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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이동기
들어가며 1부 반유대주의: 혐오의 뿌리를 찾아서 1장┃뿌리 깊은 반유대 정서: 종교적 증오에서 인종주의로 2장┃누가 유대인인가: 디아스포라의 거짓 신화 3장┃근대적 폭발: 러시아 포그롬과 드레퓌스 재판 4장┃시오니즘과 밸푸어 선언: 중동 분쟁의 서곡 5장┃히틀러의 반유대주의: 그는 누구에게 배웠나 6장┃“유대인은 페스트”: 생물학적 인종주의의 궤변 7장┃히틀러의 첨병: 나치즘에 포섭된 대학생과 청소년 8장┃결단할 수 없었던 탈출: 유대인은 왜 독일을 떠나지 못했나 2부 야만의 시간: 절멸로 치닫다 1장┃홀로코스트의 전주곡: 괴벨스의 선동과 ‘수정의 밤’ 포그롬 2장┃거대한 격리소: 생지옥이었던 유대인 게토의 실상 3장┃반제 회의: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을 행정화하다 4장┃바르샤바 게토 봉기: 절망의 끝에서 터져나온 뒤늦은 저항 5장┃홀로코스트 제1막: 아인자츠그루펜의 이동식 집단학살 6장┃평범한 독일인은 어떻게 살인기계가 됐나: 복종과 순응의 심리학 7장┃죽음의 공장: 효율성 앞세운 산업적 규모의 대량학살 8장┃절망의 수용소: 인간성을 파괴하는 극한의 생존 법칙 9장┃나치 학살의 상징 아우슈비츠: 희생자 100만 넘긴 야만의 현장 10장┃과학의 가면을 쓴 야만: 가학적 인체 실험 11장┃지워진 기록: 나치 친위대 ‘위안소’의 여성들 12장┃골드하겐 논쟁: 독일인은 모두 ‘자발적 처형자’였나 13장┃전승국의 전쟁범죄: 야만의 부메랑, ‘폭탄 홀로코스트’ 3부 전쟁범죄, 심판대에 서다 1장┃뉘른베르크재판: ‘승자의 소급 재판’인가, 정의의 실현인가 2장┃히틀러의 야망을 뒷받침한 이들: 군부 지휘관들의 책임 3장┃나치 부역자가 된 ‘사법 기술자’: 법을 도구로 삼은 권력의 시녀들 4장┃인체 실험으로 뒤틀린 엘리트: 사형장으로 끌려간 나치 의사들 5장┃진짜 전범은 누구인가: 노예노동으로 부를 쌓은 나치 기업인들 6장┃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관료주의에 매몰된 평범한 악의 초상 7장┃한나 아렌트가 지핀 논란: 사유하지 않은 죄 4부 홀로코스트의 부정과 배상: 기억의 전쟁 1장┃독일 국방군의 거짓 신화: “우리의 손은 깨끗하다”는 기만 2장┃침묵의 동조자들: 방관이 닦은 아우슈비츠의 길 3장┃역사 수정주의의 도전: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600만 학살의 진실 4장┃홀로코스트 산업: 비극을 이용한 이중 갈취와 홀로캐시 논란 5장┃기억의 상품화와 그늘: 가짜 생존자들이 남긴 상처 5부 과거사의 청산과 미래: 우리 안의 아이히만 1장┃끝나지 않은 추적: 뒤늦게 법정에 선 ‘작은 나치’들 2장┃과거사 청산의 두 얼굴: 독일의 성찰과 일본의 망각 3장┃기억의 사유화: 홀로코스트 서사를 독점하려는 이유 4장┃거울 속의 야만: 가해자로 돌아선 유대인 5장┃우리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깨어 있는 사유의 필요성 글을 마치며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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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유대인을 없애지 않을 경우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 숙주 민족(원주민)이 오히려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중반 중동지역 사람들이 맞닥뜨렸던 상황을 보면, 히틀러의 그런 예측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됐다.
--- p.69 1941년 말까지만 해도 유대인을 치클론 B 독가스로 대량학살한다는 ‘최종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으로 추방하는 것도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독일의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는 유럽 전역의 유대인이 자신의 직할령으로 실려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하루빨리 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 유대인을 모두 마다가스카르섬으로 보낼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1942년 들어 전쟁의 흐름은 나치 독일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게토에 가둔 유대인의 최종 처리는 수용소로의 이송과 학살이었다. 홀로코스트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 p.101쪽) 나치당이 세력을 키운 데에는 젊은이, 특히 대학생이 한몫했다. “대학생은 히틀러의 첨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1920년대에 조직된 ‘나치 학생동맹’은 히틀러가 내뱉는 반유대주의, 독일 재무장 등 과격한 정치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 투쟁에 온몸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치의 집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갈색 셔츠를 입은 돌격대와 함께 앞장섰다. --- p.109 ‘괴벨스 포그롬(수정의 밤)’은 돌격대를 비롯한 길거리 행동대원과 일부 독일 보통 사람들이 마구잡이 폭력을 휘둘러 일어난 피바람이었다. 그 뒤로 나치 히틀러 정권은 즉흥적 선동이 아닌 보다 계산된 방식으로 박해에 나섰고, 끝내 유대인 절멸 쪽으로 옮겨갔다. ‘괴벨스 포그롬’은 홀로코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나치가 들려준 전주곡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940년대 전반기에 더 큰 규모의 조직적 국가폭력으로 이어졌다. --- p.148~149 유대인평의회원과 경찰은 게토에 머물면서도 식량 배급 등에서 특혜를 누렸다.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쟁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이는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였다. (중략) 아렌트는 “유대인 지도층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유대인 희생을 줄였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유대인 주류사회로부터 ‘파문’당했다. 