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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김강
작가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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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 9
아담 47
민의 순간 81
으르렁을 찾아서 113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141
검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나 169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195
해설 | 문사(文士)의 전통을 잇는 문학_이경재 221
작가의 말 | 곧, 그 밤이 또 온다 249

저자 소개 1

2017년 심훈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마』,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 청소년 소설 『블라블라블라』, 공동소설집 『여행시절』 『당신의 가장 중심』 『소방관을 부탁해』 『작은 것들』 『쇼팽을 읽다』 『끌어안는 소설』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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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55쪽 | 126*190*20mm
ISBN13
9791190566957

책 속으로

그날따라 저의 어머니는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형들과 저만 남은 겁니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놀자고 할지 저는 기대에 찬 눈으로 형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놀이 저런 놀이를 하자며 이야기하던 중 공터의 구석을 돌던 한 형이 개구리를 잡아왔습니다. 개구리를 잡아 멀리 뛰기 시합을 하자고 했지요. 그런데 다른 형들의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실망한 그 형이 잡은 개구리를 놓아주려 할 때 누군가 잠깐만, 이라고 했습니다. 1동의 대장 형이었습니다. 대장 형은 주머니에서 폭음탄을 꺼냈습니다. 딱콩, 폭음탄이런 것들이 유행이던 시절이었거든요. 대장 형은 개구리를 땅바닥에 놓고 제게 도망가지 못하게 잡으라 했습니다. 그러고는 개구리의 입에 폭음탄을 물렸습니다. 폭음탄에 불을 붙였고 우리는 개구리를 두고 멀찍이 물러섰고.
--- p.15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중에서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자기를 찾아왔을 때 부재의 형태가 어떠하든,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줄 문장으로 부고를 남겨 달라 했다. 산을 내려오며 언제쯤 그를 만나러 와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삶이 그의 몫이기는 하지만 그를 알아버린 내게도 그의 삶에 대한 책임 중 일부가 주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수용되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아니면 여전하거나.
--- p.47 「아담」중에서

‘수정란 생성 시 자율사항 확대 안’ 같은 경우 최종 결정권이 있는 위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설득해 통과시켰다. 그때는 획기적인 진전이라 격찬을 받았다. 수정란 제작시에 사용할 두 개의 생식세포를 선택할 때 피부 및 모발의 색을 특정할 수 있게 한다는 안이 검토단에 올라왔을 때 단장은 원안에 눈동자의 색까지 넣어 위원회에 보고했다. 피부나 모발, 눈동자의 경우 다양한 선호가 공존하기 때문에 특정하여 선택하더라도 구성의 다양함은 여전할 것이고 따라서 차별의 지점이 될 염려는 없다는 것, 종의 유지가 기본이지만 자율의 확대 또한 루시의 시대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 위원회를 설득한 논리였다. 실제로 확대 안이 시행된 후 시행 전 위원회가 가졌던 걱정은 기우로 판명되었다. 개체 생성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보호자들 대부분은 개체의 세부 조건들을 특정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가질 수 있으나 가지지 않는 것, 루시의 시대를 관통하는 미덕이었다. 사실 자율, 확대라 이름 붙는 모든 것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위한 것이다.
--- p.90 「민의 순간」중에서

이미 쓴 엽서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붙여 놓을게. 다시 베껴 쓰고 싶지 않아. 이해해 줄 거지? 엽서를 붙이고 남은 여백에 이렇게 써둘 거야. "이 다이어리에 적힌 것들은 일 년 후에 쓰인 것들임." 10년, 20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네가 이 다이어리를 다시보게 되는 날이 언젠가 하루는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면 내가 언제 쓴 것인지 내가 언제 네게 보냈는지 너는 언제 이 다이어리를 받았는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저 문장이 도움이 되지 않겠니. 아닌가. 오히려 더 헷갈리려나?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다이어리를 보게 된다면 예언서라 오해하게 될까?
--- p.115 「으르렁을 찾아서」중에서

어디서 봤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주점에서 만난 것은 아니다. 십 년 만에 가본 ‘서천’이다. 머리가 아프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이다. 녀석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겠지. 열 시나 되면 전화가 오려나. 해장국으로 뭘 먹으러, 어디로 가지? 나를 안다는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고민하고 싶지 않다. 뭐 아는가 보지. 어쩌라고. 샤워를 하고 싶다.
--- p.145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중에서

