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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궤도 10 · 이정모 12 · 장강명 14
머리말 | 17 1장 | “과학적으로 옳다”는 함정 21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백신 반대 운동의 탄생 23 · 디지털 시대를 연 위대한 과학자가 사악한 차별주의자였다고? 28 · 감정이 좌우하는 “과학적 옳음” 33 · 정치가 과학을 지배할 때: 레이건, 대처, 트럼프 34 · “진짜”로 위장한 “가짜”들의 전성시대 38 2장 | 진실은 왜 왜곡되는가 43 인도를 덮친 내셔널리즘 오컬트 과학 45 · 스탈린을 기립시킨 기적의 농업 기술 49 · 환경이 개체를 바꾼다: 트로핌 리센코의 유사과학 “미추린 생물학” 52 · 박사 학위 없는 “천재 과학자”의 권력 장악과 과학계 숙청 55 · 유전학 연구와 수업이 폐지되고 유전자는 금지어가 되다 58 · 미디어와 정치권력이 만들어낸 우상: 빈농 출신 “맨발의 구세주” 60 · 드높은 명성과 실제 성과 사이의 괴리 63 · 숫자 조작과 부정행위로 목표 달성을 위장하다 67 · 세계 최고 생물학 강국 소련의 몰락 69 · 기초과학은 쓸모없다: 국가 지적 기반의 붕괴 요인 73 ·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 계량주의가 불러온 비극 76 · 이데올로기가 “옳은 과학”을 결정한다: 리센코식 사고의 확산 79 · 메시아 효과: 또 다른 리센코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81 3장 | 옳음은 사실로부터 생겨나는가 85 도킨스, 논란의 중심에 서다: 인간도 품종 개량이 가능한가 87 ·열등한 자들은 배제하고 우수한 인간만 남긴다: 골턴과 우생학의 탄생 90 · 노동자 계급 제거와 제국주의는 생물학 법칙: 피어슨과 영국 우생학의 발전 94 · 범죄는 열등한 혈통에서 비롯된다: 대븐포트와 미국 우생학의 융성 97 · 미국이 낳고 키운 괴물, 히틀러의 우생학 99 · 흄의 법칙과 자연주의적 오류 102 · 우생학자와 동일한 오류를 저지르는 우생학 비판자 105 · 가장 위험한 것: 자신이 “가치 중립”이라는 착각 107 4장 | 왜 옳다고 믿어버리는 걸까 109 학력 격차의 원인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111 · 피는 못 속인다: MAOA-L 변이와 반사회적 행동의 관계 112 · 폭력과 범죄를 부르는 “전사 유전자”는 정말로 존재할까 115 · 가치 판단이 MAOA-L 변이의 위험성을 호도한다 118 · 왼손잡이는 9년이나 단명한다: 왼손잡이 생존 불리설의 진실 120 · 유전체 분석이 보여주는 왼손잡이가 되는 이유 125 · 배란기 여성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남성 형질을 선호한다? 127 · 과학적 인종주의: 차별을 생물학으로 정당화하는 가짜 과학 133 5장 |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는가 139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정말로 폭발이었나 141 · “폭발” 신화는 왜 생겨났을까 146 ·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용어가 “초현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든다 149 ·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있다 151 · 여섯 번째 대멸종은 정말로 시작되었을까 154 · “설명의 정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156 · “여섯 번째 대멸종” 표현의 허용 범위와 전제 조건 158 · 생물 다양성은 과연 “선”일까: 보전생물학의 배타주의와 식민지주의 161 6장 | 진실은 언제나 하나인가 167 반차별·반권력·상대주의와 “거대 서사” 불신: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구축 169 · 과학은 문화의 산물이며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패러다임과 사회구성주의 172 · 가짜 논문이 촉발한 “소칼 사건”과 『지적 사기』: 1990년대를 뒤흔든 “과학 전쟁” 175 · 정상과학에서 탈정상과학으로: 불확실성과 사회적 리스크라는 문제 178 · “동기화된 추론”과 “암묵적 편향”: 사실과 가치 판단은 서로 얽혀 있다 180 · 백신 부작용은 어디까지 허용 가능할까: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 참여 183 · 2010년대 재현성 위기: 경쟁주의와 정량 평가 이데올로기의 지배 185 · 가짜 과학이 상대주의를 악용할 때 190 7장 | 사실은 어떻게 위장되는가 193 과학적 옳음의 기준은 하나뿐인가: 창조과학과 상대주의의 덫 195 · 기독교와 진화학, 우생학의 밀월 관계 198 · 진화학 VS 창조론: 정치와 교육, 과학으로 파고든 종교 운동 201 · 진화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지적 설계론의 기묘한 논법 203 ·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타도하자: 지적 설계론과 “쐐기 전략” 208 · 진화학은 사회가 만들어낸 서사에 불과하다: 지적 설계론자의 과학 비판 211 · 『눈먼 시계공』의 서술 방식에서 비롯된 오해 213 · 유사과학도 학교에서 자유롭게 가르쳐야 한다: 지적 설계론의 교육 장악 시도 215 · 지적 설계론자들이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공격하는 이유 218 · 되살아나는 “자기 회복 불가능한 과학”의 악몽 221 8장 | 위장된 사실에 속지 않는 법 223 신뢰할 수 없는 과학을 걸러내는 방법 225 · 자신은 편향되지 않았다는 착각 228 · “진화는 진보”라는 오해 230 · 과학적으로 옳은 설명을 이끌어내는 법 232 ·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깨라: 테크업계의 가치관에 스며든 오류 237 · 테크업계의 기술 유토피아 사상은 어째서 위험한가 239 · 유전자 변형 생물로 외래종을 박멸한다: 신기술 활용의 올바른 판단 절차 240 · 이해관계가 대립할 때 해야 할 일: 생태계 보전 VS 농민 피해 242 · 가치관을 분명히 밝히고 존중하기: “자기성찰”과 “입장 표명” 244 · AI 대화 실험으로 알아낸 “자기성찰”의 음모론 교정 효과 248 9장 | “과학적 옳음”을 위한 입장 표명 251 나는 가치 중립적 존재가 아니다 253 ·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은 좌익의 정치 공격?: 윌슨 VS 르원틴과 굴드 256 · 적응주의 VS 다원주의: 누가 옳은 과학인가 263 · 과학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학파 계보 265 · 자신의 계보 자각하기 267 · 공적인 장소에서 과학을 이야기할 때 지켜야 할 원칙 269 · 설명의 블랙박스화를 의심하라 273 ·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 274 · 진화학은 가치관을 무시한 채로 응용할 수 없다 276 · 핵심은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을 관리하는 것 279 · “옳음”을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281 맺는말 | 285 주 | 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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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다만 이런 사실 또는 판단이 인간이나 사회에 영향을 끼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럴 때의 “옳음”에는 윤리, 신앙 등에 근거한 바람이 겹친다. 또는 입맛에 맞는 규칙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이나, 방해가 되는 도덕 규범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의도가 스며들기도 한다. 이러한 소망, 욕망, 가치관이 때때로 과학의 세계에 거짓 “옳음”을 끌어들인다. 과학에 거짓 “옳음”이 대두하고 만연하면 끔찍한 결말이 닥친다는 사실을 역사는 이미 증명해 보였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이런 위험한 시대의 문턱에 서 있는지 모른다. 불행한 세계의 도래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거짓 “옳음”이 어떻게 유도되는지 이해하고, 가치관에 따라 “옳음”이 어떻게 손상되고 위장되고 악용되는지 알아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언뜻 과학적으로 옳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뢰할 수 없는 주장, 잘못된 주장, 유해한 주장, 아예 과학이 아닌 주장에 초점을 맞춘다. 권력, 미디어, 편견, 이데올로기, 내셔널리즘nationalism, 과신하거나 위장한 객관성이, 그리고 이런 것들에 사로잡힌 과학자가 얼마나 과학을 훼손하고 사회에 불이익을 초래하는지를 다양한 현재 또는 과거 역사 사례로 보여주고자 한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과학의 신뢰성을 지킬 수 있는지, “옳음” 없는 허무주의 세상의 도래를 막을 수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 pp.19~20 1장 “과학적으로 옳다”는 함정 “애초에 백신이 필요 없었던 거 아냐?” “백신은 우리 몸에 위험하대.” “이거 다 제약 회사가 돈 벌려고 꾸민 거라던데?” 