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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1
우리 책의 근원을 찾아가는 즐거운 독서 여행
김기태
처음책방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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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첫 번째 이야기]

맑고 깨끗한 서정과 활자미학의 극치,

그리고 “나랏말의 운율만을 고르고 있던 이의 선택된 정서들”

영랑시집(永郞詩集) 김윤식 시집 / 시문학사 / 1935년 11월 5일 발행

영랑시선(永郞詩選) 김윤식 시집 / 정음사 / 1956년 5월 28일 발행


[두 번째 이야기]

우리 정서를 농축시켜 빚은 국민 애송시「진달래꽃」이 담긴 시집

진달래꽃 김소월 시집 / 숭문사 / 1951년 11월 21일 발행


[세 번째 이야기]

“차라리 아는 이들을 떠나 사슴처럼 뛰어다녀 보다”

사슴의 노래 노천명 시집 / 한림사 / 1958년 6월 15일 발행


[네 번째 이야기]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광장 최인훈 장편소설 / 정향사 / 1961년 2월 5일 발행


[다섯 번째 이야기]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품은 최고의 소설집을 만나다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소설집 / 창우사 / 1966년 2월 5일 발행


[여섯 번째 이야기]

“우리 시대에 만연되어 가고 있는 지식인들의 기능화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한 문제의 서적”

지성과 반지성 김병익 문화론집 / 민음사 / 1974년 9월 20일 발행

[일곱 번째 이야기]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제자리에 앉게 되는 날을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 법정 수상집 / 샘터사 / 1978년 5월 1일 발행


[여덟 번째 이야기]

“그물도 치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헤매는 중생이여!”

만다라 김성동 장편소설 / 한국문학사 / 1979년 11월 10일 발행


[아홉 번째 이야기]

‘거문고를 타며 노는, 어린아이처럼 맑은 이’가 남긴 서정시편

금아시선 피천득 시집 / 일조각 / 1980년 4월 10일 발행


[열 번째 이야기]

한 시대 한 사회의 상처이며 치부이자 바로 우리 이야기를 담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 이동철 장편소설 / 현암사 / 1981년 6월 30일 발행


[열한 번째 이야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간절한 외침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선집 / 창작과비평사 / 1982년 6월 5일 발행


[열두 번째 이야기]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고래사냥 최인호 장편소설 / 동화출판공사 / 1983년 7월 25일 발행


[열세 번째 이야기]

생사의 기로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먼저 걱정했던

정치 거목의 처연한 기록

김대중 옥중서신_민족의 한을 안고 김대중 지음 / 청사 / 1984년 8월 15일 발행


[열네 번째 이야기]

아내의 영전에 바친 못다 한 말들이 모여

밀리언셀러 시집이 되다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집 / 실천문학사 / 1986년 12월 10일 발행


[열다섯 번째 이야기]

한 평범한 여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

혹은 아직도 꿈을 못 버린 이야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박완서 장편소설 / 삼진기획 / 1989년 11월 20일 발행


[참고문헌 및 자료]

저자 소개 1

2001년 3월부터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와 저작권의 관계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한국출판평론상, 2003년 책의 날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2005년 한국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2007년 책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16년 한국전자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등을 수상했다. 2018년 K-MOOK(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 [생활 속의 표절과 저작권]이 선정되었다. 출판평론가로서 각종 매체에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는 한편, 롯데출판문화대상 심사위원장
2001년 3월부터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와 저작권의 관계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한국출판평론상, 2003년 책의 날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2005년 한국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2007년 책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16년 한국전자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등을 수상했다. 2018년 K-MOOK(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 [생활 속의 표절과 저작권]이 선정되었다. 출판평론가로서 각종 매체에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는 한편, 롯데출판문화대상 심사위원장, 제천기적의도서관 운영위원장,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위원,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기관과 단체를 대상으로 저작권과 연구윤리에 대한 자문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30여 년 동안 모은 초판본과 창간호 등 희귀본 수만 종을 바탕으로 ‘처음책방’을 설립하여 서점 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 3월에는 문예지 《계간 시현실》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저작권의 진화』, 『어린이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가이드』, 『소셜 미디어 시대에 꼭 알아야 할 저작권』,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등 다수와 함께 시집 『뉘우칠 것 많아도 여전히 고개 들고 사는 나에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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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52*225*198mm
ISBN13
9791122053234

책 속으로

시문학파 시인 김영랑의 첫 시집을 드디어 만나다

그게 언제였던가. 1956년 판 『영랑시선』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직접 1935년 판 『영랑시집』을 소장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49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1956년에 재발행된 『영랑시선』이 영랑의 작품 중에서 골라 엮은 것이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영랑시집』은 김영랑 시인의 본격시집으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비슷한 시기 같은 출판사에서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의 『정지용시집』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 시집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이 『정지용시집』과 『영랑시집』은 2009년 당시 문화재청(현재의 국가유산청)에서 근대문학유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귀한 시집을 만난 것은 우연한 기회에 고서점을 운영하는 분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더군다나 놀랍게도 90년 세월이 무색하게 고고한 자태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박물관이었나 아니면 문학관이었나 흐릿한 기억이나마 1935년 판 『영랑시집』을 먼발치에서 구경했던 적이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기억만큼은 선명했기에 온전한 『영랑시집』을 만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1950)은 1903년 1월 16일에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부농(富農)이었던 아버지 김종호(金鍾湖)와 어머니 김경무(金敬武) 슬하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9년 봄부터 서당에 다니며 한학(漢學)을 익혔고,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4세의 나이에 혼인했으나 1년여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이처럼 영랑의 생애와 문학에 있어 그의 고향 강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의 생애 중 7년 정도의 유학 기간과 말년 2년여 동안의 서울 생활을 제외하면 40년 가까운 세월을 고향 강진에 머물면서 서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를 썼으니 말이다.

1916년 2월경 상경하여 1년 남짓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한 영랑은 이듬해 3월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진학한다. 이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그리고 같은 학년에 이승만(李承萬) 화백 등이 있어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봄, 영랑은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 만세운동을 모의하다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여 옥고를 치렀고, 그 여파로 결국 휘문의숙을 중퇴한다.

1920년 9월 일본 동경 청산학원(靑山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학하면서 의미 있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때 그의 문학적 동반자이자 훗날 후원자가 되는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1904~1938)을 만났기 때문이다. 영랑과 용아는 같은 하숙방에서 지내는 동안 각별하게 친해졌다고 한다. 1922년 청산학원 인문과에 진학한 영랑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서양문학의 매력에 빠져든다. 특히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와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러나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1924년 봄에 귀국하면서 영랑의 일본 유학생활도 막을 내린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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