방문 길에서 가르친 보람 마르느 강가의 추억 라클리 풀밭에서 나의 가는 길, 바보의 길 단풍 유감 몽당비와 몽당연필 열(烈)에게 가을 소묘 친구의 이메일 고별 수업 독수리의 눈물 어머님 생각 귀로 |
주진경의 다른 상품
|
은행은 믿을 수 있는 좋은 기관이다. 그러나 그곳에 나의 돈을 갖다 맡기지 않으면, 믿을 수 있고 그 좋다는 은행도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처럼 예수님은 메시아요 좋으신 분이지만, 내가 예수님께 내 인생을 맡기지 않으면 예수님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고, 아무런 소용도 없다. 예수님께 나를 맡기고 그 등에 업힌 나는, 이제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등에 업힌 채 따라가기만 하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고 어쩐지 불안한 느낌도 들었으나, 그토록 더러웠던 나를 업으신 예수님께 도중에 내려 달라고 할 수 없어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였다.
--- p.16 아버지를 따라가는 길은 고달팠으나, 착하게도 저는 아버지를 잘 따라갔습니다. 피곤하여 차 안에서 잠이 들었을 때는 무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종착역까지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버지가 깨울 때 깨어 일어났고, 자갈길 신작로를 걸어갈 때는 두 다리가 아파 도중에 주저앉아 쉬고 싶었으나 참고서 아버지 뒤를 따라갔습니다. 제가 배가 고파 밥을 사 주셨을 때 저는 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먹으라는 소고기 장국밥을 먹어서 추위도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운 누님 집을 가면서, 나는 평소의 내 고집 같은 것을 버리고 아버지만을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아버지가 그 길을 잘 알고 있었고(길), 그 길은 틀림이 없는 길(진리)이었으며, 아버지를 따르는 동안 내게는 보호와 음식(생명)이 있었고, 그리고 마침내는 휴식과 평안과 기쁨이 다가왔습니다. --- p.54 한 동네 청년이 우리 집 창문 옆에서 공 던지기 놀이를 합니다.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일렀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고 공 던지기를 하다가, 그만 유리창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놀다 그리한 것이니 어찌하랴 하며 그것을 용서하면, 그 유리창 값은 공을 가지고 놀던 청년이 물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담해야 하는 내 몫이 됩니다. 그 사람의 빚(죄)을 내가 진 것으로 담당하고, 내가 빚진 자(죄인)가 되어서 애통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사유하심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나는 용서하는 자가 되고, 범죄자는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 p.61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부르곤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면, 할아버지는 옷이 그게 무어냐, 손에 왜 그렇게 흙을 묻혔느냐,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느냐며, 멀리 가지 말라고 나무라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더럽고 흉하고 못된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간 나를 예수님은 말 한마디 없이 맞아 주셨습니다. 부끄럽고 추악한 온갖 죄의 짐을 지고 그 앞에 갔는데도, 부끄럽기 이를 데 없이 남루하고 누추하고 냄새나는 누더기를 입고 그 앞에 갔는데도, 더할 수 없이 무능하고 비천하고 부족한데도, 예수님은 꾸지람 한마디 없고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자비와 자애로 나를 맞아 주었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은 그런가 싶었습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갔더니, 그 능력 많으신 분이 “잘 왔도다. 세상이 힘들었느냐? 이제 내게 왔으니 나를 믿고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네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 p.83 일제 강점기의 국민학교에 다니던 나의 필갑(필통)에는 언제나 몽당연필이 가득했다. 그 시대의 가난 때문이기도 했으나, 몽당연필이라도 손에 더 이상 잡히지 않을 때까지 깎고 깎아서 사용하던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월말고사나 중간고사 또는 기말고사 때 다른 학생들은 새 연필을 몇 자루씩 날카롭게 깎아서 책상 위에 내놓고 시험을 치르곤 했는데, 나는 필갑에 가득 들어 있는 몽당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시험 답안지를 썼다. 시험 감독을 하는 일본인 교사가 내 곁에 와서 보고는 “호카노 엔삐츠와 나인다카?”(다른 연필은 없느냐?)라고 묻고,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쓰던 연필을 갖다주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몽당연필로 평소에 필기도 하고 다른 모든 시험도 치렀지만, 나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우등생이었다. 구약 성서(시 90:10)가 말하는 강건한 나이(80세)를 훨씬 넘고 아흔(90)을 바라보며 인생의 해 질 무렵을 사는 나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롬 12:3) 분수에 맞게 누군가의 손에 잡히기를, 몽당연필로 여생을 보내기를 염원하고 있다. 몽당연필처럼, 손에 안 쥐어질 만큼까지 닳아져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제넘게 과분한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쓰이기를 바라며,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p.174 |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분수에 맞게 누군가의 손에 잡히기를, 몽당연필로 여생을 보내기를 염원하고 있다. 몽당연필처럼 손에 쥐어질 만큼까지 닳아져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을 ‘몽당연필’로 규정하는 것만큼의 겸손이 또 있을까? 사람은 대개 자신의 크기보다 더 크게 자신을 측정하거나, 그 분수에 맞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교만하다는 말을 듣는데, 책 제목부터 몽당연필 같은 인생을 염원한다는 저자의 고백은 잠든 우리를 깨우고 비뚤어진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우리도 저자가 말하는 몽당연필 같은 인생이 되려면, 연필의 주인인 하나님이 마음껏 쓰고 또 쓰셔서 닳아 없어질 지경이 될 때까지 쓰임받아야 한다. 주제넘게 과분한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쓰이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을 1부에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몽당연필 같은 인생이 되려는 이유는 ‘온 세상을 위하여’(2부)다. 저자가 일상에서 느낀 소회와 삶의 추억을 기반으로 따뜻하고 정감있게 쓰인 이 책의 글들은 독자로 하여금 삶의 진정성과 사랑과 겸손에 대해 배우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