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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해탈은 어렵지 않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제 마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도를 찾는 마음이 도를 잃는 마음이다 불교 수행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 시절인연을 언어의 폭으로 제한하지 말기를 허기진 마음이 쉴 곳은 어딘가 2. 시절인연에 욕망을 담지 마라 왜 물고기란 말이 이상하지 않았을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해석과정을 반조해 보기를 생명을 온전히 드러내고자 하는가 마음 비움이란 불안정한 상황과 화해하는 공능 3. 마음을 고요히 하려는 것도 부질없는 힘씀이다 몸과 마음 모두가 인연의 전체상 어제를 비운 만큼 오늘을 오늘처럼 산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보라 마음을 고요히 하려는 노력도 내려놓기를 4. 현상을 좇지 않으면 부족함도 없고 남음도 없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인연에 수순할 뿐 없음은 있음의 뿌리 제 역할을 잃은 안내문 묻는 일이 허공을 맴도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사건과 사건을 잇는 평온한 마음이 도 5. 취하고 버리는 일이 곧 꿈속의 꿈 생명 흐름의 길[道]은 정해져 있지 않다 없음[無]이 도(道)를 상징한다고 여기지 마라 이해가 환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무심을 추구해도 길에서 길을 잃는다 마음마다 도를 드러내는 것이 무심이다 6.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길이 곧 해탈로 포장된 길 물을 들고 물을 찾지 말기를 진여심과 생멸심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생명 현상 하나하나가 그대로 중도실상 움직임을 좇아서도 안 되지만 멈추려 해서도 안 된다 집착심을 탓하지 말기를 7. 내부도 내부만이 아니고 외부도 외부만이 아니다 아는 마음이 알려지는 마음에 끌려가지 말기를 그릇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시비심을 키우는 자양분은 생명 진화가 말해 주는 무상 8. 보이는 것이 환상인 줄 모르는 것은 스스로 외부자가 되는 것 관계를 통해 드러난 사건, 마음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심상과 의미를 생성하는 기억의 자모음 몸과 마음과 의는 하나이면서 셋이다 9. 마음챙김은 집착을 깨뜨리는 망치 공성도 근본이 아니다 뿌리도 공이요 가지도 공이다 공은 무경계 의식이 아닐까 10. 참됨도 구하지 말라 공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의식된 것은 존재하는 듯한 홀로그램 11. 번뇌의 길이 열리는 순간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상상하는 능력이 생기자 몸과 마음도 생겨났다 진리를 찾는다고 마음 밖을 돌아다니지 마라 12. 집착, 마음에서 마음을 떠난 환상 생각의 주체도 따로 없다 순간적으로 인식 주체와 객체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13. 마음을 찾는 것조차 이미 어긋난 일 빔을 사유한다는 것은 이름이 존재를 만든다 몸과 마음과 기억정보의 통합체 아뢰야식 14. 경계도 되고 마음도 되는 공 이미 쓰인 원고를 읽고 있는 의식 아는 마음과 알려지는 대상 모두가 아뢰야식의 그림자 능과 경을 알고자 하는가 15. 마음조차 없다 몸과 마음과 의는 분리될 수 없다 쉬는 마음이 불성이다 빈 마음에 스며드는 이웃의 빛으로 지금 여기가 열린다 맥락에 따른 자유로운 변환, 지혜 16. 의미를 해체할 수 있어야 의미를 만드는 것이 창조 행위가 된다 언어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기억을 나누기 위한 것 배움은 끼어들지 않는 들음 함께 어울리는 소리의 향연은 어디에 17. 생명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생명의 율동은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반조하지 않으면 고집이 세진다 놓아 두면 세계상이 바뀐다 18.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쁜가 공은 텅 빈 상태가 아니다 삶은 언어의 의미를 넘어선다 19. 벗어나야 할 삼계도 없으며 도달해야 할 부처세계도 없다 시절인연은 연대와 배치로 드러나는 사건이다 누구만의 누구를 찾지 마라 자신을 싫어하는 연습을 하지 말기를 20. 깨닫고자 하는 것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다 외부는 만들어진 내부 제발 육진 경계를 싫어하지 말기를 21. 꿈속에서 꿈을 꾸지 말기를 마음이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생명 활동의 지휘자는 없다 22. 시절인연을 탓하지 마라 앎이 발생하지 않아도 사건・사물은 있는가 동일성과 유동성 의미를 창조하는 행위 신명이 나는 일 23. 시비를 가르는 마음을 내려놓기를 의식의 내용은 제어된 환각 언어의 한계가 해석의 한계 24. 알아차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들어진 의미에 현혹되지 말기를 시절인연의 차이가 앎으로 드러난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곧 해탈 25. 생명의 기운을 나누는 일 찰나 찰나 드러나는 현묘한 마음 찾아야 할 마음이 따로 없다 부질없는 욕심은 자신을 옭아매는 틀 26. 빈 마음의 연대가 생명 활동의 실상 정체성 없는 정체성 의미를 창조해야 하지만 27. 사건들을 관통하는 하나도 없다 누구나 알 듯 의미는 만들어진 것이다 사유의 유연성을 담보하는 마음 비움 28. 조화로운 생명의 춤 외부는 해석된 내부다 비움이 창조적 생명 활동의 기반 29. 무엇이 되려 애쓸 것 없다 어느 것이건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지 않아도 될 아픔을 지지 말기를 30. 의식의 한계에 갇히지 말라 지켜보는 일이 의식의 한계를 새롭게 설정하게 한다 이름 짓는 일이 사건을 규정하는 일이다 31. 