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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바쇼의 하이쿠 〈1부〉 남의 말 하면/오랜 연못에/대합조개의/흰머리 뽑는/도미 자반의/밝은 달이여/여름 잡초여/마른 가지에/장맛비를/원숭이 우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아/첫눈 내리네/겨울 국화여/벼룩과 이가 뛰고/이른 겨울비/여름밤이여/밤중에 몰래/애처롭구나/가을도 이미/둘이서 봤던/세상 사람은/그림자여/산골 마을은/나폴나폴/7월이여/들판 가로지를 때/해마다/바위산의/찬 바람 불어/자네, 불(火)을 때/불어 날려 버리는/국화 향기여/겨울바람 걷는 몸은/자, 눈 구경하러/아, 별것 아니네 〈2부〉 하얀 국화를/오늘부터는/몇 겹 구름 사이에 두고/잘 익은 오디여/매화 하얗게/반딧불이여/흥이 나다가/세밑 대청소/들판의 해골/기사카타(象潟)여/그 향기가/뭉게구름이/문어 단지여/어린잎으로/여름밤이여/장맛비여/두견새 소리/요시토모(義朝)의/초라한 초암(草庵)에/장사꾼이 파는/어찌 되었건/귀여운 이름/초가을이여/올벼 향기여/이른 겨울비여/화롯불이여/땅에 쓰러져/파도 지나간 후/딱따구리도/하찮은 사람이라/자물쇠 열고/산속에서는/달 구경하는/무언가 써서 시키의 하이쿠 〈1부〉 떠나는 내게/아귀가 입을/감을 먹으니/해가 비치는/유채꽃이여/서늘함이여/한 치의 풀에/많은 섬에/애증(愛憎)은/북쪽 지방의/떫은 감은/별 하나 날아/첫눈이 와도/소낙비에게/수세미 피고/밤이 길구나/또 하나 별이/여름 풀이여/재미있구나/매년 그렇듯/기세 좋게/어린 은어가/짧은 밤의/양하꽃보다/장미를 자르는/술 취해 누워/여동생 볼을/모래알 같은/세상도/씩씩하게/버드나무 잘라도/무사 거리가/참억새인지/가는 가을아 〈2부〉 네 시에 까마귀/맨드라미가/여름의 광풍/하품을 하는/나비가 나네/눈이 내리네/번개가 치고/새로 쓴 묘에/수국이여/말아 올리며/풋콩이여/우듬지를/산골 마을/어스름 달빛/베고니아꽃/달팽이 머리/서 있는 것 중에/아귀도 먹어/연극 보러 가/병상의/끈이 떨어진/장맛비에도 갠 하늘/관음(觀音)님 뵐 때/나팔꽃들이/북적거릴/초목도 메말라/도토리와/따스한/찬바람 속에/농부가/양귀비꽃에/가는 봄이여/벼 향기로세 부록 1. 하이쿠(俳句)란 무엇인가 그 정의와 역사 2.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생애와 하이쿠 3.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생애와 하이쿠 참고문헌 |
吳錫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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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치는 시대, 열일곱 자가 건네는 깊은 침묵과 관찰
하루에도 수천 개의 문장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뉴스와 SNS, 영상과 메시지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지만, 정작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은 많지 않다. 더 많이 말할수록 더 쉽게 잊히는 시대.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덜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이쿠, 바쇼에서 시키까지』는 그런 시대에 찾아온 한 권의 조용한 초대장이다. 단 세 줄, 열일곱 자로 이루어진 짧은 시, 그러나 그 안에는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 계절과 시간, 만남과 이별이 응축되어 있다. 하이쿠는 설명하지 않는다. 감정 과잉이 없다. 자연을 느끼고 깊이 바라보는 힘과 함께 상상력을 길러주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차분해지는 명상의 효과도 일어난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소중하게 느끼게 하며, 하나의 풍경을 보여준다. 첫눈이 수선화 이파리에 내리는 순간, 늦가을 달빛 아래 흩뿌리는 비, 국화 향기 속 오래된 불상들, 그리고 여행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명까지. 하이쿠는 거창한 사건보다 순간의 감각을 붙잡는다. 그 짧은 순간이 오히려 긴 여운으로 남는다. 오랜 연못에/개구리 뛰어드는/물소리 ‘텀벙’ (古池や蛙飛こむ水の音) 전통적인 서정을 버리고 개구리가 “텀벙” 물에 뛰어든 극히 비근한 장면을 소재로 다룬 이는 바쇼가 최초가 아닐까 싶다. 곱씹어 읽어 보면, “오랜 연못”과 “텀벙” 소리는 서로가 미묘한 균형을 취하고 있다. 시정(詩情)을 깊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지만 깊이 바라보는 법은 점점 잊어가고 있다. 『하이쿠, 바쇼에서 시키까지』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계절의 변화와 바람의 결, 꽃 한 송이와 새 한 마리의 움직임을 다시 바라보라고 말한다. 짧아서 읽기 쉬운 시가 아니라, 짧기에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시. 그것이 하이쿠의 힘이다. 말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침묵은 더욱 깊은 언어가 된다. 그리고 열일곱 자는 때로 한 권의 철학서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 『하이쿠, 바쇼에서 시키까지』는 그 고요한 언어를 통해, 잊고 지냈던 사유와 감각을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