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정신분석에서 변화를 만드는 요인들
1장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 2장 양성 신경증과 악성 신경증 3장 치유를 위한 조건들 2부 정신분석은 어떻게 치유하는가 4장 자신을 안다는 것 5장 정신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6장 건강해지려는 인간의 타고난 열망 7장 치료자와 내담자 8장 저항하는 마음, 나아가는 마음 9장 꿈으로 알 수 있는 것들 10장 현대인의 신경증을 치료하는 구체적 방법들 11장 정신분석 ‘기법’ 또는 듣기 예술 |
Erich Fromm
에리히 프롬의 다른 상품
Rainer Funk
라이너 풍크의 다른 상품
신소희의 다른 상품
|
정신의 성장이 뒤틀리는 과정을 정원에서 자라는 한 나무에 비유해보자. 이 나무는 담벼락이 만나는 구석진 곳에 있어 햇빛을 거의 받지 못했다. 결국 이 나무는 휘어지고 구부러진 모양으로 자랐다. 그것이 햇빛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누구나 성장하기 위해 햇빛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닿을 수 없다면 비뚤어져서라도 가까이 간다. 그렇게 병들고 왜곡되어 자라난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여전히 한 인간이다. 자기 삶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88 오늘날 분석가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프로이트가 “세기의 불안”이라 불렀던, 이 시대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어떤 증상도 없지만 뭐라 말할 수 없이 불행한 기분, 삶에서 의미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둥둥 떠다니는 듯 막연한 불안감.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들은 부족한 것이 없지만 자기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더 괴롭다.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 부담이자 과제다. 단어 퍼즐은 풀 수 있지만 누구나 직면하는 인생의 수수께끼는 풀지 못한다. --- p.85 우리는 사회적 기능을 방해하는 것만을 병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병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 개념이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멍청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며 실용적 가치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가장 성공한다. 그들은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아름다운 여성에게 정신이 팔려 컨베이어벨트를 놓쳐버리는 찰리 채플린처럼 산만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주관적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용적 성과를 내는 것만이 중요한 사회에 최적화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니다. --- p.100 인간을 알고 싶다면 세상 모든 분석 이론보다도 발자크의 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로서 발자크는 개인의 역사를 놀랍도록 유려하고 풍성하게 써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무의식적 동기를 깊이 파고들어 그것을 사회적 상황과의 상호관계 안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당대 프랑스 중산층의 성격을 서술하고자 했다. 인간과 무의식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교과서 말고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카프카를 읽어라. 내 저서를 비롯한 정신분석학 문헌보다도 그런 책들이 인간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깊고 풍요로운 통찰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정신분석이 개인에게 줄 수 있고 또 주어야 할 것이다. --- p.131 인생은 어떻게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병들어서라기보다는 삶에서 흥미롭고 신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민, 죄악과 실수, 증상, 그 밖에도 별별 일들을 근심하느라 끙끙댄다. 그럴 시간에 온갖 놀라운 방식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난 너무 우울해서 그럴 수가 없어요.” 글쎄,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혹은 충분히 시도하지 않았다. 자신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의 문제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이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도리어 최악의 방법이다. --- p.224 탈무드에 좋은 사례가 있다. 성경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널 때 신이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올리라 했고 그러자 물이 갈라졌다. 그러나 탈무드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을 때만 해도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물이 갈라진 것은 첫 번째 히브리인이 물속으로 뛰어든 바로 그 순간이다. 누군가 뛰어들지 않으면, 뛰어들 의지가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만 하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제대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경험이 구조화되지도 않고 의미와 적절한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훗날 “난 좋은 것을 배웠어. 이것저것 조금씩.”이라고 떠올릴 뿐이다.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배울 가치가 전혀 없다.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을 배우느니 낚시를 하거나 배를 타거나 춤을 추는 게 훨씬 낫다. --- p.95 사과나무라면 훌륭한 사과나무가 되고, 딸기나무라면 훌륭한 딸기나무가 되어야 한다. 딸기나무가 되어야 하는지 사과나무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은 엄청나게 다양하며 모든 개인은 여러 면에서 고유한 존재이니까. 중요한 것은 획일화하는 규범이 아니라 어떤 꽃이든 온전히 피어나고 열매 맺고 살아갈 수 있는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허무주의로 이어지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범죄자로 태어난 사람은 그냥 범죄자란 거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느니 좋은 범죄자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범죄자도 비범죄자도 아닌 존재가 되어 목적과 의식 없이 살아가는 쪽이 더 나쁘다. --- p.96 우리는 깨어나자마자 도로 잠들어버린다. 감정과 지식의 미묘한 작용에 관한 모든 통찰과 깨달음을 잃고 매사에 눈을 감는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풍요 속에서도 불행하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일까? 