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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하나
제1부 발에 닿아서 땅에 파묻히도록 의자 | 가늘고 긴 그늘 | 우는 방법 | 긁힘 | 너의 깃발 | 무작정, 그늘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 년이 지나간다면 | 우리는 왜 웃어야 하지? | 깃발 | 낮달 | 인사를 해야 할까! | 내가 당신이라는 구름다리를 건널 때 | 속절없이 | 보이지 않는 이야기 제2부 눈을 뜬 채 긴 낮꿈을 꾸는 어리연 | 최초의 경전 | 궤적(軌跡) |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은 낮꿈 | 기록 | 눈썹달 같은 눈을 붙여 줄게 | 달빛 | 그늘 속에서 | 오늘을 위한 구상 | 너울성 파도 | 물의 파편들 | 만난 적 없는 내가 수없이 들락거리는 | 시그널(signal) | 바닥 | 나뭇가지 끝에 매달리는 제3부 풀의 목을 베며 숲으로 들어갔다 황(慌)과 홀(惚) | 당신의 입술 끝에서 | 구름 | 번개를 보다 | 해 질 무렵 | 찬란한 오월 | 10월, 건기 | 삼키거나 내뱉거나… |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 쓸쓸한 맛 | 봄의 증거 | 산11번지 | 둥근 옛길 거기 서 있었네 | 늘 안녕이라예 | 거울 속에는 제4부 부드러움이 가진 말 없는 자유 8월과 9월 사이 | 춤추는 바람 | 접속 | 문 안의 고요 | 저녁 삽화 NO. 9 | 너울너울 | 지금 이 순간 | 저녁이 우는 소리 | 비밀 | 안녕하신지요! | 자화상 | 만발(滿發) | 연못 한 그루 해설 생명적 존재의 수축과 흐름, 중간자 시안(詩眼)_정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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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끝,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속절도 없이,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얼굴 없는 얼굴, 비가(悲歌) 속에 나를 가둔다
--- 「속절없이」 중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끔은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 태어난다 나의 몸에 솟대를 세운 오후 정수리에 꿀벌이 앉는다 꽃이라 인정되지 않는 순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번개 내 몸에도 피뢰침이 있다는 걸 알았다 ---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은 낮꿈」 중에서 절벽을 만들어낸 엄마 막내딸 시집가는 날 꽃들의 고통으로 불러댄 엄마 서로의 등을 쓸어내리며 엄마를 보내드렸다 --- 「언니」 중에서 신의 손길 같은 그런 아침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거야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과거가 된 그날 씁쓸하고 쓸쓸한 맛 살아갈수록 쿨룩거리는 거야 그물에 걸리지 않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야 --- 「씁쓸한 맛」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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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초현실, 그 사이에서 나를 찾다
중간자의 시선으로 길어 올린 안효희의 네 번째 시집 · 8월도 9월도 아닌 그 틈에서 만나는 존재들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존재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 온 안효희 시인이 네 번째 시집 『8월과 9월 사이』를 펴낸다. 이번 시집은 57편에 걸쳐 현실과 초현실, 이곳과 저곳, 8월과 9월 사이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자리를 묻는다. 시인은 “지도에 없는 나를 찾아 평생을 헤매었다”고 고백하며 등이 굽고 눈이 먼 채로 안개 가득한 현실 속을 지나온 시간을 풀어놓는다. · 사이의 시간, 그림자를 불러내는 주술 표제작 「8월과 9월 사이」에서 화자는 “가을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 8월도, 9월도 아닌 시간 속에 놓여 있다. 시인은 현실의 시간을 분절하여 그 사이에 존재하지 않던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 틈에서 “나무와 새가 붙”고, “손가락이 길어져 발가락에 닿”는, “자고 나면 거짓말처럼 길어지는 목”(「해 질 무렵」), “닳아 없어진 혀”(「삼키거나 내뱉거나…」)와 같은 해체된 몸을 세운다. 이는 현실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면서도, 동시에 고해성사를 향한 죄의식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오려는 갈등이기도 하다. 일탈과 순응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 목소리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며, 시인이 완전한 해방보다는 유희적인 카타르시스에 머무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 바닥과 나 사이, 경계를 허무는 연결접속 비소통의 대상들과 만나며 다시 태어나는 존재들 어릴 적 바닥에 선을 긋고 놀았던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었던 공간에서 벗어나 가로막힌 붉은 정지 신호등 내가 모르는 어떤 급류가 바닥을 긁고 있는 것인지… 이제 나를 다 써 버리고 드러난 바닥 울퉁불퉁 점점 넓어지는 불온한 통점 -「바닥」 중 안효희의 시적 화자는 늘 사물들 사이 어딘가에 서서, 무엇과도 연결될 수 있는 감응의 촉수를 뻗는다. 「바닥」에서 화자는 평생 아래로만 여겼던 바닥과 처음으로 마주하며 “이제 나를 다 써버리고 드러난 바닥”에 이르러 바닥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연못 한 그루」에서는 “엎드려 사는 달팽이”가 되었다가 “먹이를 기다리는 고양이”가 되었다가 하는 존재들이 자유롭게 뒤섞이며, “아직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위계도 중심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 시집에서 소통은 이성적 메시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우연히 부딪히며 생겨나는 감응의 사건이다. · 흐르지 않으면 사라진다 관계 맺기를 멈춘, 생명의 수축과 존재성 시인에게 존재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수축하고 변형되는 흐름이다. 「의자」에서 낡아서 버려진 의자는 더 이상 누구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연결이 끊긴 존재의 은유이다. 궁극적으로 오래될 수밖에 없는 나는 버려졌다 낯선 이름표를 달고 거리에 내몰린 지금, 새삼 앉을 것인가 서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집을 나서야 무언가를 깨닫는 것처럼, 지루했던 어제, 그것은 평화였다 (…) 그동안의 아침과 저녁을 지우고 나는 어떤 새로운 비행으로 꿈을 바꾸어야 할까! _「의자」 중 「무작정, 그늘」의 화자는 “자신을 버려야 나의 색이 변하고 너의 맛이 변하는” 비행을 감행하며, 「만난 적 없는 내가 수없이 들락거리는」에서는 “거울” 앞에서 “마흔아홉 번째”의 낯선 삶을 지각한다. “발목이 시린 관 속 같은 방”에서 “굽은 마지막 손가락을 펼”(「봄의 증거」)치는 시인은 이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흐르지 않는 존재, 더는 누구에게도 욕망되지 않는 존재야말로 이미 죽은 것이라 말하며 “쉬지 않고 나를 흔드는… / 쉬지 않고 너를 흔드는…”(「접속」) 흔들림이야말로 살아 있는 증거라고 노래한다. 중간자로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그린 안효희의 이번 시집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사이를 떠도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