아렌트가 대중 강연이나 학술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야유가 터져나오곤 했다. 그를 ‘배신자’, 심지어 ‘부역자’라고 손가락질했다. --- p.160~161 101예비경찰대대의 사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무서운 사실을 하나 알려준다. 누구라도 학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성이 선한 사람이라도 폭력적 상황에 장기간 놓이면 얼굴 모습이 달라진다. 다른 민족이나 집단을 없애야 이롭다고 거듭 선동하는 정치·군사 지도자를 만난다면, 학살 집단의 일원으로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어 손에 피를 묻힌다. 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심성을 파괴하는 괴물이다. --- p.222 돌이켜보면 1950년대는 전직 나치들에게 구원의 시대였다. 서독 총리 아데나워는 1951년 연방의회 연설에서 “구 독일군(히틀러 시대의 독일 국방군)의 명예는 손상되지 않고 이어져왔다”고 말했고, 연방의회 의원들은 그런 아데나워의 말을 반기면서 “집단적인 죄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서독 연방의회는 1951~1953년에 나치 독일에서 일했던 공무원과 군인에게 고용의 권리와 연금까지 보장했다. 게슈타포와 무장친위대로 전직되었던 자들도 같은 보장을 받았다. ‘히틀러의 장군들’도 마찬가지로 복권돼 연금을 챙겼다. 그들은 저마다 회고록을 펴내며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깨끗한 독일군 신화’를 퍼뜨렸다. --- p.355~356 독일 기업과 은행들은 독일이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대경제권을 이끌게 되길 바랐다. 나치의 특혜를 받아 경쟁자들을 없앨 경우 그들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전쟁 초기에 독일이 잇단 승리를 거둘 때 독일 기업들은 오스트리아나 체코 등지에서 광산, 제철소, 은행 등을 재빨리 가로챘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이루려면 침략전쟁과 약탈, 노예노동이 받쳐줘야 했다. 파우얼스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인 검사 텔퍼드 테일러가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진정한 전범은 미치광이 집단 나치가 아니라 기업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p.385 아렌트의 아이히만 평가는 엄청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아렌트에 비판적인 연구자들조차 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뛰어난 통찰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치 시절은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곳곳에서 보통 사람들이 ‘주어진 명령’에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악행을 저지른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여전히 현실에서 유효하다. --- p.420 많은 독일인이 이런저런 이유를 꼽으며 홀로코스트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2년 1월 반제 회의 뒤 나치는 ‘유대인 없는 유럽’을 만들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사람들은 어느 날 아침 유대인 이웃이 트렁크 하나를 들고 떠나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봤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멀리 동유럽 수용소로 보내졌다. 국영철도 직원을 비롯해 많은 민간인이 그런 대규모 이송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구경꾼이 그 모습을 길에서 지켜봤다. --- p.450 오늘날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유대인 희생자 규모를 600만 명이라고 알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600만이란 숫자가 한 수상쩍은 전직 친위대 소속 정보장교가 내놓은 진술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1945년 11월 당시 30세였던 빌헬름 회틀은 뉘른베르크재판의 증인 자격으로 내놓은 진술서에서 “1944년 8월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아이히만으로부터 ‘살해된 유대인이 600만 명’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 p.462 노먼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이들의 행태를 가리켜 ‘홀로코스트 산업holocaust industry’이라고 비판했다. 핀켈슈타인의 어머니는 배상금을 타내려고 ‘홀로코스트 보물선’에 올라탄 ‘가짜 생존자’들이나, 배상금을 갈취해 목돈을 챙긴 ‘홀로코스트 산업가’들 모두를 경멸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유대인들이 ‘후츠파chuzpah(뻔뻔함, 후안무치)’란 말을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란다.” --- p.489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은 그때껏 처벌받지 않은 나치 전범자들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열린 것이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1963~1965)이다. (중략) 아우슈비츠 수용소 근무자를 단죄한 프랑크푸르트재판을 지켜본 독일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피고 대부분이 악마적인 성향이거나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닌 학자, 공무원, 상인, 수공업자 출신의 ‘평범한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전쟁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 p.529~530 역사학계는 유대인이 나치 학살의 가장 큰 희생 집단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논란은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적지 않은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오직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절대적 특수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껏 이스라엘이 저질러온 전쟁범죄의 ‘면죄부’ 또는 ‘선先지급금’인 양 여긴다. 