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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의 살인
회색 장막 속의 용의 불온한 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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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죽기 딱 좋은 날씨였다.배에서 내려 선착장에 발을 내디뎠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파도가 거셌다. 섬 전체가 옅은 안개에 싸여있어 산등성이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차가운 바람이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채 내 얼굴을 훑었다. 1월 초에 얇은 긴팔 하나만 입고와 조금 추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죽으러 왔기 때문이다.
---p.9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멈출 이유는 없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염원을 헛되게 할 셈인가?" 뒤를 돌아보니 회색 승복을 입은 스님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도저히 스님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p.12 대신 아까까지는 없었던 누런색의 두꺼운 밧줄이 문틀에 여러 겹 둘러쳐져 있어 통로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당집 주위에 치는 결계처럼. 밧줄 너머로 '입산 금지'라고 적힌 낡은 목판이 땅에 처박혀 있었다. ---p.34 배가 선착장을 떠나고 1분도 되지 않았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분명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잔잔하던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태풍이 부는 해안가를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한 높이만큼 솟구쳤다. ---p.51 아는 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하는데 모르는 사람과 깊은 산속 별장에서 2박 3일을 보내라니 썩 내키지 않았다. 천식이 옮을 것 같은 비과학적인 예감도 들었다. ---p.130 "활약상을 보고 싶은데 아쉽네. 우리 갤러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거 같진 않으니까." 그때였다. 북쪽으로 난 통로 쪽에서 여성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p.251 그중 모두의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손목이다. 손목이 매달려 있다. 사람의 절단된 손목이다. 불에 그을리진 않았는데 마치 진짜 사람 손목 같다. 다른 물품과 이질감이 들어 이상하지만, 굉장히 잘 만들었다. 왼손이다. 조형물인가. ---p.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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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과 수수께끼 풀이라는 정공법의 K 본격 미스터리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 『수상탑의 살인』에서 이미 증명된 김영민 작가가, 이번엔 신작과 기존 발표작을 한데 묶은 소설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공들여 설계한 대학원생 탐정 한규현 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작품부터, 각각 다른 분위기의 사건과 추리가 펼쳐지는 세 편을 한데 묶었습니다. 「해신당의 살인」은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에서, 「회색 장막 속의 용의」는 유독성 스모그가 뒤덮인 재난 상황의 별장에서 클로즈드 서클의 사건이 발생하고, 「불온한 손」은 미술관에서 잘린 손만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의 실종 사건이 발생합니다. 김영민 작가는 트릭은 치밀하게 짜되, 장르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결코 공식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상탑의 살인』에서 이미 보여줬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 역량은 압축된 형식 안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장편 못지않은 밀도를 품고 있으며, 세 편을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규현의 다음 사건이 궁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매번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소설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읽을 때마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결국 이야기를 지탱하는 논리의 힘 때문입니다. 트릭이 풀리는 순간의 쾌감은 매번 다르지만, 그 쾌감에 도달하기까지 단서를 쌓아 올리는 태도는 한결같습니다. 그런 한결같은 태도야말로 본격 추리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서 하나하나가 마침내 하나의 그림으로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독자분들께 이 소설집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