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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774년 1월 29일1장 보스턴의 서막 1706~17232장 친구와 이방인 1723~17243장 첫 번째 런던 방문 1724~17264장 자신만의 흔적 1726~17305장 가난한 리처드 1730~17356장 시민 1735~17407장 제국의 궤적 1741~17488장 전기와 명성 1748~17519장 정치의 맛 1751~175410장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754~175511장 민중의 대령 1755~175712장 보다 큰 무대 1757~175813장 제국주의자 1759~176014장 영국인 1760~176215장 떠오르는 서부 1762~176416장 인지세와 정치적 수완 1764~176617장 의무와 즐거움 1766~176718장 이성 vs. 폭동 1768~176919장 갈등의 심화 1770~177120장 소심한 발길질이라도 1772~177321장 콕핏 1774~177522장 반란 1775~177623장 파리에서 찾은 구원의 길 1776~177824장 보놈 리샤르 1778~177925장 전권공사 1779~178126장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1781~178227장 현자 1783~178528장 다시 집으로 1785~178629장 황혼에 떠오르는 해 1786~178730장 잠들다 1787~1790에필로그 1990년 4월 17일감사의 말주註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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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William Br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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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출 소년, 필라델피아의 거물로 성장하다1706년 보스턴의 가난한 양초 제조공 집안에서 17남매 중 15번째 아이로 태어난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작은 미미했다. 정규 교육을 고작 2년밖에 받지 못한 소년은 형의 인쇄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활자를 닦는 대신 지식을 향한 갈증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형의 억압적인 대우를 견디지 못한 그는 17세의 나이에 단돈 몇 실링만을 쥔 채 연고도 없는 필라델피아로 무작정 가출을 감행한다.두 팔에 빵 덩어리를 끼고 필라델피아 거리를 걷던 이 가출 소년은 특유의 근면함과 지적 호기심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쇄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과 여론을 움직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인쇄소를 차리는 데 성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낙관주의와 철저한 자기 관리는 그가 거친 식민지 사회에서 살아남아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 잡는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결국 그는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을 통해 식민지 전역에 근면과 절약의 미덕을 전파하며 막대한 부를 쌓고 필라델피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인쇄업을 통해 다진 탄탄한 경제적 자립은 그가 이후 과학과 정치라는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 혁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시간을 선사했다.[2] 번개에서 전기를, 사상에서 자유를프랭클린의 호기심은 인쇄기를 넘어 대자연의 비밀로 향했다. 그는 뇌우가 치는 하늘에 연을 띄워 번개가 전기임을 입증하는 위험천만한 실험을 감행했고, 이는 당대 유럽 과학계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힘인 전기를 인류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이 업적으로 옥스퍼드대학과 에든버러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며 '프랭클린 박사'라 불리게 된다.그의 천재성은 단순한 이론에 머물지 않고 철저하게 실용적인 발명으로 이어졌다. 연기를 줄이고 열효율을 높인 ‘프랭클린 난로’, 노년의 불편함을 덜어준 ‘이중 초점 안경’, 그리고 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준 ‘피뢰침’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이 모든 발명품에 대해 특허권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발명으로부터 큰 혜택을 입듯, 자신 역시 발명으로 타인을 돕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평생 실천했다.이러한 과학적 사고방식은 그가 사회 제도를 설계하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는 관찰과 실험, 그리고 합리적 도출이라는 과학적 절차를 공공 서비스에 도입했다. 식민지 최초의 공공 도서관과 소방대, 그리고 병원을 설립하며 그는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회적 발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는 개인의 안위보다 공공의 선을 우선시했던 그의 리더십 철학을 보여준다.[3] 영국 신민에서 '최초의 미국인'으로정치가로서 프랭클린은 처음부터 급진적인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오랜 기간 대영제국의 충직한 신민으로서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처했으며, 타협과 중재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애썼다. 하지만 영국의 오만하고 고압적인 통치 방식과 식민지인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를 목격하며, 그는 점진적으로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미국 독립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전장의 총성만이 아니었다. 칠순의 노구로 프랑스로 건너간 프랭클린은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지적인 매력으로 프랑스 사교계를 매료시켰고, 끝내 강력한 군사·재정 지원을 이끌어내는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파리에서 보여준 노련한 수완이 없었다면 신생 국가 미국의 독립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총칼보다 강력한 펜과 화술로 미국의 생존권을 확보한 진정한 외교의 거장이었다.그는 미국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 모두에 서명한 유일한 인물로서,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는 건국 초기 단계에서 통합의 정신을 발휘했다. 단순히 국가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근면, 실용, 그리고 관용이라는 미국 정신의 원형을 정립한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인쇄공의 삶이 어떻게 거대한 국가의 운명과 하나로 녹아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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