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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찾아온 ‘급똥 신호’. 도로는 꽉 막혔고, 주인공의 뱃속 상황실에는 긴급 경보가 울린다. 무책임한 브레인이 사태 수습을 떠넘기는 사이, 일꾼 세포들은 지사제를 투하하며 간신히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옆 차에서 핫도그를 먹는 사람을 본 주인공이 바나나를 집어 들자 일꾼 세포들은 다급하게 브레인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필사적인 만류에도 브레인은 태연하게 “먹도록!”을 명령하고, 뱃속 상황은 다시 아수라장이 된다. “내보내야 한다!”와 “참아야 한다!”로 갈라진 일꾼 세포들. 브레인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마침내 도로가 뚫리고 휴게소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예상하지 못한 대참사가 벌어지고 마는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한 달 뒤. 행복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온 주인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차에 시동을 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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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뱃속에 상황실이 있다면?
‘브레인’과 ‘일꾼 세포들’이 펼치는 몸속 대소동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컨트롤 타워나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 마을처럼, 『배탈』 역시 몸속을 하나의 세계로 그려 낸다. 하지만 『배탈』이 펼쳐 보이는 세계의 중심에는 ‘급똥 위기’라는 지극히 사소하고 본능적인 사건이 있다. 책임자인 ‘브레인’과 쉴 새 없이 일하는 ‘일꾼 세포들’을 비롯해 장속을 가득 채운 내용물까지 저마다 역할과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인공에게 급똥 신호가 찾아오는 순간 뱃속 상황실에는 긴급 경보가 울리고, 수많은 일꾼 세포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특히 장의 움직임을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의 행동으로 풀어낸 장면에서는 이 작품의 기발한 상상력이 한껏 빛난다. 주인공이 아픈 배를 움켜쥐는 순간, 장에서는 딸깍 조명이 켜지고 파티가 벌어진다. 장속 내용물들은 달싹달싹 몸을 움직이고, 신나게 춤을 추고, 사방으로 팡팡 튀며 장을 자극한다. 평범한 신체 현상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 발상이 이 작품에 엉뚱하고 유쾌한 재미를 더한다. · 작은 책 속에서 벌어지는 초대형 사건 막힌 도로와 꽉 찬 뱃속, 닮은 두 공간을 겹쳐 놓는 연출 『배탈』은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초대형 사건이 담겨 있다. 고속도로와 뱃속,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이 흥미로운 화면 구성과 함께 전개된다. 차들로 꽉 막힌 도로와 내용물로 가득 찬 장을 나란히 보여 주며 두 공간의 상황을 교차해 보여 주는 연출이 돋보인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도로와 장의 형태가 서로 닮아 있고, 도로 위 자동차와 장속 내용물이 모두 꼼짝 못 하는 상황이 포개지면서 현실의 교통 체증과 몸속의 답답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주인공과 일꾼 세포의 얼굴을 나란히 보여 주며 몸 안팎에서 동시에 몰려오는 위기를 재치 있게 풀어낸다. 판면을 영리하게 활용한 연출도 돋보인다. 하나의 상황을 여러 프레임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클로즈업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강조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풀컷으로 가득 채워 긴장감을 높인다. 대구를 이루는 장면에서는 캐릭터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변주를 주어 고조되는 위기감을 점층적으로 표현한다. · 보는 재미, 읽어 내는 즐거움 색과 형태, 캐릭터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림의 힘 『배탈』은 176쪽에 달하는 긴 이야기지만 대사는 거의 없다. 캐릭터의 표정과 행동, 장면의 흐름만으로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며, 텍스트보다 그림이 앞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색과 형태는 캐릭터와 상황을 한눈에 보여 주는 중요한 시각적 장치다. 제한된 팔레트 안에서 노랑, 빨강, 파랑, 초록 등의 선명한 색과 질감이 느껴지는 굵은 먹선을 사용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콧수염 달린 회색 먼지 같은 몸에 커다란 검은 모자를 쓴 브레인은 늘 의자에 앉아 명령을 내리고, 둥글고 노란 몸통에 흰 띠를 두른 일꾼 세포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색과 생김새, 자세만으로도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이 한눈에 드러난다. 여기에 열정적으로 앞장서는 한 세포에게 주인공과 같은 주근깨를 그려 넣는 등 장면 곳곳에 숨겨 둔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더한다. 색은 캐릭터를 구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의견이 나뉘는 순간에는 일꾼 세포들의 모자 색을 서로 달리하고, 주인공의 옷 색으로 사건 전후의 상태를 보여 주는 등 색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 뱃속에서 벌어진 대참사, 어쩐지 낯설지 않다! 무책임과 탁상행정을 유쾌하게 비튼 ‘블랙 코미디’ 이 작품은 뱃속 상황실을 하나의 사회처럼 그려 내면서, 익숙한 재난 대응의 풍경을 기막히게 비틀어 놓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책임자의 의무지만, ‘브레인’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위기가 찾아오자 일꾼 세포들에게 사태 수습을 떠넘기고, 간신히 고비를 넘긴 뒤에도 제대로 된 대책은 세우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꾼 세포들이 필사적으로 말리는데도 브레인은 바나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주인공에게 태연하게 “먹도록!” 명령한다.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주인공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대참사를 맞는다. 이후 뱃속에는 긴급 상황실, 재난 대책 본부, 트라우마 단속반 등이 줄줄이 꾸려진다. 관계자들은 묵념과 함께 철저한 원인 조사, 재발 방지 대책, 적절한 치료 실시,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다.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는 모습은 재난에 대처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웃으며 따라가던 뱃속 소동이 어느 순간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 『배탈』은 바로 그 낯익은 풍경에서 묘한 씁쓸함을 끌어낸다. · 『몹시 큰 초대장』에서 『배탈』까지,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박서영 작가의 작품 세계 전작 『몹시 큰 초대장』에서 외롭고 소외된 존재에게 다정한 응원을 건넸던 박서영 작가가 이번에는 아주 유쾌한 ‘날 것’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따뜻한 위로에서 날카로운 풍자로,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서 발칙한 상상으로. 작품의 소재와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지만, 주변의 소소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확장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다정함과 유머,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면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잃지 않는 박서영 작가. 『배탈』은 장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등 이야기에 맞는 방식과 온도를 자유롭게 선보여 온 작가의 현재를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