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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고통을 자유로 바꾼 41명의 숨은 수행자들 개정증보판
조현
불광출판사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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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책머리에

1. 이 한 몸 태워 불도를 밝히리

현기_꿈속에서 황금을 얻으려 애쓰는구나
제선_인과응보는 정확하지만, 내가 없다면 도대체 누가 과보를 받겠느냐
혜수_선사라면 어찌해서 앉은 채 몸을 벗지 못하겠느냐
보문_마취 없이 내 뼈를 도려내거라

2. 대자유인은 바람처럼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경허_내가 미친 것이냐, 세상이 미친 것이냐
춘성_나에게 불법을 묻는다면 씨불알놈이라고 하겠노라
금봉_‘지금 당장’ 너는 누구냐
고봉_여인아, 내가 이제 안락삼매에 들 시간이구나
조오현_벌거숭이 그대로가 진리 당체라네

3. 지혜의 보검으로 번뇌망상을 단칼에 자르다

만공_사자굴에 다른 짐승은 없다
보월_스승도 내 칼을 비켜갈 수는 없다
경봉_여의주를 여기 두고 어디에서 찾았던가
일우_몸에 붙은 때 같은 그 마음을 왜 붙들고 있느냐

4. 지옥 속에서 깨달음이 피어난다

전강_천지에 부처의 몸 아닌 곳이 없는데, 어디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법희_맑은 물로도 어찌 그 깨끗함에 견줄 수 있겠느냐
일엽_매일 매일이 명절날이 아니더냐
삼성_양심이 불성이고, 부처님 하느님이다

5. 위대한 지혜는 어수룩해 보인다

혜월_터럭 하나 소유 않고도 천하를 활보하는 이 누구냐
석봉_이 세상에서 참는 자보다 강한 자는 없다
우화_남의 눈치나 보며 산다면 천진불이 죽는다네
도천_일심으로 일하는 것이 바로 선(禪)이다

6. 진정한 도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

박한영_돌대가리인가, 천재인가
청화_당신은 중생 아닌 부처님이니 삼배합니다
서암_논두렁 아래 청정한 이가 절이고 불교라네
취봉_진실한 삶보다 높은 도(道)는 없다네

7. 빛을 감추고 대중들과 동고동락한다

혼해_여인의 아픈 마음이 곧 내 마음이 아니냐
철우_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가라
연관_코로나도 고맙고, 암도 참 고맙다
백봉_우주가 한바탕 웃음이 아니냐

8. 자비가 곧 불심이다

수월_가난한 나무꾼도 중생에게 베풀 것이 한량없이 많구나
만암_자신에겐 추상같되, 남에겐 훈풍이 되리라
지월_나를 때린 네 손이 얼마나 아팠을 것이냐
벽초_봄날 들판의 쟁기질이 내 법문이다, 이랴 이랴 쭈쭈쭈

9. 눈 쌓인 길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한암_어찌 돌멩이를 쫓는 개가 되겠느냐
효봉_토끼 같은 새끼들조차 버렸는데, 어찌 이 몸뚱이를 아끼겠느냐
정영_술에도 깡패가 마시는 술이 있고, 중이 마시는 술이 있다
고우_가치관이 안 바뀌면 출가 수행자가 아니다

10. 중생의 고통이 있는 한 나의 원도 다함이 없다

백학명_호미질 열 번에 불도를 깨닫는다
용성_해와 달은 중국의 것이냐, 조선의 것이냐
만해_나는 지옥에서 쾌락을 즐겼노라
탄허_그대의 미래를 알고 싶은가, 그러면 그대의 오늘의 삶을 보라