고양이들이 왔다. 갈색 줄무늬를 가진 녀석과 검은 몸통에 흰 발목을 가진 녀석. 가끔 우리 집 정원을 가로질러 지나가던 고양이들이었다. 애들 엄마와 나는 거실 안에 있으면서도 숨어있는 듯 숨을 죽이며 보았었다. 고양이들이 지나가고 나면 큰 숨을 내쉰 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길고양인가? 그렇겠지? 그런데 덩치가 저렇게 커? 그러게. 얼굴도 이상한데. 삵인가? 삵? 왜 있잖아.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던 삵 말이야. 자기 삵 본 적 있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그냥. 왠지 저런 얼굴일 것 같아. 피이, 자긴 항상 그런 식이지. 어쨌건 우리가 아는 고양이하고는 조금 다르잖아. 그건 그래. 삵이랑 고양이랑 섞인 건가? 야생의 세계는 모르는 거니까. 녀석들은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녀석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 pp.174-175 「검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나」중에서

순정은 고모의 소개로 그를 만났다. 공무원만 한 직업이 없다. 소방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배치받은 신참이지만, 뭐라 카더라? 시 뭐라 했는데? 그래, 맞다. 시보. 소방시보라 카더라. 세월은 흐를 것이고 세월 따라 형편은 좋아질 거다. 처음부터 좋은 것이 어디 흔하나? 나이는 너보다 쪼매 많지만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그게 더 좋은 일이지 싶다. 오빠 하나 없이 자란 니한테는 딱이다. 사진 한 장을 건네며 고모가 말했었다. 빨리 시집가라는 아버지의 성화를, 그만둬 줬으면 하는 사장의 은근한 눈빛을 견디기 힘들던 때였다. 확, 시집이나 가버려? 오기가 순정을 부추겼다. 자기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그가 마뜩치 않았지만 일단 한번 만나보라는 고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p.199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중에서

김강은 사르트르가 말한 ‘영구혁명의 담당 기관으로서의 소설가’이자 시대의 스승을 자처하는 ‘문사로서의 소설가’라는 문학사적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소설은 늘 공동체의 올바른 존재 양태에 대한 탐색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그가 노벨을 벗어나 SF나 알레고리로 훌쩍 뛰어넘는 순간에도 역시나 그의 관심은 이 시대와 공동체를 결단코 벗어나지 않는다. 실로 소설의 본령에 해당하는 이러한 영역은 한동안 한국소설계에서는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김강은 맹렬한 기세로 이 결여의 영역을 채우며 한국문단의 중심으로 육박해 들어오고 있다. 그렇기에 김강은 무척이나 귀한 작가이며, 그의 작품에 감동이라는 요소까지 예술적으로 녹아든다면 그는 희망의 깃발이 되어 한국문단의 창공에서 오래도록 펄럭일 것이라 믿는다.
--- p.248 「해설 | 문사(文士)의 전통을 잇는 문학」중에서

여섯 번의 여름과 다섯 번의 겨울이 지났다. 언젠가 꽃은 지는 법. 목성 주위를 돌던 갈릴레오 탐사선이 목성 궤도를 이탈하며 임무를 마친 그 해, 너와 그의 사랑도 끝났다. 여섯 번의 여름과 다섯 번의 겨울이 각인된 스테인리스 조각만이 월지의 어느 바닥에 남았다.
그것이 문제다. 밤의 어둠속에서 더욱 반짝일 영원한 사랑의 맹서. 작은 상처를 주고받아 아픈 날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었다고, 바람 부는 세상 서로 기대며 살았고 꽃 같은 세상 온전히 서로의 것이었다고, 마지막 날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고 깊이 새겨놓은 각인. 월지의 작은 보트 근처 어딘가의 스테인리스 조각.
배롱나무 헐벗은 가지들을 흔들고 동백의 꽃을 툭툭 떨어뜨리며 오는 밤.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밤. 그와 같은 밤이 오고 있다. 너는 검은 잠수복을 챙겨 나선다. 월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개를 집어넣고 손을 휘저어 무언가를 찾는다. 너는 문득 묻는다. 우리가 건져내야 할 것이 지난 사랑의 각인뿐인가?