심지어 1998년 영국의 의사 앤드루 J. 웨이크필드Andrew J. Wakefield가 “MMR 백신(홍역measles, 볼거리mumps, 풍진rubella 예방 백신-옮긴이)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라는 날조 논문까지 발표하면서 백신 반대 운동은 가속화했다. 웨이크필드는 의학계로부터 유사과학자pseudoscientist로 규정되어 학계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백신 반대파로부터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정치적 음모 때문에 부당한 박해를 받은 구세주로서 백신 반대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추앙받게 되었다 --- p.25 날조 논문을 발표한 후 백신 반대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며 백신 이권론과 음모론을 미국 사회에 퍼뜨리고 있다. 그런 한편 트럼프 2기 정권의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20세기 전반 미국, 유럽, 러시아 등에서 유사과학이나 왜곡된 과학이 권력과 결합해 사회에 재앙을 불러온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우려스러운 문제의 핵심을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이라고 부른다. 과연 이 위협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겉으로는 옳아 보이지만 신뢰할 수 없는 담론과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담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학적 옳음”은 어떻게 담보될까? 이 책에서는 진화학evolutionary biology, 유전학genetics, 생태학ecology을 둘러싼 주제를 중심으로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진화학과 유전학은 19세기 말 이후 유사과학의 위협에 휘둘리거나, 잘못된 과학으로 변질되어 스스로 사회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사상, 종교, 정치, 권력, 미디어 등이 과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에 더해 윤리, 도덕 같은 가치 판단이 객관성을 신념으로 하는 과학적 사실과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 사례들은 무엇이 어떻게 과학을 왜곡하는지, 그리하여 사회를 불행에 빠뜨리는지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은 SNS나 영상 미디어 등 신기술을 연료 삼아 불꽃을 키워왔다. 그러나 근본은 이미 100년 이상 전부터 세계를 위협해온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책에서는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의 역사적 경위를 함께 살펴보면서, 이러한 위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 pp.40~41 2장 진실은 왜 왜곡되는가 “소젖에는 금 미립자가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가 아주 높다. ” “소똥은 방사선을 차단하는 차폐제 역할을 할 수 있다. ” “소를 도살할 때 나오는 ‘아인슈타인 고통 파동Einsteinian Pain Wave, EPW’이 지진을 일으킨다.” 하나같이 제정신인지 의심이 들게 하는 주장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2021년 인도 정부 기관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던 “소 과학” 온라인 시험의 학습 자료에 실린 내용이었다. 인도 정부는 각 대학에 이 전국 시험에 참가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라는 공문까지 내려보냈다⁽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행정 절차를 이유로 시험은 무기한 연기되었다-옮긴이⁾. 현재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이 힌두교지상주의적 내셔널리즘 노선을 내세우며 유사과학을 밀어붙이고 있다. 진화학이나 원소 주기율표는 서구 지식으로 치부되어 중학교까지 교육 커리큘럼에서 이미 삭제되었다. 반면 점성술이나 『베다 수학Vedic Mathematics』(1965) 등을 정규 대학 교육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대학원에 “점성술 과정”이 도입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학술 회의 등 공적인 자리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비롯한 과학계 정치 지도자들이 “고대 인도인은 우주선, 인터넷, 핵무기, 고도의 생식 기술이나 물리 법칙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라는 황당무계한 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 pp.45~46 “유전자 따위 누구 실제로 본 사람 있는가? 만져보거나 맛보거나 한 사람 있는가?” 리센코와 그 지지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그리고 1936년에는 공산당 중앙 지도부와 스탈린에게 “유전학자들은 체제의 반동분자며 인민의 적”이라고 호소했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 대신 있지도 않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먼저 만들어낸 뒤 이를 이유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 리센코의 상투적 수법이었다. 리센코는 이런 정치 공격과 대중 선동을 이용해 유력한 유전학자들을 차례차례 몰락시켰다. 공격 대상은 유전학만이 아니었다. 공격은 유전자라는 개념을 다루는 생물학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듬해인 1937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전학자뿐 아니라 수많은 농학자, 생리학자, 통계학자, 세포학자, 발생학자, 미생물학자가 체포·투옥·처형당했다. 2년 사이 최소 80명의 과학자가 체포되었고 그중 32명이 총살당했다. --- p.56 맨발이라는 시각적 아이콘, 가난한 무명의 젊은 천재가 엘리트 학자들을 이겼다는 카타르시스, 세계와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이런 메시아와 같은 이미지와 속성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 결과 리센코의 이론이 옳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는 리센코의 발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또는 잘 몰랐다). 그러므로 애초에 “리센코설”의 타당성은 사실적 증거에 근거한 타당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메시아 효과”, 즉 인물이 지닌 이미지와 속성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도감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과 정치권력, 미디어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메시아 효과 장치가 이후 빚어진 여러 참극의 발단이 되었다. 원래라면 과학 공동체의 자기 수정 기능이 작동해 저지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탓에 유사과학의 지배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결코 리센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리센코와 같은 존재는 언제 어디서든 모습을 달리해 부활할 수 있다. 꼭 공산당일 필요는 없다.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어떤 권력에든 적용될 수 있다. 기업이나 행정 분야도 마찬가지다. 시각적 상징은 꼭 맨발이 아니어도 좋다. 요릿집 앞치마든, 백의의 천사 코스프레든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다. 가난 프레이밍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한때 이단으로 치부되었다는 서사든, 온갖 역경을 겪었다는 서사든 무엇이든 가능하다. 이에 더해 젊은 나이에서 비롯되는 기대감, 천재성, 친숙함, 과학의 힘으로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명감 같은 요소를 미디어가 부여해 퍼뜨린다면, 과학을 파멸로 이끄는 메시아는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실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어 사회에 퍼뜨릴 수 있다고 믿는 권력과 미디어가 야합한 결과물이 바로, 사실이란 만들어진 서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유사과학자의 등장이다. 