· 책을 끝내고

저자 소개 1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및 논설위원이다. 때론 그 굴레조차 벗고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주로 찾는 곳은 히말라야 설산이나 동굴, 외딴섬…. 벗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도 좋아한다. 은둔 수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다른 한쪽으로 마을공동체 사람들과 교유하고 지지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 속에 들어가 같이 지낸다. 세상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수도 터와 성지들을 다니고 최고의 영성가들을 만나 수행하면서 이를 선(禪)적인 글로 풀어내 ‘선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002년엔 휴직한 뒤 1년간 인도 순례를 감행했고, 2016년에도 1년간 히말라야를 트레킹하거나 해외 공동체에서 보냈다.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및 논설위원이다. 때론 그 굴레조차 벗고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주로 찾는 곳은 히말라야 설산이나 동굴, 외딴섬…. 벗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도 좋아한다. 은둔 수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다른 한쪽으로 마을공동체 사람들과 교유하고 지지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 속에 들어가 같이 지낸다. 세상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수도 터와 성지들을 다니고 최고의 영성가들을 만나 수행하면서 이를 선(禪)적인 글로 풀어내 ‘선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002년엔 휴직한 뒤 1년간 인도 순례를 감행했고, 2016년에도 1년간 히말라야를 트레킹하거나 해외 공동체에서 보냈다.
한겨레신문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1999년부터 영성·치유·깨달음·공동체·대안적 삶에 대한 글을 주로 쓰면서 웰빙과 힐링, 공동체 바람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서로 처녀작인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개정)은 200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책의 날’ 직원들에게 선물한 책으로, 누리꾼들이 뽑은 ‘인문교양도서’ 1위에 선정되었다. 이어 세계 공동체 순례기인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를 기획해 펴냈으며, 인도 여행을 다녀와 《영혼의 순례자》(《인도 오지 기행》으로 개정)를 냈다. 숨은 선사들의 발자취를 발굴한 《은둔》이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상’을, 오지 암자 기행인 《하늘이 감춘 땅》은 ‘불교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한국 기독교의 숨은 영성가를 발굴한 《울림》은 감신대·서울신학대·장신대·한신대 등 주요 신학대에서 ‘100대 인문교양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역사와 신화의 땅, 그리스를 다녀와서 펴낸 《그리스 인생 학교》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여름 휴가에 읽을 책’으로 선정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선정한 ‘우리 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뽑히기도 했다.
2001년 EBS에서 ‘조현 스페셜’이란 제목으로 일주일간 특별 강연을 한 이래 YMCA영성분과위원회, 정신과의사모임, 종교발전포럼, 서울대학병원, 서울시민청, 전주전통문화연수원 등에서 강연을 했다. 영성가·수도자·인문학자 등과 함께 지친 마음을 쉬며 치유할 수 있는 수행·치유 웹진 휴심정(well.hani.co.kr) 운영자이자 함석헌이 창간한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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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88쪽 | 152*225*23mm
ISBN13
9791172613006

책 속으로

“스님은 이 긴긴밤 이런 곳에서 외롭지 않으십니까?”
잠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던 산승이 “그러게. 외로워서 어쩌지?” 하며 웃었다. 그러나 칠십이 넘도록 홀로 살아온 그의 ‘절대 고독’을 어찌 감출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수만 년 동안 무심히 빛을 발한 저 별처럼 속삭였다.
“사람들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기를 쓰고 돈을 벌려는 것도, 권력과 직위를 얻으려는 것도 그것이 없으면 고독해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야. 그런데 나는 이상하지. 이게 좋으니. 이게 이렇게 좋으니.”
지리산의 숨은 도인으로 알려진 지 오래지만, 상좌 하나 두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고 있다. ‘왜 상좌 하나도 두지 않느냐’ 하니, “내 손발이 상좌”란다.
--- p.26

천장암(天藏庵)은 글자 그대로 하늘을 감추고 있는 곳이다. 선(禪)에서 하늘이란 바로 ‘만유의 본체’인 진여실상이 아닌가. 천장암은 바다도 들판도 산도 굽어보지만, 바깥의 사바중생들은 업식의 번뇌망상에 가려 진여를 보지 못한다. 경허는 ‘허공 거울[鏡虛]’이어서 세상을 남김없이 비추지만, 세상은 경허를 보지 못하고 제 깜냥대로 시비 분별할 뿐이다. 한 줄기 회오리바람으로 살다 간 경허가 용트림으로 서해바다를 휘몰아치며 호령한다. 어찌 그대는 나를 보지도, 치지도 못하는가.
--- p.80

서울 성북구 돈암2동 흥천사에 조실채를 지었을 때 조오현이 조실채의 이름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대부분의 절에서 조실채는 ‘염화실’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서, 절집 용어 외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었다. 1~2주일을 나름대로 고민해봤지만, 그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손 잡고 오르는 집’. (……) 많은 이들이 저 높은 것을 향한 욕망으로 노력하고 정진한다. 그런 발분망식(發憤忘食)의 용맹 정진만으로도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점차 대비심은 사라지고 개인의 명예욕만이 남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그는 늘 손 잡고 올랐다.
--- p.120~122