--- pp.254-255 「작가의 말 | 곧, 그 밤이 또 온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최초의 인간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에는 ‘최초의 인간’이라 일컬어지는 ‘아담’을 표제로 한 매우 독특한 소설이 한 편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김강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담」은 기인이라 할 수 있는 ‘그’에 관한 일종의 보고서이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죽으면 “한 문장으로 신문에 부고를 내어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한다. 그 문장은 바로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다고. 부끄러워서 그랬다고.”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가 겪은 일이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집을 나와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인가라는 의문을 표하기도 하며, 끝까지 “그의 부끄러움”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이후의 일들을 통해 결국 ‘나’는 그가 가진 부끄러움의 진정성을 믿게 된다.

『그것만 잘라내면 될 줄 알았는데……. 이 왼 손모가지를 잘라야 하나? 그러면 해결이 될까? 자꾸 떠올라. 그것도, 손모가지도 잘라내었는데 자꾸 떠오르면 다음엔? 그 다음엔? 하긴 기억이 사라질 수 있겠어? 이 머릿속 어딘가 영원할 테지…….』
『하긴 세 번째 눈은 잘못이 없어. 그것이 오기 전에도 그는 그랬었잖아. 그랬고말고. 그 눈동자 그 혓바닥, 그가 가진 모든 감각으로 탐했지. 상상으로 머릿속으로.』
『그는 운이 좋은 놈이기는 하지. 왼 손바닥에 있는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달랐을 것 같아? 그저 들키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게 운이 좋은 거지.』

이 노트에는 근본적인 욕망과 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자책과 염오의식이 가득 채워져 있다. 결국 소설가인 ‘나’는 신문사에 가서 그의 부탁대로 부고를 전하기로 한다. ‘내’가 전한 부고의 문장은 “그는 부끄러움이 많았다.”이다. 김강이 조형해 낸 ‘최초의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그릇된 욕망과 감각들을 예사로이 보지 못하는, 강박적일 정도로 염결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예민함과 엄격함에 바탕해 보았을 때, 지금의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문제와 오점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소설 창작은 결코 늦춰질 수도 멈춰질 수도 없는 절대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원적 폭력성과 공동체를 향한 윤리감각

김강의 작가적 레이더가 가장 날카롭게 반짝이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문제 삼을 때이다. 이번 작품집의 입구에 놓인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는 공동체에 대한 김강의 예민한 인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는 수십 년의 시간을 격한 두 개의 서사가 나란히 진행된다. 병렬되는 두 개의 서사는 어린 시절에 아파트 공터에서 1동과 2동 아이들이 연탄재를 가지고 벌이던 전쟁놀이와 두 번째는 사소한 일로 동네 사람들이 갈등을 벌이다가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를 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연탄재 전쟁에서나 지금의 살인사건에서나 뜻하지 않게 범행도구를 제공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나’는 마지막까지 “명확히 해두어야겠습니다. A의 손에 쥐어져 있던 칼은 저의 칼이 아닙니다. 제 손에 오만 원권 지폐가 쥐어지던 순간 그 칼은 A의 칼이 된 겁니다. 이론의 여지없는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라며 항변한다. 그렇지만, 「아담」에서와 드러난 것과 같은 엄격한 윤리의식과 감각에 바탕해 본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A의 주변 상황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얇고 뾰족한, 비교적 긴 칼’을 아무런 걸림 없이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에 대한 섬세한 윤리감각은,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 강조되는 인간의 본원적인 폭력성을 생각한다면 절대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의 소위 ‘개구리 놀이’가 상세하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 동네의 한 형이 개구리를 잡아오자, 대장 형은 개구리의 입에 폭음탄을 물린다. 폭음탄에 불을 붙여 터뜨리자, 개구리는 서너 바퀴 공중제비를 하다가 떨어진다. 어린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생명을 향한 가학적인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개구리를 향한 폭력성은 언제든지 인간을 향한 것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점에 문제성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에게는 과도할 정도의 공동체를 향한 윤리감각이 요청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착하다는 말 제게 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라고 대답하기

김강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 그는 자발적 개인의 담대한 주체선언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작가적 인식을 간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바로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이다. 이 작품의 ‘나’는 유흥주점에 갔다가 세희라는 여성과 인연을 맺게 된다. 세희는 옛날 ‘내’가 돌보던 환자의 딸이었다. ‘나’는 무수한 입원 당시 주치의 중의 한 명이었고, 세희 아버지의 사망선고를 내렸던 의사였다.

