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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한 지성인 법률가의 짧은 삶
프롤로그 : 조영래, 왜 그를 기억하려 하는가? 1 성장 >유년의 뜰 감꽃 먹고 낳은 아이/ 너무나 짧았던 조기교육/ 아버지의 사업실패/ 가족의 빛과 그림자/ 열 달 내내 계속된 태몽 >대구에서 서울로 어른스런 소년/ 삼남매의 서울살이/ 아련한 졸업식 풍경/ 장래 희망은 서울법대와 정치가/ 백일장과 웅변대회/ 영어와 한문 공부/ 가출 사건 >세상에 눈뜨다 경기고등학교 입학/ 역사적인 사진 한 장/ 두 차례의 정학 2 학생운동과 조영래 >4.19와 5.16 그리고 대학 4.19, 자유의 기치/5.16, 군사정권의 등장/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 가난의 미학, 독재의 그늘/ 고학, 대학생의 원형/ 4.19와 5.16은 2인3각?/ 헌법과 5.16 >서울법대의 학생운동 60년대 초, 사회주의 색채의 탈피/ 68년 세계 학생운동/ 1970년대, 군부독재와의 정면대결/ 10월 유신과 최종길 교수의 죽음/ 1980년대, 사회주의의 재등장과 반미사상의 전파/ 조영래와 관악 세대 >조영래와 불교 불교와의 만남/ 생활규범으로서의 불교/ 법불회와 척사회/ 법불회의 지도 승려들: 소천, 광덕, 법정/ 대학생 구도부의 창립: 조영래와 봉은사/ 소신공양의 예보/ 등산불과 소신공양/ 세속의 불법(不法)과 (佛法)/ 미완의 숙제: 불교사회사상의 정립 >한일회담과 6.3 학생운동 군사정권과 한일회담/ 한일회담의 진행/ 학생들의 소박한 인식/ 무장군인 법원 난입과 변협의 활약/ 학생운동의 중심 이동: 문리대에서 법대로/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배경/ 무장군인의 학원 진입과 6.3 학생운동/ 중국의 학생운동/ 독기의 지성, 유기천 총장 >사카린 밀수 사건과 학생운동 신삼권분립론/ 사카린 밀수 사건/ 재벌언론의 곡필/ 조영래의 사자후 >12년 걸린 석사학위 대학원 진학/ 세상을 앞서간 석사논문 3 전태일과 함께한 10년 >전태일 근로기준법/ 청계천의 봉홧불/ 한국기독학생회와 서울법대생/ 전태일 분신의 파장/ 노학연대의 효시/ 사법시험 합격, 이옥경과의 만남/『전태일 평전』의 탄생/ 시민공익법률사무소와 이소선 여사/ 두 사람이 꿈꾸던 나라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겨울공화국과 전면적인 민주화 투쟁 민청학련 사건과 조영래의 도피 생활/ 1975년 사법 살인/ 국민투표, 유신헌법의 연명/ 김지하의「고행-1974」/ 서울대생 김상진의 죽음/ 김지하의「양심선언」과 조영래 >자유언론실천운동 언론 탄압의 역사/ 백지광고 사태 4 인권변호사 조영래 >1980년, 사법연수원 겨울공화국의 재림/ 수배 생활의 청산/ 아름다운 삽화/ 주례 홍성우 >인권변론 인권변론의 역사/ 정법회의 탄생/ 청변의 태동과 민변의 탄생 >시민공익법률사무소 자유와 평등/ 시민공익법률사무소의 탄생/ 공익법운동/ 『시민과 변호사』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가장 비열한 폭력/ 전대미문의 사건/ 역사를 바꾼 선택/ 세상의 반응/ 변호인단의 총력전/ 조영래의 예견과 혼신의 집필/ 법원의 일그러진 초상/ 눈물의 법정 변론/ 최후의 승리/ 권인숙의 새 출발 >망원동 수재 사건 한 법률가의 집념/ 전문가들을 무력화 시킨 과학적인 반론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시대의 흐름을 읽는 열린 자세/ 인습의 장벽을 무너뜨리다 >다른 사건들 선구적 환경 소송: 상봉동 진폐증 사건/ 한겨레 신문 압수수색 취소청구 사건/ 『자본론』출판 사건/ '보도지침'의 석명/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얻다 5 좌절과 새 길의 모색 >1987년 인권보고서 발간의 산파역/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6월 항쟁/ 후보 단일화에 대한 조영래의 신념 >1988년 이후 김근태 고문 사건/ 아듀, 1980년대/ 새로운 역할의 모색: 국제적 인권운동 6 인간 조영래 >통합적 지성 창조적 변론의 원천/ 자연과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 조영래의 미국관/ 서울올림픽 이야기 >지식인과 서울법대 달력과 권력/ 육법당의 영욕 >조영래의 죽음 죽어서 산 자/ 민주열사 묘역의 조영래지묘/ 분신자를 위한 천도재/ 남은 가족/ 사후 15년/ 시대암 에필로그- 분별 있는 열정의 삶 조영래 연보 참고문헌 |
安京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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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趙英來)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삼선개헌 반대 등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접하고 전태일 정신의 계승과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1971년 사법연수원 연수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반 동안 투옥되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6년간의 수배 생활을 겪었다. 힘든 수배 기간 동안에도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숱한 어려움 속에서『전태일 평전』을 집필, 완성하는 놀라운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전태일 평전』의 저자로서 조영래의 이름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고 그의 사후에야 조영래의 이름을 단 책이 출간되었다. 1980년 복권 후 사법연수원에 재입소, 법조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 사건,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등에서 보여준 조영래의 용기와 열정은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사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영래가 펼치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은 1990년 12월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남으로써 미완의 상태에서 봉인되었다. 유고집『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는 없습니다』(1991)와『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1992)이 사후에 출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