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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 지구상에 우리가 살았다는 흔적
지구가 멸망한다면 철새의 미래 끝까지 바라보기 새해맞이 지금보다 눈이 더 많이 오면 작은 것들의 힘 인간 멸종 보고서 영원한 여름 산불 초록색 강 식물의 말 작은 완두콩 죽은 새들의 노랫소리 멸종된 공룡을 찾아서 2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기 냄새 나의 발견 가장 슬픈 사람 새가 된다면 커피와 새 내 동생 까미 문 개의 부드러움 이웃집 미정 언니 가벼운 산책 스며드는 빛 좋은 결말을 맺고 싶다 오래된 편지 3부 너희랑 있을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아 혼자인 날 레몬의 눈부심 문버드 진짜 귀한 것 발자국들 창문 열어 두기 야작 산사태 우리의 꿈을 새겨 넣었다 가장 먼저 등교한 날 낙서의 흔적 몰래 놀러 간 날 수능 이후 끝까지 재생된 뒤에 4부 나도 사랑받는 딸이고 싶었어 너의 입장 깨고 싶지 않아 아픈 날 생각은 구름 어려운 일 일기장 오늘의 슬픈 일 오늘 아침 침이 고였다 비밀의 속성 진로 상담 건물주가 꿈이라고 하면 너의 믿음 내일의 꿈 5부 나는 가장 시고 못생긴 과일 나쁜 삶은 없어 월드컵 수영장 봄의 기억 백일장 불의 의미 베이비 박스 생활의 단맛 정전 스윙 아무도 빌려 가지 않은 책 첫 중고 거래 준비, 시작 시인의 산문 웃음을 잃지 않는 용기 독서활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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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11번째 책으로 주민현 시인의 청소년 시집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이 출간되었다. 기후 위기를 다룬 이번 시집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인간이 남기는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 불러올 내일을 어린 독자들과 함께 사유하는 시집이다. 주민현 시인은 “내일의 기후는 보다 나쁘고/우리는 사랑스럽지요”(「시인의 말」)라고 적으며, 더 나빠질 미래의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갈 존재들을 향한 애정을 동시에 품어 낸다. 지구가 서서히 변해 가는 모습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돌보는 마음에 기대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감정을 조용히 비춘다.
이 시집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재난을 ‘두려움’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한다면’이라는 가설 속에서 사라질 사계절을 상상하고, “우리가 끝없는 얼음의 가시밭길을 걷는 마음이거나/맨발로 불구덩이를 지나야 하는 마지막 인류가 되었을 때/(중략)/그래도 나랑 같이 있을 거지?”(「지구가 멸망한다면」)라고 묻는 장면에는,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상 기후가 강화된 현실을 “1층의 우리 집은 축축이 젖을 것이다/지하에 고양이 가족은 꼼짝없이 갇힐 것이다”(「지금보다 눈이 더 많이 오면」)처럼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로 포착하는 감각 역시 이 시집의 중요한 특징이다. 재난은 뉴스 속 숫자나 추상적 경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집과 가족, 생활과 마음에 스며드는 진짜 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주민현 시인은 인간의 역사 그 이후를 상상하며, 멸종에 가까운 미래의 지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도 한다. “2179년 (중략)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맥박이 멈춘 것으로/최종 관찰되었다”(「인간 멸종 보고서」)고 말하는 시에서는 인간이 사라진 행성을 기계적 언어로 기록하며, 청소년들에게 지금 질문해야 할 윤리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냉혹한 전망과 함께, 시인은 가장 작고 연약한 생명에게서 다시 희망을 발견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식물은 새잎을 밀어낸다”(「이웃집 미정 언니」)는 문장은, 극한의 조건에서도 삶은 계속 자라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기후 위기라는 커다란 질문과 나란히, 이 시집은 청소년들의 아주 개인적인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우울함과 불안, 관계 속의 미묘한 상처들, 어른이 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시집에서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 “희수야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중략)/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해도 우리는/친구야”(「레몬의 눈부심」), “뉴스를 틀면 우울한 소식뿐/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일까 봐//그렇다면 외계인이 될래요”(「수능 이후」) 같은 시구들은 기후 위기와 청소년기의 감정이 어떻게 포개지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미래가 불안한 만큼 서로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 끝내 어딘가에서는 빛을 찾으려는 마음이 시에 담겨 있다. 류대성 인문학자는 추천사에서 “시가 정답을 말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가 건네는 공감과 위로는 힘이 세다”고 말한다. “나쁜 삶도/잘못 태어난 삶도 없어//내가 나에게 토닥토닥 말해 준다”(「나쁜 삶은 없어」)라는 시구처럼, 이 시집은 청소년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드문 목소리다.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개인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은 그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마음을 받아 안아 주려는 시인의 다정함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은 멸망을 노래하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그 멸망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기록이다. 기후 위기와 개인의 상처가 나란히 놓인 지금, 이 시집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어른들은 왜 그런지 궁금한 아이들에게”(「추천사」) 건네는 하나의 응답이다. 지구가 천천히 변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천천히 변하고, 천천히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독자는 지구를 걱정하는 ‘우리’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싶은 ‘나’이기도 하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려는 마음, 아무리 작은 흔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내일의 장면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주민현의 시는 그 믿음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밝힌다. 우리가 살았다는 흔적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미래의 지구 어디엔가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시집 전체에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