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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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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도 주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상은 아직 완전히 모른다. 하지만 달을 파괴해 파편을 세계에 추락시켜 말로 다 못 할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면, 밤하늘의 모습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고 가정할 수 없다. 결월산의 사교도들, 자칭 붉은진실회는 한강을 범람시켜 수도권을 침수시킬 것이라 예고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구나 웃어넘겼을 이야기다.
---p.13 틸링해스트 수학은 언젠가부터 우리 시간과 겹치고 얽혀버린 ‘2차 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계의 괴물과 기이한 재해가 세상을 덮치는 원인이자 사교도 주술의 원천인 2차 시간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어두운 시절에 얼마간의 쓸모가 있고, 제자들은 그래서 나를 믿는다. ---p.22 피로 칠해진 벽에 검은 자국들이 보인다. 이 피 칠갑보다도, 바닥에 흩어진 사람 몸의 파편들보다도, 찌그러진 알루미늄 방망이와 녹슨 쇠톱보다도, 수영은 그 검은 자국들이 더 두렵다. 배낭을 열어 세제와 청소포를 꺼내 벽을 닦는다. 피가 지워지고 그 아래에 유성마커 자국이 드러난다. 수영은 침을 삼킨다. 숫자는 하나도 없는, 기호만으로 되어 있는 수식이다. ---p.14 세상 곳곳에 사교도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뒤로 좋은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 전이라고 좋은 소식이 뉴스에 나왔던가? 그 전이라는 게 있었는지조차 실감이 나지 않는다. 좋은 소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갈수록 세상은 더 흉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누구나 세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p.37~38 “더운물에 목욕하고 지붕 아래 자고 삼시 세끼 먹으면 그걸로 사람다워집니까?” 다들 조용해진다. 나는 더욱 힘주어 말한다. “끝도 사람답게 맞이해야 사람답게 산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p.66~67 갑자기, 칠판에 자석으로 붙인 도화지 위의 그래프가 그래프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선무당이 아무렇게나 그린, 기괴한 부적으로만 보인다. 피 냄새가 한층 역하게 느껴진다. “왜….” 대체 왜? 왜 피로 그림을 그린 것일까? 지호는 갑자기 겁이 난다. 어디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급히 유리컵과 생수병을 집어 들고 부엌으로 가 개수대에 모두 부어버리고 물을 튼다. 잠시, 피 냄새가 더 진하게 풍긴다. “이게 사교도들 하는 짓이랑 뭐가 달라…?” ---p.251 결과는 같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같다. 명상을 할 때마다 2차 시간의 값이 달라지지만, 아무리 다른 값들을 사용해도 끝내는 상쇄되어 하나의 결과에 달한다. 오늘 밤, 부교동에서 의식이 치러지면 시간은 끝나고 또 계속된다. 이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p.306 “시간의 끝….” 지호는 그 말을 세 번째로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칠판에 서서, 틸링해스트 논문을 읽기 전에 세웠던 반복 패턴의 식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각나는 대로, 다른 식들을 도출한다. 무슨 근거가 있어서 하는 계산은 아니다. 단순한 직감이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워밍업으로 삼으면 된다. ---p.338~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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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점으로 구성된 시간의 미로
『시간의 끝』은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형사와 수학자, 사이비 교주는 각자 다른 목적을 지닌 채 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을 따라가는 사이 독자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된다. 경찰청 사교도수사과 형사인 ‘천수영’은 ‘지호’가 남긴 수학 공식의 비밀을 쫓는다. 지호의 작업실에 흩어진 좌표들, 낙서처럼 남겨진 계산식들, 그리고 벽에 붙은 수식들.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수영은 그것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다. 처음엔 지호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었지만 계산식을 따라가면서 점차 깨닫는다. 그것이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세상의 끝을 계산하는 수식이라는 것을. 수학과 교수 ‘이지호’는 어느 날 일하던 대학교의 사교도 학생들에게 납치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우주의 숨겨진 진실, ‘틸링해스트 수학’의 계산을 지호가 풀어주는 것. 틸링해스트 수학은 직선적인 시간을 다루는 일반적인 수학이 아니다. 다른 차원의 시간 축인 2차 시간을 다루는 수학이다. 이름 없는 사교 집단의 ‘교주’는 파괴된 달을 복원하려는 의식을 준비한다.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닌 시간 자체를 조작하는 의식이다. 그 의식이 성공하면 시간은 끝날 것이고, 모든 것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이자 평화라고 교주는 믿는다. 더 이상의 고통, 더 이상의 변화, 더 이상의 불확실성 없이 오직 반복뿐인 세계. 