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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_ 인류와 함께한 뇌물의 역사
1부 은나라 탕왕의 6가지 반성을 통해 보는 뇌물의 역사 ·탕왕의 첫 번째 반성 : 정치가 절제되지 않고 문란하지 않은가 ·탕왕의 두 번째 반성 :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경제가 어렵지 않은가 ·탕왕의 세 번째 반성 : 궁전이 화려하고 사치스럽지 않은가 ·탕왕의 네 번째 반성 : 여자의 청탁이 성하고 정치가 불공정하게 운영되지 않는가 ·탕왕의 다섯 번째 반성 : 뇌물이 성하지 않는가 ·탕왕의 여섯 번째 반성 : 참소로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고 있지 않은가 2부 뇌물을 둘러싼 조선시대의 진실 게임 ·조선의 왕은 결코 뇌물을 받지 않았다? ·뇌물에 관한 소문, 어디까지 진실인가 ·유자광의 벼락출세 ·송시열과 윤휴, 누가 더 많이 받았을까 ·포도대장의 부패와 시대의 한계 3부 뇌물로 보는 어지러운 세상 ·원시사회에서 신의 영역까지, 시공을 넘어선 뇌물 ·절대군주와 성직자가 꽃피운 매관매직 ·대중을 위한 뇌물 ·정경유착, 뇌물과 독점의 변증법 ·돈으로 된 뇌물, 현물로 된 뇌물 ·정의의 여신은 왜 두 눈을 가렸을까 4부 역사를 바꾼 뇌물 ·뇌물로 망한 명나라 ·한 번의 뇌물이 200년간의 전쟁을 일으키다 ·뇌물이 없었다면 로마도 없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무기는 미모가 아닌 재산 5부 뇌물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자 ·양자 처벌, 스폰 근절, 김영란법 ·성역 없는 법 집행, 수박 2통도 처벌한다 ·극단의 처벌, 팽형과 사형 ·뇌물을 없애기 위한 채찍과 당근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부패 척결을 위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노력 ·국제협약을 통한 전 세계적인 뇌물 방지 노력 |
林容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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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관매직으로 문란해진 정치
공명첩이 남발되는 바람에 양반층이 급속히 늘어났다. 양반의 특권이 군역 면제였는데, 공명첩이 실제 관직을 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누리는 특권은 보장해주었다. 양반이 공명첩을 사면 상관없지만 평민이 공명첩을 사면 바로 군역 대상자가 한 명 줄어버린다. 조선시대 군역은 실제로는 세금이었으니 공명첩으로 양반이 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군역세를 내는 사람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조선시대에는 토지세보다도 군역세의 비중이 더 높았다. 군역세가 걷히지 않으면 국가재정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재정이 부족하니 정부는 일이 있을 때마다 공명첩을 발행했다. 국가재정으로는 기본적인 운영비, 경상비만 간신히 충당했다. 조금이라도 새롭게 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면, 예를 들어 성을 쌓거나 군영에 비축한 무기가 낡아서 새로 제조해야 할 때, 흉년이 들어 빈민을 구제해야 할 때에는 수표를 발행하듯이 어김없이 공명첩을 풀었다. 공명첩을 1,000장, 100장 단위로 내려보냈다. 심지어 국가에 공물을 많이 바치는 사찰에 화재가 나면 사찰 복구비도 공명첩으로 조달했다. --- pp.27-28 신은 하늘에 있지만 신의 권력은 지상에 있다 1378년 로마에서 16명의 추기경이 모인 비밀회의가 열렸다.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는 교황 선출을 위한 회합이었다. 추기경단은 바르톨로메오 프리냐노를 새 교황 우르바누스 6세로 선출했다. 우르바누스 6세는 열정적인 개혁가였다. 그는 교회에 만연한 부패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취임 2주 후 고위 성직자와 대중이 함께 있는 집회에서 교황은 성직자의 비리를 신랄하게 공격하더니 이제부터 연금을 중단할 것이고 교황청으로 올라오는 모든 일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사례금이나 선물도 받지 말라고 명령했다. 집회에 참석한 추기경들은 노골적으로 투덜거렸고, 곧 거대한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우르바누스 6세는 멍청한 중얼거림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이에 오르시니 추기경이 항의하자 교황은 그에게 “멍청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리모주(프랑스 중서부의 도시)의 추기경이 교황의 품위 없는 단어 사용과 공개적인 모욕에 항의했고, 교황은 그에게 달려들어 싸우기 시작했다. --- p.178 빵과 서커스 정책, 콜로세움 기원전 2~1세기 사이에 로마는 도시국가에서 세계 제국이 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부는 로마를 ‘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이 지배하는 도시로 변모시켰다. 오비디우스는 이 세태를 한탄했다. 명예가 사라진 세상에는 이제 돈이 최고였다. 뇌물이 횡행해서 돈만 있으면 관직을 살 수 있었고 사람들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모여들었다. _본문 199쪽 황제의 특권을 분배할 수 없지만 하루 정도의 참여와 나눔은 가능했다. 최상의 공공시설에서 최상의 공연을 펼친다면 말이다. 정작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네로는 민중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알았기에 네로의 땅에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을 짓고 로마제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오락을 대중과 함께했다. 권력과 재산을 모든 사람에게 분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대한 로마만이 가능한 최고의 기쁨을 공유할 수는 있다. 로마 시민들은 제국에 대한 자신의 충성과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적어도 그들이 3일에 한 번 콜로세움에서 무료 식사와 간식을 받으며 하루 종일 흥미진진한 결투와 공연을 즐기는 순간에는 말이다. --- p.204 돈을 없애면 뇌물이 사라질까 돈을 없애면 세상에 탐욕과 불평등이 없어진다는 생각은 공상적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조선의 사상가나 유학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해서 화폐 폐지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들었다면 대부분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평등한 토지 분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 후기에 한전론(限田論), 균전제(均田制) 등 토지 개혁을 주장한 사람들도 백성에게 토지를 균등 분배하자는 것이지, 사대부도 농민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부익부 빈익빈’ 설에도 함정이 있다. 화폐와 상업이 성행하면서 가난한 농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부자가 늘면 빈농이 늘어난다는 이유로만 화폐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왕족, 귀족, 부자가 더 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농부, 향리, 몰락한 양반이 상업과 화폐 경제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아졌다. 그들이 양반이 되면 기존 양반의 권력과 이권에 도전하기도 했다. --- pp.254-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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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인가, 선물인가?
