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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4
여는 글_ 마음의 빛을 돌이켜 본래의 자리를 묻다 10 좌선요의 16 1 선수행의 구경 17 2 확고한 신심 23 3 견고한 발심 28 4 정견의 확립 - 중도정관 34 5 좌선의 위의 44 6 달마의 벽관좌선 50 7 좌선의 진정한 의의 59 8 좌선간심 70 9 북종선 - 관심일법 76 10 돈오견성 - 자재해탈 83 11 정혜등지와 무념 · 무상 · 무주 93 12 일념수행 - 좌선과 선정 101 13 진여불성과 공적영지 112 14 무심시도 119 15 즉심시불 - 마음이 부처다 126 16 평상심이 도이다 131 17 자가보장 137 18 직하무심 142 19 여래청정선과 돈오점수 152 20 오가종과 조사선 159 1) 임제종 : 임제장군 - 무위진인과 간화의 역동성 161 2) 조동종 : 조동사민 - 묵조와 본증묘수 164 3) 위앙종 : 위앙부자 - 원상과 체용일여 171 4) 운문종 : 운문천자 - 일자관과 절단중류 175 5) 법안종 : 법안재상 - 만법유식과 사사무애 179 21 성재작용 183 22 묵조선 수행 197 23 간화선 수행 201 심지법문 211 1 오정심관 - 번뇌를 다스리는 다섯 가지 관법 213 2 회광반조 - 빛을 돌이켜 내면을 비추다 217 3 체원진도 - 원망을 체달하여 도에 나아가다 222 4 수일불이 - 하나를 지켜 흔들리지 않다 226 5 수본진심 - 근본의 참마음을 지키다 229 6 본래무일물 - 본래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다 232 7 일념수행 - 찰나의 한 생각에서 해탈하다 235 8 염기즉각 - 생각이 일어나면 즉시 깨달아라 239 9 평상심시도 - 평범한 마음이 곧 도이다 243 10 공적영지 - 텅 비어 고요하지만 신령하게 안다 245 11 선오후수 -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다 249 12 직하무심 - 곧바로 조작 없는 마음에 들라 253 13 견성성불 - 본성을 꿰뚫어 부처를 이루다 256 14 평상무사 - 평상시대로 조작 없이 당당하다 259 15 상적상조 - 고요하면서 밝게 비추다 261 간화정종 - 간화선 수행 【 2전제 · 1토대 · 5본제 수증 체계 】 264 1 간화선의 특징 266 2 간화선의 현대적 효용 : 무규정성의 수증 원리 268 3 간화선 수증 방편 271 맺는 글_ 삶이 곧 선이 되는 향기로운 여정 306 |
不二 月庵,불이 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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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참된 선(禪)은 경직된 교조(敎條)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찰나마다 또렷이 깨어 있으면서 시방으로 활짝 열려 있는 삶, 바로 그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혜의 눈을 두렷이 뜨고 자비의 손길을 거침없이 내미는 당당무애(堂堂無礙)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선수행이다. 수행자는 낡은 허울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생사의 굴레를 타파하여 일체중생을 널리 이롭게[饒益衆生] 해야 한다.
