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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09
제1부 정의: 정의에는 몇 가지 정의가 있다 제1장 현대 미국의 정의론 롤스가 구상한 정의 | 자유 지상주의자 비판 | 공동체주의 정의론 제2장 근대의 ‘정의’ 사유법 칸트: 정의는 도덕인가 | 로크: 정의와 국가의 탄생 | 라이프니츠: 공정한 정의는 가능한가 제3장 공동선의 기원 아리스토텔레스: 공동선 발견 045 | 아퀴나스: 신학으로 확장 047 | 플라톤: 정의와 올바름의 원형 제2부 기술: 철학자는 기술을 거부하는가 제1장 계몽주의와 기술관 기술은 무엇인가 | 베이컨의 기술 혁명 | 계몽주의가 꿈꾼 진보 제2장 고대와 중세의 기술론 플라톤: 테크네 | 아리스토텔레스: 기술 재해석 | 중세 시대 기술 인식 제3장 현대 철학자의 기술 사유법 스티글레르: 인간에게 왜 기술이 필요한가 | 하이데거: 기술은 인간을 지배하는가 | 마르쿠제: 기술은 해방인가 통제인가 제3부 권력: 권력은 힘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제1장 권력의 철학 마키아벨리: 권모술수 | 흄: 사회계약론 비판 | 베버: 정식화한 권력 제2장 권력론의 혁명 푸코: 권력 혁명 | 하버마스: 의사소통, 권력의 대안인가 | 로티: 푸코 비판 제3장 디지털 사회의 권력 포스트파놉티콘 시대의 권력 | 통제 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모두가 감시하는 시놉티콘 제4부 폭력: 폭력은 언제나 나쁜가 제1장 폭력의 다양성 아렌트: ‘권력’과 ‘폭력’ | 베버: 폭력은 국가의 특권인가 | 마르크스: 사회를 움직이는 폭력 제2장 폭력의 유형론 소렐: 혁명을 위한 폭력 | 벤야민: 법을 만드는 폭력 | 데리다: 법과 폭력의 경계 제3장 인간과 폭력 프로이트: 폭력은 인간 본성인가 | 핑커: 인류는 점점 평화로워지는가 | 진화는 폭력을 설명할 수 있는가 제5부 자유: 자유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제1장 자유의 개념 벌린: 자유에는 두 얼굴이 있다 |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자유와 민주주의의 긴장 제2장 자유와 규제 밀: 민폐만 아니면 자유인가 | 칸트: 자유와 이성 | 밀: 내 몸은 내 것인가 | ‘광차 문제’로 생각해 보는 자유 제3장 자유의 본질 사르트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 아리스토텔레스: 본질주의적 자유 | ‘미래주의’인가 ‘현실주의’인가? 제6부 노동: 노동은 좋은 것일까? 제1장 노동은 ‘고생’인가 ‘기쁨’인가 시야 밖에 존재하는 노동 | 히브리 사상 속 노동 | 노동의 긍정적 가치 제2장 ‘노동’인가 ‘일’인가 아렌트: 인간의 조건 | 아리스토텔레스: 세 가지 지적 활동 | 마르크스: 노동은 해방의 열쇠 제3장 오늘날, 노동을 어떻게 사유하는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 노동, 놀이가 되다? | AI 시대에도 인간은 일해야 하는가 제7부 소외: 소외는 극복될 수 있는가 제1장 소외의 계보 신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 정신 착란으로서의 ‘소외’ | 소유와 소외 제2장 소외론의 전개 마르크스: 소외의 발견 | 루카치: 물상화론 | 물상화는 왜 소외를 낳는가 제3장 현대의 다양한 소외론적 발상 푸코: 광기와 소외 230 | 하버마스: 의사소통과 소외 극복 233 | 생태 위기와 소외 제8부 국가: 국가에 대한 다양한 이해 제1장 국가 개념의 역사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 | 번역된 국가 | 시민 사회와 국가 제2장 어떤 국가가 좋고 어떤 국가가 나쁜가 플라톤: 철인국가 | 홉스: 리바이어던 | 노직: 최소 국가 제3장 국가는 ‘폭력 장치’인가 베버: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가 | 국가는 이데올로기 장치인가 |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국가 제9부 종교: 종교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제1장 철학과 ‘신’ 아리스토텔레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비판 | 데카르트: 신과 코기토 | 헤겔: 신은 왜 오해받았는가 제2장 신도는 ‘신’을 어떻게 사유했나 테르툴리아누스: 불합리하기에 믿는다 | 파스칼: 신앙과 내기 | 키르케고르: 신앙적 결단 제3장 ‘신은 없다’-무신론의 역사 포이어바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 니체: 신은 죽었다 | 데닛: 과학과 종교 제10부 전쟁: 철학자는 전쟁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1장 전쟁의 ‘대의’ 폴리스를 위한 전쟁 | 기독교 시대의 전쟁 | 국민국가와 총력전 제2장 전쟁인가 평화인가 칸트: 영구 평화론 | 헤겔: 전쟁은 필요하다 | 니체는 전쟁을 찬성했을까? 제3장 현대 전쟁론 윙거: 총동원 | 들뢰즈·가타리: 전쟁 기계 | 냉전 이후, 새로운 전쟁 |
Yuuichirou Okamoto,おかもと ゆういちろう,岡本 裕一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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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의 정의 논의는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의 조건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 p.26 베이컨은 인간의 ‘지식’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단, 자연을 지배하려면 먼저 자연에 복종하고 자연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 p.61 기술과 예술은 오랫동안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컨대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행위는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 중 하나이지,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닙니다. --- p.68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이란 자연(피시스)을 비자연화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자연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유용한 무언가로 변형하는 과정, 즉 비자연화를 끊임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 p.76 흄에 따르면, 지배자는 ‘폭력’이나 ‘거짓된 구실’을 동원하여 통치를 확립하고, 지배받는 압도적 다수는 ‘공포’에 짓눌려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 p.91 파놉티콘과 시놉티콘 모두 현대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기존 권력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기술 자체가 권력을 대신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 p.110 권력과 폭력을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당성’의 유무에 있습니다. 정당성이란 사람들이 그것을 ‘권위’로 인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 p.116 칸트의 유명한 『순수이성비판』도 ‘순수이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이성을 분석·분류하여 그 역할과 한계를 규명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도 ‘폭력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무엇인지를 분석·분류하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 p.128 밀의 자유론은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타자 위해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 p.156 ‘학생은 학생답게 행동해야 한다’와 같은 표현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학생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식과 덕을 ‘가능태로서’ 지니고 있다고 본다면, ‘학생답게’라는 말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라는 요구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p.172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미래의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이미 행복을 실현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게 됩니다. --- p.174 헤겔은 이 정신을 성부·성자·성령을 하나로 보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관점에서 생각했습니다. --- p.215 홉스는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근대적 인간관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평등한 개인이 어떻게 국가를 형성하는가? 이것이 『리바이어던』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 p.257 근대 전쟁이 단순히 군주들 사이의 영토 싸움이 아니라, 정부의 이성적 판단과 군대의 전술적 능력, 그리고 국민의 감정적 결집이 결합한 ‘국민 전체의 총력전’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날카로운 진단이었습니다. --- p.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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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부터 21세기 현대까지
