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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명제 7
2부 설명 96 3부(부록) 아카데미의 목소리 190 저승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210 국제연맹의 길 215 옮긴이의 말 290 미주 300 |
Le Corbusier,Charles Eduard Jeanne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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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축의 순간은 더 이상 기계 이전 시대를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보수적 아카데미의 썩어가는, 시체 냄새 풍기는 생산물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건축은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 p.8
집이 하나의 유형이라는 단언은 지금 이 혼란의 시대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가치가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연속적이고 수많으며 빠르고 때로는 번개 같은 발견들이 사회의 기초를 뒤흔들고, 우리의 이성과 감수성을 교란시켰다. 그 결과,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 굳어진 공식과 가장 대담한 전망들이 뒤엉킨 불협화음의 결산이 우리 앞에 놓였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이 우리에게 왔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자각과 과거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됐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고,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 p.46
기계주의의 돌풍 아래, 지금까지 통용되어 온 모든 수단이 무너져 내리자, 더 이상 과거의 궁전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됐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간 아카데미들이 산출해 낸 궁전은, 궁전이라는 말의 의미를 끔찍하게 더럽혔다. 궁전은 더 이상 고귀함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천박한 허영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다. 궁전은 어떤 건전한 정신, 어떤 순결한 영혼에게도 합당하지 않았다. 궁전은 이미 부패해 구더기들이 들끓는 썩은 스튜와 같았다. 기계주의 시대의 우리 인간의 위장은, 그렇게 부패 직전의 음식을 더는 소화할 수 없다.
--- p.64
예산은 낭비되고, 과시를 위해 돈은 창밖으로 던져졌다. 건축이라는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유행, 형식적인 정신놀음, 한때 생명을 불어넣었던 정당한 활력과 더 이상 아무런 접점도 없는 서정적인 형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여기 인간 정신의 가장 비열한 상태인 거짓, 허영, 과장이 드러난다.
--- p.65
우리는 과거로부터 힘을 얻었다. 왜냐하면 과거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명료함과 균형의 조건 속에서 집은 하나의 유형임을, 그 유형이 순수할 때 진정한 건축의 저장인 건축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궁전의 존엄에까지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 p.78
집은 하나의 궁전이다. (…) 궁전은 하나의 집이다. 나에게 남은 과제는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제네바의 궁전은 나라들의 집, 곧 국제 사회의 행정의 집이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체이며, 특정한 목적을 향한 기계다. 그것은 거주를 위한 기계다.
--- p.88
집은 궁전이다. 이것이 지금 진행 중인 논의다. 우리는 집을 궁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통일성의 원리라는 절박함 속에서, 궁전은 집이 될 것이다. 국제연맹 청사 건립을 위한 국제 설계공모전은 거대한 실험의 기회였다.
--- p.90
오늘날 우리 시대는 무엇보다도 빛을 필요로 한다. 이제 정주하는 존재가 된 우리는 빛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과업의 문턱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나 주위에서나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현대적인 행동 프로그램이며, 특히 국제연맹 프로그램 그자체다.
--- p.112
우리는 어떤 아카데미 공식도 쓰지 않았다. 분류된 기둥, 필라스터, 박공, 처마 장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요소들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 거짓을, 국제연맹 고등사무국과 이 건축 문제에 관여한 대사들은 건축의 살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시체, 위험한 살이라 부른다.
--- p.188
선들의 서정성, 구성의 시적 질서, 자연에 대한 헌신적 행위, 건축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하게 품위 있는 자세로 맞서는 것, 정직하고 대담하게 건설하는 행위, 빛을 구석구석까지 퍼뜨리는 행위, 모든 기생적 요소의 길을 차단하는 행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정직한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성실성, 즉 배정된 예산에 정확히 맞는 비용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것(세 배, 네 배가 아니라! 오, 조약과 법을 수호하는 국제연맹이여!)—이러한 미학은 아카데미즘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의 표현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정신적 상태의 표현이며, 개인적 태도의 발현이다.