유대인에게 전쟁범죄의 면죄부로 홀로코스트만큼 편리한 카드는 없다. 하지만 중동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이는 전쟁범죄를 피해자 의식으로 흐리려는 모습은 “홀로코스트가 안겨준 윤리적 자본의 오용”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 p.564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홀로코스트를 내세워 자신들의 잘못된 행태를 합리화하거나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도 잘못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유대인들이 “우린 히틀러에게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유대인 단체와 변호사는 피해자 배상 과정에서 거액의 목돈을 챙긴다. ‘가짜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활개를 친다. 홀로코스트 독점이 유대인의 면죄부, 돈벌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p.569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는 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뒷걸음질한다’는 생각을 품었을 듯하다. 유대인이 나치의 피해자였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나치로부터 박해받은 희생자라는 ‘피해 기억’과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벌여온 ‘가해 행위’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폭력을 저질러왔다. --- p.583 비인간화와 집단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스미스는 “괴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사람들이 전쟁범죄자를 ‘괴물’로 여기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일 것이라는 생각에서겠지만, 스미스는 틀렸다고 말한다. 드라쿨리치의 지적처럼, 전범자를 ‘괴물’로 낙인찍고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우린 괴물이 될 수 없다”며 거리를 두려는 편리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괴물과는 다른 평범한 우리’도 언제든 전범자로 피고석에 설 수 있다는 섬뜩한 얘기가 된다. --- p.597~598 나는 오늘날 우리가 전쟁과 인종주의가 만연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국가가 대중을 동원하고 또 그들의 (폭력) 명분을 정당화하는 힘 또한 여전히 막강할 뿐 아니라 계속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전문화와 관료화 때문에 개인의 책임감이 점점 더 희박해져가고 있으며, 집단이 개개 구성원들에게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며 (잘못된) 도덕적 기준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우 두렵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만약에 어떤 근대적인(침략적인) 정부들이 집단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을 그들의 ‘자발적인 학살 집행자’로 동원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p.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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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증오로 확산시켰는가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1부에서는 종교와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 정서가 러시아에서의 학살(포그롬)과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낳고 끝내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들을 살핀다. 특히 지은이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토양이 생성되고, 그것이 젊은이들을 포함한 독일의 보통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악영향을 끼친 과정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히틀러가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니체와 쇼펜하우어와 같은 독일 철학자들을 입에 올렸지만, ‘초인’을 비롯해 자신이 좋아하는 용어들을 선택적으로 차용하면서 “유대인은 페스트”라는 식의 생물학적 인종주의 궤변으로 독일 젊은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현재 유대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슈케나짐 유대인의 뿌리에 대한 색다른 탐구를 통해 이스라엘이 주장해온 혈통의 ‘연속성·단일성’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은이는 여러 연구자의 검증된 