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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오랜 우울에게 차가운 손 · 12 오랜 우울에게 · 14 큐레이터 · 16 걷는 기분 · 19 우주적 솔루션 · 21 킨츠기 봄 · 23 슈빌 · 25 슬픔의 눈금 · 27 결핍이라는 자원 · 29 영리한 우울 · 31 휴가 두 배로 즐기기 · 33 심심함을 찾아서 · 36 바위 연습 · 37 슬픔은 어디로 가야 하나 · 39 돌을 기르는 사람 · 41 2부 눈물이 앞을 가릴 때 초록이 나를 보았다 · 44 부치지 못한 편지 · 46 책의 귀 · 48 감정의 포기 · 50 용기 · 52 맨드라미의 설문법 · 54 뭉뚱그리는 말 · 57 옴 · 59 짹짹커피 · 61 울음 동호회 · 63 무채색으로 무채색을 말하는 · 65 철쭉으로 만든 관 · 68 길들여진다는 것 · 69 3부 버리고 비우면서 떠나는 내기하듯 목련나무 · 72 초록과 맞장 뜨다 · 74 거룩한 이사 · 75 표정의 광고판 · 77 만대재 고양이 · 80 집들이 선물 · 82 자귀, 자기 · 84 벤치의 자세 · 86 운명의 수레바퀴 · 89 책기둥 · 91 불면증 · 93 남해 설천의 봄 · 95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 97 4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 밤의 소리 · 100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 · 102 노후 준비 · 105 슬픔이 시킨 일 · 106 입이 없는 인형 · 108 손의 세계 · 110 꼭두각시 · 112 그게 뭐라고 · 113 입만 남은 악어 · 115 웃음 포인트 · 117 자살도 힘이 있어야 · 119 신선놀음 · 121 놀아주다 · 123 송창식 · 125 익룡발자국 박물관 · 126 생활의 달인 · 128 벚꽃 엔딩 · 129 |해설 | 김재홍 _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과 ‘사유’의 현대성 · 130 |
정선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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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로 부는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던 꽃잎이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꽃잎의 상상이 자동차의 속도를 얻으면서 한층 더 가까워진 우리 이렇게 바람 속을 부유해도 되는 것인지 봄은 흩날리는 것들의 속도로 더 빠르게 편집된다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킨츠기의 기법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인가요 경계나 부위는 중요하지 않아 상처를 덧대거나 숨기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알몸들 부서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빛의 찬란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했어요 꽃잎을 따라가다가 헛디딘 발끝에 피어나는 찬란하고 오묘한 빛무리 꽃 아닌 상처란 없다 새로운 지도를 펼치고 누군가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킨츠기 봄」중에서 달밤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관들이 줄줄이 놓여있는 게 아닌가 꽃으로 둘러 쌓인 관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머리를 싹둑 잘라놓은 철쭉들 꽃으로 장식한 관처럼 보였다 성당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어젯밤 저 먼 나라 아이들이 화염에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철쭉으로 만든 관」중에서 한때 냉소적인 사람들이 근사해 보였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쪽 입귀가 올라가며 한 마디 툭, 그들은 말이 많은 사람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지 조용한 것을 못 견디는 거죠? 또는 길게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요? 지겹다는 듯 요점만 말해요!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대신 남의 말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르고 토막 내기를 좋아했지 젊은 날 그게 멋져 보여 그들을 따라 배우고자 했지 너는 자존심도 없어?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 인간의 본 모습은 보노보사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다정하다는 것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 왜 좋은 것을 두고 남의 것을 부러워했을까 나는 나를 좀 더 다정하게 대하기로 했어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중에서 꼭두각시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직도 어디선가는 저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무대 뒤에서 인형들을 조종하며 그는 신이 된 기분을 즐긴다고 한다 가끔 내 팔다리를 묶어 누군가 끌고 다닌다 그의 짓일까 조종하는 대로 나는 넘어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살살 좀 하라고 소리치려는데, 그는 내 입을 만들지 않는다 ---「꼭둑각시」중에서 바다에 가면 낚시 포인트가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생활엔 웃음 포인트가 있다 어제는 배달 오토바이 쌓인 박스 위 만물상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소꿉장난하듯 작은 행성에 큰 나무 세 그루뿐인 어린 왕자의 별처럼 한낮의 인형뽑기방에서 뽑은 자랑스러운 전리품들인가 만세를 부르는 갈색 옷 고릴라도 있고 눈가에 멍이 든 짱구 인형도 있고 ---「웃음 포인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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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시인들은 멀리 과거와 대화하고, 더 멀리 미래와도 이야기를 나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우선 ‘사람’이며, 나아가 “생물학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나무와 풀과 꽃과 소통하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바위와도 무람없이” 지낸다고도 했습니다. 정선희가 20억 년 전 지질 시대를 탐색하고, 중생대의 공룡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없이 초라한 존재자인 인간의 유한성을 투철하게 인식한 결과입니다. 또한 드넓은 우주의 운행과 그것을 따라 생멸하는 다양한 생명들을 살핀 것도 종당에는 인간애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시인이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만 사유한 게 아님도 보았습니다. 그는 순간과 찰나를 보았고, 거기서 ‘초록’과 ‘슬픔’과 ‘우울’의 진정한 의미가 주체-객체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탈주체화와 일의성임을 알았습니다. 그 극점에 이르러 정선희는 ‘모두의 편’이 되고자 하는 시적 열망을 아름다운 표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등단 14년을 맞은 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입니다. 『푸른 빛이 걸어왔다』(시와표현)와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상상인),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상상인)를 잇는 돋보이는 성과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성과가 양적인 데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소재와 제재, 표현의 연속성과 더불어 매우 현대적인 철학적 사유가 서정시의 의상을 입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점은 오래도록 시단의 큰 주목을 받을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김재홍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사람의 눈빛을 약으로 쓸 때가 있었다 -정선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