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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환경 11 추진 중인 이름 13 계약 15 국제적, 세계적 17 와펠과 새로운 법적 주체 18 두 번째 분열 19 누가 지휘하고 있는가? 20 철학자들의 책임 22 정치? 23 오늘날의 비극 24 경보 27 1부 전쟁, 평화 기후 36 내기 39 전쟁 43 대화 46 전쟁과 폭력 52 법과 역사 58 경쟁 62 우리 64 ‘안다’는 것 74 아름다움 82 평화 84 2부 자연계약 두 가지 ‘시간/날씨’ 89 농사꾼과 뱃사람 90 긴 시간과 짧은 시간 93 과학철학자 98 다시, 전쟁에 대하여 99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100 역전 102 법률가: 세계 없이 있는 세 가지 법 103 인권선언 105 사용과 남용: 기생물 109 균형들 110 자연계약 112 정치 115 통치에 대하여 120 다시, 역사 125 종교적인 것 129 사랑 134 3부 과학, 법 기원들 139 우리의 뿌리 157 이 재판이 전개되어 온 일반적 역사 162 재판이 계속되다 165 소송 사안들의 분류 194 갈릴레이 205 과학과 법의 역사적 만남 217 이성 원리 224 이성과 판단 232 제3의 지식인 235 양육 237 4부 끈과 그 해체 브레스트 항구 243 쿠루 기지 245 발고데마르의 샤부르네우 251 밧줄과 연결 259 첫 출항인가, 마지막 출항인가? 273 팰로앨토, 1989년 10월 17일 17시 04분 이후 281 안나, 어머니 마리아 282 무덤 너머의 여정 288 지구여! 지구여! 293 방향을 잃고 302 평화 84 참고문헌 305 역자 후기 309 찾아보기 317 |
Michel Ser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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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이 세계대전의 가능성 앞에서 주춤거리고 물러서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인간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물들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며, ‘국지적 차원’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이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일까? 역사가 자연 앞에서 자신의 직진(直進)을 멈추고 있는 것일까? 하여간 이렇게 해서 ‘지구’라는 대지가 인간들끼리의 다툼에 대해 공동의 적이 되고 있다.
--- pp.51-52 진짜 문제는 실은 이런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바로 최초의 사회계약 자체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심지어 그것을 뜯어고쳐 다시 서명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계약은, 인간들끼리의 관계라는 첫 번째 대각선을 따라, 좋은 결과를 낳게 되든 나쁜 결과를 낳게 되든 우리를 하나로 묶어 놓는 것이지만 세계를 빼놓고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처럼 위험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을 줄 알게 된 우리 앞에, 다른 대각선을 따라, 세계와 함께 체결해야 할 새로운 계약을 떠올릴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계약’이다. 이렇게 해서 두 개의 근본적 계약이 서로 교차하게 된다. --- p.62 그러니 이런 문제를 논하는 데서 자주 써먹어 온 ‘환경’이 라는 말은 이제 그만 잊도록 하자. 이 말은 다른 사물들과는 다른 존재인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들 주위를 돌고 있는 사물들의 체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 자신을 우주의 배꼽이자 자연의 주인이고 소유자인 양 간주하는 생각을 전제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심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사물들이며, 우리는 그 주변부에 놓여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는 그들 중에, 마치 기생물인 것처럼 세 들어 살고 있다. --- p.101 처음에는 법이 과학을,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며 압도한다. 하지만 과학이 점차 법을 압도하게 되는데, 모든 판결이 이성의 빛 아래 재검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법이 과학을 압도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의 내재적 논리, 심지어 과학사의 논리조차 법의 논리로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시 과학이 법을 압도하는데, 그것은 과학이 언제나 전문가들을 법정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다시…. 과학과 법의, 이성과 재판의 이 ‘메타-논쟁’은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 역사의 시간을 구성한다. --- pp.203-204 역사 전체에 걸쳐 이루어져 온 수많은 출항 가운데 우리가 지금껏 도달한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이제 ‘보편적 주체’가 된 인류는 마침내 하나로 연대하여 ‘보편적 대상’인 지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어린아이는 여전히 수많은 탯줄과 실 에 의해 이 어머니에게 연결되어 그녀의 젖을 빨고 있다. 그리하여 삶과 양식(糧食)을 주는 생명의 젖줄과, 사유나 대상화의 관계를 이루게 하는 끈이 감정 속에서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 p.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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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태 위기를 먼저 사유한 미셸 세르의 문제작
