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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이유
이고은
도서출판 잔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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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다시 시작된 계절|23
현호색|27
사이의 들|28
벚꽃 흩날리던 날|34
고집스러운 나무|39
복사꽃|41
피고 지는 꽃|42
종소리|44
사이에서|48
나의 등나무|52
아빠의 밀짚모자|57
102동 604호|61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68
친구가 되는 쪽|74
짧은 여행에서 찾은 것|78
기도|87
강낭콩꽃|91
금계국|92
여름날의 하모니|93
종이에 피어난 개망초|97
숲의 파도|103
바람에 실려 온 향기|107
하얀 등대, 하루키, 토성 그리고 코다마|109
마침표|116
도화지에 담은 것|119
마지막 여름의 울음소리|124
희망이라는 이름의 배|129
한여름의 꿈|133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136
다정한 작별 인사|140
분홍빛 바다|144
이제야 전하는 마음|149
나비가 잠든 시간|154
가을이 온다|156
여전히 선명한 바다|157
있는 그대로|162
아빠가 잠든 자리|166
희미해지는 점들|171
계절과 계절 사이|173
구절초|176
갈대|177
이제 곧|178
파도가 부르는 노래|182
은하호|190
서툰 불꽃놀이|192
오늘의 정성|194
눈의 입맞춤|197
가만히 바라보는 마음|200
군무(群舞)|203
계절의 이유|205

저자 소개 1

화가, 작가, 그리고 산책가.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아티스트 그룹 DNDD를 설립했다. 전시, 디자인, 출판 등 시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서울미술관 〈3650 storage ? 인터뷰〉 등의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이지 않는 것들》, 《삶은 여전히 빛난다》 외 여러 도서의 표지 및 삽화 작업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였고, 뮤지션 루싸이트 토끼의 프로젝트 앨범 《리듬》, 작곡가 수린의 EP 앨범 《Wave》 아트워크 등 국내외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협업을 통해 섬세한 시각
화가, 작가, 그리고 산책가.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아티스트 그룹 DNDD를 설립했다. 전시, 디자인, 출판 등 시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서울미술관 〈3650 storage ? 인터뷰〉 등의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이지 않는 것들》, 《삶은 여전히 빛난다》 외 여러 도서의 표지 및 삽화 작업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였고, 뮤지션 루싸이트 토끼의 프로젝트 앨범 《리듬》, 작곡가 수린의 EP 앨범 《Wave》 아트워크 등 국내외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협업을 통해 섬세한 시각적 언어를 확장해 왔다. 이제는 그 시선을 조금 더 내면으로 옮겨,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반짝이는 빛들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혼자서 거닐다 마주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건네는 위로를 담은 에세이 《산책가의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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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32g | 120*188*15mm
ISBN13
9791190234535

책 속으로

이제는 벚꽃을 봐도 슬프지 않다. 꽃이 지고 나면 또다시 피어날 것을 알기에, 떨어지는 꽃잎을 봐도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스티치의 기억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벚꽃 흩날리던 날〉 중에서

문득 이 생을 다하여 떠난 이들과 인연이 다하여 멀어진 이들이 생각난다. 그 자리에는 이미 새로운 생명과 만남이 자리하고 있지만, 한동안 나는 저 고집스러운 나무처럼 떠나간 이들을 마음속에서 보내지 못하고 슬픔과 아쉬움이라는 낙엽을 붙잡고 있었다. 지난봄, 겨울을 보내지 못하고 마른 잎을 꼭 쥐고 있는 나무를 보며 유독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그것이 꼭 나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집스러운 나무〉 중에서

수많은 계절이 오가는 동안 우리가 나눈 아름다운 순간들도 꽃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사랑의 형태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깊이는 점점 더 고요하고 깊어졌다. (중략) 다시 이 계절이 돌아와 어김없이 아카시아 향기가 불어오면, 우리는 언제나 함께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실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에서

마침 숲에는 우리뿐이었고, 숲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비밀스럽게 펼쳐진 바닷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점점 거세져 결국 오르기를 멈추었지만, 숲을 빠져나가는 내내 파도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숲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숲의 파도〉 중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은 찾아온다. 그리고 슬픔과 괴로움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듯, 이 모든 감정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삶이 된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슬프기만 한 삶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찾고자 할 때 행복도, 고통도, 그곳에 있다.
---〈하얀 등대, 하루키, 토성 그리고 코다마〉 중에서

이 순간의 빛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한번 벌어진 꽃잎은 다시 오므리지 않는다는 걸 안다. 화가에게 ‘나중’이란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결국 길 한쪽에 다시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도화지에 담은 것〉 중에서

어둠이 밀려오는 바다 위에서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배 한 척. 그 배에는 ‘희망’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다. 어쩌면 희망이란, 빛이 사라진 뒤에도 묵묵히 바다를 지키는 배의 이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배〉 중에서

