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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책의 구성 감수의 글 1장 양자물리학의 개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장 보어 대 아인슈타인 논쟁 I 3장 보어 대 아인슈타인 논쟁 II 4장 존 벨, 실험의 가능성을 열다 5장 벨 부등식에서 시작한 최초의 실험 6장 쉬프옵티크 광학연구소 I 7장 쉬프옵티크 광학연구소 II 8장 양자 비국소성 에필로그 감사의 말 |
Alain A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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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정규직인가요?” 존 스튜어트 벨 박사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내가 벨 박사의 부등식을 검증할 새로운 실험 구상을 막 설명한 참이었다. 당연히 과학적인 토론이 이어지리라 기대했는데, 돌아온 것은 내 고용 형태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체 왜? 벨의 설명은 이랬다. 이 주제는 대다수 물리학자에게 관심 밖의 일이고, 심지어 허무맹랑한 소리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젊은 연구자가 이런 프로젝트에 뛰어들면 ‘크랙폿’, 곧 괴짜 취급을 받기 십상이라고 했다. _서문에서
양자 얽힘이란, 193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이 이론적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한때 상호작용한 두 입자가 이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즉각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행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아인슈타인과 두 동료는 얽힌 두 입자에는 양자 형식주의가 다루지 않는 추가적인 물리적 성질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곧, 양자이론의 기술이 불완전하다는 뜻이었다. 보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얽힌 입자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양자 형식주의 안에 들어 있다는 입장이었다. _서문에서 때때로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명백한 오해다. 막스 플랑크가 물리학의 새로운 대륙을 가장 먼저 내다본 사람이라면, 그 대륙을 대담하게 탐험한 이는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양자화가 지닌 혁명적 성격을 간파했다. 고전물리학이 연속의 세계라면 양자물리학은 불연속의 세계다. 비유하자면, 고전물리학의 세계가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는 드넓은 평야라면, 양자물리학의 세계는 강바닥에 솟은 바위들을 하나씩 밟으며 건너야 하는 곳이다. _1장에서 앵베르는 여러 문서가 든 초록색 보관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네며, 그 안에서 어쩌면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상자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가장 짧은 문서부터 집어 들었다. 제네바 CERN에 있던 존 스튜어트 벨이라는 사람의 논문이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고 깊이 흔들렸다. 벨은 더없이 명료한 논증으로,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실험으로 가를 기준이 있음을 보여준다. 보어와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두 거장이라니! _6장에서 당시 제라르 로제가 연구소에서 이미 쓰던 방법 하나를 일러주었다. 광학 테이블을 모래로 채운 금속 원통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나는 이 구조가 말 그대로 ‘모래 위에 세워진’ 셈이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한 번 다져진 모래는 매우 안정된 지지대가 된다. 이 구조는 수십 년 동안 문제없이 버텨주었다. 연구비가 넉넉하지 않을 때에는 값싼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된다. _6장에서 결국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결정 대신 물을 매질로 쓰는 방식을 고안해 전환기를 직접 제작했다. 최종 실험 장치는 광학연구소가 오랫동안 쌓아 온 고전광학 기술을 총동원한 결과물이었고, 결과는 분명했다. 양자 계산의 예측대로 벨 부등식은 명백히 위반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옹호한 국소 실재론의 세계관을 더는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보고한 학술지 논문은 극도로 절제된 문체로 사실만 제시했지만, 그 파장은 컸다. 박사 논문 심사 때에는 광학연구소 강당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_7장에서 스톡홀름 대극장 무대를 가로질러 스웨덴 국왕에게서 노벨상 메달을 받으러 걸어 나간 그 짧은 순간, 나는 이 영예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내게 늘 하나였던 과학, 곧 근본 원리에서 응용에 이르는 그 과학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달을 손에 쥔 채, 나는 의전대로 먼저 노벨위원회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이어 객석을 바라보며 나를 지지하고 도와준 모든 이들을 떠올렸다. 가족, 공동 연구자들,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나를 만든 스승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_에필로그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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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본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거장의 ‘생산적인 오류’를 따라서,
철학적 논쟁에 갇혀 있던 양자 세계를 마침내 증명해 낸 당사자의 생생한 증언 양자역학은 자연을 더없이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러나 예측이 맞는다고 해서 세계가 정말 그 이론이 말하는 대로 존재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아인슈타인이 파고든 지점이 여기다.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한쪽의 측정만으로 다른 쪽까지 정해지는 듯 보이는 상황 앞에서, 아인슈타인은 물었다. 세계는 우리가 관측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빛보다 빠른 영향이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이 물음은 이후 30년 가까이 실험으로는 가를 수 없는 철학적 논쟁으로 남았다. 그 교착을 깬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알랭 아스페다. 저자는 이 100년의 역사를, 직접 장치를 만들고 결과를 기다린 당사자의 자리에서 일인칭으로 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라는 낯선 세계를 가장 먼저 연 물리학자다. 