해탈의 삶은 제 마음이 제 마음을 품어 안은 삶 인지된 것들은 외부가 아니다 찾을수록 헤맨다 32. 비움과 연결은 하나의 사건이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마음씀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온 삶이 된다 생명의 소리를 온전히 듣기 위해서는 33. 바늘 끝보다 작기도 하고 경계 없이 크기도 한 마음현상 마음 상태가 곧 도다 도를 추구하면 도와 멀어진다 34. 있고 없다는 헛소리 알려지는 마음을 좇아가지 말기를 있을 때는 있음만 보이고 없을 때는 없음만 보이지만 35. 변해 가는 모습마다가 존재의 의미 알려지는 것이 있는 것이 된다 자기가 만든 영상에 속지 말기를 중생 세계를 끝낸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36.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중생의 세계도 없고 부처의 세계도 없다 삶의 시간은 늘 머묾 없는 지금 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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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작용은 생각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생각길은 ‘아는 마음’과 ‘알려지는 마음’이 함께 현상하면서 생긴다. 그때 비로소 의식적인 인식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해서 제 마음만의 욕구를 따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만족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의미가 외부의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해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석된 분별상을 아는 마음이 좇아 가게 되면 쉬운 길도 어려운 길이 되고 만다. 이것이 욕망의 추를 따라 움직이는 반조 없는 마음씀이다.
---「1. 해탈은 어렵지 않다 중에서」중에서 번뇌란 삶의 뿌리가 자리 잡기 어려운 토양과 같으니, 번뇌가 많을수록 뿌리 뽑힌 몸으로 삶터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것과 같다. 쉴 곳 없는 곳에서 쉴 곳을 찾아다니는 고달픔이 번뇌가 만들어 낸 열매다. 집착이란 인연과 상응하고 화해하는 공능을 없애는 것과 같으니 그렇지 않으려야 그렇지 않을 수도 없다. 생명활동의 본질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과 화해하면서 일정 수준의 안정적인 삶터를 확보하려는 것이 생명의 활동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인데, 집착심의 강도만큼 유연한 화해심이 작동하지 못하기에. 그런 삶은 바쁘지만 별 소득 없이 힘든 일상. 집착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탓할 일만도 아닌 것 같지만, 해도 어찌하겠는가. 이미 새로운 인연상과 계합하기에는 아귀가 맞지 않으니. 어느 시절에는 그것이 유용했었으리라는 가정에서 집착심의 유용성을 옹호해 보려 살피고 살펴봐도 이미 철 지난 넋두리 같으니, 집착심의 강도만큼 찾아오는 아픔은 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서글픔. ---「2. 시절인연에 욕망을 담지 마라 중에서」중에서 따르려는 것도 따르지 않으려는 것도 실제로는 마음이 만든 세계상. 하니 상을 내려놓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인 연기법으로서의 한 세계를 보고 알 수 없으나, 상을 내려놓으면 언제나처럼 그렇게 열려 있는 해탈세계. 해탈세계와 온전히 상응하는 마음이 원만한 마음. 이 마음에는 넘쳐남도 없고 부족함도 없어 지극한 도인 해탈의 길이 보려 하지 않는데도 훤히 보이나, 취하고 버리려는 마음씀에서는 취해도 부족하고 취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가득해, 한결같이 갈팡질팡하기 바빠 길마다 번뇌의 길이 된다. ---「4. 현상을 좇지 않으면 부족함도 없고 남음도 없다 중에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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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가려 선택하는 마음을 꺼릴 뿐이다!” 정화 스님이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신심명의 요체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 승찬의 『신심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탈은 어렵지 않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며, 취하고 버리고,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마음을 좇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정말 해탈은 이렇게 쉬운 것일까? 정화 스님은 『신심명』의 이 오래된 물음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연기와 공, 무아와 유식이라는 불교의 언어뿐 아니라 뇌과학과 인지과학, 생명과 진화, 기억과 신경세포, 의식과 무의식의 언어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우리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지를 탐구한다. 우리는 대개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화 스님이 거듭 강조하듯 우리가 아는 세계는 감각 정보와 기억, 경험이 만나 그때그때 만들어 낸 ‘영상’이다. 과거의 기억정보를 바탕으로 지금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의미를 다시 ‘나’와 ‘세계’의 실재라고 믿는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도,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마음도 이 과정에서 생겨난다. 