--- p.8 처음 좌선을 배울 때는 마땅히 사대오온(四大五蘊)과 안팎의 일체 경계가 본래 공적(空寂)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지극히 평등하여 결코 둘이 아님[不二]을 직관해야 한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 늘 이와 같이 반조한다면, 나라는 존재가 물속의 달[水中月]이요 거울 속의 영상[鏡中像]이며, 아지랑이이자 텅 빈 메아리임을 활연히 깨닫게 된다. --- p.73 대주 선사에게 ‘앉는다[坐]’는 것은 단순히 육신을 가부좌로 묶어 두는 외형적 껍데기 짓이 아니다. 외부의 어떤 자극이나 대상 경계를 마주하더라도 시비 분별이나 애증이 털끝만큼도 일어나지 않도록 밖으로 치달으며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또 쉬는 것이다. 끊임없이 조작하려는 삿된 망상을 철저히 쉬어 버리는 내면의 궁극적 멈춤이 곧 참된 ‘앉음[坐]’이다. --- p.140 묵조선은 중국 남송 시대 조동종(曹洞宗)의 굉지정각(宏智正覺) 선사에 의해 천하에 크게 선양(宣揚)된 좌선 수행법이다. 묵조선의 묵조(黙照)란 거친 번뇌를 온전히 쉰 ‘수묵좌선(守黙坐禪)’의 묵(黙)과, 자성을 거울처럼 맑게 비추는 ‘반조자성(反照自性)’의 조(照)를 하나로 융합한 말이다. --- p.197 게송으로 말한다 : 息盡攀緣萬念虛 식진반연만념허 靈明古鏡照眞如 영명고경조진여 寂照不二圓融境 적조불이원융경 默坐無求是佛居 묵좌무구시불거 반연심이 다 쉬니 만념이 텅 비고 신령하게 밝은 옛 거울이 진여를 비추네. 적과 조가 둘 아닌 원융한 경계에서 구함 없이 묵묵히 앉은 그 당체가 곧 부처의 자리네. --- p.262 간화선은 선종의 가장 깊은 골수이자 마음의 정수[心髓]이다. 화두를 들어 의심하고 다시 의심하여 마침내 생사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이 수행은, 달마 대사가 동쪽 땅에 법을 전한 이래 천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온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올곧은 길이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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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수행임을 실천하는 눈푸른 납자]
월암 스님은 1973년 경주 중생사에서 출가하였고, 중국에 유학하여 북경대학교 철학과에서 중국 철학을 공부하고 선학을 전공하였다. 중국의 저명한 사찰과 국내 제방 선원에서 수선 안거하였으며 전국선원수좌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선학 정립과 선원 발전에 기여하였다. 스님은 『간화정로』, 『돈오선』 등을 출간하며 간화선과 돈오선의 사상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선수행과 계율수지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선율겸행』과 선(禪) · 율(律) · 정토(淨土) 사상을 융회하여 『선정겸수』를 출간하였고, 『휴휴선』을 출간하여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에 있어서 수행자는 물론 일반 불자들에게 환한 등불이 되고 있다. 또한 스님은 전법의 일환으로 불이선회를 이끌고 있는데 불이선회는 참선 정진하는 수행결사체로서 많은 불자들의 수행처가 되고 있다. 이는 2009년 문경 한산사에서 시작되었으며 불이선 근본도량 한산사와 중흥사를 중심으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닌 삶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마음의 빛을 돌이켜 본래의 자리를 묻다] 월암 스님은 무릇 좌선이란 고목처럼 형상만 굳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밭에 쉼 없이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을 쉬고 또 쉬어 마침내 텅 빈 자리에 이르는 역동하는 멈춤이라고 일갈한다. 좌선의 궁극은 기이한 이적(異蹟)을 드러내는 신통이나 특출한 경지를 밖에서 구하는 데 있지 않다.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잠드는, 그 텅 비고 고요한 일상의 마음이 곧 진리임을 철견(徹見)하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묘용(妙)에 그 참뜻이 있다고 밝혔다. [선(禪)은 선방의 좌복에만 머물지 않는다] 좌선의 완성은 고요한 선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간화선의 묘미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의 매 순간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살아 있는 역동성에 있다. 진정한 수행의 결실은 안락한 공간을 훌쩍 벗어나는 용기에 있다. 삶의 치열한 먼지가 일어나는 세상 한복판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디뎌, 소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동정일여(動靜一如)의 참 된 증득이 시작된다. [삶이 곧 선이 되는 향기로운 여정]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과 역대 조사들께서 전한 좌선의 요체, 그리고 달마 선사로부터 조계의 혜능 선사를 거쳐 대혜종고 선사로 이어지는 간화정종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두루 살핀 스님은 이제 이 책을 덮고 좌복에서 일어나 모두 정법을 함께 닦는 도반이 되어, 최상승의 선(禪)인 반야바라밀을 향해 나아가자고 좌선행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지금까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떤 공부를 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수행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올바른 가르침을 따라가면 될 일이다. 월암 스님의 자비로운 손을 잡고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에 함께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