이 기만 생성 장치가 바로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 pp.82~83 3장 옳음은 사실로부터 생겨나는가 “나는 우생학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도록 소가 품종 개량이 되어왔듯이, 인간도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높게 뛸 수 있도록 품종 개량이 될 수 있다. 하늘이 이런 짓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도킨스는 신 따윈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같은 지적은 일단 제쳐두자. 다만 “우생학 정책은 나쁘다”라는 단언에서 도킨스가 우생학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포유류에게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므로 인간 역시 “품종 개량”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과학적 사실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악”이며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판단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도킨스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도 담겨 있다. “나쁘다”라는 가치관 또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범이나 도덕으로부터 “불가능하다”라는 사실 기술은 도출해낼 수 없다. 반대로 사실 기술(~이다)로부터 선악이라는 가치관이나 규범, 도덕(~해야 한다)은 도출해낼 수 없다. 요컨대 “과학적 사실과 가치, 가치 판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깨고 논리를 비약한 사례가 바로 2장에서 살펴본 “리센코식 사고”다. 다시 말해 가치관으로 과학적 사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존재가 생겨날 수 있다. 이 원칙을 지키자는 도킨스의 주장은 우생학 문제를 고찰할 때 핵심이 된다. --- pp.89~90 골턴의 우생학은 그의 제자 칼 피어슨Karl Pearson에게 계승되었다. 피어슨은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자 당대 제일가는 페미니즘 논객, 법률가이기도 했다. 피어슨은 현대 통계학의 기초가 되는 개념들이나 통계 기법들(상관계수, 카이제곱 검정, 히스토그램, 주성분 분석 등)을 고안하는 한편, 인종 또는 민족 간 능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실증”하고 우생학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피어슨은 충실한 의료와 복지가 거꾸로 인간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다. 피어슨의 주장에 따르면 일찍이 인류는 가혹한 자연선택 덕분에 육체적·정신적으로 열등한 자들이 사회에서 제거되어왔으나, 현재는 윤리관이나 동정심을 갖춘 탓에 이러한 자연의 가혹한 프로세스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자연선택의 작용이 약해지고, 원래대로라면 사회에서 제거되었어야 할 “부적격한 존재”들이 증가해 영국인의 성질이 전체적으로 열등화하고 있었다. --- p.94 미국의 우생학은 선의와 사회적 승인 아래 가려져 있던 백인 엘리트층의 차별과 편견을 과학의 언설로 정당화하며, 대재벌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또한 미디어와 법률가, 저명인의 지지를 받으며 과학자와 정치 지도자의 주도 아래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우생학의 문제점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하기 전까지, 미국의 우생학 정책은 인종차별과 빈부 격차라는 사회 문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독일 나치는 이러한 미국의 우생학과 제도를 다양한 측면에서 충실히 모방하고 이식했다. 미국의 우생학자들과 민간 재단들은 1930년대 전반까지 독일의 우생학 육성을 위해 인적·기술적 원조를 지속했으며, 나치의 우생학 정책을 “세계적인 최첨단 과학”으로 위장하는 뒷배가 되어주었다. 히틀러는 저서나 측근과의 대화 속에서 때때로 미국의 이민 제도나 불임 수술법을 언급하며, 자신의 정책 입안에 참고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 p.100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과학적 사실”과 “가치 또는 가치 판단”의 혼동이다. 앞서 살펴본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논리적 비약을 지적한 것이다. 도킨스의 주장은 엄밀하게는 두 가지 비약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논점은 “사실 진술(~이다)로부터 가치 판단이나 규범(~해야 한다)을 직접 도출할 수 없다”라는 원칙이다. “존재‐당위 문제is-ought problem”라고 부르는 이 원칙은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지적한 문제여서 “흄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그 반대 방향, 즉 가치 판단이나 규범으로부터 사실을 도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우생학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나쁘다”라는 가치관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능하다는 말=나쁘다”라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나쁘다=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리를 매개로 “가능하다는 말=해서는 안 된다”라는 가치 판단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점은 예시로 든 “우생학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나쁘다”라는 논리, 즉 사실로부터 가치를 도출해내려는 논리 자체가 지닌 비약이다. 이를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자연주의적 오류는 20세기 초 G. E. 무어George E. Moore가 형식화한 개념이다. “선”을 쾌락이나 행복 등 경험적·자연적 성질의 관점에서 “정의”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 pp.102~103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보고 사실만을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일지 모른다. --- p.108 4장 왜 옳다고 믿어버리는 걸까 따라서 “MAOA-L을 가진 사람이 유소년기에 학대를 당하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성장하면 반사회적 행동을 보일 위험성이 높아진다”라는 설명은 언뜻 보면 객관적인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치관과 이에 기반한 가치 판단이 얽혀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MAOA-L을 가졌는지 여부는 거의 무시할 수 있는 미미한 위험 요인이다. 또한 이보다 훨씬 중요하며, 심지어 정치적·사회적 정책으로 완화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유소년기 학대는 왜 발생하는가?” “왜 과도한 음주나 극심한 사회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가?” 이러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빈부 격차나 차별, 계급화된 사회 구조가 초래하는 사회적 위험에 비하면 MAOA-L이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그럼에도 일부 연구자나 미디어는 왜 굳이 유전 차이에 따른 범죄 위험에 주목하며 이를 과장되게 다루는 것일까? 의학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목적을 제외한다면, 이는 “피는 못 속인다”라는 뿌리 깊이 박힌 가치관에 따라 작동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 p.119 최근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왼손잡이는 수십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수많은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또한 유전자뿐 아니라 태아기 발생 과정에서 생기는 흔들림이나, 우연히 발생하는 좌우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형질로 여겨진다. 왼손잡이가 생존에 불리하거나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 출생 시 뇌나 신경 이상으로 생긴다거나, 지적 능력에서 오른손잡이와 차이가 있다는 등의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는 없다. 