자료를 근거로 아슈케나짐이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로마인들에게 추방된 유대인의 후손이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러시아 남부 카자르 왕국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13세기에 몽골의 유럽 침공을 피해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으로 옮겨갔다가 20세기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됐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디아스포라 유대인, 특히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추구해왔던 알리야(귀향)의 논거는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침묵하는 방관자들이 홀로코스트로 가는 길을 닦았다 2부에서는 나치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들에게 가한 폭력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마침내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여러 절멸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대량학살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지은이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히틀러의 명령 아래 일으킨 ‘수정의 밤’ 폭력 상황이 홀로코스트를 예고하는 전주곡 성격의 포그롬임을 밝힌다. 그리고 이때 유대인 상점과 유대교회당이 불타는 야만적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던 독일 보통 사람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상당수의 독일인은 평소 비호감이던 유대인들이 겪는 굴욕과 고통을 그저 바라만 보는 ‘구경꾼’으로 남았다. 지은이는 독일 언론과 교회를 포함한 독일인의 ‘침묵’이 대량학살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지적한다. 책은 이어 ‘유럽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을 논의한 반제 회의(1942년 1월 20일)를 기점으로 유대인들이 게토와 수용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절멸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다룬다. 지은이는 학살의 참상뿐만 아니라, 수용소라는 닫힌 공간에서 벌어진 은폐된 착취 구조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특히 나치가 보르델(Bordell, 위안소)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일본군 위안소가 운영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독일군이 수용소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여성 수감자들을 ‘위안부’로 삼아 보르델을 운영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은이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성풍속과 성도덕을 강조했던 나치 독일의 겉면만을 봐온 점, 피해 여성들이 지난날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입을 닫고 공론화를 꺼렸다는 점, 연구자들도 홀로코스트를 독점하려는 유대인들에 밀려 성폭력 희생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점을 든다. 한편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는 유대인 학살이 독일의 여러 학살기계(나치 친위대, 독일 국방군, 경찰)의 합작품임을 보여준다. 특히 이동학살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이 유대인 130만 명을 포함해 200만 명을 총으로 살해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와 관련, 지은이는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 열렬한 히틀러 추종자였기에 기꺼이 유대인 살해에 나섰다는 대니얼 골드하겐의 주장이 지닌 허점을 지적한다. 골드하겐 같은 의도주의자들은 나치의 반유대주의 신념이 대량학살의 원동력이고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은 나치 정권이 처음부터 의도해온 정책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치 정권이 처음부터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전쟁 국면이 바뀌면서 ‘대량 이주→추방→학살’로 나치 정책이 변화했다는 기능주의 연구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학살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 억압 정책이 좀 더 과격한 쪽으로 ‘기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 보여준 뛰어난 통찰력, 하지만 아이히만은 ‘괴물’ 3부에서는 나치 독일 지도부의 전쟁범죄를 단죄한 뉘른베르크재판의 과정과 문제점을 다루었다. 먼저 지은이는 전승국의 전쟁범죄와 관련한 문제의식과 연결시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승자의 소급재판인지 아니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전쟁범죄자에 대한 정의 실현인지를 묻는다. 뉘른베르크재판소를 구성한 재판부와 검사단 모두 전승국 출신이기에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승자의 재판’이란 지적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나치 지도부의 전쟁범죄는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할 일이지만, 전승국 지도자들의 전쟁범죄 역시 단죄 대상이었음에도 법정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채 묻혔다는 점을 함께 짚는다. 