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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동의 기도
장미의 꽃을 기억하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 까마중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곧, 그 밤이 또 온다 이기전(李己傳)1 이기전(李己傳)2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닭의 장풀 물을 주다 요즘 나온 것 중 제일 긴 영화 느닷없는 마음 소행성 L2001의 사멸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왕 지렁이가 되었다 순신 대략 천 년 이것은 복권이야기 같이 가자 해놓고 작가의 말 |
김강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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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이 휙휙 지나갔다. 다가오는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저렇게 깜빡거리다가 언젠가는 빛을 잃을 터였다. 지금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누군가 알게 되겠지만 역시 뭘 하지는 않겠지. 세상도 그대로일 것이고.
--- p.35 언젠가, 아주 나중에, 몇백 년이 지난 후 월지의 바닥을 준설하거나 다시 발굴하는 날이 오지 않겠냐고. 그때 이 스테인리스 조각이 발견되면 우리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지 않겠냐고, 한 조각 남겨진 이야기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 사랑이 우리 시대의 사랑이 되지 않겠냐고,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너와의 사랑은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 p.71 ”글치요. 햇빛을 아주 못 받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받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흘러 내려오거나 땅속으로 흘러든 빗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 전만 못하겠지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서 잡촌데. 잡초가 제일 강하다 안 합니까.“ --- p.115 ‘그곳에 네가 없었어, 두 번을, 한참 동안 가만히 찾았는데 네가 보이지 않더라.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어. 널 처음 본 그 순간처럼 네 모습이 그냥, 아무런 예고 없이 보였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더라고. 내 속에 네가 없는 거지. 네 잘못은 아니야. 그냥 느닷없는 거, 느닷없는 마음, 내 마음 때문이야. 원래 사랑이 그런 거잖아. 느닷없는 것. 우리도 느닷없이 시작했잖아. 끝내는 것도 느닷없자, 우리.’ --- p.151 삼 개월이 지난 십이월 이십칠 일 악마의 연기, 소행성 L2001은 돌연 사멸했다. 애초에 지구를 향해 돌진하지도 않았고 그러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실제 연기, 꼬리에 유해 성분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소행성 L2001은 불꽃 하나 없이, 우주를 울리는 굉음 하나 없이 사멸했다. 누군가는 고온의 연기에 둘러싸여 스스로 증발해버린 것이라 말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악마의 연기가 소멸되기를 기원했던 전 인류의 손가락질이 이루어낸 쾌거라 말하기도 했다. --- pp.161-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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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설(小笑寒說) 시리즈 첫 책
이 시대에 필요한 짧은 소설들 득수의 소소한설 시리즈는 작고 재밌고 차가운 이야기를 선보이고자 기획하였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분량으로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전하기 위해 첫 번째 소설집으로 그동안 다양한 소설 쓰기를 보여주었던 소설가 김강의 원고를 모았다.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하는 신들을 통해 행복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묻는 「규동의 기도」, 억측 루머 속에서 사멸해가는 행성을 통해 한 번쯤 세상의 거짓에 발을 디뎠던 기억을 묻고 있는 「소행성 L2001의 사멸」, 받지 않았던 전화가 죽음으로 이어진 상황에 어떤 변명이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을지 묻고 있는 「가로등이 깜박거릴 때」, 잡초처럼 무시 받는 사람들의 삶에서 쓸모없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있는 「닭의 장풀」 등 20편의 이야기 안에서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며 대면했던 의문들을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이전과는 다른 김강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이번 소설집은, 젊은 화가 이수현이 각 작품을 읽고 직접 그린 20점이 매 작품 처음에 배치되어 소설을 읽기 전 독자들에게 그림마다 투영된 모호한 질감이 소설적 의문과 맞닿아 독서의 매력을 더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김강의 짧은 소설집 『곧, 그 밤이 또 온다』 속 인물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사랑을 놓쳤고, 젊은 날의 소망과 빛나던 순간을 잊었으며, 자신이 떠나보낸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부재’와 끝내 응답받지 못한 목소리 사이를 오간다. 인물들 또한 울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대신, 결핍과 공백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그것은 겉으로는 절망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실을 정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없는 것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부재와 함께 살아내는 일. 김강은 풍자와 유머, 아이러니를 통해 그 애도의 과정을 완수한다.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 현실을 꼬집는 대사 뒤에 남는 공허함은, 결국 그가 월지의 연못 속에 숨겨둔 우리들의 정직한 얼굴일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장미의 꽃을 기억하는가? 느닷없는 마음을 잊지 않았는가? 작가 김강이 묻고 있다. - 이기호(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