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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깨비 모녀의 외출
2. 딸아, 너는 굴레를 벗어라 3. 런던의 방 한 칸 4. 내 자유의 깃털 |
尹靜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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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폐경기 때에 가장 깊은 열망을 갖는다고 한다. 남편이 있는 여성은 외도를, 혼자 사는 여성은 연애를, 그것은 자기 몸속의 난자, 그러니까 그 아기 씨앗이 영구히 사라지게 된다는 데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상대에게 내 열병을 표출한 덕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단 말이에요.' 내가 징징대가 내가 존경하는 그 의사님이 말했다. '병 되는 것보단 낫네 뭐.' 차리라 병이 되어 혼자 알았으면 백배나 더 나을 뻔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면 폐경기의 혼란을 겪고 난 후 여성에겐 다시는 연애할 생각이 없어지나요?' '갈망은 남아 있어요. 다만 그 불길에 자신이 데일 만큼 뜨겁지야 않겠지. 죽으 때까지 은근하게 남아 있는, 그런 사람이 정상이오.' 다행이다. 이젠 용암처럼 끓어 넘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용암줄기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 pp.156-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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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러니까 내가 중3 때 성인 잡지 펜팔란에서 말이다 서울 문래동에 사는 고1짜리, 나만큼 되바라진 한 남학생의 주소를 발견했지.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남하생이 사랑을 고백하는 거라. 까짓 것 나도 고백했지 뭐. 당시에 본 사랑 영화며 잡지, 소설책에서 읽은 표현들을 바꾸지도 않고 그대로 써댄 거야. 완전 표절범이지 뭐. 달이 밝으면 그대가 생각난다 정도는 양반이고 입가로 스쳐 가는 바람 줄기도 그대의 훈기 같다는 등, 별의별 소릴 다했던 거다.
뭐?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고 어떻게 그런 감정이 생겼느냐고? 무슨 소리니. 사진들은 진작에 교환했는데, 사진 보니까 그 남학생 정말 잘생겼더라. 그렇게 멋지게 찍히기 위해 집에서 거울 보고 오래 연습한 것 같더라니까. 홀딱 반했지 뭐. 나 역시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 별 포즈를 다 잡아봤는데 그건 까마득히 잊고 그 남학생만 정말 잘생겼다고 생각한 거지. ---p.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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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도 이혼 찬양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영국에서 본 결손가정의 아이들 때문이다. 텔레비젼에 나온 그 청소년들은 부모의 잦은 이혼에 모두가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누구하나 밝은 얼굴을 가진 아이가 없었다. 이혼이 일상화되었다는 서구 아이들도 감성이 퍼렇게 멍이 들어 이혼할 걸 외 우리는 낳았느냐고 항변했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끌고 다니려면 차라리 우리를 따로 살게 해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엄마는 아빠한테 자길 떠넘기고 아빠는 또 엄마에게 떠넘긴다. 우리가 공깃돌이냐'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래 아이란 그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한테 최소한의 예우를 지켜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 한다. 카톨릭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예수보다 마리아를 더 섬기는 이유는 여성에겐 종교보다 숭고한 신앙심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 아이를 낳는 모든 여성들도 다 그러하다고... --- p.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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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길 듯 끊길 듯 오래된 필름처럼 이어지고 있는,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신파'
이 책은 '윤정모'라는 작가의 이름에서 벗어나 이 땅의 평범한 한 여자로서, 엄마로서 차마 드러낼 수 없었던 고통과 절망을 숨김없이 고백한 '비극의 개인사'이다. 8년 연하 남편과의 잘못된 만남과 결혼, '못난 딸'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댁으로부터 받았던 수모, 남편의 외도와 폭력, '처음부터 잘못 출발한 가정이라는 열차'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인간의 굴레, 정상적으로 정돈된 삶을 향유해 보려고 버둥거렸던 몸부림, 자유를 꿈꾸며 탈출했던 런던 생활 그리고 이혼...... 작가는 이 책에서 어쩌면 무덤 속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질곡의 세월을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듯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 갇혀 있었다. 부모의 이혼, 재혼한 어머니가 또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야 했던 작가는 가난때문에 갖은 수모와 모욕을 감당해야 했고, 대학 진학 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술집 여급을 전전하는 등 애초부터 '평범한 행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작가는 언젠가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슬픔까지 안겨줄까" 생각했고, 그리고 그 "억울함이나 분함을 글로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념의 시대 민족과 분단현실, 계급문제에 천착하며『고삐』등 잇따라 문제작들을 발표하며 시대와 맞서 싸운 것도 어찌 보면 시대의 모순이 곧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과도 맞닿아 있음을 깨닫고 이와 맞서 싸웠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항거하는 작가로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바탕으로 발표한 작품들 속에는 비극의 개인사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작가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어느 날 홀연히 삶의 무대를 런던으로 옮겼고, 이제 그 3년 세월의 흔적과 몸 속 깊이 감추고 있어야 했던 고통의 과거사를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분노로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내면의 고백이자 아슬아슬한 곡예사처럼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서글픈' 삽화이다. 그리고 작가의 내면 깊숙이 감추고 있어야만 했던 고통은 곧 혼신의 힘을 다해 추구해 왔던 '사람다운 삶을 구현하는 세상'에의 희구이다. 작가는 왜 지금까지의 침묵을 깨고 가슴속 말들을 쏟아냈을까? 작가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여태 쌓아온 내 인간관계의 허실이라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지금까지 연하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엄마, 그 전에 작가로서 민중운동가로서 이른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으로만 일반에 내보여졌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공부를 위해 모녀가 함께 영국 유학을 갔고, 이는 성공한 사람만의 특권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아니, 꼭꼭 숨겨두어야 할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황무지에 도착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가의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닌 자전에세이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바탕으로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녹아 있는『고삐』처럼 작가는 충분히 소설로 형상화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전에세이 형식을 빌어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작가적 자존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허상이 아닌 실상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짐작컨대, 작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지난날을 되짚으며 또 한번 절망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