--- p.188
이 공모전 사건의 초기부터 관여한 한 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이 공모전은 처음부터 짜여 있었다. 아카데미가 실행자로 내정되어 있었으며, 공모전은 단지 허울이었다. 게다가 국가적 야망이 거칠게 표출되자, 정치적 이해를 충족시키려 네 건축가를 타협안으로 정한 것이다. 선택된 것은 공모안이 아니라, 특정 국가와 아카데미 건축가들이었다. (공모전이라는 희극은 337명의 참가자에게 2,000만 프랑 이상을 허비하게 했다!)” 세계 언론은 이 술책을 가리켜 “청사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 p.219-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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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을 선도한 르코르뷔지에의 감춰진 명저, 국내 최초 완역
보수 아카데미의 음모에 맞선 르코르뷔지에의 가장 뜨거운 변론 ◼ 건축 기득권의 허영을 깨부순 선언, “집은 궁전이고, 궁전은 집이다” 이 책의 제목 ‘집-궁전’을 처음 접하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평범한 개인이 몸을 누이는 소박한 공간과 절대 권력이 누리는 화려한 공간을 나란히 연결한 저자의 의도가 쉽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발적인 제목이야말로 르코르뷔지에의 핵심 건축 철학을 압축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 Une Maison-Un Palais를 직역하면 ‘한 채의 집-하나의 궁전’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이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 보면, ‘집이자 궁전’, ‘집 그러나 궁전 같은 곳’ 정도가 된다. 르코르뷔지에에게 집은 궁전과 다른 게 아니었다. 집과 궁전 모두 정신과 마음이 빚어낸 하나의 종합적 산물이며, 역사를 흉내 내거나 유행을 좇지 않고 직관과 이성이 함께 작동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 것이다. 최대의 경제성과 최대의 강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집은 곧 궁전이 될 수 있었다. 르코르뷔지에가 말하는 ‘기념비성’ 역시 규모나 재료의 비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형태들이 조화로운 법칙 속에 배열되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전통적·관습적 건축만을 고수하는 보수 아카데미가 만들어낸 건축을 천박한 허영의 산물로 간주하며, 그것은 기계 문명의 시대에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일갈한다. 책의 부제 ‘건축의 통일성을 찾아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어 ‘palais’는 궁전뿐 아니라 국가기관의 청사를 뜻하기도 한다. 르코르뷔지에는 국제연맹 청사를 소수 권력자를 위한 권위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집’으로 새롭게 제안했다. 진정한 고귀함을 상징하는 궁전의 정신을 세계인을 위한 집에 담아내겠다는 르코르뷔지에의 의도가 집과 궁전이란 두 단어를 같은 무게로 나란히 세운 제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집은 하나의 궁전이다. … 궁전은 하나의 집이다. 나에게 남은 과제는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 우리는 집을 궁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통일성의 원리라는 절박함 속에서, 궁전은 집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 새로운 건축을 향한 도전,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이 책에서 공모전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과 시대에 뒤떨어진 절충주의 건축을 우대한 부당함을 지적하는 한편, 새로운 국제 질서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면 마땅히 현대의 기술과 합리성, 기능성과 위생, 표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국가의 전통 양식이 아닌 보편적·국제적 건축, 그것이 르코르뷔지에가 국제연맹 청사에 요구한 시대정신이었다. 당시 르코르뷔지에는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시범주택단지에 주택을 지으면서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 띠창, 옥상정원으로 요약되는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점’을 발표하며 건축가로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원칙들은 국제연맹 청사 계획안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그는 아카데미의 형식 대신 동선·음향·시야·조명·냉난방 등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분석해 하나로 통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르코르뷔지에는 “분류된 기둥, 필라스터, 박공, 처마 장식” 같은 아카데미의 형식들을 거짓된 것, 나아가 “위험한 시체”라 단언하며 이를 전면 거부했다. 그가 내세우는 미학, 즉 “선의 서정성, 구성의 시적 질서, 자연에 대한 헌신, 정직하고 대담한 건설, 빛의 충만한 확산, 기생적 요소의 차단, 배정된 예산을 정확히 지키는 근본적 성실성”은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며, 한 개인의 정신적 태도의 발현이었다. 이로써 르코르뷔지에는 ‘궁전’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위선과 타락으로부터 건축을 책임과 정직함의 문제로 되돌려 놓았다. 결과적으로 르코르뷔지에는 국제연맹 청사에 이어 국제연합 본부, 유네스코 본부까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건축 공모전에서 연이어 선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는 자신의 건축적 신념, 즉 기능과 미학, 구조와 기술, 장소성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 르코르뷔지에의 사유와 실천을 담은 생생한 기록 이 책은 1928년 출간 이후 프랑스어와 일본어로만 소개되었을 뿐, 영역본조차 나오지 않은 채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보수적 건축 집단과 공모전 집행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내용 때문이었다. 이는 르코르뷔지에의 다른 저서 《대성당들이 희었을 때》가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판한 장 때문에 영역본 출간이 9년이나 미뤄지고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던 사정과도 겹친다. 화려한 성취 이면에 가려진, 시대와 불화했던 르코르뷔지에의 또 다른 얼굴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글로 설명된 원칙과 이미지로 증명된 실증이 나란히 놓이면서, 독자는 르코르뷔지에가 국제연맹 청사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건축적 통일성을 문장과 도면 양쪽에서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글과 사진, 도면, 스케치 등이 어우러진 이 구성 자체가 ‘집-궁전’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조화의 정신을 책의 물성으로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부록에 실린 기사 내용과 르코르뷔지에와 경쟁했던 이들의 계획안, 청원서, 성명서 등은 당시 분위기와 상황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이관석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건축의 본질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과제”라고 강조하며, “깊은 이해와 비판적 사고가 약화되고, 본질보다 자극적인 형식과 스타일에 집중하며, 경험의 균질화로 다양성이 줄어드는 시각 위주”의 세태 속에서 건축의 고전(古典)인 이 책이 깊이 사유하는 훈련의 기준점이 되어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건축의 본질과 시대정신을 치열하게 탐구하며 새로운 건축의 탄생을 선언한 르코르뷔지에의 사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그의 건축 철학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안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