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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달리기 - 길을 잃은 자리에서 무작정 달렸다 하기 싫은 건 안 하면서 살 순 없을까? 아일랜드를 언제 떠날 수 있을까? 이대로 달려도 괜찮을까? 다시 달릴 수 있을까? 달리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달릴 수 있을까? 쓸모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을까? 고통스러워도 계속 달려야 할까? 아일랜드의 공원을 가져갈 순 없을까? 2장 포르투갈에서 이어진 달리기 - 달리는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공원이 없는 동네에서 달릴 수 있을까? 오늘은 무사히 잠들 수 있을까? 풀린 개를 봐도 도망가지 않을 수 있을까? 10킬로미터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1) 10킬로미터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2)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달릴 수 있을까? 가장 나다운 달리기가 뭘까? 3장 이탈리아에서 완성된 달리기 - 결국, 나는 내게 도착했다 나도 계속 자랄 수 있을까?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여름에도 계속 달릴 수 있을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1)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2) 내일은 오늘보다 더 괜찮아질까?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달릴 수 있을까? 추위를 이기며 겨울에도 달릴 수 있을까?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무엇이 진정한 완주일까? 왜 많은 것 중에 달리기일까?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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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내 속에 고인 물을 흔드는 비였고, 바람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거나 바쁜 업무로 힘들었던 날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달리기를 하면 산소가 들어올 길이 생겼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갔다. 어떤 날은 달리는 대신 오래 걸었다. 바람을 쐬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오래 머물다 집으로 돌아갔다. 집을 나설 때까지 몹시 거칠었던 마음이 돌아올 때는 한껏 부드러워졌다.
“오늘 잘 달렸어. 잘했어. 그걸로 충분해.”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진 것에 감사했고, 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감사한 마음이 커질수록 결핍은 작아졌다.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가도 푸른 잔디, 높게 뻗은 나무, 노을 진 하늘, 무리를 지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어느새 세상은 유토피아로 바뀌어 있었다. 미팅만 하고 나면 쪼그라들던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당신들은 한국어 못하잖아. 한국에서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 한국어로 일할 수 있겠어? 영어 밖에 할 줄 모르면서.” 내 마음에 제대로 들리도록 일부러 더 호탕하고 크게 외쳤다. 해외에서 직장생활 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거라고,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 과자 조각처럼 부서지는 마음이 나에게 건네는 격려와 칭찬으로 벽돌처럼 지은 집이 되는 것. 이것이 달리기가 알려준 삶의 신비였다. 달리기는 그렇게 내 두 다리만이 아닌 내 삶을 움직이고 있었다. --- pp.56-57 한여름의 햇살 아래, 동네 포도밭의 포도알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내 얼굴도 빨갛게 익어갔다.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맞으며 달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뭐가 좋아서 나는 이 생고생을 하고 있을까?’ 학창시절처럼 감시하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기록을 내면 이직이나 승진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멈출 수도, 쉴 수도, 줄일 수도, 미룰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저 달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여름은 내가 달리기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할 수 있게 해준 계절이었다. 7월생인 나는 어쩌면 한여름에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뜨거움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봄처럼 찔끔찔끔 떠보지 않고, 가을처럼 과묵하게 뒤에서만 지켜보지 않고, 겨울처럼 속앓이만 하지 않고 앞뒤 계산 없이 직진하는 열렬한 계절, 나는 달리기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 p.136 여름은 ‘피하는’ 계절이지만, 겨울은 살아 ‘넘기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 속에 모든 것이 얼어붙고, 생명력을 잃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더 강하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이 새롭게 솟아나는 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캐서린 메이는 자신의 저서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에서 바다 수영을 했던 경험에 대해 나눈다. 기온은 6도, 물 온도는 3도.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가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난 후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의 피가 혈관 속에서 생기 있게 빛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번째에는 바다를 정복할 수 있고, 그 얼어붙을 듯한 추위 속에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달리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피하고 움츠러들기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겨울의 힘을 비로소 느꼈다.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 계절은 모든 것이 깨어나는 봄이 아니라 준비되는 겨울이었다. --- pp.171-172 설계부터 제조 단계를 지나 품질 검사까지. 