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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_006프롤로그_012제1장 척박한 마을의 늦둥이 1946~1974년봉하마을의 돌콩_023우월감과 자부심 사이에 선 소년_046농협 직원을 꿈꾸다_055하얀 눈과 군대 생활_060사법시험 사이에 핀 사랑_064제2장 변호사 노무현, 세상에 맞서다 1975~1987년유일한 고졸 합격자_073짧았던 판사 생활_077꿈꾸던 삶이 시작되다_079부림 사건의 파고 속으로_085뜨거운 6월_100제3장 분노에서 설득으로, 9년의 시간 1988~1996년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라_113청문회 스타의 탄생_121현대중공업 발언 파문_135여의도의 이방인_137분열된 야당의 한가운데서_143“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 해야 합니다”_146작은 민주당 창당 일지_148최초의 낙선_157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다_164다시 부산, 다시 패배_171분당과 세 번째 낙선_178제4장 질 때마다 더 큰 정치인이 되다 1997~2001년김대중의 손을 잡다_183서울로, 다시 시험대로_193현대자동차 파업을 중재하다_1971원에라도 팝시다_206대우자동차 모델이 되다_211또다시 부산으로_216해양수산부장관과 지식보트_224제5장 노무현의 시대 2002년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_237금강캠프, 비주류의 도전_244대통령 후보가 되다_272YS와의 만남과 흔들리는 지지율_281후보 교체 요구에 맞서다_286두 번 생각하면 그가 보인다_299행정수도 이전 공약_306마지막 드라마_312제6장 가장 원대한 꿈, 가장 혹독한 싸움 2003~2007년권력의 무게를 넘겨받다_323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시험_340북핵이라는 기나긴 터널_360파병, 고통스러운 결단의 순간_397대한민국을 세계 무대로_414경제과 국토를 재설계하다_442사회적 갈등의 격랑 속에서_489오래된 권력과의 정면 승부_527국민에게 신뢰를 묻다_596청와대의 마지막 날들_645제7장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2008~2009년다시, 자유인_659기록물 반환 문제_674글을 쓰기 시작하다_681오지 않는 봄_686검찰 앞에 서다_697제8장 노무현이라는 사람실용과 원칙 사이에서_705사람과 일하는 법_718반기문을 유엔으로 보내다_728“인사청문회를 확대합시다”_730가까운 듯 먼, 측근과의 거리_737미래를 먼저 살다_750대화와 설득, 그리고 토론_757시스템 마니아_761노무현의 작은 피난처들_767금기를 넘는 호기심_776미안한 가족, 고마운 가족_780제9장 말과 글, 그 남다른 세계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_791거침없이, 그러나 계산된_796적대적 언론을 상대하다_803설득을 위한 연구_812김대중파와 리영희파_816특유의 비유와 유머_820에필로그 _ 노무현과 함께한 시간들_837참고 자료_891주_893노무현의 길_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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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太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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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기억 속에 분절되어 있던 ‘노무현의 삶과 말’을생애 전체의 흐름으로, 시대 속 한 인간으로 탄생시키다노무현만큼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불의에 항거하는 부림사건의 변호인, 누군가에겐 5공비리 청문회장에서 예리한 질문과 감동적인 호소를 던진 국회의원, 또 누군가에겐 지역주의의 벽에 끝없이 도전한 ‘바보 노무현’이며,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 없는 결단으로 희망과 실망을 끝없이 선사해 준 대통령이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400여 권의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노무현은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우리는 강렬한 장면으로 그를 기억할 뿐, 장면들이 모여 어떻게 그의 삶으로 이어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저자는 그렇게 각자의 기억 속에 분절되어 있던 노무현을 다시 하나의 생애로 연결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가 했던 말과 결단을 한순간의 돌출된 행동으로 해석하는 대신,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 당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이유와 맥락을 추적하는 것이다.한 인간을 역사적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설명하려면 밖에서 보는 객관적 시선과 안에서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동시에 필요하다. 저자는 공식 기록 속 노무현의 행적을 시대적 배경 안으로 배치시킨다. 거기에 노무현이 했던 말과 글의 제자리를 찾아줌으로써 재임 중 언론이 전하지 않았던 진심을, 국민이 이해하지 못했던 결단을 비로소 온전한 맥락 속에서 드러낸다. 이 과정에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모색한 대한민국 진보의 미래에 대한 구상부터, 자신의 성공과 좌절에 대한 회고까지 겹쳐 넣어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 전체를 어떻게 관통했는지 보여준다.맥락을 되찾은 노무현의 말과 결단은 더 이상 ‘돈키호테식 발상’도, ‘뜬금없는 승부수’도, ‘정치적 도박’도 아니다. 재임 중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온 이라크 파병과 대연정 제안, 한미FTA 추진 역시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지정학적·정치적·경제적 미래를 내다본 선택, 시대적 소명임이 드러난다. 임기 초 국민에게 재신임을 제안했을 때 “나도 살고 싶죠. 그러나 이것을 기회로 한국 정치를 개혁할 수 있으면 거기에 의의가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노무현. 한미FTA 추진으로 고립무원 상태가 될 거라는 참모들의 충고에 “어쩌겠나? 불리해도 할 일은 해야지”라고 답변하는 노무현. 국민에게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임기를 단축하면서, 즉 내 살을 깎아서라도 국가의 중요한 제도의 변경을 성사시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역설하는 노무현. 