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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서운 일 1 우리가 보낸 밤들 벽귀 기억나비 어둠이 그럴 줄은 소리를 데려온 날 소리의 조각 작은 구멍에서 태어나 소리가 달아날 때 늙은 깃털의 방 당신이 숨을 불어 보라고 하면 너와 나의 혀 개개비는 떠났고 늦은 발걸음의 무덤 그럴 일 없을 것 같았는데 2부 거미가 없는 아침 일부의 서랍 양철 우산 기도하러 가는데 푸른 누에를 위하여 삼투 달이 작아지는 길 달개비 잠을 배웠는지 그렇게 되고 만 걸까 이름 밑의 것들 어떤 궤도 마땅한 일 어두워지면 보이는 것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의 젖꼭지를 물고 3부 걱정했는데 걱정거리 사진첩 1 왜들 저러나 싶은데 맏이와 막내의 일 괜찮거나 괜찮지 않은 시퍼런 일 낮은 소리 몇 번째인가의 셋집 검은꼬리박각시 시간은 뿌리에서부터 잰다 남은 저녁 멀미 덜컥 사진첩 2 4부 시렁에 매달려 고민을 그만두고 흔적과 배후 은빛 머리카락 어느 이후 시간을 길렀다 종지에 담기는 것들 시간이라는 습포가 덮이고 망한 직조공 노래를 들여놓고 허수아비의 장르 필요하지 않은 길 구슬 속이었다 무서운 일 2 해설 겨울을 견디는 법 ?남승원(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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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 154
천세진 시집 『양철 우산』 출간 “알아 어느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사랑하면 그런 궤도를 갖게 된다는 걸” 미완성의 감각으로 포착한 삶의 풍경과 기억의 서사 천세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양철 우산』이 걷는사람 시인선 154번으로 출간되었다. 『양철 우산』의 화자들은 아무것도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품을 수 없어 강에 풀어놓은 소리의 움직임을, 흘려보낸 기억이 다슬기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늘 다니던 산책길의 작은 종지 하나에서 어린 시절의 꽃과 동화 속 인물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천세진은 완성이라는 목표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을 조용히 포착해 시 속에 담아낸다. 빗방울 소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양철 우산을 쓰고 싶다는 당신은 양철 지붕 아래서 오래 잠들었던 사람 같다 독이 든 생감자를 먹었을지 아카시아 가시에 손톱 밑을 찔렸을지 알 수 없으나 당신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다 입을 맞추었을까, 양철 지붕 열기가 목에 걸린 감자를 익혔을까 어느 지붕도 양철 지붕처럼 비를 울리지는 못하고, 이곳은 비가 자주 오는 곳 당신은 깨어나지 않는 잠들이 사는 박물관 옆에서 자랐을 것 같고 양철이 울릴 때마다 깊은 잠 속으로 돌아갈 것 같다 그런 당신을 깨우는 습관을 나는 언젠가 잊을 것 같다 ―「양철 우산」 전문 1부와 2부는 “소리”를 중심에 세운다. 이 시집의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시인이 말하는 “소리”는 “풍경 속에 사는 짐승”이며, 잡아 두거나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의 총칭에 가깝다. 표제작 「양철 우산」은 이 시집에서 “소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시다. 시는 빗방울 소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싶다는 어느 사람의 말에서 시작해, 양철 지붕 아래 긴 잠에 들었던 사람의 모습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런 당신을 깨우는 습관을 나는 언젠가 잊을 것 같다” 잊을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그 사이의 시간. 천세진의 시는 그것을 가장 담백한 언어로 붙잡는다. 3부에는 가족의 내력을 배경으로 한 시들이 모여 있다. 「사진첩 1」과 「사진첩 2」, 「맏이와 막내의 일」, 「덜컥」처럼 직접 설명하거나 해명하는 대신 사진첩을 넘기듯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4부에서는 시간과 겨울, 그리고 시 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이 깊어진다. 「종지에 담기는 것들」에서 시인은 늘 다니던 산책길에 놓인 작은 종지 하나에서 어린 시절의 꽃, 냇가에 데려가 풀을 뜯기던 염소, 동화 속 인물들을 발견한다. 종지는 넘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에 차여 엎질러져도,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은 반짝인다.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이 시가 “비록 우리의 삶이 갖은 시련 속에서 ‘엎질’러졌을 때조차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에서도 ‘반짝’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향한다“고 말한다. 『양철 우산』은 완성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돌아오는 것들의 무게를 견디며 하나 남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시집은 독자에게 어떤 결론도 건네지 않는다. 그 대신 작은 종지 하나, 늙은 깃털 한 올, 빗소리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어느 사람의 마음을 곁에 놓는다. 겨울을 견디는 일은 그런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시인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시인의 말 떠난 것들이 자꾸 돌아온다 길의 끝이 이곳인 것처럼 돌아온다 돌아오는 것들 때문에 자꾸 무거워지고 눈이 세 개가 되었으나 하나는 퇴화 속에서 암중모색 중이고 나머지 둘은 함께 잠들지 않는다 돌아오는 것들을 위해 눈동자 하나에 겨우 의지했다 2026년 6월 천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