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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기억의 잔해 속에
1부 컨택트/ 패스트 라이브즈 / 애프터 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싱 스트리트/ 8월의 크리스마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천국보다 낯선/ 벌새 인터미션 자문자답 2부 러브레터/ 하나 그리고 둘/ 패터슨/ 이사/ 마녀 배달부 키키/ 레옹/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어나더 라운드 추천의말 영화감독 권하정 - 영화라는 통로 배우 윤상정 - 책이라는 공간 |
李澤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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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때로 글을 쓰다 보면 미래의 일을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씀으로써 그곳에 다다르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적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을 적는다. 2. 과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미화되고 과장된다. 기억 속의 지난 과거는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기도 하고, 제 스스로 복잡하게 재배치되기도 한다. 한때 나의 것이었던 나의 과거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 된다. 미래는 담백하고 명확하다. 우리는 길의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게 되더라도, 그 길을 나서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다가 어쩌다 이별을 겪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에 빠지는 존재들이다. 3.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저마다 매일의 패배를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고 또 져도,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르고 저녁놀과 함께 퇴근하는 사람들. 지는 것이 뻔한 싸움일지라도 그 싸움에 기꺼이 임하며 고투하는 사람들. 4. 한때 나를 살게 했던 사람. 한때 나를 견디게 했던 영화.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그런 영화를 시절 영화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앞으로 누군가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묻기보다,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당신의 시절 영화는 무엇인가요?” 5.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 평온했던 흐름을 뒤흔들어 놓는 무게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것을요.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는 문진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묵직한 바위가요. 그 육중한 무게는 떠나온 거리만큼 비례하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봅니다. 6. 지금처럼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특정 장소의 풍경이 선연하게 떠오를 때면, 그 시절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 속에서 어떤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7. 이렇게 영화를 빌려 어린 시절의 버려진 기억들을 지면 위로 불러내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을 피하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먼저 안아줄 수 있을 때 마침내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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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영화에서 비롯된 작가의 에피소드들은 내가 겪었지만 잊고 지냈던 뭇날의 감정들을 하나씩 불러낸다. 불러내어진 감정들은 굳어 있던 마음에 가느다란 실금을 만들고, 이내 틈을 낸다. 그 틈으로 오래된 다짐과 잊고 지낸 바람이 새어 나온다.
작가의 책은 독자를 잠시 무중력 상태에 놓아두는 힘이 있다. 이번에는 ‘영화’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독자는 영화 이야기라 생각하고 방심하며 책장을 펼치지만, 어느 순간 영화 속 인물에게 기대어 자신의 한 시절을 돌아보는 작가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 독자 자신의 모습까지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어느 챕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후숙되는 건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를 바라보는 자신이라고 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 또한 후숙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가만히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 권하정 (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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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체에 담긴 초연함이 좋다. 강요하지 않는 말들은 듣는 이의 가슴 속에 빈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서 떠오른 것들을 검은 연필로 여백에 마구 적어놓으며, 비로소 생각을 공고히 하는 시간을 갖는다. 활자의 힘이 발휘되고 문학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그의 글은 그렇게 휴지가 날아가지 않도록 문진을 올려두듯, 우리에게 잠시 멈춰 삶을 음미할 시간을 건넨다. - 윤상정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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