세희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을’로서의 모든 성격을 지닌 존재이다. 우선 세희는 계급적, 젠더적 억압을 모두 받고 있다. 그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술집에서 자신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계급적 약자이며, 오빠 대신 가정 내 부담을 떠안고 살아가는 젠더적 약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녀는 의료현장에서 한없이 무력한 중환자의 보호자일 수밖에 없다. 세희의 아버지 김완수가 인공호흡기를 단 지 한 달이 지났던 그날, 술에 취한 세희는 병원을 찾아와 “인공호흡기 뽑아달라고, 환자가 그저 죽게, 그냥 가만히 좀 두라고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친다. 세희는 “고치지도 못할 거면서 살리기는 왜 살리는데. 저게 살아 있는 거야?”라거나 “착한 척, 친절한 척하면서. 저게 뭐냐고, 저게 사람이냐고. 우리 아빠 어디에 갖다 놓고, 저런 살덩어리를 두고 우리 아빠 이름을 붙여놓았냐고.”라고 누구나 공감할 법한 말들을 주절댄다.

결국 ‘나’는 매뉴얼에도 없는 문장까지 서약서에 쓰도록 강제한다. “나는 현재의 치료가 중단될 경우, 환자, 즉 나의 아버지인 김완수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판단하며, 이 판단에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매뉴얼에도 없는 이 문장을 불러주며 세희 남매가 “종이를 찢어버리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주저앉는 것으로 오늘의 일이 마무리”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 문장이 “결코 잊히지 않는 한마디가 되어 그들의 삶을 괴롭혀야 한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의도는 반은 이루어지고, 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희는 종이를 찢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지금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얄궂은 인연으로 ‘나’와 다시 만난 세희는, ‘나’에게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내가 우리 아빠 죽인 것 아니죠? 그렇죠?”라고 묻는다. ‘나’는 천사 같은 태도로 “그래.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세희가 죽인 것 아니야. 넌 착한 딸이었어.”라며,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세희와는 달리 ‘따뜻한’ 반말로 응대한다. 그러자 “빨간 실핏줄이 가득한 눈”으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세희는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호한 반말로 대답한다. 마지막에 ‘내’가 세희에게 건넨 말은, 세희를 온전한 주체 이전의 존재로 묶어두려는 말이자 세희가 아닌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맞서 세희는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당당하게 자신이 당당한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경재 평론가는 해설에서 “김강은 사르트르가 말한 ‘영구혁명의 담당 기관으로서의 소설가’이자 시대의 스승을 자처하는 ‘문사로서의 소설가’라는 문학사적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소설은 늘 공동체의 올바른 존재 양태에 대한 탐색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그가 노벨을 벗어나 SF나 알레고리로 훌쩍 뛰어넘는 순간에도 역시나 그의 관심은 이 시대와 공동체를 결단코 벗어나지 않는다. 실로 소설의 본령에 해당하는 이러한 영역은 한동안 한국소설계에서는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김강은 맹렬한 기세로 이 결여의 영역을 채우며 한국문단의 중심으로 육박해 들어오고 있다. 그렇기에 김강은 무척이나 귀한 작가이며, 그의 작품에 감동이라는 요소까지 예술적으로 녹아든다면 그는 희망의 깃발이 되어 한국문단의 창공에서 오래도록 펄럭일 것이라 믿는다.”고 평한다.

이처럼 문사의 계보를 잇는 김강의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는 예민한 감각으로 인간의 원형을 탐구하며 동시에 공동체의 올바른 윤리성을 좇는다. 그의 날카로운, 어쩌면 과도한 윤리 의식이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우선되는 요구는 아닐는지. 김강의 감동이 있는 문학 클리닉에서 잠자고 있던 우리의 빛나는 감수성과 윤리감각을 깨워보길 권한다.

추천평

김강의 소설이 지닌 매혹의 핵심은 이중성이다.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에 실린 작품들은 나와 우리, 존재와 관계의 이중성이 부딪치고 엇갈리는 지점마다 찍어둔 좌표들이다.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 시작된 그의 비타협적인 질문은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
김강 소설의 이중적 매혹의 절정은 방법론이다. 쇄빙선처럼 우리 시대가 직면한 예각을 돌파해나가는 동시에 솜털이 일어나게 만드는 이 섬세한 감각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 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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