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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_강창일(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주일 대사) 1장 유민 홍진기의 생애와 대일외교 _이하경(중앙일보 대기자·전 주필) 2장 홍진기의 ‘해방의 법리’와 한일회담 청구권 교섭 _박경민(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3장 식민지 배상론: 홍진기의 『대일배상요구조서』의 작성 _이원덕(국민대학교 동아시아 국제학부 교수) 4장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한국 조항: 홍진기의 역할 _이원덕(국민대학교 동아시아 국제학부 교수) 5장 한일회담과 구보타 망언 파동: 홍진기 대 구보타 논쟁 _이원덕(국민대학교 동아시아 국제학부 교수) 6장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홍진기의 고민과 비전 _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참고 1. 홍진기 대일외교 연표 참고 2. 홍진기 대일외교 연구를 위한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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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받은 식민지 피해의 본질을 정확히 짚으며
신생 대한민국을 지켜낸 거인, 홍진기의 대일외교 분투사(史)를 기록하다! 1965년 6월 22일, 한국과 일본이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한 이후 60년이 흘렀다. 한일 기본조약 체결은 이승만 정부 이래 1951년부터 14년 동안 끌어온 국교 정상화 교섭을 마무리 지은, 세계 외교사에서 보기 드문 결과였다.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나라다. 그렇기에 국교화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이 입은 피해를 어떻게 규정하고 합의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너무나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우리의 관료·외교관들은 국가 재건과 원상 회복이라는 큰 책무를 짊어지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그 중심에 유민 홍진기가 있었다. 법학도였던 홍진기는 당시 30대 초반의 법무부 국장에 불과했지만 그의 공로는 신생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을 통틀어서 독보적이었다. 홍진기는 해방 이후 중대한 고비마다 놀라운 지혜를 발휘해 불리한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그 덕분에 한국은 대일 교섭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대일 교섭을 준비하는 위원회 발족을 제안해 대일 배상조서를 작성하도록 했고, 한국에게 불리한 미·일 강화조약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를 설치하게 했다. 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 B항을 신설해 한·미 간에 이뤄진 일본과 일본인 귀속재산 처리 효력을 승인토록 했으며, 일본의 역청구권을 기존 국제법 이론을 초월하는 ‘해방의 이론’으로 논박해 무산시켰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한국민에게 유익했다”는 구보타 간이치로의 ‘식민지 시혜론’을 “일본인에 의한 강제 점령이 없었다면 한국은 훨씬 현대적인 국가를 건설했을 것”이라고 반박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낸 일은 결정적 쾌거였다. 한국인의 자존심과 기개를 만천하에 알린 명쾌한 논리의 승리였다. 이 모든 성취의 바탕에는 완전히 새로운 논리를 창조하고, 이를 무기로 대한민국의 불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홍진기의 절절한 애국심이 있었다. 유민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0년이 지났다. 홍진기에 대한 연구는 그의 사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영욕과 부침의 세월을 겪었다. 무엇보다 홍진기가 전쟁을 전후한 최악의 상황에서 중대한 고비마다 등장해 대일 교섭 과정에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민 홍진기와 대일외교』는 그러한 유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최신 연구의 집대성이다. 한 사람의 지식인이 국가의 생존과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워온 분투사이자,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이제 신생 대한민국을 지켜낸 거인 홍진기의 빛나는 대일외교 업적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