왼손잡이 단명설은 근거 없는 편견이 얼마나 그릇된 주장을 유도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코렌의 결론은 언뜻 보면 타당해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편견이나 차별 의식이 만들어낸 편향으로 데이터를 잘못 해석한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학술지의 권위를 이용한 주장이 기존의 편견이나 차별 의식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 pp.126~127 여성의 배란기와 남성 선호 간 관계를 지지하는 데이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2021년 보고된 한 연구에서도 배란기의 성적 욕구 상승은 인정되었지만, 근육량이나 우월함 등 특정 신체 지표에 대한 선호도 변화는 검출되지 않았다. 이러한 언뜻 보면 그럴듯한 신뢰성 없는 연구 사례는 편견이나 직관에 부합하는 추론과 거기에 부합하는 데이터만 취사선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이 연구들은 행동의 기원을 추정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음에도, 미디어나 SNS에서 유통되는 과정에서 유전자라는 지표에서 기원하는 현실인 것처럼 오해되면서, 특히 여성 차별을 조장하거나 고착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는 “남성다움=유전적 가치”라는 외모지상주의를 정당화하거나, 배란기 여성의 바람기를 막기 위한 남성의 질투와 억압 역시 허용해야 한다는 등 성차별 주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여성은 이성적 판단보다 생물학적 충동의 영향을 받기 쉽다”라는 역사적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도 했다. --- pp.131~132 최근 미국이나 영국을 중심으로 인간 행동 진화를 연구하는 일부 분야에서, GWAS 공개 데이터의 2차 활용 등을 통해 인종이나 민족 간 지능, 교육 수준, 범죄, 성 행동, 경제력 등 차이를 유전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이 차이 대부분을 자연선택에 따른 적응 진화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유럽의 한랭 기후에 대한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이 “고지능, 이타 행동, 자기희생을 포함한 영웅적 행동” 등 행동 형질을 진화시켰으며, 이것이 큰 문화 진보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세기 이후 산업화나 피임의 보급으로 지능이 높은 부유층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집단의 평균 지능이 저하되는 쪽으로 선택이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연구까지 나왔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지적 수준과 서구 문물의 쇠퇴를 막기 위한 우생학적 조치를 주장하면서 “아이를 많이 낳는 IQ가 낮은 비서구 국가”로부터 이민의 위험성을 설파했다. 진화학자 케빈 A. 버드Kevin A. Bird 연구팀은 이러한 인종차별을 생물학적으로 긍정하는 “과학적 인종주의scientific racism” 논문이나 서적이 2012년부터 2024년 사이 350건 이상 출판되었다고 지적했다. --- p.134 5장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는가 자연과학에서 사실과 사실에 대한 설명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 자체가 변한 적은 없다. 가치관에 근거해 사실을 결정한다면 리센코와 같은 유사과학에 빠지고 만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현실을 이 이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의 기본 법칙 자체에 가치관이 파고들 여지는 없다. 법칙에 기초한 기술 역시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나 법칙이나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한다면 인간 사회와 연관된 관계까지 함께 생각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가치관의 개입은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학이나 유전학, 다양한 이해관계가 연루된 환경과학에서는 과학적 사실에 얽힌 가치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 p.141 이렇듯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긴 시간 스케일에 걸쳐 동물군에 일어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다채로운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한 다양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단 한 번에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연구 결과에 따라 기존 견해가 뒤집히거나 수정되는 일은 지질학에서는 흔하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은 발전해나가므로 이 자체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경우 어째서 일반 대중뿐 아니라 연구자들조차 마치 단번에 급격한 다양화가 일어났다고 오인하게 되었을까? --- p.144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실을 나타내는 기호, 즉 비유가 단독으로 움직이며 현실을 뛰어넘어버릴 가능성을 논했다. 이 관점을 인용하면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용어 역시 본래는 관찰된 사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었지만, 폭발이라는 강렬한 표현이 독단적인 길을 걸으며 반복 사용되는 사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대폭발”이 역사적 사실인 듯한 “초현실”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초현실”은 논문, 교육, 전시, 영상 미디어 등을 통해 전파되는 사이 애초 경위나 비판은 잊히고 “당연한 과학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이 설명이 지닌 문제점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이러한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기성사실이 형성되는 과정을 “블랙박스화”라고 불렀다. --- pp.150~151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있다.” 과거 지구에서는 약 6600만 년 전인 백악기 말 운석 충돌로 일어난 공룡 등의 대멸종 사건을 포함해 전부 다섯 번의 대멸종, 즉 생물의 대규모 소멸이 반복되어왔다. 그리고 오늘날 지구에서는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수많은 동식물 계통에서 멸종이 진행되고 있으며, 규모로 보면 이를 이미 진행 중인 새로운 대멸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설명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며,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사실”로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 여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생물학자 더글러스 H. 어윈Douglas H. Erwin은 이 설명을 “쓰레기과학junk science”이라고 비판했다 --- p.152 “캄브리아기 대폭발”과 “여섯 번째 대멸종”은 모두 지구의 역사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을 주장하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은 큰 차이가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가치관을 분리해야만 하는 자연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주장이다. 반면에 “여섯 번째 대멸종”은 그렇지 않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순수한 기초과학 과제로, 설명에는 정확성, 엄밀성, 객관성만이 요구된다. 그러나 “여섯 번째 대멸종”은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가 암묵적으로 내재해 있기에 설명의 정확성만으로는 부족하다.(다만 다음 장에서 논의하듯 미국에서는 “캄브리아기 대폭발” 역시 순수한 기초과학 과제로만 다루지는 않는다.) 이 표현의 배후에는 어윈이 상정한 것과 같은 단순한 사실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현재 지구가 맞이한 위기 상황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윤리 감각이 깃들어 있다. 