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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 당신 곁에 누군가 간병인 내 이름은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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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대기 중이던 엄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 법을 배우는 아빠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빈 손가락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이 모든 게 현실인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딸을 발견한 아빠가 손을 흔들었다. 하임은 얼굴을 돌린 채 손을 흔들었다.
--- pp.42-43 그녀는 잠에 들려 애썼지만 딱딱한 침대 때문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대체 엄만 그동안 어떻게 잔 거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아려왔다. 그렇게 하임은 새벽 4시가 될 때까지도 뒤척이기만 했다. --- p.53 그 모든 걸 내가 감당해야 해야 할 거라며 충고 아닌 경고를 해주곤 했다. 사람들이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버지가 암을 선고받고 유일한 환자 보호자가 나 혼자뿐인 상황이 되고 보니 그들의 경고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p.78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고강도의 체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5인실의 경우 환자와 환자 보호자 열 명이 하나의 방에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은 물론 잠자리까지 불편한 24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야 했다. 특히나 환자 보호자의 침대는 간이의자를 펴서 사용하는 간이침대라서 허리도 아프고 언제 침대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감내하며 잠을 청해야 했다. 중증 환자들의 경우 간호사들이 밤새 두 시간에 한 번씩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기 때문에 불편한 침대에서 겨우 잠에 들었더라도 깊은 잠을 자기 힘들었다. --- p.81 탁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아침 인사하듯 나를 반겼다. 기지개를 켜고 병원 공용 화장실에서 대강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병원의 아침은 언제나 일찍 시작되는 편이었다. 다시 응급실로 가기 전에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 먹기 위해 1층으로 가보니 병원은 어느새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 p.84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이렇게 지독하고 고약한 것이었나? --- p.122 “여긴 1976 프로젝트의 실험실이었거든.” “1976 프로젝트요?” 음모론에 관심이 있던 박유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한동섭이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1976년 청와대 상공에 UFO가 나타난 적이 있었어.” --- pp.147-148 “사람들은 음모론이나 도시 전설을 누군가 지어낸 괴담쯤으로 취급하지. 하지만 그건 인간을 너무 몰라서 그런 거야.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바다 그리고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이 세팅된 우주도 정복했지. 하지만.” 한동섭은 책을 잡던 손가락으로 자기 심장 위치를 가리켰다. “인간의 마음은 정복하지 못했어. 음모론과 도시 전설은 가진 자들이 감추려고 덮어놓은 장막을 걷어버린 셈이지. 터스키기 매독 실험이나 MK 울트라 외에도 많은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거나 사실의 영역 근처까지 왔지. 그러니까 음모론을 파헤치는 것은 혁명 같은 일이지. 가진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 p.158 아니, 엄마, 나도 이제 어디 가면 어르신 취급받아요. 남들이 보기에 어르신이 어르신 휠체어를 끌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고요! 뱉지도 못할 말들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댔다. --- p.225 지난 세월을 되짚어봤다. 유난히도 많이 아팠던 나의 아기, 이제 좀 아기가 아프지 않고 살아갈 만하니 쓰러진 시아버지 그리고 장례식, 홀로 버티시는 게 괴로웠는지 기억을 지워버리는 치매를 선택하신 시어머니 그리고 부모님까지. 세상에 병이란 병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내 주변은 왜 이렇게 하나둘 아픈 건지. --- p.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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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윤리학
