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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줘
바늘 자국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작가의 말 |
Bora Chung
정보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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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서상, 필립 K. 딕상, 부커상,
로커스상, 어슐러 K. 르 귄 소설상 최종 후보 정보라의 초기 작품 세계로 향하는 세 개의 문 길고양이 출신 귀야옹 씨가 펼쳐나가는 악몽과도 같은 인공지능과의 싸움을 다룬 표제작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부터 지네 요물에게 바쳐질 제물이 될 자신의 곁을 유일하게 지켜준 사람을 위해 온몸에 바늘자국을 새기는 여자의 이야기인 「바늘 자국」과 여성에게 강제적인 임출산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이름’을 지키려는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이야기가 잔혹하고도 섬뜩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내 이름을 불러줘」까지 오직 정보라의 초기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클래식의 정수를 직접 마주해보길 바란다. “혁명이 끝났을 때 그녀는 손목 안쪽에 박힌 작은 칩과 그 옆에 새겨진 초록색 여섯 자리 숫자가 되었다.” 이름을 빼앗긴 존재들을 위한 가장 치열하고도 눈물겨운 호명 「내 이름을 불러줘」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갖는 이름은 개인을 호명하는 수단이자 존재를 증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이름을 잃을까? 이름을 잃은 자, 무명의 당사자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녀’가 사는 세상은 한 차례 혁명이 끝나고 오직 숫자로만 개인을 식별한다. 그중에서도 생물학적 여성은 각자에게 강제 배정된 남성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비인간적인 방식의 임출산을 치러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곧장 분리되어 국가에 귀속된다. 일곱 살 때 혁명을 겪으며 가족을 잃게 된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수도 경비대원이 된다. 여느 때처럼 법을 어긴 자들의 공개 처형을 집행하고 감시하던 차, 한 시신이 되살아나듯 고개를 들어 “내 이름을 불러”달라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놀란 그녀는 재차 확인 사살을 하지만 이후 시체의 하얀 얼굴은 환영처럼 그녀 곁에 나타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세월이 흘러 그녀 역시 국가의 강제 출산 제도 아래 여러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한때 자신의 뱃속에 있었지만 국가에 귀속된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하얀 얼굴에게만 그 이름들을 몰래 속삭인다. 이름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것이 금기시된 곳에서 그 행위는 인간성을 지키는 유일한 저항으로 읽힌다. 그러던 중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한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국가에서 지정한 의례적인 절차 속에서 정신적으로 가까워지지만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유의미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후 그녀는 그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이름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녀는 세 딸과 두 아들의 이름을, 오래전에 자살한 남자의 이름을,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와 오빠와 여동생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속삭였다.(27쪽) 숫자로 환원된 인간과 제도에 잠식된 삶을 그리면서도, 끝내 타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온 정보라의 작품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곧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되는 이 소설은,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자신이 죽기 위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소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영원히 피부에 새겨지는 문신처럼 사랑으로 점철된 기억의 서사 「바늘 자국」 마을 사람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20년마다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를 요물에게 제물로 바친다. 마을의 지주 집안은 대대로 친딸 대신 고아를 수양딸로 들여 희생양으로 삼아 왔고, 소녀 역시 그런 운명을 타고난 존재다. 사람들은 소녀에게 부족함 없는 삶을 제공하지만, 죽음이 예정된 그녀와 진심으로 가까워지기를 두려워한다. 그런 소녀의 곁을 유일하게 지키는 이는 몸종 애련뿐이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소녀는 자신이 누구의 것도 아닌 애련의 사람임을 깊게 맹세한다. 그러나 제물로 바쳐지게 될 그날 밤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죽어도 네 사람이다.”(46쪽) 「바늘 자국」은 한국 설화와 괴담의 형식을 빌려 사랑과 상실 그리고 기억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는 ‘바늘 자국’의 의미는 서사를 재차 뒤흔드는 충격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때의 자국은 단순한 기록의 형태를 넘어, 사라진 사랑을 붙들기 위한 몸부림이며, 세상이 지워버린 진실을 남기기 위한 마지막 증언이 된다.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사랑, 복수보다 오래 남는 그리움,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던 마음 그리고 기억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흔적임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작가의 세계가 오래전부터 완성되었음을 체감하게 만든다. “그녀를 포함해서 짐승은 모두 야생의 일부였으며 그 사실을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세상을 자신의 모습대로 바꾸려는 오만한 시도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세계가 주목한 이 시대의 소설가 정보라가 묻는 인간다움에 관하여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귀야옹 씨는 길고양이 출신이다. 도시의 골목에서 살아가며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인간의 손에 새끼들을 잃는다. 이후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제는 집사가 된 인공지능 연구자와 함께 살아가게 된 귀야옹 씨는 여전히 상실의 기억을 품은 채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불청객처럼 찾아온 존재의 낯선 냄새가 집 안에 풍기기 시작한다. 귀야옹 씨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불길한 그 존재의 냄새가 오래전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기억과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이후 귀야옹 씨는 집사의 연구실에서 죽은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기술의 가능성과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현실을 동시에 마주한다.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는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낯설게 바라보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정보라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인간 문명이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들을 근본부터 되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독자는 가장 잔혹한 존재가 누구인지, 또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보라의 초기 작품이 수록된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에서는 오늘날 정보라 문학을 특징짓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이미 선명하게 담겨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름을 빼앗긴 존재들의 저항, 상실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훗날 『저주토끼』와 『너의 유토피아』로 이어질 정보라 문학의 출발점이라 할만하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전, 인간의 존엄과 기억, 연대와 애도를 향한 작가의 시선은 이미 완성에 가까운 밀도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SF와 호러, 괴담과 환상문학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작가가 처음 세상에 내놓았던 질문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