현재 생태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한다는 가치 판단이 애초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 pp.157~158 “다양성=선”이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는 과학적 오류다. 그러나 보전생물학은 도구주의적 이유로 사실과 가치 사이 간극을 메우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예컨대 종 다양성이 높으면 생태계 기능이 향상된다거나, 자원이 풍부해지고 환경이 안정된다거나, 해충이나 역병 발생을 막아준다거나, 마음의 평화나 관광에 공헌한다거나, 옵션 가치가 있다는 식이다. 보전생물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E. 술레Michael E. Soule가 설파했듯이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일 자체가 도덕적인 의무라는 식으로, 다시 말해 윤리적으로 “생물 다양성=선”이라고 정의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생물 다양성이라는 용어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이 가치는 결코 견고한 다리가 될 정도로 자명하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다른 가치관과 충돌해 상대적으로 가치를 잃는 경우도 존재한다. 실제로 트럼프 정권은 사회에서든 생물에게서든 “다양성=악”이라는 역프레임을 붙이고 가치관을 반전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는 다양성이 높다는 사실로부터 선이라는 가치관, 선한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 판단을 직접 이끌어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점에서 진화라는 사실로부터 (진화상으로 우월하다고 상정한) 백인이나 사회 엘리트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 판단을 이끌어낸 우생학과 아주 흡사한 리스크를 품고 있다. 실제로 보전생물학의 원류인 자연 보호 사상 자체가 20세기 전반 식민지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우생학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다. --- pp.162~163 6장 진실은 언제나 하나인가 20세기 후반 문화 연구의 장에서는 사실이나 옳음의 의미는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다원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확산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 당연시되고, 이들 사이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역시 널리 받아들여졌다. 다원주의pluralism, 상대주의의 수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과학 역시 수많은 언어 게임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과학은 재현성, 예측, 반증 가능성, 데이터에 의한 검증, 전문가 공동체의 잠정적인 합의 같은 국지적인 규칙에 따라 평가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적 옳음의 가치는 “세계를 진보시키는 진리”가 아니라 “얼마나 사회에 유용한가?”라는 식의 국지적이고 잠정적인 근거에 따라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현실의 과학이나 지식을 해석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될까? 과학 역시 문화의 산물로 간주하는 한 “과학적 옳음”의 상대화, “진리”의 상대화는 피할 수 없다. 이 흐름은 1960년대에 시작되고 있었다. 토머스 S. 쿤Thomas S. Kuhn은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1962)에서, 과학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무엇이 “옳다”라고 인정받는가)은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기준에 근거하지 않으며, 특정 시대나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이론적 틀이나 가치관인 패러다임paradigm에 크게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 1970년대 말에는 더 도발적인 형태로, 과학도 다른 문화 현상처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과학의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가 제안되기 시작했다. --- pp.171~173 푼토비츠는 과학이 정상과학에서 컨설턴트과학, 탈정상과학의 단계로 진행함과 동시에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커뮤니티(전문가, 산업, 행정, 시민)가 확장되며, 사회를 향한 설명 책임도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특히 탈정상과학의 영역에서는 불확실성뿐 아니라 가치관의 대립이 과학에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시켰다. 탈정상과학에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다양한 입장의 주체들이 사회에 분산되어 있는 지식을 한데 모아 문제 해결에 관여해야만 한다. 일반 사회와 관계를 고려한다면 기존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기술)이라는 구별뿐 아니라, 이러한 불확실성과 사회적 영향을 축으로 한 구별도 필요하다. 정상과학의 감각으로 과학자 공동체의 폐쇄적인 가치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회 문제에 대처하면 서로 다른 가치관끼리 충돌하거나 배척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과 가치, 가치 판단은 분리할 수 없다”라는 주장은 과학 전쟁 당시에는 자연과학자 진영의 강한 비판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과학철학과 과학론은 자연과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수용되어가고 있다. 라투르의 주장은 이제 과학을 향한 불신을 조장하는 위험한 사상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설명이나 편견을 과학적 설명 속에서 식별해내고 완화·수정해 과학의 신뢰성과 응용 기술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적 추론에 가치 편향이 생기는 메커니즘 역시 인지과학의 영역에서 실증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 pp.179~180 이처럼 사실과 가치 판단이 실천의 장에서 서로 얽히는 점은 오늘날 피하기 어려운 전제로 흔히 받아들인다. 따라서 오히려 가치 판단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 p.182 “재현성 위기replication crisis”라고 불리는 연구 사례 중 상당수는 사실 통계학상으로는 예상 가능한 현상이며, 부정행위나 윤리적 문제와는 무관하므로 이것만으로는 “위기”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애초에 이런 불확실한 연구 결과가 인간의 생명이나 삶과 직접 연관된 분야에서 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의사 결정에 이용되어왔다는 점이다. 아울러 긍정적인 결과만 공표하는 성과 중심 발표 편향이나,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분석을 반복하거나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스토리를 구성하는 등 의심스러운 연구 관행의 확산 정황도 드러났다. 더 나아가 데이터 조작이나 논문 조작 같은 연구 부정 역시 급증하고 있다. 2022년 발표된 논문 중 약 0.2%가 철회되었는데, 이는 10년 전의 약 3배에 해당한다. 또한 2023년에는 철회 논문 수가 1만 건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기 위해 경쟁적인 관리 방식을 도입하고 수치 지표에 따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과학자는 본래 연구 활동의 질이나 성실성을 희생한 채 오로지 숫자 달성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과학계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신뢰성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다. 과학자들이 지표에 따른 평가를 목표로 삼는 환경에서는 평가 자체가 의미를 잃으며, 연구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학자 공동체의 자기 회복 기능이 저하되고 만다. --- pp.186~188 이런 음모론의 확산에 가담하는 것은 마음에 드는 진실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사회에 퍼뜨릴 수 있다고 오판하는 정치 권력자나 미디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분노를 부채질하거나 마음을 울리는 서사는 중립성이 높은 사실보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이 장치는 그야말로 리센코를 만들어낸,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요소 자체다. 