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장지연의 서
2. 신채호의 서론 3. 삼걸 이전의 이태리 형세와 삼걸의 어린 시절 4. 마찌니가 청년 이태리를 창립하고 사르데냐 왕에게 글을 올리다 5. 카부르 몸소 경작하다 6. 마찌니와 가리발디의 망명 7. 남아메리카의 가리발디 8. 혁명 이전의 형세 9. 1848년의 혁명 10. 로마 공화국의 건설과 멸망 11. 혁명 후의 형세 12. 현명한 사르데냐의 새 왕과 재상이 된 카부르 13. 카부르의 내정 개혁 14. 카부르 외교 정책 제1단계(크림 전쟁) 15. 카부르 외교 정책 제2단계(파리 회의) 16. 카부르 외교 정책 제3단계(이태리 - 프랑스 밀약) 17. 이태리 - 오스트리아 전쟁 준비와 카부르 · 가리발디의 회합 18. 이태리 - 오스트리아 전쟁과 카부르의 사직 19. 가르발디의 사직 20. 카부르 다시 재상이 되고 남북 이태리 통일되다 21. 당시 남부 이태리의 형세 22. 가리발디의 남부 이태리 평정 23. 남북 이태리의 합병 24. 제1대 국회 25. 카부르 서거와 그 말경의 뜻 26. 가리발디 투옥되다 그 뒤 영국으로 건너가다 27. 가리발디 로마에 다시 들어가다 그리고 폐하여 다시 사로잡히다 28. 이태리가 로마에 서울을 정하니 대통일의 사업이 이루어지다 29. 신채호의 결론 |
申采浩
신채호의 다른 상품
|
이태리의 건국은 로마 획득이 그 마지막인데, 로마를 얻을 때에 이르면 저 삼걸들이 미치는 직접적 효력은 이미 모두 없었다. 그때 마찌니는 이미 그만두었고, 카부르는 이미 죽었으며 가리발디는 구금된 터였다. 예전에는 머리를 쓰고 목숨을 바쳐 수십 년을 경영해도 얻을 수 없더니 이제는 하루아침에 평온하고도 쉽게 거두어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혹 식견이 얕은 자는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오호 어찌 그러겠는가. 벽에 용을 그릴 때 그것이 날아가는가의 여부는 눈동자를 그려 넣었는가 아닌가에 있다. 눈동자를 그려 넣는 것은 본디 때가 있기 마련이지만 화가의 심력도 실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가리발디 장군의 거사 이후로 주변국들은 이태리 백성의 용감함을 두려워했고 이태리 백성의 열성을 사랑하여 동정을 표시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쟁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유럽의 형세는 이로 인하여 크게 변하였다. 소리 죽여 울며 원한을 품은 채 항복조약을 맺은 프랑스는 로마 교황의 보호자가 될 힘이 없어졌다. 이태리 왕은 온 정성을 다해 교황을 설득하여 양보하라고 했지만 교황 피우스는 여전히 완고하게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1879년 9월 20일, 왕의 군대가 로마에 들어가 최고의 신전에 삼색기를 내걸고, 나라안에 명령을 내려 백성들은 각자 왕을 따를 것인지 교황을 따를 것인지 자유롭게 투표하라고 하였다. 그런 뒤 투표함을 열어 표를 검사하니 왕을 따르는 자의 수는 40,788명이오 교황을 따르는 자의 수는 겨우 46명이었다. 드디어 이듬해 1871년 6월 2일에 사르데냐 왕 에마누엘레가 이태리 황제에 즉위하여 로마에서 국회를 열고 국회 의원에게 이렇게 칙고하였다.
---pp.117~118 |
|
신채호의 서론--
무애생은 말한다. 위대하구나 애국자여! 장하구나 애국자여! 애국자가 없는 나라는 지금은 비록 강하다고 해도 분명 약히질 것이며 아무리 번성하고 있다 해도 반드시 쇠약해질 것이며, 흥하고 있다고 해도 마침내 망할 것이다. 살아 있다 해도 필시 죽게 될 터이니.......... --- p.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