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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영산강과 섬진강에 부쳐 제1부 영산강 1. 영산강의 물길 2. 담양과 창평 담양 여계의 면앙정 / 창평 증암천 하류의 송강 / 용대와 풍암 / 성산의 환벽당과 식영정 / 만수동과 소쇄원 / 장계의 명옥헌 3. 칠천과 황룡강 광주의 칠천과 경양지 / 장성 황룡강의 상류 / 가천과 문필천 / 토천과 황계 / 황룡강의 하류와 극락진 4. 지석천 능주의 차의천 / 남평의 지석천 5. 나주 금성산 기슭의 쌍계와 한계 / 영산포와 앙암 / 회진강 / 죽포와 이별암 6. 함평과 무안 고막천과 함평천 / 월호의 배포 / 무안의 사호 / 이산과 남강 / 몽탄과 회산 7. 영암과 목포 반남과 영암 / 구림의 누정 / 서호와 학산천 / 목포의 노래 제2부 섬진강 1. 섬진강의 물길 2. 진안에서 순창까지 섬진강의 상류 진안 / 임실의 오원천과 점암천 / 갈담과 장담 / 순창의 적성강 / 임실의 오수천 / 순창의 경천과 작천 3. 순자강과 요천 순자강과 생애동 / 제호와 백호 / 군호와 청계동 / 요천 하류의 누정 / 광한루와 요천의 상류 4. 압록강과 보성강 곡성의 압록강과 대황천 / 순천의 송광사와 우산 / 동복천 하류의 죽천과 우계 / 사평의 고반원과 임대정 / 동복의 적벽강 / 장항적벽과 물염적벽 / 보성강의 상류 정자천 5. 구례 잔수와 구만, 석주천 / 화개동과 무릉계 / 쌍계사와 청학동 / 삼신동과 신흥동 6. 하동과 광양 화개 도탄의 악양정 / 악양의 소상팔경과 취적대 / 횡천강과 섬진강 하구 / 광양의 섬진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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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강이지만 남도의 정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으니, 누정과 풍류 때문이다. 영산강은 안온한 물길이 느긋하게 바라다보이는 곳마다 아담한 누정이 들어섰고, 섬진강은 굽이굽이 돌아 물살이 급해진 벼랑마다 누정이 서지 않은 곳이 없다. 누정이 있으니 풍류가 없을 수 없다. 풍류의 측면에서 영산강과 섬진강을 따라갈 강은 없다. 담양에 가사문학관이 들어섰을 만큼 시조나 가사와 같은 우리말 노래가 가장 많이 생산되고 향유된 공간이 바로 이 두 강의 누정이었다.
--- 「영산강과 섬진강에 부쳐」 중에서 영산강은 나주의 옛 이름 금성(錦城)을 따서 금강(錦江)이라고도 하였다. 영산강의 대표적인 나루는 금강진(錦江津)인데 이 역시 영산강의 별칭이다.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은 「남유록(南遊錄)」에서 금강진을 영산포(靈山浦)라 하고 다시 영산강(靈山江)이라 하였다.1 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영산포(濚山浦)로 표기하고 그 강을 영수(濚水)라 적었다. 표기가 다소 다르지만 영산강은 지금의 나주 일대의 강을 일컫는 말이었다. --- 「1. 영산강의 물길」 중에서 정자의 이름 취수정은 맹자가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는 말에서 가져온 것이니,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림 없이 유학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표방한 집이다. 일봉산과 월봉산에서 발원한 조양천이 개천으로 흘러드는데 이를 도덕천(道德川)이라 불렀다. 또 집 뒤의 봉우리를 아름다운 선비의 산 가사산(佳士山)이라 이름하였다. 이이(李珥, 1536-1584)가 해주(海州)에서 시행하던 향약(鄕約)을 본떠 분서강약(汾西講約)을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강학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곳의 황룡강이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한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였던 것이다. --- 「3. 칠천과 황룡강」 중에서 최희량은 임제, 백진남 등과 어울려 망형(忘形)의 벗이 되었다. 92세로 장수한 데다 9남 2녀의 자식까지 두었으니, 천복을 두루 누렸다고 하겠다. 84세의 생신에는 가족과 함께 잔치를 열고 이런 태평가를 불렀다. 철기(鐵騎)가 남쪽을 엿보니, 국가에 난리가 많구나. 남한산성과 강화도에는 관리들이 많이들 죽었건만, 호남에는 이 늙은이 있어 부부가 해로한다네. 나이가 아흔이 가까운데, 난세에도 목숨 보전하여 오늘 생일 잔치 열게 되었네. 9남 2녀가 각기 헌수(獻壽)의 잔을 바치니,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랴! 크게 취하여 미친 듯 노래하니, 흉중은 태고의 마음이라. 제일가는 강산에서 나 홀로 주인이 되어, 삼주에서 낚시하고 비은정에서 시를 읊조리니, 세상사 돌아보면 나를 알아주는 이 그 누구인가? --- 「5. 나주」 중에서 구림의 서호는 구호(鳩湖)로도 불렸다. 