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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향한 찬사들 서문_ 말의 힘과 하나님의 경이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_ 저스틴 테일러1. 말의 전쟁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말도 다스린다 _ 폴 트립2 혀의 성화거룩한 말을 위한 싸움은 날마다 계속되어야 한다 _ 싱클레어 퍼거슨3 유창함과 십자가의 경이말의 아름다움을 통해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라 _ 존 파이퍼4 말의 균형때로는 거친 말이 사람을 살린다 _ 마크 드리스콜5 이야기의 힘후대에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다 _ 대니얼 테일러6 찬양과 말씀우리가 찬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_ 밥 코플린저자들과의 대담 1혀의 성숙,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해법이다저자들과의 대담 2우리의 말을 하나님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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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iper, John Stephen P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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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뱉는 말은 한마디도 중립적이지 않다.생명으로 향하는 말과 죽음으로 향하는 말이 있다.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작은 불이 온 숲을 파괴하듯, 날카로운 한마디, 엉성한 한 문장, 매정한 농담 하나가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을 붙이기도 한다. 말은 삶을 태우고 파괴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가 내뱉는 모든 말에는 힘이 있다. 바울은 우리 자신이 내뱉은 말의 열매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물고 물려 피차 멸망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관계’가 멸망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람’이 멸망한다고 말했다. 악한 말은 사람들의 믿음을 짓밟거나 희망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말이 어떠해야 하는가 영적 성숙이 혀의 사용을 통해 증명된다그것이 관계 속에서 오가는 말이든, 누군가를 설득하는 말이든, 풍자의 말이든, 이야기든, 노랫말이든 간에 모든 말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지와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의 단락에서 놀라운 예를 드신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라고 하셨다. 만약 우리가 거칠고, 추하고, 사랑 없고, 정죄하고, 불손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한 말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성도의 언어가 아니다.격려나 희망, 사랑, 평화, 일치, 교훈, 지혜, 교정의 말은 생명으로 향한다. 분노나 악의, 비방, 질투, 험담, 분열, 멸시, 인종차별, 폭력, 판단, 정죄의 말은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우리의 혀가 또한 크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불완전한 말을 은혜롭게 사용해 우리를 가르치며 준비시키시도록, 그래서 생명을 주는 말로써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교회를 세우며, 잃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혀의 성숙, 말씀 안에 거하라 그분처럼 말하라말씀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시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 내 혀는 하나님의 혀에서 나오는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깨끗해지고 변화된다. 우리의 마음은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들을 때 새로워지고, 마음이 변하면 말도 바뀌게 된다. 원리는 이렇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점점 강하게 지배된다. 혀의 성화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일으키는 역사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들을 때 우리에 게 오고,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거한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혀를 사용하시는 ‘비결’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학적인 통찰을 통해 복음에 담겨 있는 은혜의 달콤함과 진리의 힘이 우리의 모든 말에서 어떻게 묻어나야 하는지 보여 준다. 존 파이퍼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말을 한다면 이 세상 곧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좋은 말들 발췌 ─ 거룩한 말을 위한 싸움은 장기전이라서 날마다, 시간마다,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 혀를 제어하는 것이 성숙의 표시라면,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누구나 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야곱처럼 다리뿐 아니라 말도 절뚝거린다. 마음을 정복하면 혀가 침묵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말을 할 때 먼저 침묵한 자로서 말한다.─ 혀는 우리 중심의 경건치 못한 욕망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눈금이다. ─ 혀의 성화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일으키는 역사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들을 때 우리에게 오고,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거한다.─ 혀를 더 잘 다스리고 싶은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분이 구주이심을 이해해야 한다. 자기 입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해야 한다. ─ 우리가 내뱉는 말은 한마디도 중립적이지 않다. 생명으로 향하는 말과 죽음으로 향하는 말이 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구속의 사랑은 숨겨진 조용한 순간,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맞이한 사소한 순간에까지 파고든다. 실제로 구속의 사랑은 이처럼 질투심이 강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단순히 정보 제공 차원에서 주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말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 말의 문제는 어휘의 문제도, 기교의 문제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마음의 문제다.─ 죄는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하게 한다. 삶을 고작 내 삶의 크기로 오그라뜨린다. 나의 바람, 나의 필요, 나의 감정에 집착하게 한다.─ 사랑의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에게서 구조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조하는 그분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요한이 묘사한 대로 타인을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다.─ 내 마음의 생각과 내 입술의 말 사이에 유기적 일관성이 있다. 말의 전쟁은 자신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간의 전쟁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나라가 말도 다스린다. ─ 완전한 사랑과 은혜의 말은 주님의 사랑이 다스리는 마음 안에서만 흘러나온다. 기억하라. 우리의 말은 언제나 마음에서 나온다.─ 바울이 거부하는 유창함이란 특정한 언어적 관습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언어 유희이다.─ 좋은 유창함과 나쁜 유창함을 판단하는 첫째 기준은, 유창함이 자기 자랑을 부추기고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언어에 영향력을 더하는 온갖 문학적 도구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자신처럼 이러한 아름다운 유창함을 활용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 예술적이고 놀랍고 고무적이고 미적으로 즐거운 언어는 적대적인 마음에도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영광을 표현하는 언어가 유창하여 진리의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은 주님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이 때로는 거친 말로,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균형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를 둔다. ─ 우리의 문화적 경향성이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고쳐야 하는 쪽은 성경이 아니라 문화적 경향성이다. ─ 왜 바울은 심하게 퍼붓는 대신에 부드럽게 말하면서 그를 회심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진리는 불의한 대적에 대해서는 절대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돼지를 책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말의 균형을 잡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잠언 12장 18절에서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하셨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우리가 성경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때에 진정한 신앙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명제 자체는 큰 영향력이 없다. 명제가 인간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때로 이야기의 몸과 피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신다. 이야기는 하나님이 진리를 대대로 보존하기 위해 선택하신 수단인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성경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초청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선택의 긴장이다. 그리고 언제나 암시적인 물음이 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왜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노래)하길 원하시는가?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노래하시기 때문이다. ─ “내게 교회의 노래를 보여 준다면 그들의 신학이 어떠한지 보여 주겠다.”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노랫말이다.─ 음악과 말씀은 상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음악을 주신 목적은 음악이 말씀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마음으로 찬양해야 하는 까닭은 찬양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찬양하라고 명하신다. ─ 어떤 사람들은 찬양할 때 지나치게 감성적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문제는 감성이 아니라 느낌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감성주의다. ─ 활기찬 노래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와 우리를 뜨겁게 이어 주며, 따라서 우리는 교리와 예배를, 교화와 표현을, 지성과 감성을 결합할 수 있다. ─ 당신에게 노래가 있는가? 당신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당신에게는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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