철학으로 보는 열 가지 사회 쟁점 정의·기술·권력·폭력·자유·노동·소외·국가·종교·전쟁 많은 사람이 철학을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철학이 하는 일은 그와 다르다. 철학은 단어의 의미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시대와 사상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는 학문에 가깝다. 다시 말해 철학은 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같은 말로 부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순간, 철학이 왜 쉽게 단정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지는지 비로소 납득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열 개의 단어, ‘정의··기술·권력·폭력·자유·노동·소외·국가·종교·전쟁’을 통해 그 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서로 다른 의미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정의는 공정함일 수도 있고 권리일 수도 있으며, 공동체의 선을 뜻하기도 한다. 자유는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권력은 눈에 보이는 지배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작동하는 구조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는 결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언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특정한 세계관과 전제를 담고 있는 사고의 틀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틀을 자각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말이 왜 다르게 들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하나의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뉴스를 접할 때, 사회적 논쟁을 바라볼 때, 혹은 누군가와 의견을 나눌 때 우리는 더 이상 단어의 표면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그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 뒤에 어떤 전제가 놓여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흐름 속에서 열 가지 핵심 사회 개념을 비교하고 확장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말들이 어떤 생각의 틀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이 책은 철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를 건넨다” 소통의 단절을 해결하고 생각의 힘을 키우는 가장 지적인 해법 당신이 어떤 사회에서 태어날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해 보자. 부유한 가정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날 수도 있다. 건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모든 조건이 가려진 상태에서, 당신은 이 사회의 규칙을 직접 정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누구나 최소한의 삶은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각자가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판단하게 될까. 이 단순한 사고실험 하나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정의’라는 단어를 흔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규칙이 설령 공정해 보일지라도, 개인이 정당하게 얻은 것을 다시 나누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라고. 열심히 일해 얻은 것을 왜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조금 전까지 고개를 끄덕이던 ‘공정한 사회’의 이미지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같은 ‘정의’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쪽은 공정함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권리를 말한다. 그리고 그 둘은 좀처럼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논쟁이 이어지더라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입장만 더 또렷해질 뿐이다. 그렇다면 ‘자유’는 어떨까. 우리는 흔히 자유를 당연한 가치로 생각하지만, 막상 그 의미를 묻는 순간 상황은 다시 복잡해진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괜찮은 상태가 자유일까, 아니면 충동과 욕망을 넘어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일까. 전자는 간섭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후자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둘 다 ‘자유’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을 지며 선택하는 인간이다. 어느 쪽이 더 자유로운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과연 얼마나 정확한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걸까. ‘권력’이라는 말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권력을 억압이나 강압적인 힘으로 떠올리지만, 어떤 철학자는 권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길들이는 구조라고 말한다. 학교, 병원, 회사처럼 너무나 익숙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에 맞춰 행동한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렇게 움직인다. 이때 권력은 누군가가 쥐고 있는 힘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 스며든 구조가 된다. 같은 단어를 두고 이렇게까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난다. 그리고 시선을 현재로 돌려보면, 이 질문들은 결코 과거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빠르게 퍼져 가는 지금, ‘노동’이라는 단어 역시 다시 쓰이고 있다.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노동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과연 더 자유로운 사회일까, 아니면 인간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일까. 같은 단어를 두고 우리는 또다시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끝없이 반복해 온 논쟁의 상당 부분은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논쟁을 이어 갈수록 우리는 상대를 설득하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며 정의, 자유, 권력, 노동처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의미로 나뉘고 충돌해 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겹쳐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이 책은 개념을 배운다기보다 생각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이해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