문제는 분별 그 자체가 아니다. 분별한 것을 실재라고 믿고 거기에 머무는 것, 그것이 번뇌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생각을 없애거나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억지로 고요하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생각길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현상과 마음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이다. 정화 스님은 이것을 ‘시절인연’에 온전히 자신을 여는 일이라고 말한다. 생명은 애초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세포도 이웃 세포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하나의 생명도 다른 생명들과 기운과 정보를 나누며 존재한다. 지금 여기의 ‘나’ 역시 우주와 생명의 오랜 진화, 수많은 관계와 기억이 잠시 이 모습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것도 홀로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다. 하나가 모든 것을 그것 되게 하고, 모든 것이 하나를 그것 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화 스님은 『신심명』의 구절들을 하나씩 새롭게 읽는다. “도를 찾는 마음이 도를 잃는 마음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려는 것도 부질없는 힘씀이다.” “취하고 버리는 일이 곧 꿈속의 꿈이다.” “참됨도 구하지 말라.” “마음을 찾는 것조차 이미 어긋난 일이다.” “깨닫고자 하는 것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다.” “무엇이 되려 애쓸 것 없다.” 이 역설적인 문장들이 향하는 곳은 하나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충만함에 무엇을 더 보태려 하지 말라는 것.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비로소 충만해질 수 있다고 배운다. 정화 스님은 이것을 ‘배운 결핍’이라고 부른다. 부족하다고 배웠기에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스펙과 의미와 목적을 덧붙인다. 그러나 그렇게 의미를 붙잡을수록 지금 여기에서 쉼 없이 일어나는 생명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신심명』이 말하는 해탈은 이 ‘배운 결핍’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어디엔가 있는 깨달음을 찾아가는 것도, 번뇌의 세계를 버리고 부처의 세계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중생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만드는 것 역시 마음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영상에 현혹되면 번뇌의 세계가 열리고, 그것이 만들어진 영상임을 알아차리면 바로 그 자리에서 해탈의 길이 열린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비움은 소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조 행위다. 익숙한 의미를 해체할 수 있어야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고, 이미 만들어진 생각길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지금의 시절인연과 새롭게 접속할 수 있다. 배움 역시 더 많은 지식을 쌓는 일이기 전에 다른 존재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듣는 일이다. 마음챙김 또한 마음을 붙잡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가려 선택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서 『해탈은 어렵지 않다』가 말하는 해탈은 특별한 수행자에게만 허락된 초월적인 경지가 아니다.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생각이 일어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바로 그 일상에서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마음을 없앨 필요도 없다. 번뇌를 미워할 필요도 없다. 도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무엇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다만 지금 일어난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고, 그것을 ‘나’라고 붙잡지 않으면 된다. 시절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명의 움직임에 자신을 열어 두면 된다. 승찬의 『신심명』이 1,400여 년 전 말했던 “지도무난(至道無難)”, 즉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는 선언을 정화 스님은 오늘의 삶과 언어 속으로 다시 불러온다. 뇌와 마음, 기억과 언어, 생명과 진화, AI와 인지의 시대를 통과해 다시 만나는 『신심명』이다. 찾을수록 헤매고, 붙잡을수록 멀어진다. 놓아두면 비로소 보인다. 해탈은 어렵지 않다. 이미 충만한 지금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려 하지 않는다면. 지은이의 말 “해탈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려 선택해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사는 모습마다 마음 쓰는 것마다 해탈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 경우가 없으므로 사실 그때가 되면 해탈의 삶을 산다는 말을 쓸 필요조차 없다. 번뇌의 길이 없어지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분명해지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