정치인 시절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라”고 참모들에게 당부했던 것처럼, 그에게 정치란 자신의 승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었다.노무현은 어떻게 노무현이 되었을까?우월감과 자신감 사이에 선 소년이, 시대를 바꾼 인물이 되기까지2008년 5월의 어느 봄날, 노무현은 자신의 모교인 대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연설의 첫마디는 “내가 7번 선거를 해서 4번을 졌거든요. 그런데 대통령도 했어요”였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 한 문장에 노무현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도전하고, 수없이 실패한 사람. 때로는 흔들리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서 시대와 부딪혔던 사람. 평전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완성된 노무현도, 좋은 장면만으로 다시 빚어낸 노무현도 아니다. 저자는 대통령 재임 시절 그가 당부했던 것처럼 “본 대로 들은 대로” 담백하게 한 인간의 좌절과 도전을 기록한다.1963년 농협 입사를 목표로 부산상고에 입학한 노무현은 호기롭게 입사시험을 쳤으나 낙방하고 말았다. 1966년 고졸 출신으로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것은 무려 9년 뒤인 1975년이었다. 변호사로 개업한 뒤 편안한 현실에 젖어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 1988년 부산 동구 국회의원 첫 도전에 곧바로 당선되었으나 1년 뒤 의원 사퇴서를 던졌다. 그로부터 10년 뒤,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고 6개월 만에 사퇴한다. 2000년 그는 지역구도 정치 타파를 외치며 제16대 국회의원선거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만다.청소년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의 삶에는 성공만큼이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실패의 기록이야말로 노무현의 삶을 우리 가까이로 데려온다. 2001년 제16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며 발표한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노무현은 “위인의 약점은 범인의 위안이다”라고 썼다. 석가모니가 설법 도중에 제자에게 허리가 아파서 눕고 싶다고 한 대목과 결혼식을 앞두고 노심초사했던 청년 링컨의 모습을 보며 그는 “보통 사람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도 끝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은 것이다. 어쩌면 이 평전을 읽는 우리가 노무현의 삶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도 같은 가능성일 것이다. 노무현이 석가모니와 링컨의 약점에서 위안을 얻었듯, 우리는 수없이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선 노무현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오늘 우리 시대 앞에 놓인 금기와 불가능에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 한 시대의 기록으로10년의 집필, 600개의 포켓수첩, 1000개의 파일그리고 저자의 기억으로 복원한 노무현의 시대역사는 대개 모든 일이 끝난 뒤 기록된다. 또 평전이란 한 인물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다. 그러나 노무현이 사회의 기존 관행에 끊임없이 도전했듯, 이 책 역시 평전의 익숙한 문법에서 조금 비껴 서 있다. 이는 윤태영이란 저자와 노무현의 관계에서 오는 특수성 때문이다. 저자는 1988년 노무현과 조우해 1994년에는 그의 첫 번째 자서전을 만들었고, 2001년부터 그가 서거하기 며칠 전까지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지근거리에 있던 사람이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며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나 흥미롭게도 바로 이 점이 독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지나간 삶을 멀찍이 떨어져 해석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삶이 펼쳐지던 순간의 한가운데로 데려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독자는 1988년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의욕 넘치는 노무현이 보좌관들과 동지적 관계로 일하는 공간에 서 있다. 첫 번째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집필할 당시 한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의 치부도 거침없이 말하는 노무현을 본다. 청와대 회의실에서 국무위원들에게 “비상을 걸려고 국무회의를 소집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노무현을, 봉하마을에서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사람이 좀 모자라는 것일까”라고 절절한 힘겨움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노무현을 바라본다. 공식 기록에서는 소거된 그 자리의 분위기, 노무현의 표정과 혼잣말,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이러한 디테일이 오늘날까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려 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그는 저자에게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자리에 배석해도 좋다”고 지시했다. 독대를 막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한편, 대통령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였다. 덕분에 윤태영은 거의 모든 자리에 배석하며 노무현이 보고 듣고 말한 순간들을 600개의 포켓수첩과 1,000개의 파일에 기록할 수 있었다.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노무현의 생애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선택이 시대와 부딪히는 순간을 함께 목격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꿈꾸었던 노무현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무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질문 앞에 오늘의 우리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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