나치 지도부에 대한 재판에 이어 군부 장성, 법률가와 의사, 독일 기업인이 자신이 수행한 역할과 관련해 심판대에 선 모습이 그려진다. 인상적인 대목은 나치 기업인들 관련 재판이다. 그들은 히틀러 정권과 유착하여 전쟁 전엔 독일 기업의 아리안화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전쟁이 벌어진 뒤엔 유럽의 광산이나 제철소, 은행들을 가로챘으며, 수용소의 노예노동을 착취해 부의 제국을 건설했다. 수용소에 독가스를 공급한 것도 독일 군수기업 이게파르벤이다. 지은이는 기업 활동이라는 그럴듯한 방패막이 뒤에 숨어 누구보다 악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 기업의 행태를 비판한다. 3부 후반부에서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룬다.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재판에서 자신은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며, 죄가 있다면 대량학살이란 기계의 ‘톱니바퀴’ 역할을 한 것뿐이라는 궤변을 펼쳤다. 이 재판을 지켜보던 유대계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테제를 이끌어냈고, 이 테제는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지은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을 지냈던 루돌프 회스와 아이히만을 견주면서,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성을 끌어낸 아렌트의 통찰에 동감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이 냉혹한 악마이자 괴물은 아니라는 아렌트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연구자들 편에 선다. 그럼에도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테제를 빌려,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나치의 관청용어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히만의 무능력이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파국으로 이어졌듯이, 우리 자신의 행동이 어떤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이용해 잇속 챙기는 ‘홀로코스트 산업’ 4부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상품화하는 등 20세기 최악의 전쟁범죄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서구 사회에서 홀로코스트 부정은 형사범죄로 처벌받는다. 지은이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독일인이 홀로코스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신나치류의 주장을 일본 극우파의 망언에 등치시킨다. 일본 극우집단은 “난징 학살은 없었다”거나 일본의 한반도 식민 통치와 관련해 “우리가 잘못한 게 없으니 용서를 빌 필요가 없다”면서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부정한다. 지은이는 그런 일본 극우집단의 비뚤어진 행태를 보면서 한국인들이 고통스러운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되살려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홀로코스트 왜곡과 관련해 지은이가 관심을 둔 또 다른 부분은 홀로코스트 배상금 배분을 둘러싼 잡음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2차대전이 끝날 무렵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10만 명쯤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1950년대 초 독일과의 배상금 협상이 시작되고 실제 배상금 지급이 이루어지면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전보다 훨씬 늘어났고 이로 말미암아 ‘홀로코스트 매직’이란 용어까지 생겼다. 또 다른 문제로, 실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배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독일 정부와 협상에 나섰던 유대인 단체와 임원들이 막대한 배상금을 챙긴 것을 들 수 있다. 부모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노먼 핀켈슈타인 같은 연구자는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행태를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배상금을 둘러싼 유대인 내부의 다툼을 ‘진흙탕 싸움’이라고 지적하면서, 배상금 관리의 투명성이 부족한 틈을 이용해 배상금을 훔친 사례들도 살펴본다. 한편 대량학살과 전쟁범죄에서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발뺌하는 역사 왜곡은 패전 후 독일 국방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히틀러의 침략전쟁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독일 국방군은 패전 직후부터 대량학살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우리의 손은 깨끗하다”는 기만적인 언설을 통해 확산시킨 이른바 ‘흠 없는 방패’론이다. 지은이는 다양한 사례와 근거 자료를 통해 독일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밝히면서 ‘깨끗한 독일군 신화’를 퍼뜨렸던 독일군 수뇌부를 ‘히틀러의 공범집단’이라고 비판한다. 홀로코스트 피해 기억,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결론에 해당하는 5부는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새기면서 보통 사람들이 자칫 ‘아이히만’ 같은 학살자가 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패전 뒤 독일에서는 주요 전범자가 처벌되긴 했지만 동서냉전 구도 아래서 나치 잔재에 대한 청산이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지은이는 독일이 뒤늦게나마 법망을 빠져나가 처벌을 비껴간 수많은 ‘작은 나치’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작업들을 긍정적으로 살펴본다. 