“세계와의 전쟁을 멈출 새로운 계약이 필요하다” 계약은 인간만의 것인가 근대 정치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물으며 ‘사회계약’을 발명했다. 인간은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법을 세우며 정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셸 세르는 이 위대한 계약에 결정적인 누락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들끼리 계약을 맺는 동안 정작 그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는 계약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법적 주체가 되었지만 땅과 강, 바다와 대기, 동식물은 인간이 마음껏 소유하고 사용하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았다. 사회계약은 인간의 권리를 확장했지만, 그 문을 닫는 순간 거대한 세계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1990년 처음 출간된 『자연계약』은 바로 이 오래된 계약을 다시 쓰자는 급진적인 제안이다. 한때 일부 인간에게만 허락되었던 법적 주체의 지위가 마침내 모든 인간에게 확대되어 왔다면, 이제 그 역사를 인간 너머로 밀고 나가야 한다. 세르는 자연을 인간과 대등한 계약의 상대이자 법적 주체의 지위로 끌어올리고, 인간과 세계 사이에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설정하자고 주장한다. 인간들끼리만 맺은 사회계약 이후, 이제 세계와 맺는 ‘자연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호소보다 훨씬 근본적인 요구이다. 인간의 전쟁 뒤에서 시작된 세계의 반격 『자연계약』은 고야의 그림 〈모래 위의 결투〉에서 시작한다. 두 남자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서로를 쓰러뜨리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서 있는 땅은 진흙 펄이다.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두 사람은 함께 더 깊이 가라앉는다. 당사자들은 오직 누가 이길 것인가에 몰두하지만, 그림 밖의 관람자는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둘 다 살아남을 수 있는가. 세르는 이 장면에서 인류의 역사를 읽는다. 전쟁과 경쟁, 지배와 소유에 몰두해 온 인간은 서로의 적만 바라보느라 자신들이 함께 빠져들고 있는 세계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에 행사하는 힘이 전 지구적 규모에 이르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우리가 대상으로 취급해 온 세계가 이제 인간의 행위에 전체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와 바다, 땅과 대기는 더 이상 인간 역사의 고요한 배경이 아니다.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는 주체인 동시에 자신이 변화시킨 세계에 의해 다시 변화되는 존재가 되었다. 세르에게 기후 위기는 그래서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벌여 온 오래된 전쟁이 마침내 인간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사건이다. 지배와 소유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승리는 패배가 되고, 인간은 자신이 의존하는 세계와 함께 몰락한다. 역사는 뜨겁게 불타올랐지만, 그동안 우리는 그 아래 가라앉고 있는 땅을 보지 못했다. 지배와 소유에서 권리와 공생으로 세르가 요구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적인 회귀가 아니다. 문제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어떤 새로운 법적 관계를 세울 것인가’이다. 근대의 사회계약은 인간들 사이의 평등을 인정했지만 자연을 권리 없는 대상으로 남겨 두었고, 근대 과학은 세계를 인식하고 지배할 대상으로 만들었다. 세르는 이 두 역사를 하나의 문제로 묶는다. 과학이 세계를 변화시킬 만큼 강력해졌는데도 법과 정치는 여전히 인간 사회 내부의 이해관계만을 조정하고 있다면, 인간의 힘과 세계의 힘 사이에는 어떤 질서가 세워져야 하는가. 그가 자연계약을 단순한 생태적 약속이 아니라 사회계약과 과학적 계약을 동시에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계약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 전환을 압축하는 말이 ‘기생’에서 ‘공생’으로의 이동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을 무한한 숙주처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숙주를 죽이는 기생자는 결국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의 지배가 전 지구적 규모로 확대된 오늘날, 지배는 도리어 인간을 위협하는 힘으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자연계약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선의를 요구하는 계약이 아니다. 인간과 세계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에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법과 정치가 인정하는 계약이다. 세르가 말하는 자연계약은 인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가 성립할 수 있는 세계의 조건을 다시 법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다. 역사의 갈림길에는 이제 두 개의 길만 남는다. 죽음이냐 아니면 공생이냐. 세계와 함께, 세계 안에서, 세계에 의해, 세계를 위해 세르는 계약을 하나의 ‘끈’으로 사유한다. 끈은 인간과 인간을 묶지만 인간과 사물도 연결하며, 지식과 힘, 법과 세계를 함께 얽는다. 과학과 기술이 전 지구적 규모로 발전한 오늘날, 인류와 지구는 이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국지적인 행동이 지구 전체를 변화시키고, 변화한 지구는 다시 인간의 삶을 바꾼다. 우리는 지구를 소유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지구에 의해 규정되고 있으며,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세계가 인간의 정치와 법을 다시 쓰도록 요구한다. 『자연계약』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끈’은 그래서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인간과 세계 어느 쪽도 홀로 존재할 수 없게 된 시대의 존재 조건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90년이었다. 당시에는 자연에게 법적 주체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르는 훗날 다시 쓴 서문에서 자신이 제안했던 법적 해결책이 여러 나라의 입법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음을 지적하며, 한 세대 전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생각이 이제 실천 가능한 것이 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오늘날 『자연계약』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오래된 생태철학의 고전을 되돌아보는 일이 아니다.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붕괴 앞에서 인간의 정치와 법, 과학과 철학의 토대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 세계를 인간의 ‘환경’으로 둘러 세웠던 오래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계가 서로에게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세계와 함께, 세계 안에서, 세계에 의해, 세계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가. 오래전 도착한 세르의 경고에 이제는 답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