일우는 절이 아닌 세간에 머물렀지만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 일우는 절에서 살 때도 염불과 절 예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형식 같은 데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절 살림이 궁핍하여 끼니를 잇기 위해 할 수 없이 일우도 탁발을 나갔다. 한 부잣집에 탁발을 가자 주인은 일우에게 밥상을 차려주면서,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천수경』을 외워달라고 부탁했다. 승가에서 천도재를 지낼 때 가장 기본적인 염불인데도 일우는 그조차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차려놓은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땡중’ 취급을 받아 쫓겨나고 말았다. 일우는 머리와 수염, 손톱도 깎을 줄 몰랐다. 덥수룩해진 수염이 보기 답답하여 보살과 제자들이 깎아주면 그대로 있었다. 그는 세수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 p.165

삼성은 타협 없이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과정에서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노출한 자신에 대해 성찰과 반성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을 독실하게 따르는 한 보살이 “스님도 자신의 깨달음만 고집하며 다른 스님들과 시비하니 스님도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판하자, 파안대소하며, “나의 집착을 정확하게 지적해줬다.”고 바로 동의하며 왕고집을 내려놓았다. (……) 하지만 그는 열반 직전까지도 신비스러움으로 포장한 가면과 위선의 도인상과 종교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예리한 취모리를 날리며 진실과 양심의 삶을 살려 애썼다. 삼성은 뭔가 신비스러운 듯이 포장하는 것을 현대 종교위기의 원인으로 보았다.
--- p.211

‘안마하다 방심하면 발로 걷어 채인다’는 원주 스님의 경고가 있었지만, 온종일 노동한 몸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고픈 마음에 노승의 몸을 주물렀다. 온통 군살이 박혀 나무등걸 같은 손을 마주 잡으니, 뭔지 모를 게 울컥 솟았다.
이심전심일까. 말은 아무리 지껄여봤자 허망한 것이라며 오직 말 없는 행만을 보여온 강골이지만, 안마 속에서 모처럼의 법문이 새어 나온다.
“지혜로운 사람은 쌀로 밥을 짓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 들어. 일은 안 하면서 편하게만 살려 들고, 욕심만 채우려 드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여. 그런 마음이 탐진치여. 땀 흘려 일하고,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탐진치 삼독이 다 녹아. 그러면 아상이 녹아서 지혜가 저절로 드러나. 아상에 가려져 있던 참다운 자기 모습이 보이는 법이여.”
--- p.258~259

청화는 어떤 권위를 내세워 도인연하는 권위적인 큰스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도 많이 달랐다. 스님들과 재가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반말로 하대하지 않고, 객이 찾아와 삼배를 하면 그도 삼배를 했다. 만인만불, 그 또한 분명 부처님이라는 철견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업장이 녹는 경험을 하곤 했다.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은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청화를 친견했을 때 “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나?”라는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눈물이 솟구치면서 가슴 밑바닥의 응어리가 녹아내렸다고 고백했다.
--- p.288~289

출가는 외로운 여정이었지만, 정영에겐 오랫동안 잊었던 맞춤복을 드디어 입은 느낌이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정영은 신자를 두지 않았다. 경북 문경 운달산 금선대에서 지낼 때 산에서 길을 잃어 죽을 뻔하다가 목숨을 건진 한 보살이 유일한 신자였다. 말없이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그를 대한 사람은 누구나 깊은 평화를 느끼고 존경했으나 그는 일체의 직위도 갖지 않았다. 한때 태백산 각화사 주지를 맡았으나 수행 잘하는 제자를 그르칠까 우려한 은사가 당장 그만두라고 하자 그날로 주지직을 던지고 숨어버렸다.
아집에서 해탈하는 것이 불교라지만 불자는 ‘불교’에 갇히고, 선승은 ‘선(禪)’에 갇히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정영은 “토굴에서 혼자 살다 보니 내가 중인 것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 p.423~424