소련에서 일어난 재앙과 차이는 지금은 리센코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든 리센코가 되고, 심지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p.191 7장 사실은 어떻게 위장되는가 “그럼 무엇이 증명되었다고 결정하는 건 누군데?”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 옳은” 설명의 기준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단 하나뿐이냐, 하는 의미다. 예를 들어 미국의 문예평론가이자 법학자인 스탠리 피시Stanley Fish는 진리나 이를 증명하는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옳다”라는 기준은 특정한 신념, 가치관, 지식, 전제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서만 공유된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과학자들 역시 특정한 전제나 규칙을 가진 “공동체”다. 따라서 진화나 약 45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의 “옳음”은 이 공동체 내부에서만 공유된다. 한편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공동체” 역시 “옳음”을 결정하는 자신들만의 기준을 갖고 있다. 여러 공동체 사이에 서로 다른 기준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논리는 창조과학 신봉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상대주의 또는 사회구성주의적 아이디어를 자신들의 설명에 유리하게 끼워 맞춰 정당화에 악용하는 사례다. --- pp.196~197 그러나 “위대한 지성”이나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로 표현되는 창조자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지적 설계론은 의심할 여지 없이 창조론의 한 갈래다.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직접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대신 진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지적 설계자만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배타적 논법으로 비약하는 전술을 쓴다. 이들은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점들을 보이면 그 자체로 “지적 설계자에 의한 창조”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열거한다. 그러나 가령 현시점에서 자연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지적 설계를 믿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진화로 설명할 수 없다는 부정론만으로는 과학적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 p.206 이렇듯 지적 설계론은 다른 회의론이나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정당이나 국가 기관에 침투해, 정치권력에 적극 수용되고 정책화되는 권력형의 경향을 보인다. 넓은 의미에서 이는 이데올로기가 구동하는 반과학적 흐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스탈린 시대 소련에서 리센코가 초래한 생물학의 파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정반대 성격의 신자유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바뀔 뿐, 이데올로기가 과학적 옳음을 규정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구제”라는 명분 아래 본래 비주류였던 과학이 유사과학으로 변질되고, 교육에 개입하려 하고, 미디어와 정치권력을 이용해 주류 과학을 매장해버리려고 한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 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긍정하는 진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보수 진영 논객들은 이런 우생학적 설명을 교육·복지 정책 축소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극우 단체가 이를 변용해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이런 흐름이 도덕적 혐오와 결합되면서 역설적으로 지적 설계론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폐쇄적인 연구자 공동체가 가치 중립을 가장한 우생학 연구의 양산을 허용한 결과, 유사과학에 힘을 실어주는 파탄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생존과 연구 자금 확보를 위해 연구자들이 공동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스스로를 맞추면서 내부 비판과 검증 기능이 약화되어, 오늘날 우리의 과학은 “재현성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이 위기는 훨씬 온건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리센코가 부상하던 시기의 소련 과학계의 위기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pp.221~222 8장 위장된 사실에 속지 않는 법 가짜 과학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적대국에 우생학을 유행시키고 사회를 분열시키면서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을 선동하고 영상 미디어나 SNS로 애국주의 유사과학 정보를 유포하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나라의 과학과 기술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뢰해서는 안 되는 과학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우선 어떤 주장이나 설명이든 처음에는 일단 의심하거나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높은 확률로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럼 언뜻 보기에 “옳다”는 인상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기준은 이렇다. 동기(음모, 이권 등)나 가치관(이데올로기, 차별 의식 등)을 내세우는 주장, 쾌감이나 분노, 공감 등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는 주장, 정보의 출처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주장은 의심해야 한다. 오늘날 매스컴이나 영상 미디어, SNS는 주목을 끌기 위해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는 기사나 발언을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과학에 관련된 한 이러한 감정적 주장은 신뢰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 pp.226~227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착각 외에 비약과 혼동을 불러오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자신이 펼치는 과학적 주장이 순전히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착각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실”과 “가치/가치 판단”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맹신하거나, 어떤 사실에 대한 주장이 가치 판단에서 100% 자유롭다고 맹신하는 착각이다. --- p.228 다시 말해 객관성이란 탐구에서 가치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에 얽혀 있는 가치 판단을 가시화하고, 제3자가 비판하고 재평가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 p.230 진화학은 윤리나 도덕 또는 편견의 기원과 진화를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인류가 현재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진화한다”라는 사실의 설명에는 “선”이라는 가치관이 숨어들어 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란 “세대를 거듭하며 이루어지는, 방향성이나 목적이 없는 변화”이지만, 생물학 이외 분야에서 “진화”라는 표현은 흔히 “발전”이나 “진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설명할 때는 진화에 진보의 의미는 없다는 주석을 달고, 설명에 포함되는 가치관을 가시화해 가치관의 영향을 낮추려고 힘쓴다. 