필요한 것을 다 가진 사람들도 만년에는 자신이 살았지만 살아본 적이 없고 깨어 있었지만 깨어나지 못했다는 쓰디쓴 슬픔에 빠진다. 바로 이런 것이 자신을 안다는 것의 의미다. --- p.228 삶에는 언제나 변화를 가져오는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분석가 대부분은, 그리고 특히 대중은 한 사람이 이런저런 인물이 되는 이유가 부모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정신분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파적 사연으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할머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거예요.” 글쎄, 모든 잘못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 p.66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유년기의 특정한 요소가 이후의 기반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의 사건들이 이런 요소를 증폭하거나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후의 사건들이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유년기의 사건들은 인생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기울어지게 한다. 인생 초반에 일어난 일이 반드시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더 나아갈수록 기울기는 더욱 커져서 기적이 아니고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 p.67 독립적 존재가 되려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부모에 대한 반응을 기준으로 볼 때 나는 독립을 향한 여정의 어디쯤에 있는가?’ (…)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이런저런 싸움이 대부분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의존성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라는 것이다. 부모와 싸우며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부모에게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셈이다. 부모가 틀렸다는 것도 옳다는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 p.93 |
|
에리히 프롬이 끝내 남기지 못한 단 한 권의 책
강의 녹취록과 미완성 원고로 완성된 유고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사랑, 자유, 소유, 존재, 인간 소외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해온 에리히 프롬. 그러나 프롬이 평생 가장 오래 몰두한 영역은 다름 아닌 정신분석 치료였다. 그는 1920년대부터 심리치료사로 일했고, 뉴욕과 멕시코의 정신분석연구소 설립에 참여하며 정신분석가이자 감독자로 활동했다. 사회심리학자, 작가로서의 명성이 워낙 컸기에, 그가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듣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듣기의 기술』은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유고다. 이 책은 프롬 사후에 남겨진 강연 원고와 세미나 녹취록, 미완성 원고를 바탕으로 엮였다. 특히 1974년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뉴욕의 심리학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미나의 기록이 중심을 이룬다. 준비된 원고 없이,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유를 학생들 앞에서 자유롭게 풀어놓은 이 기록에는 이론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생생한 프롬이 담겨 있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는가 프롬의 임상 현장과 치료 철학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책 이 책에서 프롬은 치료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환자는 왜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가, 분석가는 어떤 태도로 그 말을 들어야 하는가, 꿈과 저항은 치료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프롬에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나 성격만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어떤 가족 안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관계와 직업과 시대의 압력 속에 놓여 있었는지 함께 살피는 일이었다. 『듣기의 기술』은 바로 그런 프롬의 치료 현장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는 환자들의 사례,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 꿈을 해석하는 법, 마음의 저항을 다루는 법,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공허에 대한 프롬의 생각이 담겨 있다. 프롬에게 좋은 분석가는 단순히 환자의 말을 오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말 속에 숨은 두려움과 방어, 반복되는 삶의 방식,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진실을 함께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듣기’는 상담 기술이라기보다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태도에 가깝다. 반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 프롬이 꿰뚫어 본 현대인의 병 이 책의 백미는 9장과 10장에 있다. 9장에서 프롬은 ‘크리스티아네’라는 스물여덟 살 여성의 사례를 세미나 학생들 앞에서 직접 분석한다.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고,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살아본 적 없는 여성. 그녀가 꾸는 네 번의 꿈들을 프롬은 하나하나 읽어 나간다. 꿈이 어떻게 우리가 낮에는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진실을 밤마다 말해주는지, 프롬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장이 매력적인 것은 형식 자체다. 발표자가 사례를 발표하고, 프롬이 끼어들어 질문하고, 때로는 발표자의 표현을 날카롭게 교정하는 세미나의 현장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10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의 신경증을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들을 제안한다. 자기 문제에만 몰두하지 말고 세상에 관심을 가질 것, 비판적으로 사고할 것, 나르시시즘을 인식할 것, 그리고 매일의 자기 분석을 실천할 것. 프롬은 자기 문제에만 갇혀 사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치유법’이라고 단언한다. 풍요로운 문화와 사상, 자연이 눈앞에 있는데도 오직 자신의 고통만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는 거침없이 꼬집는다. 반세기 전의 진단이지만, 스마트폰 안에 갇혀 자기 자신만 들여다보는 오늘날의 풍경과 놀라울 만큼 겹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