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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사이토 마리코
태양의 아이, 달의 아이 금성여관 시절 꿈속의 아버지 제주도와 오키나와 하얀 소행성과의 충돌 활자의 탁류 속으로 일본문학으로의 여행 한국문학의 거목 슬픔의 질량 11년째의 포부 나의 말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이 무서웠다 우리는 사랑이니까 ‘사랑’을 쓸 때 이웃 나라 언어의 숲 전쟁의 후기 미래의 서문 여름 일기 삼각형이 좋아 오마주 쓰디쓴 살구 여행 덕분에 너도 나처럼 외로운지 눈송이를 발견한다면 마치며: 정수윤 |
Mariko Saito,さいとう まりこ,齋藤 眞理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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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X평산책방 서울국제도서전 선공개 도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드넓은 우애, 서로 돕고자 하는 마음. 저는 그런 움직임을 지지하는 힘이 한국문학에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문학 번역도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사이토 마리코 「‘사랑’을 쓸 때」 두 나라의 문학을 아름다운 언어로 결속하는 번역가가 주고받은 우정과 연대의 기록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돌베개×이와나미쇼텐 공동 출간 『말과 말의 술래잡기』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신뢰받는 번역가이자 각자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는 두 작가의 편지를 통해 ‘문학’과 ‘번역’, ‘예술’과 ‘삶’의 이면을 청해 듣는 책이다. 젊은 시절 서울에서 한국어를 익히고, 그 자신에게 외국어인 한국어로 쓴 시집을 펴낸 후 한국문학을 번역해온 사이토 마리코.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도쿄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다자이 오사무, 미야자와 겐지, 다와다 요코 등 일본문학을 번역하며 소설과 에세이를 선보여온 정수윤. 그들의 대화는 단지 두 사람만의 우정에 그치지 않고 ‘문학’과 ‘문화’로 연대하며, ‘언어’와 ‘예술’로 교류하는 사색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두 작가의 편지는 연재 지면을 찾아 문을 두드린 한국 편집자에게 일본 편집자가 화답하며 2024년 봄부터 2026년 봄까지 이와나미쇼텐의 월간지 『세카이』에 실렸다. 이 책은 사이토 마리코와 정수윤의 공동 집필뿐 아니라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출판인들이 마음을 모아 더욱 뜻깊다. ‘말과 말의 술래잡기’라는 제목에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두 언어 사이에서 의미를 붙들려는 술래잡기와 닮았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으로 문학은 비단 ‘나’만이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새로운 ‘나’를 발견해주는 술래잡기이기도 하다. 책에는 서로가 처음 접한 한국과 일본의 문학, 서울과 도쿄에서 보낸 유학 시절, 번역을 통해 언어를 새로운 세계에 전달하는 작업의 의미, 옮기기 까다로운 표현을 마주칠 때의 애환을 비롯해 두 작가가 호흡해온 시대와 그들이 일구어온 문학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품들을 일본에 소개해온 사이토 마리코 작가가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일본어로 펴낸 직후 쓴 번역 일화는 이 책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귀한 기록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축하하며 나눈 두 번역가의 대화는 독자에게도 벅찬 감동을 안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서울의 광장을 밝힌 응원봉의 불빛이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도쿄에 모인 시민들에게로 연결된 순간 또한 생생히 담겼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언어로 연결되어 삶의 연대로 나아가는 ‘문학’이라는 기적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익히 사랑받아온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니시 슈쿠(@nishi_shuku)의 표지?본문 그림 역시 눈길을 끈다.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모두 니시 슈쿠의 그림을 싣되, 각 나라의 개성을 살린 디자인으로 서로 닮고도 다른 자매처럼 사이좋은 표지를 완성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일본어판까지, 일본 독자에게는 한국어판까지 나란히 소장하고 싶은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한일을 둘러싼 긴박한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 그럼에도 문학 안에서, 언어를 통해, 우리의 삶은 ‘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뭉클한 경험을 선사하는 에세이다. 편집자의 말 전학생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아침, 교실 앞문을 열고 선생님이 예고 없이 모르는 아이를 데려오면 가슴이 뛰었다. 긴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입술을 뗀 그 애들의 첫마디를 기다렸다. 이 도시에서 쓰지 않는 낯선 억양, 처음 듣는 말투가 좋았다. 선생님이 그 애에게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언제나 전학생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아이였다. 스무 살,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입국』(민음사 1993)이라는 시집을 펼쳤을 때, 나는 ‘사이토 마리코’라는 이름의 전학생이 교실 문을 열고 내 마음에 성큼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써온 것과 다른 호흡, 다른 감각의 한국어가 거기 있었다. 그 책에 쓰여 있는 한국어는 나의 모국어가 아닌 듯 새롭게 읽혔다. 한국어가 모어인 내가,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시인의 말을 닮으려 그의 시를 외웠다. 그 시집을 읽는 시간은 이방인으로부터 모국어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사이토 마리코의 한국어 시에서 느꼈던 감각을 재회한 건 미즈노 루리코 시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읻다 2016)에서였다. 이 시집은 물론 한국어로 쓰인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일본어 시를 번역가가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오래전 『입국』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단지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나란히 실린 때문은 아니었다. ‘이 번역가는 나처럼 전학생의 생경한 말투에 이끌리는 사람일 것 같다.’ 알 수 없는 친밀을 느끼며 이름을 외워두곤 눈에 띌 때마다 찾아 읽는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정수윤과 사이토 마리코,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을 마음속에 그려보게 된 것은. 전학생을 무턱대고 좋아하던 마음이 나를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로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홀로 있는 사람의 외로운 표정,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작게 속삭이는 혼잣말에 끌린다. 문학을 읽는 것은 나와 다른 말투에 마음을 여는 것, 낯선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책 안에서 나와 닮고도 다른 무수한 얼굴을 만나고, 그들과 기꺼이 사귄다. 이제까지 몰랐던 이의 세계에 초대받고, 낯선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용기를 비로소 배운다. 나는 지금 사이토 마리코, 정수윤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두 전학생과 복도에 서 있다. 문을 열고 두 사람을 소개하면 어떤 눈빛들이 우리를 기다릴까? 미지의 친구들이 부디 전학생의 처음 듣는 말투를 힘껏 환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이름이 나란히 적힌 이 책을 당신께 건넨다. ―편집자 이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