뇌물은 영어로 ‘bribe(브라이브)’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자선이나 자비심을 베풀 때 쓰는 선의의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중세 시대에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소소하게 건네지는 돈으로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적고,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대가성이 있음으로 그 경계가 모호하다. 영국에서는 ‘집에 가다가 모자나 사서 쓰라’며 공무원들에게 푼돈을 쥐어주던 관습에서 뇌물을 ‘해트(hat)’라고도 표현한다. 내가 주면 선물이지만, 남이 주면 뇌물이라고 판단하는 이중적 기준이 뇌물의 전염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뇌물이라고 하면 거대한 돈이 오고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1960년대 한 공무원은 기업체를 방문하였을 때 얻어먹은 냉면 한 그릇에 부패 공무원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가장 쩨쩨한 뇌물 사건으로 기록되기는 했지만, 이처럼 뇌물과 선물의 경계는 모호하다. 우리나라 ‘공무원 행동강령’에서는 뇌물과 선물을 돈의 액수로 규정하고 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의도된 대가의 유무에 따라 뇌물과 선물이 구분지어진다. 대부분의 문제는 항상 선물을 가장한 뇌물이 야기한다. 탕왕의 6가지 반성으로 보는 뇌물의 역사 하나라를 정복한 후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즉위 후 7년 동안 가뭄과 흉년이 들었다. 이에 자신이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느낀 탕왕은 6가지 반성의 글을 적어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탕왕의 6가지 반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가 절제되지 않고 문란하지 않은가? 둘째,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경제가 어렵지 않은가? 셋째, 궁전이 화려하고 사치스럽지 않은가? 넷째, 여자의 청탁이 성하고 정치가 불공정하게 운영되지 않는가? 다섯째, 뇌물이 성행하지 않는가? 여섯째, 참소로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 중 뇌물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다섯째 항목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정치가 절제되지 않고 문란하다는 것은 그 가운데 뇌물로 인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경제가 어려워지는 데에는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정권과 결탁하기 위해 뇌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탕왕의 6가지 반성을 통해 뇌물을 살펴보는 이유는 각 항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뇌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6가지 탕왕의 반성을 통해 뇌물을 살펴본다. 그러면 뇌물이 얼마나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지, 사회나 국가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뇌물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뇌물은 거대한 범죄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범죄이기도 하다. 급행료, 불법적인 수수료, 약간의 사례 등 범죄라고 일컫기에도 소소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뇌물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쌓이면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 뇌물은 가장 명확할 것 같으면서도 가장 모호한 범죄이다. 수십억 원을 받았음에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돈을 줬다는 이유로 뇌물죄로 입건되기도 한다. 뇌물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거대하게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야기하고 200년간 전쟁을 지속한 십자군원정은 한 번의 뇌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게 된다. 1차 원정 때 십자군은 난공불락의 안티오크를 만나게 된다. 이 성을 넘어야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량도 떨어져가고 있었으며, 전염병까지 돌아 많은 군사들이 죽었다. 또 투르크의 군대도 거의 당도하고 있었다. 그때 십자군 원정대의 대장이었던 보에몽은 성의 한 구역을 지키고 있던 수비대장을 매수해 성문을 열게 했고, 십자군은 결국 안티오크를 점령하여 예루살렘 공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문화를 동양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양의 사상을 세계 지배 사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뇌물 퇴치 전략_ 김영란법의 원조는 세종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소위 대가성이 증명되지 않는 스폰형 뇌물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스폰형 뇌물은 고도한 뇌물 수법으로 선물과 뇌물로 구분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조선시대에도 인정과 뇌물을 한계를 구분하는 일은 큰 문제였다. 조선은 ‘뇌물 천하’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뇌물이 성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뇌물 관련 사건이 3,000건이나 될 정도이다. 하지만 고위관료들이 받는 뇌물 비리에 대해서는 그 처벌이 관대하였다. 1424년 어느 여름날, 세종은 폭탄선언을 했다. 뇌물과 관련하여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모두를 처벌하겠다는 ‘양자처벌법’을 선포한 것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건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고대부터 현대, 동서양의 역사는 뇌물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뇌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뇌물은 힘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 속에 소소하게 선물이라는 개념과 혼동되며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물은 사회의 기반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동서양과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통해 뇌물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물이 사라지지 않는지, 뇌물이 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는 뇌물을 근절시키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뇌물의 본질을 알고, 역사적으로 되돌아봄으로써 조금 더 건전하고 밝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위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