나주 송죽리에서 태어난 김만영의 종제 김해영(金海英)도 구림에 구호정사(鳩湖精舍)를 짓고 살았다. 구호정사의 팔경은 서호에 뜬 가을달[西湖秋月], 용산(龍山)의 낙조[龍山落照], 강마을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江村暮烟], 앞 들판의 봄 흥취[前郊春興], 동쪽 동산의 두견새 우는 소리[東園聽鵑], 남쪽 밭두둑에서 꾀꼬리 우는 소리[南陌聞鸎], 학령(鶴嶺)으로 돌아가는 구름[鶴嶺歸雲], 구봉(龜峰)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龜峰晩風]이다. 쌍취정 자리에 세워진 원풍정에 가면 원풍정 12경이 담벼락에 적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령으로 돌아가는 구름 ‘학령귀운’이다. 용산은 구림 남쪽 용산리와 관련이 있어 보이므로, 모정리와 구림 사이에 구호정사가 있었을 것 같다. --- 「7. 영암과 목포」 중에서 이 일대가 복흥면이다. 복흥(福興)은 전라도를 방어하는 요충지요 은자나 일사가 숨어 살 만한 곳이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상택지(相宅志)』에서 자신의 저술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를 인용하여, 복흥촌(福興村)이 “양쪽에 강을 낀 채로 들판이 펼쳐져 마을을 크게 이루고 있고 시냇물이 동쪽으로 흐르며, 흙이 비옥하고 샘물이 달아 가장 살기 좋은 명당이다”라고 하였다.30 지형으로 볼 때 금월천 등 여러 개울이 합류하는 복흥초등학교 인근이 복흥촌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복흥촌에서 내장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산리가 나온다. 조동(槽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조선 말기의 큰 학자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 이곳 태생이니 이 일대는 가히 학자의 땅이라 할 만하다. --- 「2. 진안에서 순창까지」 중에서 우산전사라는 곳은 빙호자가 만년에 은거하는 곳이다. 우산은 보성의 북쪽 마을 이름이다. 보성과 순천, 동복 세 고을이 교차한다. 보성에서는 60리, 순천에서는 100여 리, 동복에서는 50리 떨어져 있다. 조계산이 그 동북에, 계족산(鷄足山)이 동남에, 천봉산(天鳳山)이 서남에, 모후산(茅後山)이 서북에 있어 사방을 에워싸는데 모두 이름난 산이다. 우산이 그 가운데 있는데 조계산과 천봉산까지는 10여 리이고 계족산과 모후산은 5리 남짓 된다. 길이 세 고을로 통하는데 모두 태산준령이라 깊은 숲 궁벽한 고개가 비할 데 없이 험하다가, 여기에 이르면 평평하고 넓어진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난리 후에는 흩어져 지금은 겨우 10여 호가 남아 있다. 정유년(1597) 병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니 그 으슥함을 알 수 있다. --- 「4. 압록강과 보성강」 중에서 백암의 물은 묵계동에서 발원하여 협곡을 뚫고 어지럽게 흘러 40여 리를 내려오면 백암 앞에 이르러 굽이굽이 맑아진다. 합쳐져 큰 시내가 되는데 얕은 곳은 개울이 되고 깊은 곳은 소가 된다. 바로 떨어져 폭포가 된 것도 있고 마구 내달려 급한 여울이 된 것도 있다. 각기 지형을 따라 그 형상이 수백, 수천 가지다. 양쪽 기슭은 흰 바위라 흡사 막 눈이 쌓인 듯, 촘촘한 담요를 깔아놓은 것 같다. 서 있는 것은 서고 누운 것은 누워 있으며,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다. 어떤 것은 뾰족하고 어떤 것은 비스듬하며, 어떤 것은 반들반들 깎인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반듯반듯 깎인 것도 있다. 뱀처럼 구불구불 펑퍼짐하여 앉을 만한 것도 있고, 높다랗게 우뚝하여 놀라게 할 만한 것도 있다. 제각기 달라 일률적이지 않아 기괴한 모습을 형용할 수 없다. 아로새긴 듯, 조각한 듯, 그린 듯하다. 내가 여산(廬山)의 호계(虎溪)나 서호(西湖)의 영은사(靈隱寺)를 보지 못했지만 이와 같겠는가. --- 「6. 하동과 광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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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길을 내기 전에, 물이 먼저 길을 내었다”