아프고 건강하지 못한 몸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것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예외 상태로 규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편하고 다치거나 앓는 몸은 사회의 규칙,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로 규정되며 ‘정상’ 시스템을 지연하는 상태, 예외적 상태로 판정된다.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말끔히 벗어날 수는 없다. 가벼운 병을 앓고 완치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질병과 질환은 언제든 몸을 위협한다. 몸이야말로 질병이나 사고 앞에 무엇보다 시간 앞에 늘 벌거벗은 상태로 놓여있다. 그런 존재들 옆에 누군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불린다. 보호자, 간병자, 가족 간병인, 주조호자, 간병인. 그 부름은 다양하고 용례에 따라 모호하게 쓰이고 있지만, 네 명의 작가가 그리는 돌봄의 적나라한 사진 앞에 ‘케어러’라는 호명을 택한 것은 그 방향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근간하는 걸 테다. 돌봄은 대상자와 제공자 간 상호성을 전제하며 동시에 그 둘은 또 다른 이에게 돌봄을 제공하거나 요청할 수도 있다는 점도 놓칠 순 없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은 돌보는 사람‘들’을 챙겨 쓴다.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두려움과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에게 빵과 두유를 말과 함께 두고 가던 청년(〈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 곤란하기만 했던 화장실 사용에 대한 정보와 담요를 내밀던 아주머니(〈당신 곁에 누군가〉), 음모의 실체를 격파하는 ‘도깨비’들(〈간병인〉), ‘독박’의 굴레에 놓여 제 이름 대신 ‘보호자’로 호명되어야 하는 이는(〈내 이름은〉) 모두 돌봄의 실행자들이었다. 점점 파쇄되는 공동체와 그 안에서 더 납작하게 환원되는 개인에게 돌봄이라는 영역은 자본과 결탁함으로써만 가장 확실하고 유효하게 성립되곤 한다. 그게 아니라면 ‘홀로’ 떠안아야 하는 벌칙이 되는 게임이다. 자본주의의 노동력으로서 돌봄을 소비할 때 더 값싸고 많은 돌봄 인력은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고 그 관계에서 연결성은 계약의 유효기간으로 갈음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 있을지 궁구할 때 간병과 보호의 일은 다시금 처음의 ‘사랑’ 앞에 우리를 세워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들을 윤리학 쪽에 세워두고 싶다. 온통 현실의 지난함을 비추고 있는 이야기들 앞에서 어떤 바람들이 ‘잔혹한 낙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독해한 후 작품 해설의 제목에 쓴 강조점 따옴표는 사랑의 윤리가 돌보는 자들을 감싸안는 모양, 사람의 벌린 팔을 대신해 띄워놓은 기호이기도 하다.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의 차원으로 선회하는 가장 첫걸음은 그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연결의 선을 나란히 그어보는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보호자의 8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통계 지표가 아닌 소설이 써 내려간 병원 화장실의 곤혹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런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때 이름 없는 보호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지우는 형식으로서만 가계에, 존재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소설들은 숱한 ‘케어러’들이 정서적 주권을 거머쥐고 서로의 존재를 상기하도록, 그것이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첫 선분이다. 편안함을 뜻하는 ‘comfort’는 우리가 주로 연관 짓는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원은 ‘fortis’, ‘성체처럼 튼튼하다는 것’에 닿아있다. 편안하다는 것은 튼튼한 것의 보호를 받는 느낌을 말한다. ‘케어러’들은 의료진과 환자의 호출을 기다리는 시간의 ‘틈’에서, 미비한 공간의 ‘틈’에서, 불확실한 성과와 싸우는 육체의 ‘틈’에서 긴장하며 떨고 있는 존재다. 제도적 측면의 개선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은 끊임없이 ‘케어러’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케어러’에게도 튼튼한 보호와 보호받는다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이런 딜레마 앞에서 네 명의 작가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좁다란 보호자용 침대를 닮은 그 틈을 조금 숨통을 틀 만하게 전환하는 건 어떠냐는 역발상으로. 그때 이들은 기댈 수 있다. 잘될 거라는 확신보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더 신뢰를 주듯이. 신뢰는 ‘케어러’들이 기댈 수 있는 서로를 향한 나란한 평균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돌봄은 사람을 순환하며 연대의 선분을 그어나간다. 조금 기댄 모양으로. _황유지 문학평론가 돌봄이란 서로 곁을 내어주고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는 일 어른이 되어 자기 건강과 안위를 돌아보며 ‘self 돌봄’에 막 익숙해지자마자, 어느새 노년기에 들어서 병들어 아프고 몸이 불편해진 원가족(부모 혹은 조부모)에 대한 돌봄을 직면하는 중장년층이 많다. 그보다 조금 일찍 아직 자기를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벌써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영캐어러’도 있다.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건 쉽지 않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때로 절망마저 불러온다. ⟪케어러⟫는 이런 사회상을 돌보는 책이다. 돌봄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나를 돌보며 너를 돌봄〉, 〈당신 곁에 누군가〉, 〈간병인〉, 〈내 이름은〉 네 편의 단편소설은 각각 다른 장르와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모두 돌봄의 의미를 한 방향이 아닌 상호 양방향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같다. ⟪케어러⟫에 실린 단편소설 작품들은 독자에게 서로 곁을 내어주고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는 일이 돌봄이라고 그 의미를 조용히 건넨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덮을 때면 돌봄이 마냥 힘들고 어렵게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는 어려운 시간에 대한 고민 곁에 놓인 책인 ⟪케어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