만약 설명에 포함된 가치관을 자각하지 못하면 “인간의 진화=선”이므로 인류는 더욱 진화해야 한다는 오류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자연=선”이라는 오류 역시 “진화=자연=선”이라는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인간의 성차나 능력 차이를 진화의 산물로 설명할 때도 여기에 얽혀 있는 가치관을 자각하지 못하면,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우생학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자연주의적 오류를 낳을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외래종의 침입”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거의 같은 의미인 “유입종의 이주와 정착”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보자. 그러면 “외래종의 침입”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강하게 선악의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pp.231~232 더욱이 이 기술 혁신과 사회 개혁을 극한까지 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효과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의 흐름이 테크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과학과 기술은 그 자체로 선이며, 그 개발은 정의라고 간주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우생학이 발흥한 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 엘리트층과 무척 닮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과 기술을 가치 중립적이라고 간주하면, 이면에 숨어 있는 비가시화된 가치관이 과학과 기술의 폭주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 --- p.239 서로의 가치관이 드러나고 존중되지 않는다면 느슨한 가치 공유의 장은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각 이해관계자의 가치관을 가시화하고 서로의 생각이나 입장을 이해하면서 대화와 상호 협력에 힘쓰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질적 연구 방법이 효과적이다. 특히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성찰reflexivity”이다. 자신의 가치관, 사고방식, 입장, 경험, 젠더, 이해관계 등이 상대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수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연구 과정의 각 단계에서 자신의 전제나 가치관, 사고가 연구나 해석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성찰하고, 또한 제3자의 관점에서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조정해간다. 가치관이 영향을 주는 문제를 다루는 인문 사회 분야에서는 이런 식의 접근이 이미 표준 연구 기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한 가지 도구가 “입장 표명positionality statement”이다. 연구자라면 자신의 출신 지역, 연구 이력, 전문 분야, 연구 동기, 문제의식, 자금 출처나 이해관계, 윤리적 배려, 데이터 관리 방식 등을 관계자에게 문서로 밝힌다. --- p.246 9장 “과학적 옳음”을 위한 입장 표명 1975년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은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 마지막 장에서 친족선택이나 성선택 등을 비롯한 적응 원리를 통해 인간의 문화, 도덕, 행동(사회성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 민족 간 차이, 성 역할 분담 등까지)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윌슨에게는 진화학과 경험과학에 근거해 종교나 전통적인 도덕을 대체할 수 있는 인간 행동의 새로운 지침을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윌슨의 이 주장은 특히 좌파 진영으로부터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사회 불평등을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우생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중심에는 윌슨의 동료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진화학자 리처드 C. 르원틴Richard C. Lewontin이 있었다. (…) 르원틴과 굴드가 우려했던 점 중 하나는 사회생물학이 유전 메커니즘을 블랙박스화한 채 또는 지나치게 단순한 가정을 한 채 행동 적응 가설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좌파 우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다. --- pp.258~260 영미 진화학자들의 사고에는 계보의 영향이 뚜렷하게 배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할 때 대체로 사제 관계나 동료 관계를 먼저 언급한다. 과학적 설명은 단순한 객관적 사실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구축되기도 한다(6장에서 이야기했다). 만약 좌익 사상의 영향 등 통속적이고 얄팍한 이야기만 알고 있다면, 케인 대 르원틴과 굴드 논쟁의 배후에 있는 또 다른 더 근본적인 진화관 논쟁을 놓치기 쉽다. --- p.265 독자적인 진화를 이루어온 생물이 서식해 진화나 생태계 연구에 적절한 오가사와라제도나 갈라파고스제도 같은 섬의 생태계를 흔히 “자연의 실험실natural laborator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가치 중립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비유 역시 실은 과거 열강의 식민지 지배와 착취 이데올로기를 배경에 지니고 있다.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므로 가치에서 자유롭다고 순진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 p.277 맺는말 과학의 결론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내일이 되면 더 나은 데이터에 의해 갱신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과학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찰할 수 있는 마인드셋을 유지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이 의견을 채택하되 믿거나 숭배하지는 않는 것, 당장은 이 의견을 기각하되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는 것.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 p.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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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소설가), 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궤도(과학 커뮤니케이터) 강력 추천
· 71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자연과학 부문 수상 작가 · 2024년 신서대상 10위 과학자 과학의 가면을 쓴 거짓이 세상을 속이고 사회를 망친다 2026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아 백신 권장 질환 목록을 18종에서 11종으로 줄이고, MMR 백신(홍역, 볼거리, 풍진 예방 혼합백신) 대신 세 질환의 백신을 각각 별도 접종하도록 권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MMR 백신이 높은 자폐증 비율과 관련이 있다면서 접종하면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라는 날조 논문을 발표했다. 의학계는 웨이크필드를 유사과학자로 규정하고 학계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백신 반대 운동을 가속화했고, 그는 백신 반대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웨이크필드는 정치적 음모로 부당한 박해를 받은 구세주로서 백신 반대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이 여파로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2025년 홍역이 재유행해 12개 주로 번졌다. 