강은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다.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이야기가 쌓이고, 기억이 남았다. 이 책은 남한강과 북한강, 임진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물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유역에 남아 있는 인문경관의 의미를 탐색한다. 강을 따라 읽는 인문경관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많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숨결이 깃든 풍경이다. 인문경관은 자연과 인간의 삶이 만나 형성된 문화의 흔적이며, 오랜 세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문집과 읍지, 고지도, 회화 자료를 바탕으로 강변의 누정과 포구, 명승과 유적을 추적하며, 오늘날 희미해진 장소를 되살려 낸다. 저자는 특히 조선시대 문인과 화가의 시선에 주목한다. 자연을 노래한 시문과 산수화 속 풍경을 오늘의 지형과 대조하며, 강과 사람, 문화가 함께 빚어낸 경관의 의미를 읽어 낸다. 답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이 작업은 기존의 인문기행서가 놓치기 쉬웠던 지리학·역사학·미학의 관점을 아우르며, 강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경관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오랜 연구의 결실, 『조선의 강』 저자 이종묵 교수는 오랫동안 조선시대 문인 문화와 공간, 산수 경관을 연구해 온 학자이다. 문학과 지리학을 접목해 문학 작품 속 공간과 실제 지리의 관계를 탐구해 왔으며, 문인들의 행적과 그들이 남긴 문화경관을 추적하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 왔다. 2006년 문인의 집과 명승을 집대성한 『조선의 문화공간』을 출간했고, 다시 10년의 연구 끝에 한강 유역 별서 문화를 정리한 『조선시대 경강의 별서』를 펴냈다. 그리고 우리 강의 물길과 그곳에 깃든 문인의 삶을 추적한 결과가 바로 이 『조선의 강』이다. 수십 년 동안 옛글을 읽고 전국의 강과 유적을 답사하며 축적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완성된 이 책은 우리 강 유역 인문경관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방대한 문헌과 현장 조사를 결합하여 조선의 강이 간직한 문화적 자취를 복원하고, 그 속에 살아 있는 문인의 삶과 풍류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물길을 따라 복원하는 기억의 지도 『조선의 강』은 단순한 여행기나 답사기가 아니다. 이 책은 강을 따라 형성된 삶의 흔적과 문화를 읽어 내는 문화사이자, 우리 국토의 인문 지도를 새롭게 그려 낸 기록이다. 저자는 상상의 여행인 와유(臥遊)를 넘어 실제 답사와 고증을 통해 우리가 지금도 찾아갈 수 있는 강의 명승과 유적을 기록한다. 강은 여전히 흐르지만, 그 풍경과 그에 깃든 이야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 책은 근대화 이전 조선의 강이 지녔던 아름다움과 문화적 깊이를 복원하는 한편, 우리 강을 따라 여행할 때 곁에 두고 펼쳐 볼 수 있는 가장 풍부한 산수유기이자 인문학적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남도의 고운 정이 빚어낸 물길, 영산강과 섬진강 영산강과 섬진강은 전라도를 적시는 두 갈래 젖줄이다. 담양에서 발원해 목포 앞바다로 흘러드는 영산강과 진안에서 시작해 광양만으로 들어가는 섬진강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남도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가장 깊이 품어 온 강이다. 영산강은 넓은 들판을 따라 유유히 흐르며 풍요로운 남도의 정취를 보여 준다. 담양과 창평, 나주와 영암에 이르는 강변 곳곳에는 면앙정과 식영정, 소쇄원과 명옥헌 같은 누정과 원림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많은 시조와 가사가 탄생한 문화의 무대가 펼쳐진다.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만큼 그 풍경에도 푸근함과 넉넉함이 스며 있다. 반면 섬진강은 산과 협곡을 끼고 흐르며 보다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풍광을 보여 준다. 진안과 임실, 순창, 곡성, 구례를 지나 하동과 광양에 이르는 물길에는 적성강과 요천, 보성강의 절경이 이어지고, 쌍계사와 청학동, 악양정과 소상팔경 같은 이름난 명승이 강과 함께 어우러진다. 굽이치는 물길과 벼랑 위 누정은 섬진강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4권 『영산강과 섬진강』은 두 강의 발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본류와 지류를 두루 따라가며 남도의 인문경관을 살핀다. 영산강의 누정 문화와 섬진강의 수려한 산수,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수많은 문인의 시와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과 풍류가 어우러진 남도의 참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두 강에 깃든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도 문화의 깊이와 정취를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