1905년, 그는 빛이 알갱이처럼 행동한다는 광양자 가설로 흑체복사와 광전효과를 설명하며 양자의 시대를 열었다. 30년 뒤 내놓은 EPR 논증은 양자역학을 흔드는 반론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양자 얽힘이라는 가장 깊은 현상을 처음으로 끌어냈다. 바로 그해, 슈뢰딩거는 EPR에 호응해 이 현상에 ‘얽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자연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끝까지 놓지 않은 그의 태도가 담겨 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의심을 ‘생산적인 오류’라 부르며, 다음 세기의 물리학으로 통하는 문을 연 사람으로 다시 세운다. 아인슈타인의 호기심을 실험실로 가져온 한 물리학자의 집념, 낡은 지하 연구실에서 현대 양자역학의 신기원을 열기까지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자신의 실험을 회고하는 6장과 7장이다. 1974년, 저자는 동료가 건넨 초록색 보관 상자 속에서 존 벨의 논문을 처음 읽었는데,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을 실험으로 가를 수 있다는 그 논문에 그는 깊이 흔들렸다.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이듬해 CERN에서 만난 벨은 격려와 함께 한 가지 조언을 건넸다. “양자역학의 기초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마라. 자칫 경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아스페는 광학연구소 지하 2층, 서로 이어진 세 개의 방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공기 쿠션 테이블을 살 돈이 없어 모래를 채운 금속 원통 위에 광학 테이블을 올렸고, 그렇게 ‘모래 위에 세운’ 장치는 수십 년을 버텼다. 두 대의 레이저로 칼슘 원자를 들뜨게 해 얽힌 광자쌍을 만들고, 편광기의 방향을 빠르게 바꿔 가며 그 상관관계를 측정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핵심 부품인 고속 전환기는 제작을 맡은 회사가 손을 들자, 고등학교 시절 본 실험을 떠올려 직접 만들었다. 1982년, 결과는 분명했다. 양자역학의 예측대로 벨 부등식은 명백히 위반되었고, 아인슈타인이 옹호한 국소 실재론의 세계관은 더는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박사 논문 심사장에는 1966년 노벨상 수상자 알프레드 카스틀러가 앞줄에 앉았고, 강당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교과서에 ‘아스페 실험’이라는 한 줄로 남은 일이, 장치를 만들고 고치며 결과를 기다린 현장의 시간으로 되살아난다. 천재들의 철학적 논쟁에 머물던 ‘양자 얽힘’의 미스터리, 세월을 거쳐 현대 양자 과학의 핵심 자원이 되기까지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다툰 얽힘은 오랫동안 철학에 가까운 물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벨의 정리와 아스페의 실험을 거치며 얽힘은 손에 잡히는 물리적 자원이 되었다. 빛보다 빠른 통신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얽힌 두 입자의 상관은 도청을 원천적으로 막는 암호의 토대가 된다. 누군가 중간에서 엿보는 순간 양자 상태가 교란되어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어떤 과거의 사건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진정한 무작위성 또한 양자 측정에서 나온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얽힘이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본질적으로 안전한 난수 발생기로 이어지는 길을 짚는다. 이제 얽힘은 양자컴퓨터와 양자 통신을 떠받치는 핵심 자원이다. 저자 또한 양자컴퓨터 기업 파스칼을 비롯한 여러 양자 스타트업에 직접 관여하며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2022년 노벨위원회가 수상 사유에 얽힌 광자를 이용한 실험과 양자 정보 과학의 개척을 나란히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의 질문이 과학의 중심에 서기까지 그 찬란한 여정과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책 이 책은 전공 지식이 없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 본문은 수식을 최소한으로 줄여 이야기로 따라갈 수 있게 하고, ‘핵심 요약’을 통해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더 깊이 들어가려는 독자를 위해 곳곳의 ‘보충 자료’에서 벨의 정리와 상관계수, 양자 비복제 정리 같은 핵심을 정확하게 풀어준다. 어려운 대목은 건너뛰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설계했다. 별면 화보에는 양자 논쟁의 역사적 장면과 실험 장치가 함께 실려 있다. 아스페는 무대를 가로질러 메달을 받으러 걸어 나가며, 자신에게 늘 하나였던 과학, 곧 근본 원리에서 응용에 이르는 과학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다고 적는다. 1975년 벨의 질문 앞에 섰던 무명의 젊은이가, 반세기를 돌아 노벨상의 영예를 얻었다. 국내에서 영자역학과 양자컴퓨터의 세계를 알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채은미 교수가 감수를 진행했는데, 채은미 교수는 저자에 대한 존경과 이 책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미덕은 아스페 교수가 아인슈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흔히 아스페 교수의 업적은 ‘아인슈타인이 틀렸음을 실험으로 보인 것’이라고 간단히 소개되지만, 저자는 이러한 설명을 조심스럽게 바로잡는다. 그는 아인슈타인을 패배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양자역학의 이상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EPR 사고실험을 통해 양자 얽힘이라는 비범한 현상의 본질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낸 인물로 그린다.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던진 질문은 양자역학이 단지 계산에 잘 맞는 이론인지, 아니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완전한 설명인지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본질적으로 혁명가였으며, 절대적 시간이라는 개념을 과감히 버렸듯이 충분한 실험적 증거가 주어졌다면 국소성을 포기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관점은 과학에서 중요한 것이 단순히 누가 옳고 틀렸는가가 아니라,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날카롭고 정직한 질문을 던졌는가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양자역학이 단순히 어렵고 기묘한 공식들의 집합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이 서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실험하며 만들어온 살아 있는 지적 전통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학은 정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질문이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바로 그 질문이 다음 시대의 과학을 여는 문이 된다.” _ 채은미(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