정해진 단계를 거쳐 완벽한 제품이 탄생하듯 인생에도 일종의 단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품질 검사는커녕 제조 단계 어디쯤에서 삐끗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미완품,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각자의 단계가 같으려야 같을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한 존재가 인간임을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불량품, 양품, 우량품, 정품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낙인을 찍는 사회 속에 정품, 아니 최소한 우량품이라도 되고 싶어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지만 인생은 그 분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라는 걸 마흔을 앞두고서야 깨달았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면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내가 달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선두그룹에 있던 후미그룹에 있던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속도가 느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더 많은 격려와 응원이 쏟아진다. 우리는 각자의 길 위를 달리는 마라토너다. 남은 거리와 제한 시간은 다르지만,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완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42.19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에는 어려운 고비가 끝없이 찾아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길 구간이 있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사점이 오기도 한다. 포기하려 했다면 이미 수백 번은 포기했을 순간들이다. --- pp.184-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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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무기력의 늪에서 찾은 2분의 가능성
서른한 살, 번듯한 직장을 뒤로하고 떠난 아일랜드 어학연수와 대학원 생활 중 예기치 못한 우울증과 마주한다. 이미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언어의 장벽 앞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열패감은 삶의 의지마저 갉아먹었다. 해가 일찍 지는 아일랜드의 겨울은 그 무기력을 더욱 짙게 눌렀다. 그런 그녀에게 ‘달리기’는 아주 우연하고도 요란하게 찾아왔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증오하고 오래달리기를 ‘인생 최대의 시련’으로 여겼던 저자는, 30대가 되어 다시 운동화를 신는다. 걷는 것조차 버거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갑자기 인생에 그럴듯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하기 싫은 것에서 ‘사는 것’만은 지워보고 싶다”는 절박함이 시작이었다. 온갖 요령을 피우는 마음과 달리 정직하게 반응하는 몸에 가느다란 희망을 건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2분 걷고 2분 달리는’ 초보 러너의 서툰 발걸음부터 하프 마라톤 완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처음은 단 2분 달리기와 2분 걷기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몸이 버티지 못해 멈춰 서야 했던 그 시간은 결코 ‘운동’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달리고 나면 딱 하나 좋은 것이 있었다. 몸이 제일 가벼웠다. 굽어있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하기 싫은 것들 목록에서 적어도 ‘사는 것’만큼은 지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거기서 생겨났다. 그렇게 그 작은 움직임을 반복하며 점차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복해나갔다. 잘 달리는 법’이 아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이 달리기는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낯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반복되는 자기 의심 속에서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을 버티게 하는 방식이 된다. 기록을 단축하는 방법도, 효율적인 러닝 루틴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왜 달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달리기를 하며 마주한 것은 더 나은 기록이 아니라, 비교에 지쳐 있던 자신,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삶을 단번에 바꿔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은 계기’였다. 그러나 그 작은 계기가 쌓이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달리기로 했다』는 성취의 서사가 아닌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느라 숨이 가빠졌던 이들에게,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걷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지속’이니까. 그 끝에서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게 된다. 타인의 속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 이 책은 ‘2분 걷고 2분 달리는’ 초보 러너의 서툰 발걸음부터 하프 마라톤 완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보여지는 나’ 때문에 선뜻 달리지 못했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아일랜드의 공원과 포르투갈의 해변을 달리며 저자는 비로소 ‘나다운 속도’를 발견한다. “달리기에 온전히 몰입하는 순간, 오직 달리는 나만 보일 것”이라는 깨달음은, 세상이 정해준 ‘결혼의 때’나 ‘성공의 지표’에 매몰되어 있던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해방감을 선사한다. 달리기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의 환희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사점(Dead Point),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에 가깝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고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라는 통찰은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뇌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열여덟 번의 마라톤을 뛴 이안 워드의 일화나, 90대 마라토너의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 진정한 완주인가’를 묻는다. 삶은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는 불확실한 것이지만, “달릴 수 있을 때까지는 달릴 수 있다”는 태도가 곧 삶을 대하는 고결한 의지다. 오늘도 자신만의 트랙 위에서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며 어깨를 툭툭 쳐주는 따뜻한 응원이 될 것이다. 비록 2분 걷고 2분 달리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삶의 기록을 써나가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