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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투명한 거짓말
오수영
고어라운드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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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1부. 거짓말의 역사

서문 7/ 거짓말의 역사 17/ 나를 용서하는 일 22/ 필명의 시간 24/ 어긋난 것을 바로잡기 28/ 바닷마을 아파트 32/ 점검원 36/ 책 정리 41/ 낡은 크리스마스트리 45/ 다른 세상 속으로 51/ 골목길 54/ 한밤중의 쌍화차 58/ 무주 산골영화제 62/ 당신의 시절이 끝났습니다 64/ 일회용 스크롤 70/ 독립출판 분투기 74/ 울기 좋은 곳 81/ 아빠의 이력 83/ 눈의 기록 88/ 혼자 남은 방 93

* 2부. 귓속말 게임

마음이 얇은 사람 103/ 다시 사랑 105/ 흔적들 108/ 시 113/ 추신 114/ 마음의 반경 116/ 불금의 기록 118/ 이웃집 할머니 121/ 백지의 기록 123/ 답신 128/ 용기와 마음 130/ 좋은 기운을 타고 가세요 133/ 세 식구 137/ 명절과 그 기억 140/ 공원 산책 149/ 감정 경화 158/ 한밤의 양호 161/ 비의 기록 166/ 기록의 의미 171

* 3부. 찰나의 아름다움

2막 1장/ 어긋나기 전에 바로잡기 179/ 가장 안전한 피난처 184/ 제주 산책 190/ 선배의 마음 196/ 양심의 문제 199/ 어른의 역할 201/ 리니지의 추억 203/ 최소한의 울타리 210/ 생활 방식 213/ 특별한 외출 217/ 조회수 222/ 몸살의 기록 227/ 책 냄새 230/ 찰나의 아름다움 232/ 우회로 238

저자 소개 1

작가. 출판인. 생활인.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쓰고 만든다. 한동안 항공사 객실승원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먼 길을 우회하여 다시 꿈꾸는 삶으로 돌아왔다. 저서로는 『흘러간 시간에 기대어』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조용한 하루』 『사랑의 장면들』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아무 날의 비행일지』 『긴 작별 인사』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진부한 에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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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13*188*14mm
ISBN13
9791199010505

책 속으로

에세이를 쓰는 일이란 가면을 쓰는 일이다. 가면은 주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쓰지만, 역설적으로 가면 뒤에 숨어 내면의 깊숙한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도 쓴다. 물론 가면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온한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가면 뒤에서 가장 용감하고 솔직해지는 사람이라면, 오직 그때만 모든 진실과 마음을 눌러 담아 가장 투명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가면을 쓰고 싶다. ---p.9

나의 거울은 언제나 나를 실제보다 작게 비췄다.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청춘의 모든 것을 유예했다. 내가 먼저 커지고 싶었고, 커진 후에 청춘을 돌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세상엔 미루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고, 한 번 미뤄진 일들은 대부분 그것으로 작별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거울 속의 나하고만 지냈다. 거울 밖의 세상은 외면한 채 나랑만 놀았고 나랑만 싸웠다. ---p.22

바닥에 정리해 둔 책들을 차례로 훑어보며 상자에 담는다. 지난 삶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걸 보면, 결국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내 삶의 이력과 다름없다. 책들은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나의 과거를 고스란히 품은 채 서가에서 묵묵히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때가 되면 우연을 가장해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 지금의 너를 존재하게 해준 것들을 절대 잊고 살지 말라는 것처럼. ---p.41

꾸준함은 가성비가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축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꾸준함을 유지할 때는 좀처럼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맨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억울한 게임이다.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꾸준함의 발자국에는 탄성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과거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다. ---p.37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매 순간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삶의 대가로 받아 든 결과를 묵묵히 책임지는 것.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의 삶이라면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무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설령 모두 타버린 재만 남을지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만큼은 매 순간 치열하고 뜨거웠던 나의 발자국을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 ---p.68

실시간으로 수많은 뉴스와 소식을 접한다. 알게 되면 흥미롭지만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모를 수 없는 것들. 세상의 소식이 일상을 침범하고, 타인의 소식이 일상을 잠식한다. 잔잔한 호숫가에 수시로 바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때마다 일상은 중심을 잃고, 내 안에는 나보다 소식이 많아진다. 나는 소식으로 행복하고, 소식으로 불안하고, 소식으로 작아진다. ---p.72

우리는 사랑할 각오로 걷지 않았다. 우리는 차라리 이별할 각오로 걸었다. 사랑할 각오로 걷는 사람은 사랑을 잃지만, 이별할 각오로 걷는 사람은 잃을 게 없었다. 우리는 조금 외로웠고, 이별이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순간만을 믿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순간만이 유일했다. ---p.108

백지 앞에서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지만, 실은 글쓰기가 두려워 사랑이라는 감성적인 말을 앞세웠던 건 아닐까. 사랑이라 말했지만 볼품없는 사랑을 바라지는 않았고, 사랑이라 말했지만 모두의 축하를 받는 근사한 사랑만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순간들만 가득한 게 사랑이라면 과연 누가 사랑을 포기할까. 욕심과 희망 뒤의 나는 언제나 두려웠다. 글을 매듭짓지 못할까 봐, 누구도 나의 글을 읽어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더는 일기조차 쓰지 못할까 봐, 그래서 결국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나의 선택을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 어쩌면 두려움이 사랑의 다른 말이라도 되는 걸까. ---p.131

우리에게 잘못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구 하나 떳떳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단지 지금의 우리가 서로의 잘못 같아서 차라리 외면하고 만다. 명절 때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목격하면 궁금해진다. 만약 우리가 오래전 꿈꾸던 우리의 모습이 되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언뜻 화목한 풍경이 되었을까. ---p.213

기억의 목적은 사실을 정확하고 빠르게 맞추는 게 아닌, 단지 지나온 순간을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기억이 사실과 조금 다른 혼자만의 각색일지라도, 그 기억으로 끝내 현재를 살아낼 수 있다면 과연 누가 그 사람의 기억을 오답으로 빗금 칠 수 있을까. 기억도 강물도, 단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갈 방향을 따라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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