웨이크필드는 영화를 제작해 백신 이권론과 음모론을 여전히 미국 사회에 퍼뜨리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2기 정권의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백신 정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 현재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인민당 정권은 힌두교지상주의적 내셔널리즘 노선을 내세우며 유사과학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진화학, 원소 주기율표는 서구 지식으로 치부되어 중학교까지 커리큘럼에서 삭제되었다. 반면 점성술이나 『베다 수학』 등을 정규 대학 교육으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또한 오컬트 신봉자를 인도공과대학교 등 과학자 양성 기관의 수장 자리에 앉히고, 소 오줌과 요가로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요가 권위자이자 유사과학계의 대표 인물인 바바 람데브의 뒷배를 봐주고 있다. 심지어 정부 기관과 관리가 “소를 도살할 때 나오는 아인슈타인 고통 파동이 지진을 일으킨다” “고대 인도인은 우주선, 인터넷, 핵무기, 고도의 생식 기술이나 물리 법칙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같은 황당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인도인민당은 “디지털 요다”(디지털 전사)라 부르는 SNS 친위대를 조직해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나 힌두교지상주의를 비판하면 댓글 폭탄 공격을 가하거나 당국에 신고, 밀고하는데, 실제로 SNS 공격이 극단으로 치달아 비판적 저명인사가 암살당하기까지 했다. 인도에서는 지금 과학자들을 향한 조용한 숙청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 지식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그것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가능한 걸까? 어째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옳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까? 가짜 과학의 실체를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2010년대 이후, 특히 SNS나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해 과학적인 전문 용어, 이미지, 데이터를 구사하며 과학적 객관성을 교묘히 가장하는 얼핏 보면 “과학적으로 옳다”라고 느껴지는 주장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 인도 사례에서 보듯, 그중 일부는 정당이나 국가 기관으로 침투해 권력형 편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 상황은 20세기 전반 미국, 유럽, 소련 등에서 유사과학이나 왜곡된 과학이 권력과 결합해 사회에 재앙을 불러온 역사와 닮았다. 신뢰할 수 없는 유의 담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비교적 최근인 2000년을 전후해서는 켐트레일 음모론(비행기가 만들어내는 비행운이 의도적으로 살포하는 유독 물질이라는 음모론), 아폴로 달 착륙 날조설, 동종 요법,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등이 유행했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와 같은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즉 신뢰성 낮은 과학의 증가와 유사과학, 회의론, 음모론의 유행이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저자는 이 우려스러운 문제의 핵심을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문제의 배경에는 과학이 사상, 종교, 정치, 권력, 미디어 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는 구조, 객관성(가치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적 사실이 윤리나 규범 같은 가치(가치 판단)와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과연 이 위협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저자는 “백신은 애초에 필요 없으며 오히려 위험하다” “춘화 처리(저온 처리) 기술을 적용하면 온갖 종류의 작물에서 고품질, 고수확을 거둘 수 있다” “열등한 자들은 배제하고 우수한 인간만 선별하거나 교배해 인류의 평균 수준을 끌어올린다” “폭력과 범죄를 부르는 전사 유전자가 존재한다” “왼손잡이는 9년이나 단명하며 우뇌형이어서 창의적인 대신 논리적 사고가 약하다” “배란기 여성은 우수한 남성 형질을 선호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수많은 동물문이 단번에 폭발적으로 출현한 진화 사건이다”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있다” “생물 다양성은 그 자체로 선이다” “세균의 편모는 너무 복잡하고 정교하므로 단계적으로 구조가 형성된다고 전제하는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친족선택이나 성선택 같은 적응 원리를 통해 인간의 문화, 도덕, 행동(사회성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 민족 간 차이, 성 역할 분담까지)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학 이론도 하나의 서사에 불과하며, 과학적 진리 역시 사회적으로 구축된 산물이다” 등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과 논쟁, 이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 사례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이러한 위협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고, 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거짓 과학이 우리의 정신과 일상, 사회를 지배하는 위험한 시대의 문턱에 서 있는지 모른다. 이런 불행한 세계의 도래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거짓 “옳음”이 어떻게 유도되는지 이해하고, “옳음”이 어떻게 손상되고 위장되고 악용되는지 알아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과 가치/가치 판단이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알고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 자신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결론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언제든 갱신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진실과 허구를 명쾌하게 구별하는 법, 과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깨우쳐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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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랐다. 좋은 충격이었다. 이 책은 다가올 시대의 필수 교양서다. - 장강명 (소설가, 《먼저 온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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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과학을 의심하라는 책이 아니라 숭배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책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말하고 듣고 결정해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불편하지만 든든한 지적 안전장치다. -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찬란한 멸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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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강렬한 확신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이전보다 더 강력한 믿음이 아니라 길고 번거로운 의심이다. 그리고 정교한 의심을 성숙한 교양으로 바꾸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의심하길 소망한다.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DGIST 특임교수, 《과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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