하지만 교주도 모르는 것이 있다.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이 의식을 자신이 시작했는지, 아니면 어딘가 정해진 반복 속에서 단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형사와 수학자, 그리고 사이비 교주는 모두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향한다. 이것이 우연일까, 운명일까, 아니면 틸링해스트 수학이 만들어낸 마법일까? 2차 시간 그 자체일까? 2차 시간과 블록 우주 『시간의 끝』의 핵심은 ‘2차 시간’이라는 개념에 있다. 우리가 알던 직선적 시간 위에 또 다른 차원의 시간 축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현대 물리학의 ‘블록 우주’ 개념을 차용했다. 블록 우주란 특수상대성이론의 한 해석으로, 우주가 이미 만들어진 4차원 시공간의 거대한 덩어리라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꺼번에 존재하는 우주라는 의미다. 영화 필름으로 비유하자면, 이미 촬영된 필름의 모든 프레임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즉,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도, ‘미래’라고 기대하는 것도 모두 이미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간의 흐름은 우리의 착각일 뿐이며, 우리의 삶은 마치 필름의 각 프레임처럼 이미 결정된 것이다. 작가는 “블록 우주는 이를테면 3차원 영화의 프레임이 줄줄이 나열된 필름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별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하는 착각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개념을 『시간의 끝』에 적용하면, 수영이 아무리 지호를 쫓아도, 지호가 아무리 미래를 계산해도, 그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가 ‘선택’이라고 믿는 것도, 사실은 이미 존재하는 필름의 한 장일 뿐이다. 그렇다면 ‘2차 시간’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블록 우주의 필름 전체를 다루는 또 다른 시간 축이다. 1차 시간은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시간이지만, 2차 시간은 그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는 차원의 시간이다. 틸링해스트 수학이란 바로 이 2차 시간을 다루는 수학이며, 이를 통해서만 시간의 반복을 멈출 수 있고, 혹은 영원히 반복하게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두 겹의 시간을 통해, ‘자유의지’란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시간의 끝』에서는 멸망해가는 이 세계의 시공간 한 조각이 틸링해스트 수학에 의해 영원히 보존되고 있다. 마치 신혼여행에서 사 온 스노글로브처럼, 뒤집은 채로 두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으면 고요한 크리스마스 밤처럼 보이지만, 누군가가 흔들면 눈보라가 휘날린다. 하지만 결말은 같다. 결국 스노글로브의 눈은 바닥에 모두 쌓이고 만다. 다음에 또 누군가가 스노글로브를 흔들 때까지는. 『오이디푸스 왕』과 『맥베스』의 현대적 소환 『시간의 끝』은 명백하게 고전 비극의 원형을 현대에 소환한다. 특히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은 고대 비극에서 가장 본질적인 테마다.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맥베스』의 맥베스도 마녀들의 예언을 거스르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이 오히려 예언을 성취하게 한다. 『시간의 끝』의 세 인물도 피할 수 없는 순환의 덫에 갇힌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깨닫고, 시간은 달과 함께 끝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영원히 다시 시작된다. 반복의 저주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반복이 정말 외부의 힘에 의해 강요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 자신의 선택이 이루어낸 결과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작가는 명확한 답을 주는 대신 그저 묻는다. ‘우리가 도망칠 수 없는 것이 정말 운명인가? 아니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단지 우리의 선택인가?’ 한국 SF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시간의 끝』은 한국 SF 문학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장르 소설들이 놓쳤던 철학적 깊이를 담으면서도, 동시에 장르의 구체적인 매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블록 우주, 2차 시간, 틸링해스트 수학 같은 개념들은 순수하게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메타포적이다. 제11회 SF어워드 대상, 2026년 로커스상 노미네이트라는 평가가 작가의 소설 세계가 가진 힘을 말해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단순히 시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넘어,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시간의 끝』을 읽는 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형사 파트에서 우리는 과거를 쫓는 자가 되고, 수학자 파트에서 우리는 미래를 계산하는 자가 되며, 교주 파트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끝을 꿈꾸는 자가 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이미 이 고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의 선택은 정말 선택인가? 『시간의 끝』이 던진 질문 앞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