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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당신 곁에 누군가간병인내 이름은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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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윤리학아프고 건강하지 못한 몸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것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예외 상태로 규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편하고 다치거나 앓는 몸은 사회의 규칙,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로 규정되며 ‘정상’ 시스템을 지연하는 상태, 예외적 상태로 판정된다.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말끔히 벗어날 수는 없다. 가벼운 병을 앓고 완치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질병과 질환은 언제든 몸을 위협한다. 몸이야말로 질병이나 사고 앞에 무엇보다 시간 앞에 늘 벌거벗은 상태로 놓여있다. 그런 존재들 옆에 누군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불린다. 보호자, 간병자, 가족 간병인, 주조호자, 간병인. 그 부름은 다양하고 용례에 따라 모호하게 쓰이고 있지만, 네 명의 작가가 그리는 돌봄의 적나라한 사진 앞에 ‘케어러’라는 호명을 택한 것은 그 방향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근간하는 걸 테다.돌봄은 대상자와 제공자 간 상호성을 전제하며 동시에 그 둘은 또 다른 이에게 돌봄을 제공하거나 요청할 수도 있다는 점도 놓칠 순 없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은 돌보는 사람‘들’을 챙겨 쓴다.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두려움과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에게 빵과 두유를 말과 함께 두고 가던 청년(〈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 곤란하기만 했던 화장실 사용에 대한 정보와 담요를 내밀던 아주머니(〈당신 곁에 누군가〉), 음모의 실체를 격파하는 ‘도깨비’들(〈간병인〉), ‘독박’의 굴레에 놓여 제 이름 대신 ‘보호자’로 호명되어야 하는 이는(〈내 이름은〉) 모두 돌봄의 실행자들이었다.점점 파쇄되는 공동체와 그 안에서 더 납작하게 환원되는 개인에게 돌봄이라는 영역은 자본과 결탁함으로써만 가장 확실하고 유효하게 성립되곤 한다. 그게 아니라면 ‘홀로’ 떠안아야 하는 벌칙이 되는 게임이다. 자본주의의 노동력으로서 돌봄을 소비할 때 더 값싸고 많은 돌봄 인력은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고 그 관계에서 연결성은 계약의 유효기간으로 갈음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 있을지 궁구할 때 간병과 보호의 일은 다시금 처음의 ‘사랑’ 앞에 우리를 세워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들을 윤리학 쪽에 세워두고 싶다. 온통 현실의 지난함을 비추고 있는 이야기들 앞에서 어떤 바람들이 ‘잔혹한 낙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독해한 후 작품 해설의 제목에 쓴 강조점 따옴표는 사랑의 윤리가 돌보는 자들을 감싸안는 모양, 사람의 벌린 팔을 대신해 띄워놓은 기호이기도 하다.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의 차원으로 선회하는 가장 첫걸음은 그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연결의 선을 나란히 그어보는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보호자의 8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통계 지표가 아닌 소설이 써 내려간 병원 화장실의 곤혹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런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때 이름 없는 보호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지우는 형식으로서만 가계에, 존재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소설들은 숱한 ‘케어러’들이 정서적 주권을 거머쥐고 서로의 존재를 상기하도록, 그것이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첫 선분이다.편안함을 뜻하는 ‘comfort’는 우리가 주로 연관 짓는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원은 ‘fortis’, ‘성체처럼 튼튼하다는 것’에 닿아있다. 편안하다는 것은 튼튼한 것의 보호를 받는 느낌을 말한다. ‘케어러’들은 의료진과 환자의 호출을 기다리는 시간의 ‘틈’에서, 미비한 공간의 ‘틈’에서, 불확실한 성과와 싸우는 육체의 ‘틈’에서 긴장하며 떨고 있는 존재다. 제도적 측면의 개선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은 끊임없이 ‘케어러’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케어러’에게도 튼튼한 보호와 보호받는다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이런 딜레마 앞에서 네 명의 작가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좁다란 보호자용 침대를 닮은 그 틈을 조금 숨통을 틀 만하게 전환하는 건 어떠냐는 역발상으로. 그때 이들은 기댈 수 있다. 잘될 거라는 확신보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더 신뢰를 주듯이. 신뢰는 ‘케어러’들이 기댈 수 있는 서로를 향한 나란한 평균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돌봄은 사람을 순환하며 연대의 선분을 그어나간다. 조금 기댄 모양으로._황유지 문학평론가돌봄이란 서로 곁을 내어주고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는 일어른이 되어 자기 건강과 안위를 돌아보며 ‘self 돌봄’에 막 익숙해지자마자, 어느새 노년기에 들어서 병들어 아프고 몸이 불편해진 원가족(부모 혹은 조부모)에 대한 돌봄을 직면하는 중장년층이 많다. 그보다 조금 일찍 아직 자기를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벌써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영캐어러’도 있다.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건 쉽지 않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때로 절망마저 불러온다. ?케어러?는 이런 사회상을 돌보는 책이다. 돌봄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 〈당신 곁에 누군가〉, 〈간병인〉, 〈내 이름은〉 네 편의 단편소설은 각각 다른 장르와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모두 돌봄의 의미를 한 방향이 아닌 상호 양방향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같다. ?케어러?에 실린 단편소설 작품들은 독자에게 서로 곁을 내어주고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는 일이 돌봄이라고 그 의미를 조용히 건넨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덮을 때면 돌봄이 마냥 힘들고 어렵게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는 어려운 시간에 대한 고민 곁에 놓인 책인 ?케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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