그해 여름, 나는 여전히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움켜쥐려 애쓰고 있었다. 낡은 라디오 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섞인 그 밤바다에서, 나는 아주 잠시 슬픔을 잊는 법을 배웠다. 짧은 일정 속에서 선물처럼 찾아온 그 순간은 우리가 함께 꾸었던 한여름의 꿈처럼 느껴진다. 눈부신 호수의 윤슬을 보며 지나간 밤바다의 불빛을 그리워하는 일. 깨고 싶지 않은 꿈은 기억이 되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꿈이다.
---〈한여름의 꿈〉 중에서

나는 백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싶은 그림을 모두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전부 쓰고 싶다.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고 싶다. 나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오면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마지막 숨을 내쉬기 전 “참 재미있었다.”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다.
---〈다정한 작별 인사〉 중에서

첫사랑과 짝사랑, 그리고 언젠가 나를 설레게 했던 수많은 만남. 그들의 얼굴이 살며시 밀려왔다가 옅은 한숨에 멀어져 간다. 그들과의 기억은 가슴속 어딘가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 언제라도 외롭거나 쓸쓸할 때마다 싹을 틔우고 자라나 내게 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로, 그저 잠시 살며시 웃을 수 있는 그 정도의 온도로 말이다.
---〈분홍빛 바다〉 중에서

작은 나비의 죽음일 뿐인데, 여름을 다 써버리고 남겨진 그 가냘픈 무게에 나는 견딜 수 없이 서글퍼졌다. 나비가 잠든 풀숲 위로, 여름이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
---〈나비가 잠든 시간〉 중에서

쏘아 올린 불꽃은 그리 높이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저 탁탁탁 소리를 내며 노란 파편으로 바다를 잠시 적시다 사라질 뿐이다. (중략) 그 불꽃을 보며 나는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높이 오르지 못해도, 찰나에 사라질지라도, 차가운 겨울 바다 위로 제 몸을 태워 기어이 빛을 내 보려는 그 안간힘이 꼭 우리네 삶 같아서였다. 화려한 성공이나 거창한 마무리가 아니어도,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고 이 계절을 통과해 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툰 불꽃놀이〉 중에서

무엇이 내 마음을 닫게 만들었는지, 왜 그토록 겨우내 나를 방 안에 꼭꼭 가두어 두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다. 그래도 아픔과 슬픔 또한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노래를 들으며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아픔과 슬픔도 아름다운 것들로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눈의 입맞춤〉 중에서

이 계절을 지나오며,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을 떠난 아빠와 엄마,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스티치, 그리고 멀어져 간 숱한 인연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낸다. 사랑과 감사를 가득 담아서. 길게 혹은 짧게나마 나와 함께해 주어서, 내게 기억의 조각들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그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나의 삶을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은 사실 내 내면의 계절을 기록하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계절의 이유〉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계절은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가 다시 찾아오고, 꽃들도 졌다가 언제 피어난다는 소식도 없이 피어난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흘려보낸 계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설렘과 아픔의 봄, 사랑과 이별의 여름, 기쁨과 슬픔의 가을, 빛과 어둠의 겨울. 작가는 지난 계절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고여 있던 기억을 길어 올린다. 총 50개의 이야기에 담긴 이 사적인 계절의 기록은, 어쩌면 작가 자신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낸 시간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눈물과 웃음 그리고 상실과 만남은 우리 모두 지니고 있을 테니까. 『계절의 이유』는 이제 보내 주어야 할 때가 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지난 시절의 자신을 물결에 흘려보내야 하는 이유를 우리 마음의 수면 위로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떠밀려 갈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삶의 종착점을 향해 노를 저어 가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만 배 깊숙이 간직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무거워진 나의 배가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지 않도록. 복도 난간에 까치발로 매달려 마당을 내려다보던 어린 내가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다. 나도 마음속으로 크게 손을 흔들어 준다.
-본문 중에서

어제의 잔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 진행형일까. 지금을 살며 과거를 떠올릴 때면 어제의 나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내가 애틋해, 지난 흔적을 잔뜩 떠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슬픔이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점점 나를 물속으로 가라앉게 만든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언젠가 삶이라는 배가 이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버릴 수 있을까. 한 방울씩 고여, 이제는 퍼낼 수도 없을 만큼 깊어진 눈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물속으로 가라앉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그 무게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의 나를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물결에 실어 보내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을 좋아하고, 내게 주어진 날들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일. 그렇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시절에 작별 인사를 전하며, 과거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한다. 반복되는 계절은 단지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었다. 기억을 놓아 준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계절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준비 과정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내일을, 그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바람은 작은 진동으로, 얇은 물길을 튼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것이 전부이다. 애써 지운 슬픔은 어느 날 문득 되살아나 짓누르기도 하고, 겨우 간직해 온 행복은 오히려 그 부재를 일깨워 더 공허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지난 계절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지 않은 계절에 불안해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지금의 우리를 휘청이게 만드는 물살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현재를 버티고 서서 내일을 맞이할 준비가 된 굳건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된다.

