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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1 강 대 훈 박사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1
추천사 2 이 상 환 교수 |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및 해석학 2 추천사 3 정 성 국 박사 | 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4 저자 서문 10 들어가는 글 판단의 시대를 넘어 의와 진노의 복음으로 16 서론 보응과 대속의 종말적 긴장: 로마서를 읽는 하나의 구조 23 제1부 의와 진노의 복음 46 제1장 바울신학의 보이지 않는 전제: 보응의 질서 47 제2장 보응 로마서 복음의 법정적 토대 73 제3장 하나의 동사, 두 개의 계시: 왜 로마서 1:17-18은 분리되어 읽혀 왔는가? 102 제4장 보응과 대속의 종말적 긴장을 살아내는 믿음 161 제2부 믿음으로 살리라 208 제1장 보응에 침투하는 대속: 로마서 5-8장의 종말적 긴장과 실존적 전환 209 제2장 끊을 수 없는 사랑: 이스라엘의 거부와 하나님의 의(롬 9-11장) 253 제3장 신비를 살아내는 몸: 보응과 대속의 종말적 긴장을 살아내는 공동체(롬 12-16장) 301 결론 보응의 한가운데서 작동하는 복음: 감추어진 신비, 살아지는 공동체 350 본서의 신학적.목회적 기여 353 에필로그 15년 간의 질문 끝에서 발견한 신비 357 참고 문헌 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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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고난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고난과 수치가 단순한 불운이나 오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곧 보응의 통치 아래 놓여 있음을 먼저 수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응이 제거된 자리에서 위로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속은 그곳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보응이 끝까지 유지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만, 대속은 참된 복음으로 드러난다
---p.21 보응은 타락 이후에 급조된 형벌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한 ‘하나님의 의’가 역사 속에서 작동하는 기본 형식이며 창조 질서에 내재 된 정당한 원리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는 보응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죄 아래 놓인 인간이 그 준엄하고 정당한 보응 앞에 결코 설 수 없다는 파국적 실존에 있다. ---p.62 요한복음은 출애굽기 34:6-7을 단절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조 전체를 성육신과 십자가를 중심으로 재배열한다. 은혜는 인격 안에서 먼저 현현되고, 보응은 십자가에서 결정되되 종말적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광은 보응이 제거된 영광이 아니라 대속을 통해 보응을 감당하고 통과하는 영광이다 ---p.129 하박국 2:4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선언은 고난이 조속히 종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에서 발설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는 사실이 수용되고 고백 된 토양 위에서만 피어나는 고백이다. 여기서 의인이란 고난의 제거를 소망하는 자가 아니라 고난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다스림임을 받아들인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살아내는 자를 의미한다. ---p.174 만일, 성도가 겪는 고난이 여전히 ‘보응적 형벌’에 불과하다면, 그 고난의 자리에서 성령이 수행해야 할 사역은 신자를 향한 책망이나 교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이 신자와 함께 그리고 신자를 위하여 “함께 탄식”(συνστενάζω)한다고 선언한다. 이는 성도의 고난이 과거의 죄에 대한 심판의 잔재가 아니라 새창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중첩된 시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고(産苦)임을 명증한다. ---p.246 보응의 현실을 통과하지 않고는 긍휼을 말할 수 없으며 대속을 보지 않고는 그 보응을 감당할 수 없다. 이 신비를 목도한 자는 더 이상 판단과 정죄의 언어로 살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산 제물’로 내어드리는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보응과 대속의 종말적 긴장이 교회의 삶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통로이다. ---p.300 로마서를 읽는다는 것은 달콤한 위로의 독서라기보다 우리가 견고하게 붙들고 있던 세계관이 근본부터 뒤흔들리는 전율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복음을 ‘보응 이후의 은혜’ 혹은 ‘심판을 무력화한 사랑’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증언하는 복음은 보응이 시퍼렇게 살아 작동하는 역사적 현실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를 선포한다. ---p.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