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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거짓말의 역사
서문 7/ 거짓말의 역사 17/ 나를 용서하는 일 22/ 필명의 시간 24/ 어긋난 것을 바로잡기 28/ 바닷마을 아파트 32/ 점검원 36/ 책 정리 41/ 낡은 크리스마스트리 45/ 다른 세상 속으로 51/ 골목길 54/ 한밤중의 쌍화차 58/ 무주 산골영화제 62/ 당신의 시절이 끝났습니다 64/ 일회용 스크롤 70/ 독립출판 분투기 74/ 울기 좋은 곳 81/ 아빠의 이력 83/ 눈의 기록 88/ 혼자 남은 방 93 * 2부. 귓속말 게임 마음이 얇은 사람 103/ 다시 사랑 105/ 흔적들 108/ 시 113/ 추신 114/ 마음의 반경 116/ 불금의 기록 118/ 이웃집 할머니 121/ 백지의 기록 123/ 답신 128/ 용기와 마음 130/ 좋은 기운을 타고 가세요 133/ 세 식구 137/ 명절과 그 기억 140/ 공원 산책 149/ 감정 경화 158/ 한밤의 양호 161/ 비의 기록 166/ 기록의 의미 171 * 3부. 찰나의 아름다움 2막 1장/ 어긋나기 전에 바로잡기 179/ 가장 안전한 피난처 184/ 제주 산책 190/ 선배의 마음 196/ 양심의 문제 199/ 어른의 역할 201/ 리니지의 추억 203/ 최소한의 울타리 210/ 생활 방식 213/ 특별한 외출 217/ 조회수 222/ 몸살의 기록 227/ 책 냄새 230/ 찰나의 아름다움 232/ 우회로 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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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는 일이란 가면을 쓰는 일이다. 가면은 주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쓰지만, 역설적으로 가면 뒤에 숨어 내면의 깊숙한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도 쓴다. 물론 가면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온한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가면 뒤에서 가장 용감하고 솔직해지는 사람이라면, 오직 그때만 모든 진실과 마음을 눌러 담아 가장 투명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가면을 쓰고 싶다. ---p.9
나의 거울은 언제나 나를 실제보다 작게 비췄다.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청춘의 모든 것을 유예했다. 내가 먼저 커지고 싶었고, 커진 후에 청춘을 돌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세상엔 미루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고, 한 번 미뤄진 일들은 대부분 그것으로 작별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거울 속의 나하고만 지냈다. 거울 밖의 세상은 외면한 채 나랑만 놀았고 나랑만 싸웠다. ---p.22 바닥에 정리해 둔 책들을 차례로 훑어보며 상자에 담는다. 지난 삶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걸 보면, 결국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내 삶의 이력과 다름없다. 책들은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나의 과거를 고스란히 품은 채 서가에서 묵묵히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때가 되면 우연을 가장해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 지금의 너를 존재하게 해준 것들을 절대 잊고 살지 말라는 것처럼. ---p.41 꾸준함은 가성비가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축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꾸준함을 유지할 때는 좀처럼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맨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억울한 게임이다.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꾸준함의 발자국에는 탄성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과거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다. ---p.37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매 순간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삶의 대가로 받아 든 결과를 묵묵히 책임지는 것.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의 삶이라면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무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설령 모두 타버린 재만 남을지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만큼은 매 순간 치열하고 뜨거웠던 나의 발자국을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 ---p.68 실시간으로 수많은 뉴스와 소식을 접한다. 알게 되면 흥미롭지만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모를 수 없는 것들. 세상의 소식이 일상을 침범하고, 타인의 소식이 일상을 잠식한다. 잔잔한 호숫가에 수시로 바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때마다 일상은 중심을 잃고, 내 안에는 나보다 소식이 많아진다. 나는 소식으로 행복하고, 소식으로 불안하고, 소식으로 작아진다. ---p.72 우리는 사랑할 각오로 걷지 않았다. 우리는 차라리 이별할 각오로 걸었다. 사랑할 각오로 걷는 사람은 사랑을 잃지만, 이별할 각오로 걷는 사람은 잃을 게 없었다. 우리는 조금 외로웠고, 이별이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순간만을 믿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순간만이 유일했다. ---p.108 백지 앞에서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지만, 실은 글쓰기가 두려워 사랑이라는 감성적인 말을 앞세웠던 건 아닐까. 사랑이라 말했지만 볼품없는 사랑을 바라지는 않았고, 사랑이라 말했지만 모두의 축하를 받는 근사한 사랑만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순간들만 가득한 게 사랑이라면 과연 누가 사랑을 포기할까. 욕심과 희망 뒤의 나는 언제나 두려웠다. 글을 매듭짓지 못할까 봐, 누구도 나의 글을 읽어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더는 일기조차 쓰지 못할까 봐, 그래서 결국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나의 선택을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 어쩌면 두려움이 사랑의 다른 말이라도 되는 걸까. ---p.131 우리에게 잘못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구 하나 떳떳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단지 지금의 우리가 서로의 잘못 같아서 차라리 외면하고 만다. 명절 때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목격하면 궁금해진다. 만약 우리가 오래전 꿈꾸던 우리의 모습이 되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언뜻 화목한 풍경이 되었을까. ---p.213 기억의 목적은 사실을 정확하고 빠르게 맞추는 게 아닌, 단지 지나온 순간을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기억이 사실과 조금 다른 혼자만의 각색일지라도, 그 기억으로 끝내 현재를 살아낼 수 있다면 과연 누가 그 사람의 기억을 오답으로 빗금 칠 수 있을까. 기억도 강물도, 단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갈 방향을 따라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p.218 |