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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민화, 민중의 소망을 그리다
1. 신성한 용처럼 날아오르고 싶었던 사람들 〈운룡도〉 조선시대 과거시험 2. 부귀영화의 꿈, 모란으로 활짝 피다 〈모란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3. 호랑이와 까치, 어떻게 단짝이 되었을까? 〈호작도〉 양반 사회의 변화 4. 불로장생의 꿈, 이룰 수 있을까? 〈신선도〉 도교와 자연 귀의 사상 5. 그림으로 감상하는 도덕 교과 〈문자도〉 조선의 유교 덕목 6. 선비들의 지독한 공부 사랑 〈책가도〉 선비들의 일상 7. 조선시대판 제사 간접 체험 〈감모여재도〉 유교 사상과 제사 8. 금슬 좋은 부부로 살고픈 소망 〈화접도〉 혼인과 가정생활 9. 신선처럼 평안하게 살고 싶다는 꿈 〈십장생도〉 평균 수명과 ‘먹고사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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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그림입니다. 호랑이와 까치에는 새해 소망을, 병풍에는 글공부를 통해 출세하여 관직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담았습니다. 현대의 우리 가 SNS 피드나 카드뉴스 한 장에 소망과 삶의 희로애락을 담듯, 민화 역시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소망과 염원을 그렸습니다.
--- p.10 연꽃의 연(蓮) 자와 이을 연(連) 자의 음이 같기에 일부러 연꽃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시험에 연이어 붙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연꽃을 등장시킨 거지요. 이처럼 시험에 연이어 붙길 기원하는 마음을 가졌던 건 당시 과거시험이 가졌던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종 합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관문을 여러 번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 p.21 조선 후기 송세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세 살 무렵 버려진 고아였던 그는 젊어서부터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짚신을 삼으며 바지런히 일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출가해서 승려가 된 후에도 짚신을 삼아 10여 년 후에 돈 수천 냥을 모으며 부자가 된 특별한 인물이지요. (중략) 조선 사회에는 돈을 벌어도 신분 상승이 어렵다는 생각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신분 질서에 균열은 생기고 있었습니다. --- p.53 까치와 호랑이의 모습에서 단순히 복을 비는 단짝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양반과 민중의 관계를 읽어 낼 수도 있습니다. 으르렁대는 호랑이는 부정부패를 일삼고 권력으로 민중을 찍어 누르려는 양반을, 호랑이를 응시하며 당당히 대응하는 까치는 민중을 뜻합니다. 힘없고 억눌린 농민들이 권력층을 해학과 풍자로 비판하며 저항하는 마음을 드러낸 셈이지요. --- p.72 오늘날의 쌀값으로 대략 비교해 보면, 책 한 권 값이 40만 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전집이나 희귀본의 경우, 그 가격은 훨씬 더 높아져 일반 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치품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유교 공부를 하는 필독서였던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다 갖춘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고 하니, 책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손쉽게 사고 하루 만에 배송 받을 수 있는 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요. --- p.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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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보면 조선의 ‘사람’이 보인다
민화는 궁중이나 양반 계층을 위한 그림과 달리 일반 백성을 위해 만들어지고 소비된 그림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화원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화가들도 그렸으며, 정해진 기법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롭고 생생한 매력을 보여 준다. 호랑이와 까치, 꽃과 물고기, 책과 복숭아처럼 일상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는 이 친숙한 그림에서 출발한다.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는 〈운룡도〉에서는 과거시험과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을 읽고, 풍성하게 피어난 〈모란도〉에서는 부귀영화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을 살펴본다.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는 〈호작도〉에서는 변화하는 양반 사회를, 해·산·물·소나무·학·거북 등이 그려진 〈십장생도〉에서는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꿈과 당시의 생활환경을 엿볼 수 있다. 이어 〈문자도〉에서는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을, 〈책가도〉에서는 선비들의 공부와 책 문화, 〈감모여재도〉에서는 제사와 유교 사상을, 〈화접도〉에서는 혼인과 가정생활, 〈신선도〉에서는 도교와 자연에 기대어 평안한 삶을 바랐던 마음을 만난다. ‘옛날 사람들’도 우리처럼 성공하고 싶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조선을 박제된 과거로 보여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 신분 상승을 이루고 싶었던 마음은 오늘날 시험과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책에서는 과거시험을 앞둔 이들에게 합격을 기원하며 〈약리도〉를 선물했던 풍습을 오늘날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합격을 기원하며 떡을 건네는 모습과 연결한다. 그런데 조선의 시험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혼란스러웠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에서는 부정행위와 대리시험, 답안지 바꿔치기, 채점관 매수 등이 나타났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책은 이러한 풍경을 보여 주면서 “수백 년 전의 불공정은 오늘날 사라졌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모의 경제력이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까지 연결해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모란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 사람들에게 모란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부와 출세, 건강하고 영화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담는 상징 이었다. 경제와 시장이 성장하면서 일부 농민과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고 미술품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민화는 왕실과 양반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나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대중적인 예술로 자리 잡았다. 그림 한 장으로 역사·사회·경제·문화가 연결된다 『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의 또 다른 장점은 민화를 중심에 두면서 역사 공부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확장한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을 이야기하다가 조선의 신분제와 공정성의 문제를 만나고, 모란을 이야기하다가 농업 생산력과 시장, 화폐의 유통을 살펴본다. 〈책가도〉에서는 책의 가격과 유통, 책을 사고팔던 책 상인의 등장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책은 제작과 유통이 쉽지 않아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으며,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책을 사고파는 전문적인 책 상인인 ‘책쾌’가 등장했다. 〈문자도〉에서는 유교의 핵심 덕목이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되었는지 살펴보고, 그 이면에서 유교적 질서가 조선 사회의 중요한 가치였던 동시에 사람들을 가두는 틀이 되기도 했다는 점까지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며,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삶과 연결해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다. 역사를 ‘외우는 과목’에서 ‘생각하는 공부’로 청소년에게 역사가 어려운 이유는 왕과 연도, 사건과 제도를 외우는 데서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화라는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조선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왜 하필 모란이었을까?” “왜 책을 그림으로 그렸을까?” “왜 시험을 앞두고 잉어 그림을 선물했을까?”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선의 신분제, 유교, 경제 성장, 시장과 화폐, 시험제도, 가족과 혼인, 종교와 사상 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옛 그림을 읽으면 역사가 보이고, 역사를 읽으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보인다. 『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는 민화에 관심 있는 청소년뿐 아니라 역사와 미술을 연결해 가르치고 싶은 교사, 아이와 함께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은 부모에게도 새로운 역사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