혹자들은 화두를 깨쳐 깨달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면서 진리에 대한 ‘이해’를 폄하한다. 하지만 고우는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에 찬동하지 않는다. 못난 중생의 극단과는 정반대로 신비한 ‘도인상’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고우는 평생 큰스님들을 보며 살았지만 그런 도인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완벽할 것이란 환상을 충족시켜줄 도인이란 어리석은 중생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무아와 중도를 보여주지도 못하면서도 ‘도인’을 자처하는 것은 위선이고 사기라는 그의 말이야말로 매서운 활인검이 아닐 수 없다.
--- p.437~438

출판사 리뷰

“한순간의 깨달음보다 오래 살아낸 삶을 보다”
41명의 생애에서 발견한 수행의 진짜 얼굴

깨달음은 한순간의 체험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결국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아냈는지가 그 깊이를 보여준다. 『은둔』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 책은 몇 마디 선문답이나 신비로운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유년을 지나 출가했고, 무엇 때문에 수행에 목숨을 걸었으며, 긴 정진 끝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갔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등장하는 수행자들 역시 흠 없는 성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때로는 괴팍하고 파격적이며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그런 겉모습보다 그들이 평생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바라본다.
자신을 때린 이의 손부터 걱정한 지월, 가진 것이 없어도 남에게 줄 것은 한량없이 많다고 여긴 수월, 만나는 사람마다 중생이 아니라 부처라며 삼배를 올린 청화, 암과 코로나까지 “고맙다”고 받아들인 연관. 수행의 깊이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은둔』은 그래서 단순한 고승전이 아니다.
“수행은 사람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깨달은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마흔한 개의 삶으로 답한다.

가장 깊이 부서진 자리에서 피어난 ‘대자유’
상처와 가난, 전쟁과 죽음을 수행으로 건너간 사람들

『은둔』에 등장하는 이들의 출발점에는 유난히 많은 고통이 있다. 전강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젖먹이 동생을 업은 채 젖동냥을 다녔다. 우화는 어머니를 잃은 뒤 집을 나왔고, 오현은 여섯 살에 절집에 맡겨졌다. 보월은 걸인으로 떠돌다 출가했고, 수월과 혜월, 서암은 절 머슴으로 절살이를 시작했다. 제선은 사랑하던 어린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통에서 달아나기보다 그것을 수행의 에너지로 바꾸었다. 보문은 90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뛰어들었고, 제선은 6년 동안 밖에서 문을 잠근 무문관에서 정진했다. 현기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40년 넘게 홀로 화두를 붙들었다.

『은둔』의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다. 목숨을 걸고 수행한 이들은 오히려 점점 가벼워졌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권위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살폈다.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끌고 다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가장 깊이 부서졌던 마흔한 개의 삶이, 마흔한 개의 새벽이 여기 열린다.”
『은둔』은 고통 없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통과하고도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여전히 현재적인 이유다.

이름난 고승 대신 ‘기록 밖의 수행자’를 찾아서
사라질 뻔한 작은 등불들을 다시 밝히다

기존의 고승전이 종정·방장·조실처럼 이름과 지위가 남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했다면, 『은둔』은 그 바깥의 사람들을 찾아간다. 생몰연대조차 정확히 남지 않은 금봉, 상좌도 탑도 없이 사라진 혜수처럼 평생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수행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들을 성인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말보다 삶을 보고, 명성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좇는다.

그 기록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눈 쌓인 지리산과 태백산을 오르고 외딴 암자와 토굴을 찾아 수행자들을 만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제자와 도반, 공양주와 주변 사람들을 찾아 증언을 들었다. 이번 개정판이 더욱 각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판 당시 스승들의 삶을 증언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난 20년 사이 입적했다. 저자가 직접 들었던 목소리와 기억 자체가 이제는 다시 얻기 어려운 기록이 된 셈이다. 또한 새롭게 추가된 11명 가운데 고우·도천·서암·연관·오현·청화·현기 등 7명은 저자가 직접 만난 수행자들이다. 특히 오현·고우·현기는 각별한 인연을 맺으며 삶과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저자는 자신이 찾아 헤맨 이들을 ‘빈자의 등’​에 비유한다. 화려한 등불은 꺼져도 가난한 노파가 온 정성을 다해 밝힌 작은 등 하나는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처럼, 『은둔』이 기록한 이들도 화려한 이름 대신 삶으로 빛을 남긴 사람들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대신 자신을 낮추고, 깨달음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삶으로 보여줬다. 20년 만에 돌아온 『은둔』은 사라질 뻔했던 마흔한 개의 작은 등불을 다시 우리 앞에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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