전범 처벌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역사교육 현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바람직한 기억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다. 그에 반해 일본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범죄 사실조차 부인하면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동원 노예노동자들에게 보상은커녕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입으로만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는 베른하르트 슐링크(훔볼트대 교수, 법학)의 용서론에 대해 살펴본다. 슐링크는 나치 정권의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살피면서 ‘피해자만이 용서를 할 수 있는 주체’라고 못 박았다. 가해자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기에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데, 정치가를 비롯한 제3자가 ‘용서하라’고 끼어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2023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제3자 변제’라는 기이한 해법을 내놓아 일본의 전범기업들을 기쁘게 하고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을 다시 울렸던 사실을 비판한다. 아울러 지은이는 홀로코스트 피해 집단인 유대인들이 그동안 저질러온 독선과 잘못도 짚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유대인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영문 글자를 일반명사인 소문자(h)로 시작하지 않고 고유명사인 대문자(H)로 바꿔 쓰고, 심지어 히로시마와 드레스덴 등 대량 희생자를 낸 지역과 아우슈비츠를 함께 묶어서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한다. 지은이는 박노자의 “홀로코스트는 단수가 아닌 복수(複數)”라고 규정한 대목을 인용하며,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독점론을 반대한다. 아울러 팔레스타인의 아랍 선주민들을 박해하면서 마치 면죄부처럼 “우린 홀로코스트를 겪은 민족”이라고 피해 기억을 내세우며 유대인만의 생존권을 강조하는 태도 역시 비판한다. 홀로코스트의 교훈, 누구라도 전쟁범죄자가 될 수 있다 유대인을 선민이라 여겨 아랍 선주민을 업신여기고 핍박하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를 비롯해 인종주의가 세계 곳곳을 잠식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노스캐롤라니아대, 독일현대사)은 그런 상황 아래서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또 다른 아이히만’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지은이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쏴대는 이스라엘 병사들에게서 ‘21세기 아이히만’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책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보통 사람들도 전쟁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학살기계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전쟁범죄의 공범자로 전락한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작은 나치’들이 모이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2차대전에 동원된 독일군 병사들도 처음부터 살인기계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살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초기에 보였던 거부반응은 무뎌지고 어느덧 ‘작은 나치’, ‘제2의 아이히만’으로 변모했다(지은이는 ‘악의 평범성’ 사례로 1968년 베트남 미라이 학살사건, 2004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인권침해사건을 꼽으면서, ‘생각이 모자란’ 평범한 군인들이 전쟁범죄의 공범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뒤 ‘작은 나치’들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평소 상상해오던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독일인들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량학살에 앞장섰던 아인자츠그루펜 지휘관들조차 뮌헨 맥줏집에서 만났다면 함께 괴테나 베토벤에 대해 얘기를 나눌 보통 사람들이었다. 국제분쟁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분쟁 현장을 다닌 지은이는 1990년대 초 소련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발칸반도 내전(보스니아, 코소보)에 휩쓸렸던 평범한 회사원들,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도끼로 손목을 치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시에리리온의 소년병 등 수많은 전쟁 당사자들을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만났다. 그들의 전쟁범죄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나와는 다른 타자’를 공격하라고 선동하는 지도자들을 만난다면, 우리도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이미 제주 4·3이나 광주 5·18을 경험한 한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