잊고 있던 기억을 찾으러 온 바다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내일’을 발견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달리던 그 짧은 순간, 내 몸의 모든 감각은 생을 향해 곤두서 있었다. 그것이 내가 이 계절을 지나와야 했던 이유였고,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기어이 초대장을 받고 나섰던 이유였다. 나는 여전히 살고 싶었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노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파도 소리는 다시 시작될 나의 다음 계절을 부르는 전주곡이었다.
-본문 중에서

눈을 뜨면 지난밤의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생의 원리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어제의 무거운 기억도 모두 쫓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자연스레 잊히도록, 멀어지도록, 사라지도록,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물결에 실어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에는, 컴컴했던 구름 위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건네는 인사와 함께 반짝이는 빛이 채워진다. 눈물로 빚어낸 기쁨은 얼마나 눈부신가. 어쩌면 우리의 삶은 시간이 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키고 선 한 존재로서 묵묵히 그 시간을 받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우리에게 계절은 어떤 의미일까.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꽃이 지고 다시 피어나듯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떠나보내는 작별 인사이며, 더 아름다운 하루와 꽃을 피워 내는 나에게 건네는 환영의 인사이다. 흐르는 계절을 온전히 바라보는 마음을 담은 『계절의 이유』를 통해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저마다의 계절의 이유를 발견하게 할 것이다.

추천평

마음속에 말로 꺼낼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세상을 떠나간 이들. 죽음 뒤에 남아 나 홀로 보았던 풍경. 그때 그 빛.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면서 우리는 왜 울고 싶어질까. 당신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째서 내 지나간 장면들이 따라 출렁일까. 반짝거릴까. 현호색. 글을 읽으며 많은 꽃의 얼굴을 찾아보았다. 며칠 전 산에서 본 아주 작은 꽃. 너울너울 바닥에 깔린 보랏빛 하늘. 그게 현호색이었구나. 반가움에 뒤져 보니 사진첩에 남긴 사진이 없다. 산자락에 허다해 눈길만 주고 지나쳤다. 분명 어여쁘다 생각했는데. 충분히 많다고도 생각하여. 곧 빗물에 흩어질 벚꽃만 한참 올려다보고 돌아왔다. 그 마음이 무색해 나도 현호색을 보았노라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봄이 지나간다. 슬픔은. 슬픔도 지나가는가. 슬픔은 그대로 있고 내가 지나가는가. 아니면 슬픔과 내가 두 손을 잡고 함께 계절을 건너가나. 함께 죽어가나. 그때 우리 투명하고 홀연해지나. 계절을 통과한 당신의 얼굴이 비로소 말간 것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슬픔 앞에서가 아니라 맑음 앞에서 눈물이 난다. 그 눈물만큼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 소금쟁이, 물까치, 개망초, 미선나무. 나 대신 당신이 먼저 보았던 그 작은 것들의 춤만큼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 - 목정원 (작가)
유령처럼 사라지는 소식들에 무심해진 현대의 풍경 속에서, 이고은 작가의 글과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내 가슴 밑바닥에선 작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고은 작가를 20여 년간 지켜본 복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낮은 자세로 사려 깊고도 섬세하게 눈을 맞추며 세상만사 모든 생명을 애틋한 손길로 어루만지는 사람이다. 강물의 물결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새로운 새 소리가 귀로 날아드는지,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과 풀잎의 양상을 그녀는 오감과 마음으로 내밀하게 경험하고 관찰한다. 그리고 이것은 속절없이 흐르는 계절 속에서 찾아낸 삶의 온기이며, 그 시리도록 애틋하면서도 사려 깊은 기록이 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다각도로 변화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만남과 이별을 그녀는 누구보다도 섬세하면서도 깊게 느끼고 오롯이 체화시킨다.
세상의 모든 꽃은 지기 위해 피고, 모든 계절은 떠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온다. 이고은 작가는 시린 자연의 섭리 속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정한 ‘이유’를 글과 그림으로 정성껏 길어 올린다. 상실의 끝에서 침묵의 시간을 건너 비로소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작가의 고백은, 지난 계절의 아픔을 견뎌낸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포옹처럼 다가온다. 어느 계절도 이유 없이 오지 않음을 믿기에, 그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명료하다. 삶은 여전히 살 가치가 있으며, 우리 안에는 새로운 계절을 껴안을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 이제 이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도래할 《계절의 이유》가 될 것이다. - 정유희 (〈PAP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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